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종민 최장수 등산학교 주무 *-

[이클라이머의삶]원종민최장수등산학교주무

“등산은철저한준비와목적지를향한고된과정이다".

▲원종민씨/2005년아마다블람.<사진=정정현부장>

우이동오투월드5층카페유리창밖으로한창신록에생동감넘치는북한산과도봉산이눈에들어왔다.원종민(元鍾敏·46·FnC코오롱코오롱스포츠마케팅팀차장)은두산에서30년가까운세월을보냈다.그러나약20년간은자신의등반과무관한일에열중했다.코오롱등산학교강사이자주무였다.봄·가을6주과정의정규반뿐아니라여름에는설악산에서열리는암벽반과빙벽반에이어기초반,설상반,독도교실등을이끌고강의하다보면한해가후딱지나가곤했다.

등반은어찌보면매우이기적인행위라할수있다.무엇보다스스로힘들고어려운난관을극복하는사이에희열을느끼는스포츠이기때문이다.그래서옆에서건제3자입장으로는만족할수없는스포츠라할수있다.그러나원종민은그행위를안전하게해낼수있도록돕는역할을하는데만족하며살아왔던것이다.

장비살욕심에걸어서출퇴근


“20년넘게등산학교에몸담고있는사람이적지않습니다.이용대교장선생님,윤대표,윤재학대표강사같은분들은등산학교개교이래지금까지도강사로활동하고있으니까요.현재까지남아있는사람들중에중고참에속한다면말이되겠지만요.”

산에미친사람대부분이자신의등반에빠져지내느라남을가르친다는생각을하기란쉽지않다.그러나그에게등산학교강사라는일은어린시절의꿈을이룬것이나다름없다.

“어릴적부터교직에대해막연한꿈을가지고있었어요.당연히선생님을좋아했기때문이죠.한편으로왜저런식으로가르치나하는불만도많았고요.그런선생님들은제자를가르치기위한노력을게을리하신분들이아니었나싶어요.아무튼저는남들이물어보지않아도가르쳐주려고안달하는성격이에요.내가유익하다고생각하는것을남들에게알려주어야겠다는생각에서죠.그래서회사에서도귀찮아하는사람이많아요.그런성격이오랫동안강사생활을할수있게해주었나봐요.”

그도한때최고의클라이머가되기위해억척스럽게노력했다.충남부여출신인그는동년배산꾼들에비해서는비교적늦은나이에산에입문했다.산에대한꿈은어린시절부터있었다.청양산골에서살면서몸에밴자연에대한동경심때문이었다.그러나용산고시절에는입학한해전산악부가해체되는바람에기회를잃고,대학입학후에는산악부에들어간동기생이한달쯤되자시퍼렇게멍든다리로나타나는것을보곤질려버리고말았다.그런상황에서군입대신체검사를받은뒤인2학년겨울방학때롯데리아아르바이트생으로지내다산과인연을맺게되었다.

“학비마련을위해명동에서번데기장사를했어요.신당동집에서리어카를끌고다니면서말이에요.그러던어느날58대1의경쟁을뚫고롯데리아아르바이트생활을시작했는데매서운눈초리의점장님이어느봄날야유회를가자고하더니산에끌고간거예요.다른아르바이트생이이번에가면로프를탈수있다면서함께가자고부추기기도했고요.”

전문등반가인점장은아르바이트생들을데리고도봉산선인봉기슭으로접어들더니남측코스로끌고갔다.

“점장은다름아닌청악산우회김종선형이었어요.남측코스로접어드는순간이‘언젠가저큰바위를오르겠다’고다짐했던중학생때의꿈이이루어지는순간이었죠.이후산에매력을느끼고산악회에들어가고싶었지요.그런데가끔종선이형을찾아오는산꾼들대부분이광대뼈가툭튀어나오고시커먼얼굴에커다란배낭을등에지고있으니무서워서말을붙일수가있어야지요.그러던어느날저하고같은아르바이트생인남동건을부르더니을지로6가약속다방으로나오라는거예요.날듯이기뻤죠.매주목요일청악산우회집회를여는장소였으니까요.”

82년봄이었다.집회참석다음주주일요일에찾은게선인봉이었다.이번에는측면뜀바위코스였다.특히폭은2m가채안되지만20여m높이의바위골을내려다보며건너뛰어야하는뜀바위구간을넘어섰을때는너무짜릿하고해냈다는마음에뿌듯했다.

▲(위)2007년설악산장군봉알파인클러치./(왼쪽)2005년코오롱등산학교정규반교육중.비둘기길을오르는수강생을촬영하고있다./(가운데)2006년여름북극해에서(청소년북극탐험단)/(오른쪽)코오롱등산학교정규반교육.
“산행을마치면서선배들한테장비를저희들이짊어지고다니겠다했어요.그리곤이틀뒤그장비를가지고남동건과다시뜀바위를올랐죠.하산후지각하지않으려고허겁지겁롯데리아로달려가종선이형한테무용담을털어놓았다욕만잔뜩얻어먹었어요.확보법도모르는놈들이죽으려고환장했냐면서말이에요.그래도참예뻤을거예요.산악회가입이후한주도빼먹지않고산에다녔지요,바위도제법해늘앞장섰지요,게다가장비사겠다고밥도굶고신당동집에서명동까지걸어다녔을만큼열의가있었으니말입니다.”

바위타는것도좋았지만산행에앞서계획을짜는것도즐거웠다.산을제대로다니려면지도를정확하게읽고정치할수있어야한다는생각에독도법도공부하고더욱나은산행을하려면기록에충실해야한다는생각에등반일지를쓰는것도습관화했다.산서읽기에도흠뻑빠져들었다.선배가툭던져준산서는잡자마자밤을꼴딱새워가면서읽어내려가곤했다.

“솔직히고등학교때까지만해도몸이호리호리해서제가약하려니생각했어요.그래서운동도하지않고지냈으니까요.그런데산에다니다보니선배나동기들에비해짐지는것도그렇고주력도결코뒤지지않는거예요.산을통해자신감을얻었던셈이죠.”

그는바위보다얼음에강한클라이머다.그러나빙벽등반기량을키워나가는과정은그야말로수련과정이나다름없었다.빙벽등반에입문하면서토왕폭을목표로삼았다.80년대중반까지만해도수직고300여m높이의토왕폭은클라이머들에게는꿈과같은도전의대상이었다.83년1월선배들과함께설악산을찾았을때처음눈에들어온토왕폭은끔찍하리만치위압적이었다.당시월간山에연재된‘토왕폭의사나이’를보곤눈물을흘릴정도로감동을받았던그에게토왕폭은‘어떻게저런어마어마한빙폭이하늘에서뚝떨어졌을수있을까’싶을만큼감동적이었다.

“겁이나서주눅이들정도였어요.그런데장기활형께서네놈들이저길올라야해,하시지뭐예요.그래서다짐했죠.죽기전에꼭오르고말겠다고말입니다.”

84년겨울빙벽에입문한종민은85년1월우선구곡빙폭에도전했다.그러나다른팀클라이머들은쉽게오르는데청악선배들만오르지못하는모습에가슴이답답했다.귀경길열차에서선배인현명식씨와손을꼭잡으면서결심했다.다음해에는꼭오르겠다고.그러나85년한해전등반에성공한현명식씨를믿고구곡빙폭등반에나섰으나현씨는초반부에머뭇거리더니“야,네가올라와서해라”하곤바통을넘겨주었다.

“당연히겁이났지요.그렇지만선배가하라는데어쩔수있나요.그런데너무쉬운거예요.”

회지‘맑은뫼’통해열정과학구열널리알려져


그해12월동기인김운회씨와구곡빙폭아래민박집에베이스캠프를차렸다.토왕폭등반을앞둔전지훈련이었다.거대한토왕폭을오르려면구곡폭같은작은빙폭을하루에열번이상올라야한다는생각에속도를내보았으나첫등반에서2시간반이나걸리자실망스러웠다.그래도포기하지않고계속등반을거듭하자하루에세번밖에못하던게다섯번,여섯번으로늘어났다.토왕폭상단이수직벽을이루고있다는점을고려해확보연습도수직빙폭에서했다.정승권,이종관씨등이미토왕폭을등반한경험이있는클라이머들이주변에있어도부끄럽지않았다.목표를향해매진한다는데거칠게아무것도없었다.

“등반을앞둔여름에정찰등반도갔었어요.현명근형과우회로를따라상단에올라올겨울정수리에있는나무에슬링을걸고CA(청악산우회)를외치자고다짐했었죠.어찌나진지했던지부들부들떨면서각오했다니까요.아무튼토왕폭으로들어설때는완전히히말라야원정분위기였어요.하단캠프까지짐을올리느라두번을오르내렸으니까요.”

86년2월2일원종민은현명근씨와함께중단부에서쉬는시간까지포함해6시간반만에토왕폭상단정수리에올라서는데성공했지만기대했던감흥은일어나지않았다.

“베이스캠프에서기다리던선배님들이오히려더욱흥분하셨어요.저희를맞이하면서눈물을글썽였으니까요.그등반에서그동안몰랐던사실을깨달았죠.등반이란결과보다목표를향해나아가는과정이란사실이었죠.”

▲2007년스쿠냥코오롱펜슬등반./MBC‘산,산,산산이좋아’등산강좌.북한산쪽두리봉능선.

그는“토왕폭등반을위해노력하는사이자신만의등반기술을개발했다”며“그때몸에밴등반기술이요즘도교과서로통한다”고자부한다.토왕폭등반대비훈련은청악산우회회지인맑은뫼를통해많은클라이머들에게전해졌다.평소300부만찍던회보를그해에는200부더찍을만큼산꾼들에게관심을모은회지였다.그책의내용은용산고산악부출신인정호진씨(당시코오롱정보센터장·넬슨코리아대표)에게도전해졌고,대한산악연맹학술편집위원장인조대행씨(빈센트병원의사)에게자연스럽게소개되었다.조대행씨역시용산고산악부출신들의모임인용악회회원이었다.

“고2때인77년전교생이모인자리에서장비처럼생긴사람과커다란안경에필리핀사람처럼생긴사람이일장연설을했어요.에베레스트원정을다녀왔다면서말이에요.한국최초의에베레스트등정자를배출한’77에베레스트원정대의장문삼등반대장과조대행대원이었어요.두분모두용악회회원들이었죠.고교시절감히쳐다볼수도없던분들에게제능력을인정받게되자무척기뻤어요.그로인해대산련계간지인‘산악인’편집에관여하게되었고,89년가을부터코오롱등산학교강사활동도하게되었답니다.”

강사활동을하면서도그는개척등반에관심이많았다.특히그가가장좋아하는설악산일원에는그의족적을곳곳에남겨놓았다.90년에는대승폭좌벽에길을냈다.97년에는소토왕골좌벽루트개척에참가하는가하면2004년에는코오롱등산학교강사진과함께장군봉일원에많은길을냈다.최근에도시간만나면개척등반을위해설악산을찾고있다.

▲82년여름표범길등반
“대승폭좌벽은등반성도약하고폭포상단에서하강한다음등반해야한다는점때문에찾는사람이별로없어요.장군봉에개척한루트들은정말좋은길들이랍니다.난이도가세기는하지만재미도있어요.그래서지금도무척인기랍니다.소토왕골루트들또한많은사람들이찾고있답니다.비록크랙에박혀있는풀뽑고후배들밥해주는게제일이었지만요.”

그는요즘도개척등반에열중하고있다.설악산토막골형제봉200m거벽에도길을내고있다.이번에는개척방식을바꾸었다.선배인정호진씨의주장대로밑에서부터길을내며위로올라가는방식이다.
“솔직히장군봉남서벽루트가운데리딩이가능한루트는하나밖에없어요.어린이날알파인코오롱루트를등반하다무척애를먹었어요.5피치실크랙은30m나되고,6피치는수직벽레이백크랙이20m나되기때문에무척힘들어요.마음먹고운동하고가더라도끝내고나면팔다리가후들거릴정도니까요.아무튼2003년기존루트로하강하면서멋진벽이다싶었고,밑에서루트파인딩한등반선이실제등반하면서딱맞아떨어지면정말기분이좋아요.”

원종민은해외원정기회는많이누리지못했다.그는2005년가을까지만해도코오롱등산학교내에서국내파에속했다.그것이깨진것은2005년11월용악회아마다블람(6,812m)원정에참가하고서였다.

“솔직히직장그만두고해외원정나갈용기가없어요.등산학교교무를맡다보니등반시즌을맞추기도쉽지않고요.다른한편으로우리나라에서도가보지못한계곡과능선이무수히많은데굳이외국산을억지로갈필요가있나싶어요.고산이저한테는잘맞지않는것같기도하고요.”

용악회아마다블람원정대는평균연령57세의팀이었다.당시‘43세청년’이었던그는C2까지는그런데로올랐으나마지막캠프에올라서면서몸이무너지고말았다.

“마지막캠프로올라가면서몸이급격히나빠지더군요.캠프에올라선다음에는똥물까지토해냈어요.이튿날정상을향해100m쯤올라갔다포기했지요.고소란게참신기하데요.베이스캠프도착해서1시간쯤지나니까라면생각이나고,라면을먹고나니까멀쩡해지지뭐예요.그때너무고생해서그런지굳이고산을가겠다는생각을한적은없어요.”

그는취재도중옛날일이기억나지않자답답해하더니“이렇게나쁜머리가더나빠질까걱정스러워더더욱고산원정이꺼려진다”고말했다.그는실전뿐아니라이론에도뛰어난능력을지니고있다는평가를받는강사다.코오롱등산학교30여종의교안대부분이그의머리와손을거쳐나오고있다.이는끊임없는노력없이는불가능한일이다.

“나이드신선배님들은아무래도글을쓰고교안을작성하는데에는젊은후배들에비해약할수밖에없어요.그래서독도법,GPS강의등몇강좌외에는대부분제가교안을만든답니다.오랫동안교안을만들다보니까이제는외울정도예요.그래서펑크난강의를제가메꿀적도간혹있고요.”

그는등반기술서도두권냈다.<암벽등반의세계>(정갑수·원종민·한동철공저,1995년)는새내기클라이머들에게텍스트와도같은책이고,<등산>(공저,2003년)은대한산악연맹에서교재로사용하고있다.

“가장자신있는빙벽등반에관한책도내고싶었어요.워낙섬세한내용들이라쉽지않네요.지금까지도계속발전하고변화하고있는등반기술이니까요.일반등산기술에관해서는세계최고의책을내고싶어요.10여년전월간山에연재할때는선배들의글이나외국산서의내용을답습하고추리는수준이었어요.억지로하려니정말힘들더군요.마감날짜지나원고를내기일쑤였고요.그러나지금은순수한제경험만으로책을쓸수있어요.”

▲82년12월설악산에서청학산우회선배들과함께./2006원주시칠봉빙장


“최고의등산강사가꿈입니다”


원종민은등산학교수강생들은입교전어느정도수준에올라있기때문에가르치는데크게힘들지않지만산에대해전혀모르는사람들에게강의를하자니한동안고민스러웠다고털어놓았다.

“등산학교수강생은제가무슨얘기를하면눈이반짝반짝해요.알아듣는거죠.그런데백화점문화센터같은데에서주최하는등산강의때는무슨소리를하나싶은표정을짓는이들이많아요.이런사람들에게어떻게하면등산을제대로가르칠것인가고민했어요.새롭게공부를했지요,교안도새롭게만들고요.열정적으로하다보니까새로운아이디어가수시로떠오르는거예요.강의중에도떠올랐으니까요.”

“등산의3대기본원리는에너지를생산하고보존하고절약하는것”이라는원종민씨는등산의행위도중요하지만그에앞서준비하고,산행을끝마친뒤다음산행에대비하는자세도중요하다고말한다.

“대학시절배운경영기법중PDCA(Plan,Do,Check,Action)이란게있어요.모든일을이렇게해야되겠지요.일반적으로두(Do·행위)만생각하잖아요.소풍가는날도좋지만전날이더즐거운것같아요.등산도마찬가지인것같아요.설악산을처음갈때지형도넉장을붙여놓고쳐다보면서숲냄새도맡고,계곡에흐르는물소리도들었어요.산새소리들으며등반도했고요.행위도행위지만그에앞서준비하는과정이더욱즐거운것같아요.지금까지도마찬가지랍니다.”

40대후반에접어든원종민씨는“스스로그래도행복한청춘을보낸것같다”고말한다.

“지금생각해보면이런삶살게된게신기해요.번데기장사만하지않았더라도이런생활은하지않았을텐데말이에요(웃음).아무튼맑은뫼34권의내용중절반은제가주인공이었어요.회보에내기에앞서산행도중메모한쪽지들도집에다모아놨고요.가끔그런것들을보면그래도행복한청춘을보냈다싶어요.제가이제와서뛰어난클라이머가되겠다고애를쓴다면말이안되겠지요.그러나남들가르치는일에관한한최고의산악강사가되고싶어요.모든산악인들이안전하고즐거운산행을할수있게말입니다.”

-글/한필석차장대우/월간산[464호]2008.06.-

원종민그는

소속
청악산우회
용악회

등반·개척경력

86년토왕빙폭등반
90년대승폭좌우벽루트개척
97년설악산소토왕골암장개척
99년도봉산선인봉청악길개척
03년토왕폭하강루트보수
04년설악산장군봉남서벽6개암벽루트개척
05년아마다블람등반
06년카라코람차라쿠사지역답사,드리피카봉(6,447m)등반

저서

<암벽등반의세계>(정갑수·원종민·한동철공저,1995년),
<등산>(공저,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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