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엔일제가조선의구식군대를해산시키자이에불응하다가목숨을잃은120여명의시신을광희문밖에모아두었다.당시성문주변은병사의생사를확인하기위해가족들이몰려들어울음바다를이루었다고한다.
시신이나가는길목엔죽은자의명복을비는무당집이즐비했는데,광희문바깥쪽을무당골,신당골(神堂谷)이라부른것이지금의신당동(新堂洞)지명의유래다.광희문밖의고개도‘한번가면다시돌아올수없다’고해서아리랑고개라고불렀다.그래서조선시대엔‘서울가거든시구문돌가루긁어오라’는말이있을정도였다고한다.조선시대수백년동안수많은죽음을지켜본광희문이었기에‘수구문돌가루’가주술적인만병통치약으로통했던것이다.
조선시대한양의도시형태는경복궁정문인광화문앞으로이어지는널찍한육조거리좌우로나랏일을살피는중앙관아들이늘어서있었다.도성의8개문을여닫는시각을알려주는큰종을매달았던종루(鐘樓)가있었고,종루를가운데두고동서로뻗은운종가(雲從街)는조선최고의번화가였다.지금의종로네거리를중심으로자리했던운종가길양쪽으론시전행랑이죽늘어서있었다.
대한민국의수도인서울에서도그중심은단연종로거리다.서울종로는상징성이가장크다.국회의원선거때면흔히듣게되는‘정치1번지’라는수식의유래도육조거리,운종가등이지금의종로구에속하기때문이다.
한편,조선시대백성들은높은관리를만나면절을해야하는번거로움을피하기위해운종가뒤로난좁은골목길로몰려들었다.바로‘말을피해다니던길(避馬)’이라는뜻을지닌지금의피맛골이다.백성들이이용하다보니이골목엔선술집·국밥집·색주가등술집과음식점이번창하였고,그전통은지금까지이어져낙지볶음·생선구이·해장국등을파는식당과술집·찻집등이즐비하다.
서울서직장생활하는사람치고이곳서밥이나술한번안먹어본사람이없을정도인데,지금은종로1가교보문고뒤쪽에서종로3가사이에일부만남아겨우명맥을유지하고있다.그러나이길은오늘도여전히서울의밤을즐기려는술꾼들에게인기가있다.
한편,도성안의민가는운종가를기준으로북촌과남촌으로불렸다.북촌에서도경치좋은백악산아래엔내로라하는권문세가들의주거공간이형성되기도하였다.세종의형인효령대군,세종때의이름난학자인성삼문,선조때의재상이항복도북촌에살았다.반면,하급관리와세력없는선비들이나무인들은남산기슭에모여살아남촌을이루었다.가난한선비를놀릴때쓰는‘남산골딸깍발이’란말도당시남촌에살던선비들은너무가난하여맑은날에도나막신을신고다닌데서유래한다.그러나남촌에도조선중기의시인윤선도,임진왜란때나라를구한이순신장군등이름난사람들도많이살았다.
1876년개항이되고외국문물이밀려들자기존의재래시장들은일대위기를맞았다.특히일본상인들의진출이가장큰타격이었다.이러한위기를극복하고자1905년배오개시장과종로상가의상인들이모여광장주식회사를설립하고,종로5가쪽과청계천쪽양편에상가를세웠다.사람들은이를광장시장이라고불렀다.전차정거장이광장시장입구인지금의종로5가지하철역부근에있었기때문에광장시장은당대최고의시장으로거듭났다.8·15광복이후에도광장시장은서울의대표적시장이었으며,6·25전쟁을겪으면서더욱명성을높여갔다.
1959년광장시장동쪽에새로운시장이들어섰다.광장시장과구별하기위해이를동대문시장이라고했다.1960년대는동대문시장의전성기였다.포목·의류·생선·정육·야채등이주로거래된동대문시장의1만여점포엔하루평균20여만명의고객이몰렸다.밤에도불야성을이뤄야시장으로도이름났다.파는물건의종류도매우풍부하여“동대문시장에선돈만주면고양이뿔도판다”는우스갯소리도생겨났다고한다.
그러나1970년대에들어평화시장·중부시장·경동시장·노량진시장등전문화된시장이곳곳에생겨났고,또대형백화점들이하나둘문을열자동대문시장은조금씩위축되기시작하였다.이에1970년동대문서남쪽에있던전차차고부지에6층건물로새로이시장을세우고이를동대문종합시장이라고하였다.현재동대문시장이라하면,넓은의미로는광장시장·동대문시장·동대문종합시장등을모두포함하지만,좁은의미로는광장시장만을뜻한다.
남대문시장은근래에들어와6·25전쟁과몇번의화재로큰타격을입었으나동대문시장에뒤지지않는명성을여전히유지하고있다.지방출신인이길손은동대문시장보다남대문시장을먼저알았다.등산장비도동대문시장이아니라남대문시장에서구입하곤했다.다른분들도사정은비슷할것인데,이는아마도남대문시장이서울의대표적출입구인서울역가까이에있어서일것이다.
하지만1990년대들어서동대문시장에대형쇼핑몰이들어서면서남대문시장을찾던손님들을그쪽으로많이빼앗겼다.특히20~30대젊은이들은대부분동대문시장으로발길을돌렸다.젊은이들취향인쇼핑중편히쉴공간이부족하기때문이었다.
요즘남대문시장의주요고객은중장년층의여성들이다.또외국인들도남대문시장쇼핑을필수코스로꼽고있다.외국인들은한국에서남대문시장을가보지않으면한국쇼핑의최대명소를보지못한것이나다름없다고말한다.남대문시장은동대문시장·인사동과또다른매력이있다는것이다.이들이말한남대문시장의매력은대한민국고유의재래시장에서풍기는정겹고도활기찬분위기와다양한물건을저렴한가격에살수있다는점이었다.길손도이에동의한다.
길손은예전에남대문시장을돌아다니다가길을잃은적이한두번이아니었다.요즘도한번에빠져나올자신은없는데,이는상점과건물들이넓은지역에걸쳐마치미로처럼얽혀있기때문이다.이는계획적으로형성되지않고시간이흐르면서자연스럽게형성된전통재래시장의특징이다.바로남대문시장만의색깔인것이다.
길손은예전엔남대문시장도동대문시장처럼계속변화를꾀하며외연을확장하면서현대적으로변해야살아남을것이라생각했다.하지만요즘은생각이바뀌었다.남대문시장은무질서한듯이보이면서도철철넘치는정과생동감,그게바로가장큰생명력이었던것이다.그런데,이번에도길손은외국인들과어깨를부딪치며남대문시장을이곳저곳기웃거리다또길을잃고말았다.허허,언제쯤남대문시장에서자유를얻을수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