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키스탄 낭가파르밧 *-

[해외트래킹]파키스탄낭가파르밧

머리를뒤로젖혀야발가벗는산,
표고차4,500m의세계최대루팔벽을보다.

떠나는일을상상하면언제나마음이설렌다.하지만파키스탄은선뜻나서기힘든곳이다.2007년네팔의쿰부히말에있는칼라파타르를다녀온후몇몇이의논하여올해에는낭가파르밧트레킹으로정하고추진해왔다.

낭가파르밧(NangaParbat·8,126m)은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산중하나다.이산괴에는각각루팔면,디아미르면,라키오트면이라이름붙은세산록이있는데,외양은각각판이하게다르고,진입루트도전혀다르다.일행은11명으로구성되었으며,23세부터68세까지로평균연령은55.3세다.

먼저라키오트쪽으로진입

6월27일오후5시35분이륙한KE651편은5시간후방콕에착륙했다.항상생기는일이지만이번에도어김없이화물초과다.1인20kg이정량이지만25kg까지는허용하고,그이상은오버차지를해야한다는공항여직원의말에중량나가는것만별도로배낭에넣고탑승하자는얘기도오갔으나,나는조용히팀장을만나비상수단을활용했다.나의대한항공사번(社番)은7708621.그들에게는대선배다.팀장은빙그레웃더니직원에게사인을보내고통과시켜준다.

▲라이콧트브릿지에서페어리메도우로가는길은절벽을따라서지프가한대간신히지날수있는가파른길을타토까지1시간여달려야한다.윗부분에기프가보인다.
다시PK893편(파키스탄에어)으로환승하여4시간30분후이슬라마바드에도착한것은28일새벽5시10분.쿡과포터를수배한후뜨거운낮시간을피하여늦은오후간다라불교의수도였던탁실라뮤지엄과유적지를다녀왔다.

6월29일(금)이슬라마바드에서베샴을거쳐칠라스까지670km.오전6시에호텔을출발한도요타25인승버스는계속추월하며1차선포장도로를17시간질주해밤11시칠라스파노라마호텔에우리를내려놓았다.

어제덜컹거리는버스속에서짐짝처럼17시간을흔들린탓에심하게두드려맞은듯온몸이뻐근하다.칠라스에서라키오트까지버스로1시간40분,다시버스를갈아타고1시간달려라키오트다리에서지프로갈아타고방향을바꾼다.비로소강의원류를찾아가는셈이다.

낭가파르밧으로진입하는길들중접근이쉬운라키오트쪽으로먼저방향을잡은것은루팔로가기전고소적응을해두려는속셈도있다.라키오트는처음으로정상을내준길답게쉽고짧게낭가파르밧의동면베이스캠프로들어갈수있다.거세게용트림치는물은라키오트빙하에수원을대고있다.그흐름을거슬러오르면빙하와산과하늘이곧하나의세계임을알게된다.끝과끝은서로맞닿아있는것이다.

라키오트면페어리메도에서하룻밤

라키오트계곡에는외부차량은단한대도발을들여놓을수없는지역이다.현지인들이20여년전부터계곡절벽에개미처럼붙어다듬어가며길을냈다.장비라고는삽,곡괭이,지렛대,망치가전부다.절벽을따라서일부를도려내듯이깎아내고,그돌을벽돌로다듬어서차한대가간신히지날수있도록절벽위에차곡차곡쌓았다고한다.

▲페어리메도의모닥불.요정의초원이라불리는해발3,300m의초원지대에는아름답게자란풀들이부드럽게깔려있고맑은냇물들이흐른다.
차한대간신히지나는가파른길을따라타토(Tato)를향해힘겹게오른다.처음에는그럭저럭버틸만했으나다갈색의계곡안으로들어서자분위기가확바뀐다.계곡절벽은너무깊어아래를바라볼엄두조차나지않는다.빙하에서녹은물들이보여야하는데거의수직으로내리꽂히고일부에서는길이절벽보다바깥으로슬며시나온오버행구간까지있어바닥을내려보려시도해도불가능하다.이런길인줄알았으면차라리걸어오르겠다는사람도많으리라.

가끔차체옆에서뿌드득하는소리가들렸다.길바닥을이루는돌들이차의무게로압력을받아절벽밑으로밀려나면서내지르는소리였다.살벌하기이를데없다.핸들을조금이라도잘못꺾거나돌에미끄러지면그다음일은상상하기도싫다.벼랑아래로내려갈길이전혀없으니뼈를추스르기는커녕시신조차찾지못한다.

바닥이보이더니어느새시냇물이흐르고,양쪽계곡이완만한경사를보여하늘이차차넓어지는무렵에마을이나타난다.이곳에서배낭을메고해발1,000m의고도를올려야한다.그러나라키오트를올라온사람이라면이제두발로걸어갈수있다는사실이얼마나안락하고행복한지를알게된다.“ThankYou!”대상이누구건또어디건차에서내리면서인사부터나온다.


해발2,600m의타토마을은옹색하기그지없다.이곳은트레킹의시발점일뿐,쉬어갈곳은아니었다.누가이곳을길이라부를수있을것인가?길이라부르기엔너무위험하다.때로는눈을질끈감아버려야할지경의절벽위를가야하고,풀한포기자라지못하는불모지계곡과바위들은태양열을받아지글거린다.7월초순의이곳은불판처럼이글이글타올랐다.

▲날씨가쾌청하다.구름한점없는정상부는눈이시리도록파랗고흰자태를뽐낸다.하늘은파랗다못해다크블루다.

울창한소나무숲과모레인지대를지나면서고도를올리기시작한지4시간.천상화원이라불리는,넓고평평한푸른초원지대페어리메도(3,306m)에도착했다.일명요정의초원.몇몇은약한고소증세를보이기시작한다.머리가어지럽고메슥거린다.우선편하게쉬도록하고밀크티를진하게준비하여권한다.넓은초원은평화로웠다.모닥불을붙이고손이사가준비한와인이계속돌아가고있다.조상진씨는기타에맞춰조용히노래를부르고….페어리메도의밤은깊어간다.

1895년낭가파르밧등반중머메리(영국)는실족사한다.그후독일의빌리메르클이낭가를찾은것은37년이지난후였다.그리고2년후빌리메르클을포함한대원10명이하산도중사망하고,또다시3년후한번의눈사태로카를로비인대장을포함한16명이사망하는히말라야최대참사가발생한다.

▲페어리메도를다녀오고,루팔베이스캠프를다녀와서이제는하행길이다.다시너덜지대를지나고뜨거운햇살은받으며빙하지대를돌아모레인지대를지나간다.

8,000m급고산의초등정은국력싸움이었다.영국이에베레스트를아홉번씩도전해성공을이루었듯,독일은낭가파르밧을집중공략했다.에베레스트를통해에드먼드힐러리라는영웅이탄생했다면낭가파르밧에서는헤르만불이라는초인이탄생했다.1953년7월3일새벽2시티롤의산악인헤르만불은헤를리히코퍼대장의후퇴명령에도불구하고마지막제5캠프를떠났다.영국이에베레스트정상에올랐다는뉴스를라디오를통해들은뒤였다.

헤르만불이사력을다해홀로정상에오른것은그로부터17시간뒤인오후7시.정상을오르고동료들의부축을받으며캠프로귀환한29세의헤르만불이60대노인의모습으로변한것은전설이아닌사진으로입증되었다.

타라싱에서루팔면트레킹시작

7월1일(화)아침.밤새날씨가제법추웠나보다.1,000g짜리거위털침낭이안성맞춤이다.아침이상쾌하다.숲에서뿜어나오는깊은향과삼나무들,야생장미,히말라야노송들이함께어우러져펀잡히말라야의건강함을느끼게한다.왼쪽으로라키오트빙하,위쪽으로는낭가파르밧정상이구름에가린채일부만드러내고있다.우측으로는전나무와히말라야삼나무가숲을이루고있다.바닥은아름답게자란풀들이녹색융단처럼부드럽게깔려있고,맑은냇물들이이리저리굽이쳐흐르는곳곳에오두막들이자리잡고있다.

▲베샴을거쳐인더스강을따라달리는구간에는라엣지(껍질을벗기면새콤달콤한맛이나는딸기만한열매)를파는곳이많다.
오전9시출발,11시10분에타토로나와12시20분라키오트다리에서버스를타고타라싱으로이동,오후4시40분에도착했다.이곳루팔호텔(게스트하우스.네팔의로지보다는조금나은편)앞잔디밭에는이미오스트리아부부가도착해있고,30대독일부부는약반년전에뮌헨을떠나각국을돌며찍은사진과함께기사를송고하여경비를조달하며자동차에모든장비를싣고이곳까지와있었다.

7월2일(수)날씨가맑았다.루팔트레킹기점인타라싱(Tarashing·2,911m)마을앞에눈과얼음이붙어있기힘든경사의헐벗은산낭가파르밧의남벽과동벽이시야에들어왔다.해발5,000m위로는하얀구름으로완전히뒤집어썼다.아래의흰빙설들만위엄있게우리를반겼다.

생각과달리짐을메고다니는포터가별로없다,지역경제가꾸준히좋아지면서사람들은노새를몇마리씩소유하게되었고,따라서짐을운반하는수단은사람이아니라노새가됐다.바진캠프에서지낼이틀분식량과막영구등을노새에먼저보냈다.

▲설명차도르로얼굴을가린채양떼를몰고가는여인이이채롭다.
학교사이를지나조금높은언덕에이르면이윽고트레킹이시작된다.언덕에올라서자폭이넒지않은빙하가가로막는다.타라싱혹은충파(Chungpha)빙하로펀잡히말라야의형제들인라키오트(7,070m),총라서봉(ChongraWest·6,476m),총라중앙봉(Central·6,455m),총라주봉(Main·6,830m)에서내려오는얼음길이다.이능선들은북서쪽으로휘어고도를낮추어가다가인더스강으로들어간다.
▲파키스탄인구1억4천만중96.6%가무슬림이다.이들은정해진시간에어디서나기도를한다(3,650m바진캠프).
빙하상태는청빙이아닌모레인돌들이얹혀있어걷기가쉽지않다.빙하를올라서고모레인지대에서다시빙하로내려서는가운데한떼의양과염소를이끌고가는양치기들의모습이한가롭다.한쪽에는원색차도르를걸친여인들이지나간다.물론얼굴은외면한채다.

빙하위너덜지대가수없이반복되는동안지루하고뜨거운지열에쉴곳이마땅치않아햇볕에달궈진뜨거운돌위에앉아물통을비운다.이윽고평평한초지가나타나면서푸른오아시스마을루팔(Rupal)이기다린다.보리밀을재배하는완만한경사사이로마을사람들이정성스럽게쌓은돌담들이있는가하면,돌담이끝나는자리에서는그냥꽃밭이라고말할수밖에없는벌판이이어진다.

‘이런표현을혐오하지만,그말밖에없다’

굽이굽이계곡몇개를지나치며나무그늘속을파고들어몇번휴식을취하는사이바진(Bazhin·3,650m)캠프사이트에들어선다.축구장만하다.평평한초지위에돌들이간혹있을뿐야영하기엔아주적격이다.오른쪽으로는깨끗한물이암벽사이로흘러식수로도훌륭하다.구름에덮인낭가파르밧이바로머리위에있다.주방과식당캠프를준비하고,개인텐트를치고,침낭을해가지기전에널어서말리고,모닥불을지핀다.오늘은이상남대원이준비한글렌피딕18년생을개봉하는날이다.
▲바진캠프에서루팔베이스를향해떠나는대원들.왼쪽산허리를돌아언덕을올라서서바진빙하를넘어서간다.

7월3일(목)아침5시30분기상.텐트가밝아지기에침낭에서서둘러빠져나왔다.구름하나남아있지않은청명한날씨다.초원은물을살짝뿌려서얼린듯발밑에서바스락거렸다.캠프사이트에서바라본낭가파르밧은참으로장관이었다.정상이발갛게물들어오기시작한다.카메라셔터소리가요란하다.

“GoodMorning,Sir!MilkTea,Please.”
쿡의따뜻한밀크티서비스로부터하루일정이시작된다.발갛게물든정상부가걷히면서그늘진밑부분이서서히드러나고,정상부는눈이시리도록파랗고흰자태를뽐낸다.아!정말좋은날씨다.하늘은파랗다못해다크블루다.어제만해도구름에가려정상부만조금보였었다.혹시오늘기상이안좋아정상이안보일것을대비해서그런대로쓸만한컷을여럿찍어놓았다.순간옆에서“형!땡잡았어!”하는박제혁대원의목소리가들린다(좋은사진이나올수있겠다는제혁의특이한어법).같이밀크티를마시며“형!여기”하며권하는게있다.우리둘만통하는그것.마음의여유로움을느낀다.

▲영상37~38℃를오르내리는뜨거운모레인언덕지대를오르내리며루팔을향해걷고또걷는다.
헤르만불이낭가를초등할당시베이스캠프에이르는코스는바진빙하를넘어산허리를왼쪽으로끼고멀리돌아독일과일본대등이희생한루팔벽가까운곳으로나있다.헤르리히코퍼대의베이스캠프는연녹색의여린풀들이양탄자처럼펼쳐진아름다운분지다.

낭가일대의베이스캠프들은다른히말라야와는달리대부분시냇물이흐르고꽃들이다투어피어나는아름답고평화로운곳에자리잡는다.더높은곳에자리잡지못하는이유는낭가가이높이에서갑자기일어서듯하늘로솟아올랐기때문이다.바진캠프를지나꾸준히오르면이자리에도착한다.

▲정오가가까워오면서산이으르렁거린다.햇살을받은얼음벽이무너지면서눈사태를동반한눈덩어리들이흰연기를내뿜으며계곡을덮친다.
낭가파르밧남벽은지구상모든산군중에가장높은벽이다.그벽을바라보고있노라면숨이멎을듯하다.표고차4,500m에이르는이거대한급사면벽을올려다보려면머리를뒤로젖힐수밖에없다.지금까지보아온산들가운데가장거대한것임을알게된다.바꿔말하면이산의웅장함앞에서우리가얼마나보잘것없는존재인가를느끼게되는것이다.

다시그유명한남벽을천천히뜯어본다.구름한점티끌하나없는사위에청정의본성이묻어나온다.이자리에서불끈일어선위풍당당한산을정상부터천천히더듬는다.버트리스,단층애,리페현수빙하….그야말로고산의해부학공부가그대로펼쳐진다.

▲하루에25kg의짐을운반하고8~10불을받는포터들.돌무더기를쌓아만든그들의보금자리에서나무를주워다가불을지펴밀크티를끓이고차파티를만든다.
엄청난주봉.그아래로4,500m를잇달아깎아지른유일한일직선.그앞에서면인간은한낱미물에지나지않는다.압도적이다.어마어마하다.이런표현을혐오하지만여기서는그말밖에쓸말이없다.정오가가까워지면서산이으르렁거린다.햇살을받은얼음벽이무너지면서눈사태를동반한눈덩어리들이흰연기를내뿜으며계곡을덮친다.

이제바진캠프로되돌아가야했다.다시뜨거운햇살을받으며모레인지대를지나간다.양귀비꽃이바람에살랑거려시선을멎게한다.내려가는길은그래도평화롭기만했다.

-글·사진/조천용한국산악회자문위원·고려대OB/월간산[466호]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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