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세상사람들을산에오르는사람과그렇지않은사람으로나눈다.산에오르지않는사람들에게산이야기를해봤자소귀에경읽기일뿐이다.그러던그가이번에는술자리에앉자마자대뜸이렇게물었다.“혹시헤르만불이라고들어봤어?”
나는목젖으로넘기던술에사래가걸릴만큼놀랐다.
세상에,산이라면집뒤의야산에도오르지않던사람의입에서헤르만불(1924~1957)의이름이튀어나오다니!하지만사연을들어본즉슨고개가절로끄덕거려졌다.자신의회사에서임원재교육의일환으로헤르만불의자서전‘8,000미터의위와아래’를읽게했다는것이다.
재벌기업간부들을위한리더십교육에서모리스에르족의‘최초의8,000미터안나푸르나’를읽힌다는이야기는들어본적이있다.이책은마치소설처럼쓰여져서읽기도수월하고대단히드라마틱하다.하지만‘헤르만불의자서전’이라니?이책은너무두껍고,지나치게전문적이어서,일반인들에게권하기에는조금망설여지는책이다.
“처음에는정말괴롭더라구.무슨책이생판처음들어보는산이름들만줄줄이나오고맨날거기오르락내리락하는이야기뿐이니재미도없고.”선배는그러나술자리가무르익기도전에저혼자흥분하여언성을높였다.“그런데중간쯤읽어가니까이건완전히미치겠는거야!우리들이하고있는비즈니스하고하등다를바가없더라고!”
이제궁금해진것은나였다.도대체재벌그룹의고위간부는헤르만불의삶과등반에서무엇을배웠을까?“지독한준비,과감한결단,그리고진인사대천명!”솔직히나는감탄했다.등반의세계에무지한그가헤르만불의삶을단세마디로정확하게꿰뚫어내다니!덕분에그날술값은내가냈지만더없이유쾌한술자리였다.
등반의세계에무지한사람이라도한번쯤은들어봤을법한이름이헤르만불이다.그만큼그가1953년에이룩한낭가파르바트세계초등은유명한사건이다.산악사진사에서가장유명한작품으로꼽히는것이그의초등직전과직후의사진들이다.초등직전의사진속에나오는인물은29세의싱싱한청년이다.하지만초등직후에찍힌사진속의인물은거의노인처럼보인다.
그가홀로정상에올랐다가다시마지막캠프로돌아오는데소요된시간은정확히41시간.그이틀의시간동안헤르만불은인류가일찍이체험해보지못했던시공간속을저홀로누비고다녔다.그처절하고감동적인기록이바로그의유일한자서전‘8,000미터의위와아래’이다.
헤르만불은세계등반사에서영원히빛나는‘불멸의스타’다.그가인류최초로배낭도,산소통도모두집어던지고혈혈단신으로8,000m급산의정상에올랐다가살아서돌아왔다는것은영원히지워지지않을대기록이다.하지만,선배의표현에따르면,진정감동스러운것은스타가되기이전에그가쌓아온‘지독한준비’다.
그는23세가되기전에134개의봉우리에올랐다.그는남들은여름철에오르는암벽을눈과얼음이뒤덮인겨울철에올랐다.
그는고난도의봉우리25개를33시간만에주파했다.왜그랬을까?헤르만불의답변은단순하되묵직하다.“준비였습니다.”언젠가자신의모든역량을총동원하여목숨을걸고한판승부를벌여야할‘궁극의산’을만날텐데,그때를위하여‘준비’를하고있었다는것이다.
그것이어떤산인지는누구도모른다.헤르만불자신역시자기가‘무엇’을위해서준비하고있었는지는몰랐다고고백한다.하지만그는“준비된사람만이그무엇을해치울수있다“고확신했다.그리고마침내1953년의독일-오스트리아낭가파르바트원정대원으로발탁되었을때,자신이‘무엇’을위해서준비해왔는지를섬광처럼깨달았다고한다.
당시그가남긴한마디는거의종교적인경건함마저느끼게한다.“나는준비했습니다.내생애는당신을만나기위한준비였습니다.내가아직당신을몰랐을때에도모든것은그준비였습니다.”헤르만불은마치낭가파르바트에오르기위하여태어나고살아온사람처럼그산에올랐다.
그리고최후의순간,원정대장이귀환을명령하고함께오를동반자마저시야에서사라져버린바로그순간,그는엄청난결단을내린다.모든장비들을다집어던지고저홀로정상을향하여나아간것이다.그는과연살아서내려올수있으리라고확신했을까?알수없다.훗날그는당시의결단을‘최후의모험’이라고명명했다.
그것은어떤뜻에서‘돌아올수없는강’이다.하지만그과감한결단의순간에주춤거리며뒤로물러선다면결코정상에이를수없다.헤르만불은담담하게증언한다.“8,000m와같은거봉은사람이최후의모험을다하지않고손에넣을수가없습니다.”
나는헤르만불이‘최후의모험’을결단하던그순간을떠올리면언제나전율한다.냉정하게말하자면그것은생환가능성이제로에가까운도박이다.하지만결단을못내리고돌아선다면정상은없다.그는그것을해냈다.그리고결단의순간,그는이미승리한것이다.
그는정상에오르지못했을수도있고,설사올랐다하더라도살아서내려오지못했을수도있다.그러나상관없다.지독하게준비해온사람이최후의결단을내리고나면,이제남은것은신의몫이다.사람이할수있는모든일을다하고나면이제하늘의처분을기다리는수밖에없지않겠는가?
"발밑에시커먼지옥…잠들면죽는다"8,000m정상에꼿꼿이선채’죽음의밤’을
헤르만불이낭가파르바트의정상에선것은1953년7월3일오후7시였다.간단히말해서되돌아오기에는너무늦은시간이다.그는캄캄한밤에저홀로하산을시작한다.언제나그렇듯등정보다힘든것이하산이다.엎친데덮친격으로아이젠한짝이등산화에서벗겨져천길낭떠러지아래로사라져버린다.그에게남은장비라고는이제등산용스틱두개와아이젠한짝뿐이다.정상부근에는잠시궁둥이를대고앉아서쉴만한공간도없다.
그는이상태에서꼿꼿이선채로비박에돌입한다.세계등반사상가장유명한죽음의비박이다.그의자서전‘8,000m의위와아래’에는이장면에대한묘사가압권이다.그는마치삶과죽음의경계선을훌쩍넘어버린초인처럼편안한마음으로이렇게말한다.“지금내게는추위를막을비박색도,추락을예방해주는확보용자일도없으나,앞으로다가올밤이조금도무섭지않았다.
이상하리만큼마음이편안했다.모든일이그저당연하기만했다.이렇게될수밖에없었다.처음부터알고있었던것이아닌가?”그는잠들면죽는다고스스로를다그치면서도깜빡깜빡잠이든다.그때마다자신이서있는곳을확인하고는소스라치게놀랐다고한다.“발밑에는시커먼지옥이입을벌리고있었다.하늘에는아직별이있었다.날이밝지않았나보다.나는애타는마음으로해가떠오를지평선에시선을던졌다.마침내마지막별도흐려졌다.동이트기시작했다.”
[심산의산그리고사람]<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