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가다시알프스의고봉에오르겠노라고선언하고나섰을때세인들의반응은회의적이었다.제아무리뛰어난등반가였다고해도의족을한채알프스의험봉들을오르겠다는것은명백한만용이다.당시의그는바위에기어오르기는커녕제대로균형을유지하며걷는것조차힘겨워보였던것이다.
하지만그가실제로그불편한육신을쥐어짜듯비틀어대며바위와얼음벽에올라붙는모습을본사람들은저마다입을다물수밖에없었다.제프리는어깨와머리를이용하여균형을잡고,크랙에의족을끼어넣어확보물로이용하고,손끝한마디에매달려자신의몸을허공에띄웠던것이다.그의등반모습은안쓰러웠지만동시에숭고했고,처절했지만동시에아름다웠다.
제프리는전쟁중폭격사고로다리를잃기전에도숱한등반사고를겪으며생사의갈림길을여러차례넘어섰던산악인이다.그는‘글잘쓰는산악인’으로도명성을떨쳤는데,명석하고도아름다운문장과진중한철학적태도로많은독자들을거느리고있었다.전쟁전의제프리는극한등반을즐기면서도그러한행위의한계와모순을누구보다도잘꿰뚫어보고있었다.제프리는이렇게썼다.
‘반드시올라야할필요따위는없는바위의정상을향해우리가벌이는통쾌한모험은이성적으로건도덕적으로건정당화될수없다.’그는극한등반이결코정당화될수없다는것을잘인식하고있다.하지만그렇다고해서그‘통쾌한모험’을그만둘생각은없다.그렇다면‘외다리산악인’으로서새롭게시작한등반은도대체어떤의미를지니는것일까.제프리의답변은의외로도덕적이며경건하기까지하다.
“전시에부상으로수족을잃고무기력증에빠진숱한사람들에게용기를주기위해서.”제프리는자기연민에빠져징징대는타입의사내가아니다.그렇다고사람들앞에나서서잘난체하며사회를‘계도’해야된다고생각하는유형의인간은더더욱아니다.그는다만산을사랑하고등반을사랑했던낭만적인산악인이었을뿐이다.그런그가‘용기’를주고싶었던첫번째대상은다름아닌자기자신이었을것이다.
전쟁에서다리를잃고난직후그는심각한무기력증과우울증에시달렸다.제프리는진솔하게고백한다.“삶에서그어떤의미도찾을수없었다.”그는낮으나확고한목소리로결론을내린다.“내가현세에서의삶을사랑할수있는유일한방식은산에다시오르는것뿐이라는것을깨달았다.”그가소년시절에처음바위에매달린곳은웨일스의스노우돈산군이었다.그가세상을떠날때까지반복회귀하며자신을달랬던곳도바로이곳이다.
이를테면스노우돈은그의모산(母山)인셈이다.그는바로이자신의모산에서새로운형태의등반을위한훈련을시작한다.요즘의표현으로바꾸어말하자면‘재활훈련’에매달린것이다.당대최고의산악인들이그의재활훈련에자원봉사자로참여했다.그에게서바위를배우고훗날‘에베레스트의유령’이되어버린조지리맬러리,당시최고의청년산악인으로급부상중이던프랭크스마이드등이그와함께기꺼이자일을맸다.
최고의기량과기품있는언행으로존경받던중견산악인제프리는이제다리하나를잃은대신후배산악인들의도움을얻어외다리로균형을잡으며다시알프스의창공위로날아오르게된것이다.
그는다리를잃은지7년만에피나는재활훈련을거쳐기어코몬테로사(4,634m)에올랐다.오버행과침니로가득한돌로미테의침봉들위로올라선다음에는‘꿈에그리던’바이스호른(4,505m)으로눈을돌렸다.
자신의청년시절,6개의루트로도합8번을등정했고,이때남벽과북벽에낸4개의루트는자신이초등한산이었다.한마디로그의청춘을다바쳤던산이다.제프리는한쪽발로암탑과눈처마를통과하고허리까지빠지는눈을헤치며기어코바이스호른의정상에다시올라선다음하염없이눈물을떨구었다.결코다른사람들앞에서눈물을보인적인없는‘영국신사’제프리였지만이때만큼은알프스가쩌렁쩌렁울리도록대성통곡을했다고한다.“설움이나슬픔때문이아니라기쁨과감동의눈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