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자리를넘겨받자오히려힘이솟는것같다.마지막언덕을넘어넓디넓은설원인풋볼필드와정상능선이마주보이자14년전기억과지금은만날수없게된선배의얼굴이떠오르고한편으론흥분이인다.당시일행6명은화이트아웃과강풍이번갈아등장하는상황에서정상으로향했다.그러다찬바람이몰아치는데날리패스를올라서고얼마지나지않아속이불편해지더니설사를하고말았다.안전벨트를풀고바지를내리고-.다시바지를입었을땐엉덩이는얼음장처럼차가워졌고,손가락은돌덩이처럼딱딱하게굳어졌다.가슴팍에손을넣고주무르기를20여분.손가락이서서히풀려가자마음이놓였다.다시용기를내어일행을뒤쫓아갔으나이미거리는내시원찮은걸음으로좇아가기에는너무벌어져있었다. 어느순간광풍이불어왔다.설릉에피켈을꽂고거의기도자세를취했다.이러다죽는게아닌가싶었다.그때누군가등을툭툭치며,괜찮냐묻더니함께오르자고권했다.외국클라이머였다.그는너무나도편안한모습으로앞장서나아갔다.그렇게생면부지의외국클라이머뒤를좇아오르기를1시간쯤했을때어마어마한설원인풋볼필드가펼쳐지고,정상능선에서움직이고있는일행의모습이바라보였다. 풋볼필드를지나급경사설벽에접어들자클라이머들의발걸음이더욱느려진다.모두고뇌에차있다.무엇때문에이고생을하는것일까.한발한발오르면서도왜이렇게무의미한행위를하나회의가인다.그것도적잖은시간과경비를들여가면서까지.매킨리정상에오르면그이유가깨달아질까?
정상이다가올즈음외국산악인들이내려오고있다.바로직전등정의기쁨을누렸을텐데표정이무겁다.이렇게무거운표정을얻으려고북미최고봉에올랐단말인가.
강풍이휘날리는정상은카힐트나혼에서올라온날카로운설릉과캐신리지,그리고사우스버트레스(SouthButtress)3개능선의꼭지점에솟구쳐있다.남쪽캐신리지쪽은웅장하면서도험난하고,그뒤로헌터는기운차게솟구쳐힘을북돋아주고있다.
정상능선에가려보이지않던동쪽산군은멀리대평원과이어지면서편안한산세를보여주고있다.바로이런풍광을보며가슴벅차하기위해50kg가까이나가는무거운짐을끌고매킨리시티로올라서고,동상을각오하면서하이캠프를거쳐예까지올라온것이란말인가.그래도분명보상이었다.지금이곳이아니라면볼수없는풍광이발아래펼쳐져있었다.
김덕환씨는‘현수야,사랑해’글자를써넣은스포츠타월을펼쳐들고찰칵하고,김병석씨역시가족과아이들에대한사랑을듬뿍적어넣은타월을펼쳐들고찰칵한다.그사이외국산악인들이한명한명올라온다.모두쓰러지기일보직전이다.그래도기념사진을찍기위해우리에게카메라를건네주곤한다.한순간한쪽아이젠으로반대쪽신발을찍으면서균형을잃고미끄러지는클라이머가있었으나다행히도500여m절벽아래로떨어지기직전멈추었다.
하산길-.다리는천근만근이지만마음은평안하기그지없다.이렇게부드럽고아름다운설릉을오르는데왜그리힘들었는지이해가되지않는다.외국클라이머들역시마찬가지.정상으로향할때의무표정함대신부드러운눈길을주고받으며등정을축하해준다.이제마음놓고카메라를눌러댈여유도누리고,김덕환씨는아껴두었던보온병안의따뜻한물을선배들에게따라준다.
오후11시경,텐트를걷고,배낭을꾸린다음다시한번빌리지산책에나선다.역시아름다운곳이다.매킨리만큼아름답고다양한산세를지닌산도드물것이다.도화지를펼쳐놓은듯깨끗하고거대한빙하주변에반짝이며솟구친수많은설봉과설릉들-.그와더불어이산이더욱아름다운것은흰눈만큼순수한등산인들이찾기때문일것이다.그래서이산이수많은고산중에서도가장아름답게느껴져왔고,14년만에다시찾은게아닌가싶어졌다. 헤드월을향해내려서는사이부지런한클라이머들이벌써올라오고있다.고뇌에찬표정들이다.간혹정상을밟았냐묻곤축하해주는클라이머들도있지만대개는말한마디건넬힘조차없어보인다.그들은우리가겪었던똑같은길을따르며환상을좇는멍청이산꾼들이었다.
캐시앤드캐리방식으로캠프이동
‘위대한산’이라는의미의데날리(Denali)라는원래이름과함께미국제25대대통령의이름인매킨리(Mckinley)로불리고있는북미최고봉은경비행기를타고데날리국립공원의명봉들을바라보면서설원에내려앉아등반을시작한다는점,거대한설원과반짝이는설봉이자아내는대자연의아름다움을만끽할수있다는점,여기에다크레바스,설벽,설릉등고산이갖추고있는모든것을경험하고,모든짐을등반객스스로옮기면서등반하기에여느고산보다더욱뜨거운성취감까지도누릴수있다는점등이매력인고산이다.
그렇지만실상대다수산악인들이등로로삼는웨스트버트레스(WestButtress)를비롯한여러루트의등정율은50%에도미치지못한다는게데날리국립공원측의통계다.또한위험한구간마다고정로프가깔려있거나확보물이박혀있고,전진베이스캠프인매킨리시티(4,300m)와마지막캠프인데날리빌리지(5,250m)에레인저가상주하고있음에도해마다사고가끊이지않는산이다.탈키트나산악인묘지에적혀있는사망자수만해도150명가까이된다.
한국산악인의경우79년에베레스트초등자인고상돈씨가이일교씨와함께추락사하는가하면92년3명,94년2명,그리고2006년1명등여러차례의인명사고가일어나한동안악명높은산으로인식돼왔다.올해의경우5월중순일본산악인2명이캐신리지등반중실종되는사고가일어나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