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아메리카 최고봉 안데스 아콩카구아 남벽 *-

남미최고봉안데스아콩카구아남벽

“눈사태공포에도살려면하산밖에없다”
정승권팀3인조,남벽프렌치루트등반중폭설속에서탈출…
내일이면정상에설수있다는것,그래서한달간의등반을마칠수있다는기쁨과정상을넘어북쪽으로하산할때식량을어떻게충당해야할것인가하는걱정이마음속에서묘한대비를이룬다.그점은하염없이내리는눈으로비좁아진텐트에서받은밀폐공포증에서벗어날수있는정적인활동성이었다.

▲중부빙하초입(5,100m)대암벽구간을등반중인허용욱.
생존위한탈출도포기한듯한전양준

바람도없는조용한눈,텐트밖에서맞아본눈발이예사롭지않았다.우리세명이숨을헐떡거리며압박하는눈을걷어내는데소요된시간과에너지는보잘것없었다.또다시텐트위로눈이차오르는데는잠깐.반나절사이에세번이나눈을치웠으니이미텐트밖에쌓인눈의높이는텐트를넘어섰다.이런상황이계속된다면정상은갈수없을것같았다.물론다시내려간다는것은더욱생각할수조차없었다.내려가지못할거라는이유는지금내리는눈때문이라기보다는오르면서느꼈던루트의어려움과위험함으로,하강은곧사고로이어질것이다.

지금이라도눈이그쳐주길바랄뿐이다.텐트를두들기는눈발에온갖신경이집중되고잠시그소리가작아지면눈이곧그칠거라는기대와정상으로갈수있다는안도감에깜박잠이들어버렸다.다시잠에서깼을때는텐트를두들기는눈발소리가변함없었다.잠에서얻은용기일까,변함없는눈발소리에대한절망감이었을까,내려가는것이현명한판단이라고생각이들었고그방법에자신이생겼다.생각이바뀌니그용기있는생각들이참으로흥겨워졌다.어떻게잠깐잠을자고난사이에그런용기가생겼을까신기했다.

“용욱아,양준아,내일내려가자.”
“….”
정상을눈앞에두고내려가야하는안타까움에용욱이와양준이의표정이서로달랐다.용욱이것은순수함이었고,양준이것은진정함이었다.하지만안타까워해서무엇하랴대장은나인데.

▲상부빙하(6,300m)세락지대를내려서고있는필자.사람앞세락에아바란코프로하강지점을만들어다시하강을하게된다.아래눈이덮이지않은흙바닥이베이스캠프다.

다음날,눈이그쳤지만하늘은맑지않다.눈속에묻힌텐트를파내어정리하는데도두어시간이걸렸다.이심설을박차고나갈수있으리라는예측이잘못된것이라고알게된건잠깐이었다.양준이가첫발을내딛는순간눈은가슴까지차올랐고,수평이동인데도5m전진하는데수십분이걸렸다.숨을헐떡거리며눈을헤치고앞서가는양준이가대견스러웠지만,의욕과는다르게몸이움직여지지않으니그도탈출을포기하는듯허탈한모습이다.이제필사의탈출을해야한다는분위기가되어버렸다.

양준이를불러세워놓고내가앞서나갔다.그와별반다를게없었지만뒤에서쳐다보고있는것보다는앞서가는활동력이있어마음은흥겨웠다.10여m만수평이동하면사면을따라내려갈수있다.하지만거기까지눈을헤치고가는데도1시간가까이소요되었고,두려움과자신감이엇갈리는소용돌이의연속이었다.‘올라올때텐트를겨우칠수있었던날카로운능선위의야영지들이한곳이라도제대로남아있을지,어두워지기전에그런야영지에내려설수있을지,눈사태가난다면…’하는상념들이머릿속에가득할뿐어떤방법이떠오르지않았다.

판상눈사태위협무릅쓰고필사의하산

사면을따라내려가니수평이동보다는조금수월했다.하지만폭설로뒤바뀐지형으로우리가올라온흔적은물론우리가넘어선세락이어딘지정확히찾을수없었다.올라선세락으로하강해야했다.그곳으로하강해야만무너져내린거대한얼음조각들을헤집고내려갈수있기때문이다.이틀전기억을더듬어지형을살피며가슴까지차오르는눈을헤치며올라온듯한세락으로방향을잡고나아갔다.

▲남벽에서베이스캠프로내려온직후레인저들이우리짐을미리철수해버려황당했던순간.레인저,필자,허용욱이남벽을배경으로서있다.(왼쪽)/베이스캠프에서남벽으로접근하는대원.왼쪽대암벽좌측설원이슬로베니아바리에이션루트출발지점이다.프렌치루트의변형루트다.(오른쪽)
세락끝에도착한건마지막야영지를떠난지3시간이나흐른후.이동거리는150m에불과했다.이제수직으로잘려나간세락,눈에덮인숨은크레바스,곧무너질것같은작은세락이뒤섞인지대를200여m하강해야한다.이곳만통과하면암벽지대로내려서게되고,세락의붕괴나눈사태의위험이없는암벽에는하강할수있는고정확보물들이있다.

하강용확보물인스노볼라드를만들어로프를걸고보조확보물로스노바를설치한후하강하려세락끝에서서밑을내려다보니우리가올라서세락이아니었다.오른쪽으로100m는더횡단해야했다.망연자실할수밖에없었다.다시그쪽으로가려면2시간은족히걸릴것이고,체력소모또한엄청날것이다.현재고도가6,000m이고,일주일째등반이며,그동안먹은게알파미와건조국,그것도아침저녁하루두끼뿐이다.이제남은식량은2인분알파미1봉지와건조국1개,그리고지퍼백바닥에조금깔린먹고난간식부스러기뿐.

▲상부빙하세락을등반중인필자.

하강해서내려선후세락밑에서방향을바꾸는것이시간과체력을고려했을때최선책인듯했다.아이스스크류가몇개없으니아발란코프앵커를얼음에만들며올라온암벽지대로하강방향을잡아내려갔다.눈속에숨은얼음틈새로빠지지않으려는몸부림은가슴까지차오르는눈을헤치고나아가는러셀만큼이나숨을헐떡거리게했고,곧무너질듯한뾰족한빙탑들은등골을오싹하게했다.그런상황에서30m2회와60m2회하강으로암벽지대에내려섰다.

붕괴된얼음지대의세락보다는암벽지대가안전하고하강도빠르게할수있지만,자일을걸어야할고정확보물이눈에묻혀찾기어려웠다.눈을헤치며고정확보물을찾는일이세락지대에서와는또다른어려움이었다.세락은얼음이라서아이스스크류나아발란코프로로프를걸수있는하강지점을쉽게만들수있지만,암벽은하켄을사용해야하기때문에쉽지않다.몇개안되는하켄은아껴야했다.게다가하켄을쉽게설치할수있는암질도아니었다.그래도기필코눈에묻힌고정확보물을찾아야했다.

지형을살피고기억을되살리며고정확보물위치를찾아가며200여m내려서니세번째야영지가나타났다.1시간여사면을깎아만든야영지는흔적조차찾을수없었다.게다가500여m의중부빙하설사면이눈사태가나기적당한각을이루며소름끼치게펼쳐져있다.로프에매달려설사면으로내려서는순간몸이눈속깊이빠져든다.마치깊은수렁속으로빠져들듯.하지만이런두려움조차무시해버리고죽으나사나내려가야만한다.

폭설로뒤덮인남벽이꽤나아름다웠는지,게다가그곳에사람까지있으니볼만하다싶었는지어떤놈들이헬기관광을하는듯헬리콥터소리가멀리서부터들려온다.매일들리는소리이긴하지만오늘은헬리콥터가남벽근처에여러번왔다갔다한다.심지어우리머리위로지나가기도한다.도와달라고손을들어봤지만헬기에탄놈들은그저우리가좋아서손을흔들어대는것으로알고있는듯했다.

60m로프두동을묶고내가앞서내려가고뒤에서용욱이와양준이가중부빙하를동시에내려서기시작했다.오후7시를넘어서고있다.목구멍은까칠하게말라붙어침이넘어가지않는다.배낭속에물은있지만꺼내기가귀찮다.

깊은눈을헤치며100여m내려왔을까,쩍~하는소리와함께양옆으로설사면이갈라진다.판상눈사태조짐이다.등골에식은땀이흐르며몸이경직되고신경이날카로워졌다.제자리에서발로눈을다지고몸을곧추세운후로프한동을벨트에서풀어뒤에있는용욱이와양준이에게간격을더넓히라고주문하곤한참을움직이지못하고망설였다.지금어떻게해야할지선뜻판단이서지않았다.

▲상부빙하(6,200m)설사면을내려오는전양준과허용욱.

갑자기감각이예민해진까닭일까,내몸이눈속깊이빠져있고그렇게움직여야하니눈에주는충격이크다는생각이들었다.눈에진동을주지말아야한다는생각에눈속에서헤엄을쳐볼까하는생각이들었다.개구리헤엄이좋을까,개헤엄이좋을까,자유형이좋을까많은생각을했다.내려가지않아도죽을것같고,내려가도죽을것같으나그래도내려가는것이살희망이있으니내려가자는판단을마음속에다지는것또한어려웠다.

그렇게용기있게다시움직여내려가면주기적으로눈이갈라지는소리가들리고양옆으로균열이생기며판상눈사태조짐은멈추지않았다.한발한발신중하게온신경을곤두세우고저아래희미하게내려다보이는칼날능선위두번째야영지로방향을잡고내려갔다.너무신경을곤두세우니정신마저몽롱해진다.

불가능해보인쿨와르에서낡은고정로프발견

▲상부빙하세락을등반중인필자.
넓은눈사면에서벗어나눈사태위험이없는칼날능선으로내려섰을때는해가이미남벽을벗어났다.칼날능선위도많은눈으로헤쳐나가기가쉽지않았다.두번째야영지에도착했을때목구멍이타는듯말라있어배낭속물통을꺼내마셨다.찬물이몸속에들어가니냉기가온몸을휘감아우모복을꺼내입었다.용욱이와양준이도무사히내려왔다.우리는눈사태공포를잊어버리려는듯중부빙하의긴설사면을말없이올려다보았다.

이런안도감도잠시,우리는또내려가야했다.칼날능선에서좁고긴쿨와르를내려서면두번째암벽구간인그레이트타워정상에이르게된다.좁은침니와어렵고곤란한암벽,게다가불량한암질로된지대라하강이쉽지않다.암벽구간은하강지점에고정확보물이있으니문제될게없다.단지이곳그레이트타워는침니구간이있고,루트가반듯하지않아로프가엉기거나걸려서회수되지않을가능성이높다.다행히100여m의그레이트타워를내려서는데어려움이없었다.암벽에눈이덮여서로프가끼거나걸릴여유가없어서다.

하지만문제는이제부터다.6일전,그레이트타워아래좁고긴쿨와르를올라올때암질이나빠하켄을설치하지않고100여m를올라왔었다.게다가눈사태가날적당한조건을갖추고있었다.물론오래된고정로프가군데군데있었지만너무낡아사용할수없거나끊어져나간것들이다.하산이불가능할거라고생각한것도바로이구간때문이었다.

그레이트타워마지막하강지점에서최대한멀리하강해서쿨와르설사면에내려섰다.역시눈사태가일어난흔적이보였고,눈밖으로조금드러난고정로프가가까이보였다.잡아당겨보니끊어지지는않았다.손으로잡고묻힌로프를잡아뽑으며밑으로내려갔다.낡았지만끊어지지않고계속뽑혀나왔다.

▲남벽하단부암설릉을등반중인허용욱과전양준.(왼쪽)/중부빙하상단(5,800m)에서3번째야영후등반준비를하고있는전양준과허용욱.(오른쪽)

30여m내려갔을때예상했던대로위에서판상눈사태가일어나며나를덮치려쏟아져내렸다.눈사태압력을손힘으로감당할수없어그나마끊어질지모르는고정로프를순간적으로팔목에감았다.

행운이었을까.낡은고정로프는나를지탱해주었다.또한번등골에식은땀이흐르며만감이교차된다.만약그낡은고정로프가눈에띄지않았다면하켄박을곳을찾았을까,아니면그냥내려갔을까.그냥내려갔다면어떻게됐을까.그렇게많이내린눈에그고정로프는어떻게밖으로드러났을까.등골에난식은땀이마를시간조차없는긴장감을안고계속내려갔다.

다행히뽑아내며내려간고정로프는끊어져있지않았다.하지만이다음부터는고정로프를찾을수없어우리는그곳에모여재정비를해야했다.내가60m를내려가서하켄박을곳을찾았다.고기비늘벗어지듯조각나는불량한암질에하켄박을곳을찾는일또한많은시간이걸렸다.하켄이설치되면용욱이,양준이순으로한명씩내려왔다.우리는300여m의좁은쿨와르를그렇게내려섰다.

▲프렌치루트의마지막하강인빙벽구간을내려서고있는허용욱과전양준.

최대의위험구간인그레이트타워아래쿨와르을다내려서자오후10시가넘고어둠이서서히밀려들었다.첫번째야영지가얼마남지않은듯했지만하강지점을찾기어려웠다.지형을기억하며찾았지만너무많은눈이덮여있어좀처럼쉽지않았다.몇군데를손으로눈을파보았지만찾을수없었다.어둠이점점짙어지니신경만극도로예민해지고,도대체어떻게해야할지한숨만나왔다.우연인지,운명인지파본곳에서좀더오른쪽에한번더손으로눈을훑어내니고정로프가보였다.

“찾았다!”

마치보물을찾은듯괴성을질렀다.기적같았다.나의의지와관계없이내가움직여지는듯했다.그지점에서60m하강을한번더하니첫번째야영했던곳조금위다.남벽프렌치루트의진짜첫번째야영지에도착한것이다.6,000m상부빙하에서이곳4,500mC1까지11시간이걸린것이다.어둠속에텐트를치고나니오늘치열했던분위기는언제그랬었느냐는듯이사라지고평온함이찾아들었다.

헬기가아침부터우리주위를맴돌고있었다.도대체저헬기가왜저렇게우리주위를맴도는지알수없었다.식량을떨어뜨려주든지,아니면헬기를태워주든지,아니면없어져주든가.이제빙하바닥까지는고도300m만내려가면된다.우리가올라온프렌치루트초입의슬로베니아변형루트는정보와다르게눈사태가많았다.그래서반대쪽인프렌치오리지널루트로내려가기로했다.

▲중부빙하위대암벽구간을등반중인전양준과허용욱.
날씨는맑았다.좁은협곡이긴하지만눈사태위험은없었다.60m하강을4회하고협곡을빠져나왔다.뜨거운태양열로눈은많이가라앉아무릎정도다.아이젠바닥에생기는스노볼을떨어내며300여m설사면을따라내려가는일도지친체력에쉽지않은일이다.바닥빙하로내려서는빙벽구간이마지막하강인듯했다.하강용고정확보물을찾을수없어나이프하켄2개를어렵게설치하고로프를걸어내리니로프끝이바닥에닿았다.이제정말베이스캠프로돌아갈수있다는실감이들었다.

사고확신한레인저들캠프철거

베이스캠프에도착하면라면을끓여먹기로했다.용욱이가끓여주기로약속했다.따가운햇볕은빙하위에하얗게덮인눈에반사되어더욱강렬했다.삶의환희를가득안은채매콤한라면을먹을기대를안고베이스캠프를향해발목까지빠지는눈덮인빙하위를힘겹게걷고또걸었다.

우리가남벽을내려선후베이스캠프에도착할때쯤레인저를만났다.그는눈이너무많이내려우리를걱정하며헬기로찾았다고한다.레인저와연락할수있는무전기(VHF142.80)를등반규정상지참해야한다는사실을북면등반직전확인하고현지대행사직원에게대여료100달러와예치금200달러를주고빌리기는했지만,무겁기도하고등반에전혀도움이되지않을거라는생각에베이스캠프에두고갔다.

▲중부빙하(5,600m)설사면을내려서는필자와허용욱,눈사태의공포를느꼈던곳이다.(왼쪽)/북면루트를통해아콩카구아정상에올라선필자.(오른쪽)
결국무전기가없는우리와레인저는연락이되지않았고,그래서우리가사고난거라판단한그들은우리짐을레인저캠프로대부분옮겨놓은상태였다.그래서베이스캠프에내려서자마자레인저와함께헬기로오르코네스레인저캠프로가야했다.

레인저들은캠프에도착하자마자우리가무전기를지참하지않았기때문에이런일이생긴거라며따져대고,우리의등반능력에대해서도의심을품었다.우리는등산규정을어기지않았다.단지휴대상의문제때문에가지고가지않았을뿐이다.만약무전기를아예준비하지않은상태에서남벽을등반했다면레인저는우리에게어떠한제재를가했을지모른다.

결국짐과사람을옮긴헬기이용경위서인듯한문서에서명해야했는데,왜그런절차들이필요했는지지금도이해되지않는다.다행히우리가무전기를휴대하지않은것에대한제재는없었다.우리가북면을먼저등반한기록이그들이발급한퍼미션에있었기때문인듯했다.아마도레인저들이자기책무를다하려는것에서일어나해프닝이아닌가생각이든다.

-글/정승권정승권등산학교교장/월간산[462호]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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