-* 캉첸중가서 실종된 ‘철의 여인’ ‘반다 루트키에비치’ *-

캉첸중가서실종된’철의여인”반다루트키에비치’

여성최초로K2등반으로히말라얀레이스뛰어든’철의여인’
"히말라야14봉모두정복"꿈펼치다9번째8,000m산캉첸중가서실종

에베레스트,K2에이은세계3위의고봉캉첸중가(8,586m).히말라야의8,000m이상고봉을모두오르겠다고약속한반다루트키에비치가8,300m지점에서마지막모습을보인뒤영원히사라져버린산이다.

1990년세계산악계는한여성의포효앞에숨을죽였다.당시까지8,000m산6개를올라여성최다기록보유자였던그녀는“앞으로1년안에남아있는8,000m산8개를모두오르겠다”며당찬포부를밝혔던것이다.그녀는이프로젝트를‘꿈의캐러밴’이라이름붙였다.

자신이평생동안추구해온히말라야고산등반의대장정을멋지게마무리지으려는원대한꿈이다.만약그녀가범상한산악인이었다면아마도조롱거리가되었을것이다.하지만세계산악계는그녀의말을허풍이나농담으로받아들이지않았다.그녀는20세기최고의여성고산등반가반다루트키에비치(1943~92)였던것이다.

반다는직설적이고공격적인성품의산악인이다.그녀의기자회견직후몇몇남성산악인들이불편한기색을보이자반다는대뜸되받아쳤다.“왜요?8,000m산14개를모두오르는것이남성들만의게임인가요?”왜무리하게도1년만에모든등반을끝내려하느냐고묻자그녀는담담하게대답했다.“이제내나이도50을바라보고있어요.시간이별로없다구요.

일단8,000m산에서고소적응이이루어져있다면속전속결로끝내는것이더욱효율적이라는것은이미상식이아닌가요?”반다는2차세계대전이한창이던1943년리투아니아의한시골마을에서태어났다.워낙가난한집안출신이었는데전쟁까지겹쳤으니그성장과정이비참했으리라는것은불문가지의사실이다.

반다는먹을것이없어염소젖을먹으며자라났다고한다.하지만그녀는자신의가난조차농담의대상으로삼아시원하게웃어젖힐만큼통이큰여자다.반다는언제나이렇게말하며웃어대곤했다.“제가본래부터강인한체력을타고났다구요?천만에!염소젖을먹고자라면누구나그렇게돼요.여러분도한번장기복용해보세요!”

폴란드의과학기술고등학교에서10대를보낼때만해도그녀는착실하고공부잘하는장학생이었다.하지만우연히‘바위맛’을알게된18세이후그녀의삶은전혀다른방향으로치닫는다.오직바위와얼음그리고만년설로뒤덮인히말라야가그녀의눈앞에서어른거리게된것이다.

반다는19세때우수한성적으로등산학교를졸업한다.그리고불행하게도이미이때부터‘성차별’의높은벽을절감하게된다.“강사들은내가여자라고해서겁만주기일쑤였죠.끔찍한등반사고장면을찍은사진을보여주면서여자가도전하기에는너무터프한분야라고말하곤했죠.나는그때마음속으로외쳤어요.여자인내가너희들보다훨씬더잘할수있다는걸보여주지!”

당시는흔히‘철의장막’이라는말로표현되던동서냉전의시대였다.하지만집요하고억척스러운성격의반다는그두터운장막을헤집고나와22세때알프스에첫발을내딛는다.훗날‘폴란드가낳은철의여인’이라불린한위대한여성산악인의첫번째비상이다.당시그녀에게는알프스의등반대상지까지타고갈케이블카나리프트삯을지불할돈조차도없었다.하지만반다는여성만으로이루어진자일파티(암벽,빙벽을등반할때자일을묶고함께오르는파트너)들을이끌고당당히아이거북벽과마터호른북벽에올랐다.

특히마터호른북벽은동계여성세계초등이다.이쯤되자보수적인남성우월주의에가득차있던폴란드산악계에서조차그녀를무시할수없게되었다.1978년폴란드에서는두명의국민적영웅이탄생한다.한명은교황요한바오로2세가된캐롤보이틸라였고,다른한명은여성단독으로에베레스트정상에선반다루트키에비치였다.하지만그녀의에베레스트단독등정에는뼈아픈내막이있다.당시그녀가속해있던원정대는카를헤를리히코퍼가지휘하는국제합동대였다.

그런데헤를리히코퍼가반다를부대장으로임명하자문제가발생했다.남성대원들이여성부대장으로부터지휘받는것을치욕스럽게여겼던것이다.“기가막히더군요.심지어그들은나와함께자일을묶는것조차거부했어요.그래?좋아!그렇다면나혼자올라가지!제에베레스트단독등반은그렇게해서이루어진거에요.”여성세계초등이라는대기록을세운반다의K2등반역시그야말로피눈물나는역사를가졌다.

1982년의첫도전에서그녀는동료를잃는다.84년의재도전역시강풍과폭설앞에서눈물을머금고돌아서야했다.그녀의리더십에끊임없이문제제기를하는남성대원들과의갈등에지친반다는86년이되자아예소규모의알파인등반방식으로K2에세번째로도전하여몇차례의사선을넘어선끝에그정상에서게된것이다.그리고그녀는내친김에그동안‘남성들의전유물’처럼여겨지던‘히말라얀레이스’에뛰어든다.

그것도1년안에남아있는8개의산에모두오르겠다는야심찬기자회견과함께.이것이바로저유명한반다의‘꿈의캐러밴’프로젝트이다.결론부터말하자.그녀는기자회견이듬해인91년,초오유와안나푸르나2개의산에올랐을뿐이다.하지만그녀는포기하지않았다.다시92년에남은6개를해치우겠다고호언장담했다.그리고92년봄,9번째산인캉첸중가8,300m부근에서마지막모습을보인후영원히우리들의시야에서사라져버렸다.반다의‘꿈의캐러밴’프로젝트는그렇게실패했다.

하지만그녀의등반과삶조차도실패했다고말할수있을것인가?반다는말한다.“등반의본질은정상에서려는노력따위가아닙니다.그것은고통을극복하려는결단들의연속일뿐이지요.”나는그녀에게서비극적인시지푸스의초상을본다.그시지푸스는남성이아니다.반다는히말라야의고산과더불어남성중심의장벽에끝없이도전했던불굴의여인,철의여인이었다.



한국원정대가목숨구해주자스틱없어졌다며되레짜증…

거친성품의’여장부’로유명하다.

반다루트키에비치의직설적이고공격적인언행은널리알려져있다.같은여성산악인이면서도프랑스의카트린느데스티벨이나미국의린힐과는전혀다르다.카트린느나린이‘여성적’이라면,반다는명백히‘남성적’이다.남성산악인들은어떤뜻에서그녀를두려워했다고도볼수있다.반다는포부나추진력,테크닉이나파워,더나아가성품이나언행에서조차남성들을압도하는면모를보였다.

반다는27세때폴란드보건성간부의아들인수학자보이테크루트키에비치와결혼했지만3년만에이혼한다.남편이그녀의위험한등반을더이상묵과할수없었기때문이라고한다.그녀는K2에처음도전하기직전엘브루즈에서훈련중다리가부러지는데,당시그녀를치료해줬던오스트리아의의사헬무트샤페터와재혼하지만그결혼생활역시그다지오래가지못하였다.

그녀에게있어남성들과의대립이란등반과정에서는물론이거니와결혼생활에서조차피해갈수없는통과의례였던모양이다.반다의거친성품은86년한국K2원정대의기록인김병준의‘K2,죽음을부르는산’에도잘나타나있다.당시죽음직전까지이르렀던그녀를구해준것이바로한국원정대였는데,그녀는회복되자마자자신의스틱이없어졌다면서마구짜증을냈다는기록이있다.

반다와관련된이런저런기록들을읽다보면가슴한켠에물기가머금어진다.한시대를호령했던여장부의삶이란어떤뜻에서‘상처뿐인영광’처럼보이기도하는것이다.그녀가캉첸중가에서실종되기직전남긴등반일기가가슴을친다.“나는산에서죽고싶지않다.하지만곧그일을경험하게되고익숙해질것이다.친구들이그곳에서나를기다리고있다.”

[심산의산그리고사람]<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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