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학사장은호텔신라와에버랜드의전신인자연농원의CEO를맡아최단시간안에세계적인호텔과테마공원으로끌어올린장본인이다.그만이가진경영철학으로고객을최대한만족시키기위해부단히노력한결과다.덤으로얻은별칭이서비스전도사와혁신전도사다. 그러나그가주는첫이미지는CEO를오래해서인지,서비스라는개념이주는부드러움이나달콤함보다는주어진일에열정과뚝심으로밀어부치는의리의사나이라는이미지가강하게와닿는다.그가최고의서비스를펼칠수있는비결이뭘까.궁금했다.그것은하루아침에쌓인노하우가아닌것만큼은분명해보였다.그의인생역정을보면어느정도답이보일듯했다.
군생활이그의인생의첫시험대였다.소위임관6개월후대위급이맡고있던수송장교를맡게됐다.가장골치아픈보직이었고,대부분맡기싫어했다.ROTC선배들도손실처리하려면월급못받는건예사고,관리책임때문에불명예제대할수도있다며만류했다.그러나해야할일이었고누군가맡아야했다.한번해보자고결심했다.
제대일자가다가왔다.부대장이뜻밖의제안을했다.간곡하게장기복무를해달라는것이었다.난감했다.목표가뚜렷했지만군은아니었다.완곡하게거절했다.미안했지만어쩔수없었다.제대를앞두고인생의방향에대해서또한번갈등을겪었다.취직을할것이냐,농촌계몽의꿈을펼칠것인가를놓고자문도하고,상의도많이했다.그러던중삼성에합격했다.이정도의기업에서새로운세계에대해도전해보고싶은각오가생겼다.삼성맨허태학의출발순간이다.그게69년말의일이다.
그는올해햇수로삼성입사40년을맞았다.일반월급쟁이들이부러워할정도로오랫동안,그것도삼성이란세계적기업에서CEO로서16년째생활하고있다.그는삼성에입사하고서부터자기인생에대한서비스를남보다2~3배이상더최선을다했다.남들이하지않은일,하기싫은일뿐만아니라모든일을열심히해야한다는생각으로가득찼다.자신을위하는일이진정남을위하는일이라는불가의말씀을굳이들지않더라도모든게서비스정신의발로였다.
호텔신라에서만23년간을근무했다.자신에대한성실성과타인,즉고객에대한서비스를23년동안제공한것이다.‘서비스도사’가됐을법한수준이다.아니됐는지도모른다.그가쓴서비스에대한책이서울대와미국등외국에서교재로채택될정도고많은별칭을얻었으니말이다.
제주호텔신라개관프로젝트를맡았다.서비스는기본적으로사람이사람을대하는사업이다.기계는붕어빵찍듯잘다루기만하면된다.사람은감정상태,인간관계등주변상황을만들어줘야제대로돌아간다.기존부서에서잘훈련된사람들이하는일이아니고,항상여러부서에서모인새로운사람들과일을하다보니어떻게팀웍을이룰것인가가그의고민거리였다.
전사원들에게속리산으로2박산행을간다고일렀다.직원들은그때까지도기념산행인줄로만알고있었다.모두즐겁게놀면서보냈다.그는아무말안했다.눈치채는직원도없었다.마지막날밤그는직원들을한자리에불렀다.한사람씩본인의인생스토리를말하도록유도했다.분위기는무르익었다.온갖얘기가다나왔다.실연,이혼,실패등의스토리를들으며모두숙연해지기도하고,한쪽에선눈물훔치는장면도심심찮게보였다.
개관첫해투숙률78%에객실단가87,000원을이룩하는쾌거를이뤘다.첫해투숙율80%는호텔사상유례없는기록이다.이후거의90%까지올렸다.
93년에버랜드의전신자연농원CEO로부임했다.삼성입사24년만이었다.지금은세계5위테마파크로성장했지만,당시엔그냥농원수준이었다.“당시자연농원에가보니서글픈수준이더라.같은인적서비스업인데어떻게이렇게차이날수있나싶더라.호텔신라가카펫놓인길이면이곳은흙길이었고,양복과작업복,구두와고무신,3차산업과1차산업으로비교될정도였다.그래서대대적수술조치를단행했다.”
그의등산리더십은제주호텔신라에이어에버랜드에서도빛을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