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성을팔고사는사람모두를무겁게처벌하는윤락행위방지법이제정되었으나유명무실했다.그러던1968년,당시전국에서규모가가장커서윤락지대의대명사로불렸던‘종삼’이이른바‘나비작전’으로철거되었다.1945년부터종로3가뒷골목을중심으로형성되었던종삼집창촌은6·25전쟁후엔종로3·4가와낙원동·봉익동·훈정동·인의동·와룡동·묘동·권농동·원남동에광범위하게퍼져있었다.
그러나‘나비작전’도성공하지못했다.종삼에서쫓겨난이들중일부가미아리와강남으로집단이주하면서지금의‘미아리텍사스촌’과‘강남룸싸롱촌’이형성된것이다.최근엔서울최대규모인‘미아리텍사스촌’을비롯해동대문구전농동의‘청량리
588’,용산역부근,강동구‘천호동텍사스촌’,영등포역부근등에집창촌이형성되어있다.
그런데,강북구미아동주민들은‘미아리텍사스촌’이란말을매우싫어한다.오죽하면몇년전엔‘미아리텍사스촌’란말을언론등에서관습적으로쓰지말것을호소하기위해10만명이넘는구민들이서명을했겠는가.‘미아리텍사스촌’의정확한행정명은‘하월곡동88번지집창촌’이다.
위와같은서명사건에서보듯적지않은미아동주민들은‘미아리콤플렉스’를갖고있다.선을보거나미팅을했는데집이미아동이라는이유로퇴짜를맞거나,직장동료들에게‘집이미아리라좋겠네~’하는농담을들었을때는정말당장이라도이사를가고싶은심정이란다.또용한점쟁이를소개해달라고할때도그렇고,나이든사람들이공동묘지·달동네같은이미지를떠올릴때도힘겹다고한다.그래서이들은미아동에산다고말하는대신에정릉이나삼양시장근처등에산다고돌려서이야기하는경우도있다고.물론현재의강북구미아동은지금까지이야기한미아리의이미지와직접적인상관이없는데도말이다.
미아동을품고있는강북구는1973년성북구에서갈린도봉구에포함되었다가1995년도봉구에서분리되었다.여기서또하나.많은사람들이의아해하는점이있다.강북구?명색이강북구인데왜강이없냐고.한강의북쪽에있기때문에강북이라했다는데,그렇다면강북에있는14개의도가모두강북이아닌가.설령그렇더라도서울에서한강을뜻하는‘강’자가들어간구는강남구·강동구·강서구·강북구인데,유독이강북구만한강에접해있지않다.그것도북한산안쪽으로한참들어가있다.
그래서서울의각구의명칭을살펴보았다.그결과서울의25개구가운데가장성의없는작명이라는결론을얻었다.하긴얼핏생각하면북한산·삼각산·인수봉등등대표하는명소가많기때문에작명이수월했을듯하지만,그봉우리들정상의주소가거의경기도고양시에속하니전문가들도고민이많기는했을것이다.그렇다해도‘북한구’가이상하면‘북한산구’,‘삼각구’가이상하면‘삼각산구’,그리고‘백운구·인수구·우이구’등등부르다보면정들좋은이름을마다하고하필이면한강과전혀상관없는데도강북구라니.
길손은이중에상징과위치등등부족할게없는‘삼각산구’라는명칭이가장맘에든다.삼각산은북한산의옛이름이기도하면서현재강북구청에서삼각산옛이름찾기운동을활발히벌이고있으니더욱인연이깊지않은가.북한산이삼각산이란이름을되찾는날,과연강북구의명칭도바뀔수있을까.대관령으로유명한평창군도암면이2006년에대관령면으로바뀐것처럼말이다.
삼각산운운에눈치를챘겠지만,누구든지강북구에들어섰다면아마도거대한암봉들을마주하게될것이다.최고봉백운대를중심으로북쪽의인수봉,남쪽의만경대가삼각뿔을이룬다하여삼각산이라불리던북한산은금강산·지리산·묘향산·백두산과함께우리나라오악으로꼽혔던명산이다.
백제시대들어북한산은역사의무대에등장한다.정약용이지은<위례고>엔‘위례성은백제시조가처음도읍하였던곳으로옛자리가지금한양성동북쪽에있다.하북위례성의옛자리는지금경성의동북쪽10리되는곳삼각산동쪽에있는데,주민들이그곳을잘못불러한양고현이라하였다’고나와있다.하북위례성의위치가지금의북한산동쪽어디쯤이었음을짐작케한다.전문가들은범위를좁혀지금의미아동주변을온조가처음으로자리잡은하북위례성자리로추정하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