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대륙 최고봉 매킨리 [1] *-

북미대륙최고봉매킨리[1]

‘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설산’을다시찾다
웨스트버트레스루트따르며데날리의미소재발견

정오를넘어서자정상으로향하는산악인들이점점많아진다.발라클라바밖으로드러난표정은대부분일그러져있다.그런데도이들은걸음을멈추지않았다.피켈이나스톡으로균형을잡아가면서슬로모션으로가파른설릉을한발한발올라선다.수도자들행렬은길게이어졌다.설사면을가로질러데날리패스로올라서고,가파른설사면을거쳐풋볼필드를가로지른다음급사면을치고올라정상능선에올라섰다.그리곤하나의정점을이룬북미최고봉매킨리정상에한명한명우뚝섰다.

▲커니스를이룬설릉을따라북미최고봉정상에올라서는김덕환씨.얼굴을내놓을수없을만큼강한추위와바람이몰아쳤다.

선경펼쳐지는웨스트버트리스따라등반

폭풍설을헤치며모터사이클힐과윈디코너를거쳐매킨리시티(4,300m)에도착한이튿날인5월25일은랜딩포인트(2,100m)출발이후처음맞는휴일이다.매킨리시티는이름에걸맞게수많은팀들의텐트들이커다란부락을형성하고있었다.이들모두하이캠프로올라설날을손꼽아기다리고있다.23,24일이틀간불어닥친폭풍설때문에하이캠프인데날리빌리지(5,250m)에는발이묶인산악인들도많다는얘기가전해졌다.

정오경,체코남녀산악인2명이우리텐트옆에눈을파는모습에김덕환씨(동국대OB)가다가가따스한물한잔씩건네준다.등정에성공한뒤폭풍설에사흘간하이캠프에갇혀있다가지금막시티로내려선이들이다.환한표정의여자와달리남자는우울한표정을짓고있다.동상때문이다.그는매킨리시티의료텐트를방문해응급처치를받았으나상태가심각해도보로하산하지못하고이튿날오전헬기로후송되어야했다.시티에머문1주일간이렇게동상환자를후송하기위해헬기가세차례나떠올랐다.매킨리에서는역시추위와바람이가장위험한방해물이다.

▲카힐트나빙하를따라올라가고있는산악인들.경비행기로접근하는사이광대한설원을걷는산악인들의모습은흰도화지위에점을찍어놓은듯했다.

“어휴,이러다기회도없는거아니에요?”

예상치못한폭풍설을C2와C3에서만나고,시티에올라섰는데도날씨가좋지않자모두들불안해한다.그런분위기속에서27일바람이잔잔해진틈을타헤드월(HeadWall·4,940m)위쪽설릉에짐을올려놓고시티로내려와레인저막사앞에적어놓은일기예보를확인한결과30일바람이15~20m/h로가라앉는다고한다.시티에서하루쉬었다하이캠프로올라그다음날정상공격에나서기로계획을세워놓았기에딱맞는날짜였지만그래도하루를당겼으면하는마음에갈등이인다.그렇지만내일날씨는오늘과비슷한풍속(30~50m/h)에구름이많겠다고나와있다.정오를넘어서자몇몇팀은헤드월을올라선다.악천후에등반이여러날늦춰지다보니일정에쫓기게된팀들이다.

“시티에오른첫날소주가얼어붙더니어젯밤은텐트안의기온이영하16℃나되었어요.정말대단한추위네요.이젠정말누에고치의고통을알것같아요.”

▲C2에서물을마시고있는김병석씨.캠프구축시에는눈을파내고눈벽돌로담을쌓아바람에대비해야했다.

김덕환씨는아침에눈을뜰때면누에고치가떠오른다고말하곤했다.우모복을입은채침낭을푹뒤집어쓰고하룻밤자고일어나면입김이닿는옷과침낭부위는허옇게서리가끼어있거나아예얼음이얼어붙어있곤했다.밤11시까지도환한백야가이어지다보니답답해도침낭을얼굴까지가리지않으면잠을이루기가쉽지않다.밤새몰아친바람에잠을제대로못이룬28일은결혼20주년기념일이다.집에서아이들치다꺼리하느라여념이없을아내를생각하니미안한마음그지없다.누에고치생활이뭐가그리좋아서특별한날마저집을비웠는지.

“형,뭐하세요?”

14년전비슷한시기에매킨리시티에머물러있던기자는텐트천에세계지도를그리는강준호형을보곤멀쩡한텐트를망치는가싶어왜그러냐고물었다.

“필석아,아시아에선에베레스트가가장높고,유럽은엘브루즈,북미는여기,남미는아콩카구아,아프리카는킬리만자로가대륙을대표하는최고봉으로알고있는데,나머지2개대륙최고봉은어디냐?”

강준호형은엉뚱한사람답게뚱딴지같은질문을했다.당시대장으로참가한박영석씨에게대답을들은강준호형은각대륙에최고봉의이름을적어넣곤깃발표시를했다.언젠간태극기를꽂겠다는각오였다.그리곤“좋다,해보자”하곤7대륙최고봉도전을발표했다.그한해전엘브루즈(5642)를오르고,97년킬리만자로(5,895m)도등정한그는98년1월함께도전한아콩카구아정상에오른뒤하산길에추락사하고말았다.

당시만해도매킨리를찾는사람가운데7대륙최고봉완등을꿈꾸는이는거의없었다.지금은달라졌다.외국산악인들은시티의캠프를두리번거리다말이통하는산악인을만나면자기가오른다른대륙최고봉에대해얘기하다가는상대방에게매킨리다음은어느봉이냐묻곤했다.매킨리를찾는많은산악인들에게7대륙최고봉완등이최고의관심사였다.

30일,이제하이캠프로올라서는날이다.대개헤드월에햇살이비춰져야등반을시작하지만우리들은서둘렀다.한낮에땀을흘리며등반하는것보다는조금추울때걷는편이힘이덜들기때문이다.그런데도이틀전짐을데포시킬때에비해힘이더든다.이런체력으로정상을오를수있을까염려되기는했으나,10피치주마링구간인헤드월에접어들자속도가빨라지고이틀전보다30분빠른3시간반만에헤드월상단에올라선다.

헤드월위쪽설릉에묻어두었던식량과장비를배낭에집어넣자제법묵직하다.가파른설릉을따라엄지손가락바위(WashburnsThumb)에도착할즈음미국클라이머들이추월해간다.맹인한명을정상까지올리는프로젝트를진행중인산악인들이다.대원들은무척피곤한표정을짓지만맹인산악인은굳은의지속에서하이캠프를향해힘차게올라우리를머쓱하게했다.

▲(왼쪽)폭풍설과화이트아웃속에서C3를향해오르다김덕환씨가암담한표정을짓고있다./(오른쪽)모터사이클힐을올라서는산악인들.커니스를이룬설릉이아름다운곳이다.

“와~,정말멋있네요.그림같아요.”

웨스트버트레스는육체적·정신적고통만주는능선이아니다.헤드월을올라설때는각양각색의텐트들이캠프촌을이룬매킨리시티가아름답게바라보이고,그뒤로웅장하게솟구친헌터(Hunter·4,442m)와포레이커(Foraker·5,304m)는영롱한보석처럼반짝이며감동케했다.그러다헤드월을올라선다음능선을따르노라면구름뚫고솟구친설릉이자아내는선경에취해넋을잃고말았다.게다가데날리패스왼쪽으로고개를빼꼼치켜들고있는북봉(5,934m)은어서오라불러대는듯하다.이런풍광에데포해놓은짐을배낭에넣어한층힘겨운상황인데도김병석씨(광양그루터기산악회)와김덕환씨는즐거움이넘치고멋진풍광을카메라에담기바쁘다.

풋볼필드올라서자옛기억떠오르며흥분일어

엄지손가락바위를올라서자여자산악인을선두로4명의외국클라이머들이내려온다.어제하이캠프로향했던이들이다.표정이어둡다.오늘오전정상공격을시도했으나강한바람에밀려포기하고시티로내려서자니마음이착잡할수밖에없을것이다.이들은분명내일날씨가더욱좋다는것을알고있으면서도계획된일정에쫓겨오늘정상공격에나섰을것이다.

▲피곤한표정으로웨스트버트레스능선을따르는김병석씨.포레이커와카힐트나빙하가바라보인다.

매킨리에도전한수많은팀들은3주안팎의일정으로등반에나선다.하지만이번시즌처럼대엿새씩날씨가좋지않은상황을만난다면결국등반가능한기간은2주밖에되지않고,그렇다보니원정종료시점이다가오면마음이조급해질수밖에없는것이다.그래서등반기간을2주정도잡은우리역시답답한마음에어제하이캠프로올라설까망설이기도했던것이다.하지만딱한번의기회를가장좋은날에맞추는게현명하겠다싶어오늘하이캠프로향하는것이다.

매킨리시티를출발,6시간반만에도착한하이캠프는차분히가라앉아있다.외국산악인들대부분이내일등정을앞두고체력을최대한아끼고마음자세를가다듬는듯싶었다.우리로서는캠프지를만드는게시급한일.시티의5인용텐트보다작은3인용텐트지만삽으로눈을파내고,톱으로눈블럭을잘라내텐트주변을둘러쌓노라니숨이턱까지차오르고,그모습이재미있는지주변의외국산악인들이우리캠프에서눈길을떼지않는다.

하이캠프에올라있는70여명의외국클라이머들은대부분사나흘씩묵고있었다.내일등정길에나서겠다는우리얘기에의아스런표정이다.이들은마지막캠프에서체류하는시간을짧게하고등정을시도하는게좋다는우리의등반상식과다른생각을가지고있었다.그보다는5,250m대캠프에서여러날쉬면서적응기간을갖고정상을향하는게성공확률이높다는판단이다.

완성시킨텐트는시티캠프에비해좁고낮지만그래도아늑하다.눈을녹여차를여러잔마시고동결건조미두봉으로저녁을해결한다음‘빌리지산책’에나선다.레인저캠프부근의커다란렌치에는로프가잔뜩감겨있다.사고자를헬기접근이가능한매킨리시티까지후송하는데쓰이는구조장비였다.하이캠프와매킨리시티와의표고차가1,000m에이르니결국거의1,000m이상의로프가감겨있는셈이다.

하이캠프는과연‘데날리빌리지’라는이름이어울릴만큼아늑하고아름다운곳이다.매킨리시티의캠프들이개미만큼작게보이고,헌터와포레이커뿐아니라카힐트나빙하로뻗어내린웨스트버트레스설릉,그리고그너머피터즈빙하(PetersGl.)일원의설산들과그너머로거대한평원까지몽땅바라보인다.설산의아름다움과대평원의편안함이함께곁들여지면서더욱아름답게느껴진다.

“일찍출발하는게성공확률이높다는형말이맞는것같네요.지금부터준비하죠.”

▲(왼쪽)하이캠프인데날리빌리지.표고차300m의데날리패스로이어지는허릿길이빤히바라보인다./(오른쪽)헤드월을향해줄지어오르는산악인들.

새벽4시30분,김덕환씨가깨운다.기껏해야대여섯시간밖에안잔것같은데워낙푹잠이들다보니몸이상쾌하다.그래도깨죽과잣죽으로아침을해결하고뜨거운물을보온통에채워넣은다음장비를챙기고나니7시가다가온다.우리캠프위쪽에텐트를치고있는AAI(AmericaAlpineInstitute)상업등반대대원들은우리눈치를보며출발하지않는분위기다.

7시정각,데날리빌리지설원을가로질러데날리패스로접어든다.그제야AAI팀10명이뒤따라온다.설벽을가로지른허릿길을느림보걸음으로가노라면그들에게방해도되고나에게도부담될듯싶어양보하자모두들고마워한다.안자일렌상태로만해도패스까지오르는데큰문제없을것같은데앞장선김덕환씨는확보물마다자일을통과시키며안전에최선을다한다.마음은벌써패스를올라섰는데몸은한참밑에머물러있다.14년전패스를올라서는데2시간밖에걸리지않았던것같은데2시간이지나는데도데날리패스가아직도멀찌감치떨어져있다.AAI팀꼬리가고개너머로모습을감추고도20분쯤지나서야패스에올라선다.

▲데날리패스에서풋볼필드로향하는산악인들.

깊숙한안부를이룬패스에는따스한햇살이내리쬐고있다.AAI팀대원들은우리가도착하자마자급경사능선길로향한다.따스한물한모금에간식으로체력을보강하고급사면으로접어든다.젊은남녀한쌍이오버행바위아래서엉거주춤한상태로있다.여자는막볼일을끝낸듯하고,남자는여자의불편함을달래주려는듯옆에서껄껄대며오줌을눈다.그리고1시간쯤더올라갔을때뒤따라오다우리를추월해가는그여자에게김덕환씨가다가가벙어리장갑을끼워준다.매킨리등반중,특히정상을향하다잠시라도장갑을벗는다면손가락을자를위험마저있다.그런데고소증이심하다보면판단력이흐려지는것이다.

“형,그속도로정상까지갈수있겠어요?”

이제완경사설릉을따라풋볼필드(FootballField)로올라서는클라이머들과그너머에솟구친정상능선이보인다.능선오른쪽턱이카힐트나혼(KahiltnaHorn·약6,096m)이요왼쪽끄트머리가정상이다.김덕환씨가100발짝에한차례씩쉬면서숨을고르자그런속도로갈수있겠냐고묻더니선두자리를내게넘긴다.아무래도속도가처지는나를앞장세우는게낫다는판단에서였다.

/글한필석차장대우/월간산[465호]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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