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인드 코너’의 저자 ‘제프 태빈’ *-

‘블라인드코너’의저자’제프태빈’

"알수없는모퉁이를돌아라진짜모험은그곳에있다"
지구의오지찾아다니는’유쾌한모험광’
탁월한글솜씨에히말라야서仁術펼치기도

인도네시아와파푸아뉴기니의경계에위치한칼스텐츠(4,884m).오세아니아에서가장높은산으로정글과늪지대를지나야도달할수있다.

아프리카콩고민주공화국에서피그미족과함께한제프태빈

제프태빈의책‘블라인드코너’.

‘블라인드’(blind)라는영어단어의제1어의는‘눈이멀었다’는것이다.하지만이는그야말로유치원생수준의어휘인식일뿐이어서모든‘블라인드’에‘눈먼’을갖다붙이면전혀이해할수없는뜻이되어버리고만다.‘블라인드데이트’((blinddate)란‘눈먼데이트’가아니라상대방에대한사전지식이전혀없이현장에서만나곧바로시작하는데이트를뜻한다.

와인시음의최고경지는두말할것도없이‘블라인드테이스팅’((blindtasting)이다.라벨을가리고오직그와인의풍미(flavor)만으로판단을내리는것인데,제아무리내로라하는와인전문가라하더라도이냉정한시음방법앞에서는속수무책의실수를연발하기마련이다.

등산전문용어들중에서도블라인드라는단어가쓰이는것이있다.내가가장멋진등산용어라고생각하고있는것은‘블라인드코너’((blindcorner)다.직역하면‘눈먼모퉁이’가되어버려도무지무슨뜻인지알수가없게된다.자,여기암벽등반의한순간이있다.더이상은위로올라가는것이불가능하여이제후퇴를해야만하는데단하나의희미한가능성이눈에들어온다.

바로현재의암벽을버리고허공을훌쩍건너뛰어맞은편의바위에붙어보는것이다.그런데문제가있다.그맞은편바위의너머가정상으로이어질지빼도박도못할막다른골목이되어버릴지아무도알수없다는것이다.그게블라인드코너다.

자,여기히말라야등반의한고비가있다.오른쪽의능선은접근이불가능해보인다.왼쪽능선에올라서면정상으로다가가는길이나타나줄지도모른다.하지만문제가있다.일단왼쪽능선으로올라선다음에는후퇴가불가능하다.그너머에무엇이있는지를알수가없는것이다.이게바로블라인드코너다.

굳이우리말로옮겨보자면‘그너머에무엇이있을지를알수없는갈림길’정도가된다.당신의등반경력중에서이런모퉁이에서본경험이있는가.그러길바란다.왜냐하면그것이야말로등반의진정한묘미이며가치이기때문이다.이길의끝에무엇이있을지를훤히꿰고있다면그것은더이상모험이아니며단지고단한노동혹은빤한다람쥐쳇바퀴돌리기에불과한것일수도있다.

내일천한등반경력중에서도몇차례그런짜릿한순간을맛본적이있다.이름없는지방의암장이었다.그곳에사는후배산악인은굳이날더러선등을해보라고했다.이를테면일종의‘바위접대’인셈인데나처럼등반솜씨가‘메주’인친구는남몰래식은땀을흘리게되는순간이다.왼손을쭉뻗어홀드에매달리면몇초동안은허공에떠있을수있을것같다.그다음에몸을끌어올리면된다.하지만문제는언제나‘그다음’이다.

몸을끌어올린다음에는곧바로새로운홀드나스탠스를찾아낼수있을것인가.그것은아무도알수없다.바로블라인드코너인것이다.하지만이제일이분후면추락할것이확실했으므로내게는선택의여지가없었다.나는왼손을쭉뻗어홀드에매달린다음지체없이몸을끌어올리고서는급하게다음홀드를찾았다.

그런데아래에서는보이지않던확실한홀드가바로그위에숨어있었다.아아허겁지겁그홀드를움켜쥐었을때의그뿌듯한성취감과가슴이터질듯한기쁨이란!내가생각하는진정한등반이란블라인드코너를통과하는일이다.

저너머에무엇이기다리고있을지를알수없는미지의세계.현재의지위를버리고그곳에달라붙을때의그과감한결단.그리고그너머에서숨겨져있던새로운길을찾아냈을때의그자랑스러운성취감.블라인드코너에도전할때성공의가능성을점쳐보는일은어리석은짓이다.

우리삶의모든분야가그렇듯이성공과실패의확률은언제나반반이다.성공이아니면실패다.그리고그것을결정하는것은인간의영역에속하는것이아니라신의영역에속한다.그래서우리의옛선조들은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말했다.유대인들의속담은보다문학적이다.“인간은생각하고신은웃는다.”

본론에들어가기도전에지면의끝이보이니난감한노릇이다.오늘내가산과사람에대하여하고싶었던이야기는블라인드코너다.그것은등반전문용어들중의하나이며,등반의본질그자체를꿰뚫고있는개념이다.그리고내가좋아하는동시대의산악인제프태빈이남긴7대륙최고봉등정기의제목이기도하다.

흔히‘세븐서미트’라고표현되는7대륙최고봉을완등한산악인들은무수히많다.그들이남긴등반기들역시서가의한쪽면을빼곡이채우고도남는다.하지만내가가장즐겁게읽었으며깊은감동을받았던책을단하나만꼽으라면당연히제프태빈의‘블라인드코너’다.

제프태빈을우리시대의가장위대한등반가라고말한다면어불성설이다.그의등반능력은전문가그룹의중하위권에속한다고평가하는것이옳을것이다.하지만그는유쾌한모험가이자탁월한글솜씨를지닌작가이고,양어깨와목에서힘을완전히뺀겸손한산악인이며,자신의전공인의술로히말라야의원주민들을성심성의껏치료해주고있는박애주의의사다.

무엇보다도그는블라인드코너의참맛을아는사람이다.그가남긴책의모든페이지들은그자체로블라인드코너다.그다음페이지에무엇이쓰여져있을지너무도궁금하여읽는속도를멈출수없다.제프태빈은빙긋웃으며말한다.“미지의세계에대한모험이없다면우리의삶은지루한노역일뿐이다.나에겐아직도실패할수있는꿈이많이남아있다.”



유대계미국인인제프태빈은예일대학을졸업하고하버드의대에재학하던중마셜장학금을수상하여영국의옥스퍼드대학으로유학을떠났다가그곳에서암벽등반에빠져들었다.이후그는세계지도를펼쳐놓고남들이가보지않은곳만찾아다니는모험광이된다.‘블라인드코너’에는그가헤집고다닌지구의오지들이유쾌하게묘사되어있는데,그중에서도독자들로하여금배를잡고구르게하는것은인도네시아의칼스텐츠등반기이다.

칼스텐츠의산아래부락에서는아직도원시시대의생활방식을고스란히유지하고있는이리안자야의데니족이산다.이산의초등자인하인리히하러역시이들과수개월동안함께생활한다음‘나는석기시대에서돌아왔다’라는책을쓴적이있다.유쾌한청년의사제프태빈은이들원주민과도친밀한관계를유지했는데그의솔직한고백이웃음을터뜨리게만든다.

“우리는고어텍스의류와냉동건조식품그리고최신의등반장비로중무장을하고비장한자세로정상에올랐다.하지만그들원주민은맨발에벌거숭이차림으로설렁설렁우리와함께정상에올랐다.누가더위대한등반가들이란말인가?”제프는뛰어난언변으로‘펜트하우스’에고정여행칼럼을쓰고‘데이비드레터맨쇼’에게스트로출연하기도했다.

데이비드레터맨이이제세븐서미트를다정복했으니다음에는무엇을하겠느냐고묻자제프태빈은황급히질문자체를부정했다.“산을정복하다니요?절대로그런일은있을수없습니다.저는단지잠시동안그산의일부가되었던것뿐이고,무엇보다도운이좋았지요.세븐서미트이후요?우리가살고있는이지구라는행성에는아직도미지의세계가무궁무진남아있답니다.이지구와우주자체가블라인드코너랍니다.”

[심산의산과사람]<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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