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탐방 [12] *-

[르포라이터민병준의향토기행]서울4남서부
“한강의역사는나루터에남아있네!”

한강대교·마포대교·양화대교를건너고,올림픽대로를달리며다시한강에대해생각한다.한강은서울시민들뿐만아니라배달겨레의젖줄로서역사의한중간에있던소중한강이다.그러나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점차허물어지기시작해우리나라가산업화사회로진입한1960년대이후엔한강개발이라는이름아래급격히망가지기시작했다.지금은강변도로등으로접근이쉽지않아한강과인간은분리되어있다.일부구간이서울시민의휴식공간으로역할을하고있지만,서울시민들은아직도한강이환경오염때문에생태계회복노력이필요하다고생각하고있다.앞으로는한강을가꿀때눈앞의이익만좇는근시안적인개발보다는생태계를친환경적으로복원하고,시각적인아름다움도고려하는데무게중심을둬야할것이다.

▲동작구상도동에있는지덕사는양녕대군의사당이다.마치고급저택의정원처럼잘가꿔져있다.(왼쪽)/지덕사뒤쪽언덕에조성된양녕대군의묘.양녕은태종의세자로책봉되었으나폐위되었고,동생인충녕대군(세종)이세자로책봉된뒤엔풍류로일생을보냈다.(오른쪽)
돌이켜보면서울은500년간조선의수도였고,지금도대한민국의수도인덕에세계에자랑할만한문화유산이아주많다.또넓은한강과북한산·도봉산등세계적으로아름다운명산도솟아있다.이렇듯서울은역사적·지리적으로관광자원이아주풍부한도시다.그래서서울시는한강·남산등을대표적관광명소로만들고,계절마다다양한축제를열어많은외국인관광객들이서울을방문하도록노력하고있다.

하지만서울을찾는외국인관광객수는아시아유명도시중에서가장낮다고한다.그이유는무엇일까.여러원인이있겠지만,아마도가장큰이유는한강을제대로활용하지못했기때문일것이다.한강과그주변이가장큰관광자원임에도일제강점기이후지금까지개발이라는미명아래한강을훼손하는데만몰두하지않았나하는반성을해본다.개발을향해불도저처럼밀어붙이는것만능사가아니다.넓고깨끗했던한강백사장,민가10여채가정겹게자리하던밤섬,한강의가장큰모래섬여의도,아름다운언덕이었던선유봉을비롯해한강주변의경관을잘보존하였다면‘아시아유명도시중관광객꼴찌’라는치욕을당하지는않았을것이다.

서울시가진정으로지금의한강을‘즐겨찾는한강,가까운한강,살아숨쉬는한강,내일을여는한강’으로가꾸고자한다면,이제라도콘크리트중심의개발에서벗어나한강의생태환경을회복하는게우선이다.단언컨대,한강이예전모습의일부라도되찾는다면분명서울의명예를회복할수있을것이다.

이제한강주변의문화유산을둘러보자.노량진나루근처엔사육신묘가있다.홍살문,불이문,신도비각을차례로거치면의절사(義節祠).여기엔여섯분이아닌일곱분의위패가모셔져있다.1977년김문기를추가로봉안했기때문이다.의절사뒤쪽언덕을오르면하위지·성삼문·유성원의묘가보이고,그오른쪽으로이개·유응부·박팽년·김문기묘가있다.

▲(1)낙성대유지근처에조성된낙성대공원엔강감찬장군의사당이자리하고있다./(2)관악구봉천동의낙성대유지.고려명장으로서거란의40만대군을무찔렀던인헌공강감찬장군이태어난집터다./(3)낙성대공원에있는강감찬장군동상.
누가모셨는지이분들은모두한강수를등지고풍진세월을누워있다.길손이풍수는모르겠지만,지금의용산구이촌동새남터사형장에서목숨을잃었기때문에그새남터를뒤로하고자리를잡은게아닐까.아니면부도덕한군주가자리를잡은도성을바라보지말라는뜻일수도있겠다.

그살벌하던시대로돌아가보자.1453년(단종1)단종의숙부인수양대군이계유정난을일으켜단종을몰아내자,1456년집현전학자들을중심으로단종복위를꾸몄다.하지만같은동지이며집현전출신인김질등은뒷일이두려워세조에게이사실을밀고하였고세조는연루자를모두잡아들여스스로이들을문초했다.

당시성삼문은시뻘겋게달군쇠로다리를꿰고팔을잘라내는잔학한고문에도굴하지않았을뿐아니라,세조를‘전하’라하지않고대군을칭하는‘나리’라불러왕으로대우하지않았다는이야기는유명하다.성삼문·박팽년·김문기·이개는작형(단근질)으로처형당하였고,하위지는칼로목을베어죽이는참형을당하였으며,유성원은자기집에서아내와함께자살하였다.

이때목숨을잃은이는사육신을비롯해모두70여명에이른다.이중에서6명을흔히사육신(死六臣)이라하는데,이말은생육신의한사람인남효온이쓴추강집(秋江集)에처음나타난다.이책의육신전에박팽년·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의순서로기록하고있는것을근거로삼은것이다.

그런데,김문기도사육신의1명이라는의견이있자,1977년국사편찬위원회에서사육신문제를밝히기위해특별위원회를구성하여논의한끝에‘김문기를사육신의한사람으로현창하는것이마땅하다’는결의를만장일치로채택하여김문기의가묘도함께만들었다.단종복위운동당시공조판서겸3군도진무에있었던그는모의가발각되자고문에굴복하지않다가이개등과함께처형된인물.하여실제로는사칠신(死七臣)인셈이지만,숫자를떠나사육신이란단어는우리민족에겐목숨까지초월한영원한의리의상징으로쓰이고있다.

살벌하던그시절시신은누가수습했을까?사육신이죽고난후그가족들은물론이요,친인척들도모두역적으로몰려죽거나노비가되어뿔뿔이흩어졌기때문에이들의시신을거둬장사지낼사람이없었다.민간에서는생육신의한사람인김시습이수습해서묻었다고하나정확한사료는없다.

원래조선시대엔이곳에박팽년·유응부·이개·성삼문4분의묘만있었다.그러다서울시에서1977년묘역정화공사를할때하위지·유성원·김문기의가묘도함께만들었다.또묘역뒤쪽언덕엔문인석이반쯤땅에묻힌채돌아앉아있는폐묘가있는데,이는성삼문의아버지로서복위운동에적극가담했던성승의묘로추정하고있다.

▲여의도는국회의사당이들어서면서대한민국정치의중심지로떠올랐다.
어쨌든복위운동이실패하자주동자들은물론이요,그가족들도처형을당했다.성삼문은아버지(성승),동생셋(삼빙·삼고·삼성)과아들넷(맹첨·맹년·맹종·갓난아기)까지몰살당했고,다른사육신들도거의같은꼴로멸족을당했다.다만박팽년만이유복자가살아남아후손을이었다.

당시주동자의가족중여자들은세조편에섰던정인지·한명회·신숙주등64명에이르는공신들의노비로끌려갔다.동지들을밀고한김질도옛동지들의가족을노비로하사받았다.조선왕조실록에실린관련기록을들추다보면가슴이서늘해진다.

“의금부에일러난신에연좌된부녀를대신들에게나누어주게하였다.의금부에전지하기를,난신에연좌된부녀중에…박팽년의아내옥금,김승규의아내내은비·딸내은금·첩의딸한금은영의정정인지에게주고…최면의누이선비,조완규의아내소사·딸요문은병조판서신숙주에게주고…유성원의아내미치·딸백대,이명민의아내맹비는좌승지한명회에게주고…민보흥의아내석비,이윤원의아내대비는판군기감사김질에게주고…”

▲한때오염과악취의대명사였으나최근몇년간부단한노력으로깨끗함을되찾아가고있는안양천.(왼쪽)/안양천이한강으로흘러드는염창교부근에서바라본한강하류.강변을따라자전거길이잘나있다.(오른쪽)
정치적으로보면세조는단종복위운동을무마시킨덕에왕권을강화시킬수있었다.또세조의후손이대를이어조선을통치했고,모의를밀고했던변절자들은대대로영화를누리며잘살았다.그살벌하던시기,우리가그시절그자리에있었다면과연어떤선택을했을까.살아서의일신영달?죽어서의역사적평가?사육신묘에서바라본한강은오늘도말이없다.

사육신묘에서나와조금떨어진동작구상도동의양녕대군묘를찾아잘가꿔진묘역을둘러보다문득사육신과관련해양녕대군에게서운하다는생각을갖는다.왕실종친의수장격인양녕대군은계유정난당시수양대군편에섰고,나중에금성대군이단종복위운동을일으키다발각되자그를처벌하는데도동의했기때문이다.

▲조선에퍼져있는장승들의우두머리라는장승백이.정조가시흥길로현륭원을다닐때이곳이너무호젓하니장승을세우라고했다는이야기가전한다.
관악구남서부의금천구는서울에서면적이작은편에속하는자치단체다.그렇지만길로본다면결코그냥지나칠수없는지역이다.정조의초기현륭원행의노정은과천로(지금의동작대로)였다.그러나과천로엔교량이많고남태령고갯길때문에어려움이많았다.화성축조에착수한직후인1794년(정조18)시흥로가개설되자이듬해제6차현륭원행부터는시흥로(지금의시흥대로)를이용했다.

기존의교통로외에서울~시흥~안양을거치는시흥로는단지정조자신의원행뿐만이아니라화성신도시를중심으로삼남지방과보다수월하게연결하려는의도였다.그래서정조는이시흥로를닦는일이백성들을이롭게하는일이라생각했지만우여곡절을겪는다.당시경기관찰사였던서용보가한강일대7읍의백성들에게관청곡식을시가의두배에가까운비용으로팔면서“임금님이화성으로내려가는시흥로를만드는데사용하기위해서”라고거짓말을했기때문이다.백성들의원망이높아지자경기암행어사로파견된정약용이이문제를수습했다.지금뚫린왕복10차선시흥대로의시작이었고,대한민국1번국도도이길로이어져있다.

우리나라산업화의명암을간직하고있는구로공단을둘러본뒤,한때오염과악취의대명사였으나최근몇년간부단한노력으로깨끗함을되찾아가고있는안양천을건너면양천구와강서구가손짓한다.

이지역은용왕산·우장산·궁산·개화산등겨우100m내외의고만고만한산들이공원역할을하고있으나서울의다른지역에비하면낮은언덕에불과하고,지세도논이많고평평하다.한강은더욱넓어지고문득갯내음도풍겨오는것같으니바다가멀지않음을알수있다.

▲허준박물관근처의구암공원은한때한강에접해있었다.연못에있는바위는광주에서떠내려왔다는전설이전해오는광주바위다.
서울은세계적인대도시이지만농사를짓는사람들도있다.통계를보면2006년서울의농가는2,934가구.이는서울전체가구(3,109,809)의0.09%에해당하는숫자다.이중논농사는김포평야의일부를거느리고있는강서구를포함해양천구·구로구등에서도짓고있다.이렇게수확한서울의쌀생산량은제주보다많다.2006년서울에서생산된쌀은2,399t으로같은해제주도에서생산된2,352t에비해47t이나더많다.이는약1,000만명에이르는서울시민이하루에소비할수있을정도의양이라한다.‘경복궁쌀’이바로서울지역에서생산한쌀이름이다.

이렇게논과건물사이를오락가락하다올림픽대로를타고한강따라흘러내려가다보면한인물을만나게된다.바로동양의학을집대성한동의보감의저자허준(許浚·1539-1615)이다.허준은지금의강서구등촌동능안마을에서태어났는데,이지역은대대로양천허씨의세거지였다.

영등포공고정문앞에있는공암(孔岩)이라는바위는양천허씨의시조인허선문이태어났다는설화가전해허가바위라고도한다.이바위엔가로6m,세로2m,길이5m로서성인10명이상이들어갈수있는동굴이뚫려있다.겸재정선의‘공암층탑’이란그림으로옛모습을살펴볼수있는공암은한강의모래밭에있어돋보였으나역시주변에건물들이들어서면서옛모습을잃고말았다.

▲구암공원에조성되어있는허준동상.(왼쪽)/구암공원에서200m정도떨어진영등포공고정문앞엔양천허씨의시조가태어났다고전하는허가바위가있다.(오른쪽)
한강주변의풍경을그림으로많이남긴겸재정선은1740년여름양천현감으로부임하면서이지역과인연을맺었다.정선은다음해여름까지양천에서그린그림들을화첩으로꾸몄는데,이것이바로아름다웠던한강의옛모습을살필수있는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이다.

양천의진산인궁산(宮山·75.8m)은정선이그림소재를위해즐겨찾았던곳이다.산이라하기엔낮은봉우리에불과하지만강가에솟은덕에조망은으뜸이다.서울시에남아있는유일한향교인양천향교에서정선의흔적을살펴보고10분쯤오르면소악루가반긴다.궁산정상은서울시가우수조망명소로지정할만큼풍치가뛰어나다.이누각에서는유장히흐르는한강가에선유도가보이고,그너머로안산·인왕산·남산·관악산,그리고삼각산등이한눈에들어온다.곳곳엔겸재정선의그림사본도걸려있으니옛풍치와지금의풍치도비교할수있다.

▲강서구가양동의양천향교.전국234개향교중서울에있는유일한향교다.
정선이1741년그린‘행호관어(杏湖觀漁)’는화창한초여름날이궁산에올라강건너덕양산자락을바라보며그린그림이다.행주산성앞을흐르는한강을칭하던행호(杏湖)에서웅어잡이하는광경을구경한다는뜻이다.겸재정선의친구인문장가사천이병연은이정경을다음과같이읊었다.

늦봄이니복어국이요
초여름이니웅어회라.
복사꽃가득떠내려오면
어망을행호밖에서잃겠구나.

당시의풍광이눈앞에선하다.하지만이젠이런풍광을볼수없게되었으니이는어쩌면우리가한강개발이란이름아래잃어버린현주소가아닐까.

궁산에서한강을굽어본다.
길다고하면길고짧다면짧았던서울기행의마무리는아무래도한강이다.한강은교통로기능,군사적기능,경제적기능,문화적기능,그리고생활용수로서의기능등다양한역할을하면서유구한역사를흘러내려오고있는물줄기다.하지만한강은예전의한강이아니다.모든것이변했다.전세계적으로이토록짧은시일에인공구조물에파묻혀급격하게변한강이또있을까싶다.옛선인들이즐겼던한강의풍류를강변의고층건물에서어찌맛볼것이며,커다란유람선을어찌황포돛배에비견할수있을까.오늘도한강은말없이황해로흘러들어간다.잘가라,한강수여!

관악산
서울시관악구신림동과경기도안양시·과천시경계에있는관악산(冠岳山·632m)은예로부터개성송악산(松岳山),가평화악산(華岳山),파주감악산(紺岳山),포천운악산(雲岳山)과함께경기오악(五岳)의하나로꼽혀온명산이다.

검붉은바위로이루어진관악산은그꼭대기가마치큰바위기둥을세워놓은것같아갓모습의산이란뜻의순우리말로‘갓뫼’라하고,한자로는‘관악(冠岳)’이라고했다.이는주위산들중에서으뜸간다는뜻도담겨있다.주봉은연주대(戀主臺)다.

관악산은청계산·남한산등과함께서울의남쪽경계를이루면서북쪽의북한산·수락산·불암산과더불어서울분지를둘러싼방벽역할을한다.보통관악산이라하면연주대와연주암이있는봉우리를말하지만,영역을넓게보면신라문무왕때원효·의상·윤필세대사가도를깨닫고성불했다는삼성산,그리고장군봉까지를포함시키기도한다.

전통풍수에서는관악산을불의기운인화산(火山)으로보고있다.그래서이산이정면으로보이는서울에화재가잘난다고믿어그불을누른다는상징적의미로산꼭대기에못을파고경복궁의정문인광화문옆양쪽에불을막는다는상상의동물인해태를만들어놓기도했다고한다.철쭉꽃이피는4~5월에관악산철쭉제도열린다.

관악산은서울시민들의당일치기산행코스로사랑받고있기때문에늘많은인파가몰려코스가다양하게나있다.관악산횡단코스인서울대정문옆만남의광장에서제4야영장을거쳐연주대에올라선다음과천향교로내려서는코스는가장기본적이면서도최고의인기를누리고있다.이외에도대중교통의접근성에따라신림동기점,과천기점,시흥동기점,안양유원지기점등으로나눌수있다.

○관악산횡단코스=만남의광장→제4야영장갈림길→연주암→연주대→연주암→과천향교<3시간30분소요>

○서울대원점회귀코스=만남의광장→무너미고개→연주대→깔닥고개→제4야영장→만남의광장<3시간30분소요>

○서울대~사당동코스=만남의광장→제4야영장갈림길→연주암→연주대→관음사→사당전철역<4시간30분소요>

○과천원점회귀코스=과천향교→계곡길→연주암→연주대→능선길→과천향교<3시간소요>

○남북능선종주코스=사당전철역→관음사→북릉→559m봉→연주대→남릉→불성사→안양시관양동<5시간30분소요>

○관악산~삼성산연결종주코스=관음사→북릉→연주대→서릉→무너미고개→삼막사→국기봉→만남의광장<6~7시간소요><지도=특별부록지도참조>

국립서울현충원
동작구동작동에위치한국립서울현충원은국가와민족을위해순국한호국영령들이잠들어있는민족의성역이다.국군을창설한이래전사자들을서울장충단공원내에있는장충사에서모셔왔는데,6·25전쟁후전사자수가증가하자1955년국군묘지로창설해전사또는순직군인과군무원및종군자의영현을안장했다.

1965년국립묘지로승격되어국가원수,애국지사,순국선열을비롯해국가유공자,경찰관,전투에참가한향토예비군등이추가안장됐다.2007년현재국가원수2위,임시정부요인18위,애국지사211위,국가유공자62위,일반유공자1위,장군355위,장교4,487위,사병46,557위,군무원1,952위,경찰813위,위패145,000여위,무명용사6,800여위등이안장되어있다.지하철4호선동작역2번·4번출구www.snmb.mil.kr02-815-0625

사육신묘
동작구노량진로에있는사육신묘(시유형문화재제8호)는조선단종의복위를도모하다희생된사육신이묻힌곳이다.사육신은곧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을말한다.1691년(숙종17)이곳에민절서원을세우고,1782년(정조6)에는신도비를세웠다.

원래이곳에는성삼문·박팽년·이개·유응부만묻혔으나,1977∼78년사육신묘역정화사업때하위지·유성원,그리고김문기의가묘도추봉하면서모두7명이됐다.사육신의위패를모신의절사에서매년10월9일추모제향을올린다.지하철1호선노량진역에서도보10분.02-813-2130

양녕대군사당·묘소
동작구상도동에있는지덕사부묘소(시유형문화재제11호)는조선태종의장남인양녕대군(1394-1462)의사당과묘다.양녕대군의사당인지덕사(至德祠)는원래서울역앞남묘부근에있었는데,일제강점기인1912년에관악산줄기의국사봉밑에있는대군의묘소앞으로옮겨왔다.이곳에는사당,서고,제기고등3동의건물이있고,사당후면에묘소가있다.

양녕대군은1404년(태종4)에세자로책봉됐으나폐위되고,조선태종의셋째아들충녕대군(세종)이세자로책봉된뒤에는경기도여주에서귀양살이를하기도했다.이후세종이왕위에오르자풍류를즐기며일생을보냈다.시와글씨에능했다.지하철7호선상도역에서도보10분.

숭실대한국기독교박물관
동작구상도동에있는숭실대학교한국기독교박물관은기독교관련사료등으로꾸민박물관이다.장로교목사이자고고학자인교수김양선이1948년남산에세운기독교박물관과매산고고관에소장했던자료3,600여점을모교인숭실대학교에기증하자1967년숭실대학교부설한국기독교박물관을세웠다.

소장유물은다뉴세문경(국보제141호),석제청동기제작용범(국보제231호),안중근의사유묵(보물제569호),청동제지구의(보물제883호)등각종문화재와그리스도교관련사료와유물,고대중국과로마시대유물을포함해6,769점에이른다.지하철7호선숭실대입구역3번출구에서도보5분.

노량진나루터
동작구노량진(鷺梁津)은지금의한강철교와한강대교사이강변에있던나루터다.예로부터수양버들이울창해노들나루라했고백로가노닐어노량진이라고도했다.이나루는한양에서시흥·수원방면을거쳐충청·전라를연결하는중요한길목에있어조선시대에는군대가주둔하는진(鎭)을설치했다.노들나루남쪽언덕에는노량원(鷺梁院)이란여관이있어도성을오가는많은사람들이쉬었다갔다.

1899년에한국최초의철도인경인선이이곳에서제물포(지금의인천)까지개통되자,한때철도시발지로서도진취락의기능이강화됐으나,다음해에한강철교,1917년에한강인도교가건설되면서나루터의기능을잃었다.지하철1호선노량진역.

노량진수산시장
동작구노량진동에있는노량진수산시장은서울시가생산자와소비자의이익을보호하기위해개설한수산물전문도매시장이다.전국에서위탁된대량·다종의수산물을공개경쟁매매,또는정가·수의매매등으로판매하는수탁판매(경매)사업을주로한다.

주요시설은활어·선어·패류등의경매장,건어·젓갈판매장,활어보관장,중도매인사무실,출하주휴게실,간이냉장고등이다.서울에서거래되는전체수산물중에서약50%의물량이이곳에서거래된다.새벽에가면경매장면을볼수있다.저녁때까지횟집을운영한다.지하철1호선노량진역.www.susansij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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