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희경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은희경의안나푸르나트레킹]

내나이에하루여덟아홉시간씩열흘넘게계속해서걸어야하는트레킹일정이쉽지않다고염려하는사람도있었다.북한산산행을날마다하루에두세번씩하는셈이라니틀린말은아니었다.안나푸르나트레킹을한다고하자주위사람들이걱정을해주었다.극심한두통과구역질,호흡곤란등주로고산병(高山病)에대한것이었다.누군가는산소부족으로정신이혼미해헛것을따라갔다고하고또누군가는자다가숨이막혀한밤중에아랫마을로뛰쳐내려왔다고도했다.
그러나나는별로걱정을하지않았다.해발2000미터가넘는산에서야영한경험도여러번이었고,무엇보다머리쓰는일없이무조건앞을향해걷는단순한일이라면자신이있었다.하긴,술친구일곱명과3주동안헤어지지않고놀게됐는데겁날게뭐있었겠나.우리가운데가끔이나마산에오르는사람은두명정도였고나머지는십여년만에산길을걷거나,혹은산행경험이거의없는축이었다.하지만우리는태평했다.
잔머리깨나굴리는우리는2713미터고지인좀솜까지비행기를타고간뒤거기에서부터트레킹을시작하기로꾀를내놓고있었다.내려오는일이니올라가는것보다쉬울게아닌가.카트만두공항을거쳐포카라에도착한우리는앞으로의긴일정에대비한다는핑계로실컷먹고마셨다.오토바이를빌려타고언덕에올라가페와호로지는해를보고,‘2008년안나푸르나트레킹’이라는글자를박아단체티셔츠도맞추었다.
고산지역에폭설이내린다는말에가짜노스페이스상점으로몰려가스패치도샀는데,용도가뭐든간에색깔고르는일에만신경을썼다.그리고예정대로다음날18인승프로펠러비행기에올랐다.스튜어디스가사탕과함께솜이담긴쟁반을내밀었는데,귀막는데쓰는솜을솜사탕으로착각해입에넣는옆자리승객때문에우리는서로눈을맞추며웃음을참아야했다.
그때까지만해도나는‘세계의지붕’이라일컬어지는무시무시한장소에가까워지고있다는사실을실감하지못하고있었다.갑자기눈앞에거대한설산이나타났을때의충격은설명하기어렵다.웅장한산들이꼭대기에서눈보라를일으키며눈을부릅뜬듯바로창밖에서나와얼굴을마주하고있었다.깊게팬골짜기들이손금처럼환히보이는거리였다.크라카우어(JonKrakauer·미국의산악인겸논픽션작가)가‘희박한공기속으로(IntoThinAir)’에서묘사한장면이이거구나싶었다.
비행기유리창너머에베레스트와맞닥뜨린순간,그는에어버스300기의순항고도높이로솟은산에오르겠다는생각이얼마나무모했는지실감하며공포를느꼈던것이다.나역시덜덜떨기시작했고,누구에게인지는모르지만부디살려만주면착한사람이되겠다고수없이맹세했다.그간절한맹세는산을넘기위해몇번인가거의뒤집힐듯아찔하게흔들리던비행기가끝내악천후를이기지못하고출발지점으로회항할때까지계속되었다.
다음날에는비행기가아예뜨지도못했다.우리에게는결국아래에서부터착실히걸어올라가야하는코스외에다른선택은없었다.그일을겪은뒤나는겸손한마음으로산에올랐다,라고하면인간이란존재를잘못이해한것이다.위험이사라지면서기도도멀어져갔다.우리는구불구불끝없이이어지는가파른돌계단을하루종일오르내려야했고휴식은짧았으며밤이면침낭속에웅크린채추위에떨어야했다.
처음에는무거운소금이나곡식을싣고가는나귀떼에게길을비켜주며벗겨진잔등에도마음아파했다.그러나나중에는어딜가나발길에차이는똥과똥냄새가지긋지긋한나머지전생에얼마나나쁜놈이었으면나귀로태어났을까,라고타박하기에이르렀다.그토록경탄을자아내던계단식논의멋진풍광도시간이갈수록남해가천다랑이마을과다를게없었고,가슴을뛰게만들던설산역시도봉산보듯심상했다.

우리일행에게도어김없이고산병이찾아왔다.얼굴이퉁퉁부어올랐고두통,근육통,감기등의증세가나타나기시작했다.종아리가단단하게두꺼워져근육이생겼다며좋아했는데알고보니압력이낮아부은것이었다.하물며커피믹스봉지도터지기직전까지팽창했다.문득몇년전로키산맥을여행했던그리운기억이떠올랐다.

자동차로달리던넓은포장도로,산봉우리와산봉우리를이어주던케이블카,멋진산장에서마시던에스프레소와막구운호밀빵….걷다지친일행은그얘기를듣자마자모두들입을모아외쳤다.“우리왜거기로안가고여기온거예요?”안그래도일정에쫓기던터에여행에대한흥미까지잃게되자몇은중간에산을내려갔다.나머지사람들역시산이가까워지는재미와한국에돌아간뒤자랑할재미를염두에두지않았다면계속걸을수없었을지도모른다.

우리의최종목적은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서일출을보는것이었다.드디어전날밤숙소인마차푸차레베이스캠프에여장을풀고누웠지만잠이오지않았다.3700미터나되는곳에서잠드는일도쉽지않았지만계속눈이내려출발여부조차불확실했기때문이었다.눈은새벽두시에야그쳤다.길이있을리없었다.

셰르파족가이드가어림짐작으로내딛는걸음을따라그발자국을그대로밟으며나아가야했다.허벅지까지푹푹빠지는눈길을넘어지고구르면서.안나푸르나남봉의뒤쪽으로들어왔기때문에분지처럼설산들이사방을빙둘러에워싸고있었다.고개를들어보니북두칠성이먼하늘위가아니라바로머리뒤에서친구처럼내곁을따라걷고있었다.

추운건지공기가희박한건지온몸이얼어붙고정신이혼미했다.저멀리베이스캠프가보이는덕분에가까스로걸음을옮길수있었다.열흘넘게걸어올라왔고거기서다시새벽눈길과강추위를뚫고3시간여를걸어4130미터고지에도착했으니,풍경이못견디게아름다워야하는것은물론당연한일이었다.알고보니스키어를태운헬기가들락거리고식당에서비빔밥까지팔만큼대중적(?)인장소였지만말이다.

그날오후내려오는길에간밤의눈사태현장을보게되었다.가이드에따르면해마다여러명이목숨을잃는위험한곳이라고한다.한강폭만큼이나넓은골짜기가득커다란눈덩이가쌓여있는속으로숨죽이며조심조심걸음을옮겨야했다.프로펠러비행기로산맥을넘어갈때처럼한순간싸늘한기운이등골을훑고지나갔다.히말라야고지위에얼어붙은채죽어있는후배의시신을수습하러떠나던엄홍길대장의휴먼원정대가떠오르기까지했다.다음순간생각했다.

호들갑스럽기도하지.도시에서의삶이란옷을입고집안에들어앉아있는것과비슷하다.그속에서나는여러가지를갖춘사람처럼보이기도한다.그러나오직먹고자고안전을구해야하는거친대자연의조건속에놓인나는어지간히유치하고파렴치하고단순하다.이처럼다른존재로서의나를만나본다는데여행의의미가있는것일까.

여행을다녀오면사람들이이렇게묻곤한다.뭐가제일좋았어요?그때마다신중히대답하기위해기억을돌이켜보는데내대답은늘“떠났다는점이제일좋다”이다.두번째로좋은것은,이렇게생각할수있어다행인데,“돌아왔다”는것이다.내가끌고가는삶이버겁고피곤하고지루해서떠나고,그렇게얼마쯤지나면돌아오고싶어지는것,나에게는그게여행이다.내가몰랐거나잊고있었던나를만나본뒤에다시금나로돌아와살아가는일은어쨌든조금이나마새로울것같으니까.

-WeeklyChosun[2001호]2008.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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