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몸으로젊은시절의山열정을중년의나이까지끌고나간다는것은쉽지않은일이다.가정의온갖뒤치다꺼리를도맡아해야하는주부에게는힘든일일수밖에없다.그러나이연희씨(李燕姬·48)는마흔넘어다시산을찾은이후해를거듭할수록더욱열정적인활동을하고있다.
무릇남자산악인들이가족부양의책임을위해젊은날산을떠났듯이그녀에게도공백기가있었다.86년26살나이에전국암벽대회에서우승을차지하고,88년결혼직후한국최초의여성해외원정대대원으로서북미최고봉매킨리정상을밟은그녀는이후10여년간가족과또자신의또다른꿈을가꾸기위해산을접었다.
산은그녀를속세에그냥머물게놔두지않고품안으로불러들였다.열정은한층더뜨거워졌다.엄마품을떠난10여년세월이너무도아쉬웠다.산은그녀가응석을부리는대로다받아주고달래는것을다주었다.산은그녀에게고향이자엄마였다.이렇게그녀자신이젊은날과중년의나이에겪은산얘기를한권의책으로엮어냈다.<엄마의산>이그책이다.
“오랫동안등반을쉬다가다시돌아온내가책을내게된것은나의산사랑그리고산에서얻은행복을나누기위해서예요.30년간써온일기를토대로과거의등반과나자신을돌아보고정리했어요.책제목처럼아이들에게엄마의산을알려주겠다는뜻이아니에요.산에만가면엄마의품에폭안긴것처럼포근했어요.엄마같은산이란의미지요.”
어린시절산이현재와같이절대적인존재로자리잡으리라곤꿈에도생각하지못했다.젊은날산에빠져지낼때도마찬가지였다.처음산을찾은것도정말우연한기회에서비롯되었다.80년5월,당시시골분위기가남아있던송파구거여동의꽃집맏딸이던그녀는조용히앉아책읽기를좋아하는문학소녀였다.그런그녀에게도봉산행의기회가왔다.여자친구를기웃대던핸섬보이는느닷없이도봉산산행을원했다.
“그핸섬보이는도봉산을무대로암벽등반을하는월계수산악회회원이었는데,기회가되면산에다녀야겠다는생각에사두었던클레터슈즈를신고갔어요.그랬더니월계수산악회회원들이‘쟤는클레터도신었네’하면서느닷없이바위를하자고하는거예요.친구는죽어도못하겠다고했지만저는해보겠다고했죠.”
어딘지도모르고따라간곳이선인봉허리길이었다.예나지금이나바위에첫발을디딜때찾는코스중하나지만,수직의벽에서로프를붙잡고반동을주어한참떨어진지점까지뛰어가야하는펜듈럼을하고,레이백크랙을오를때면고도감때문에초보자들에게는아찔한기억을남기는루트다.
“그래도앞서절절매며올라간대학산악부새내기보다잘해야겠다다짐했어요.펜듈럼은그런대로했는데레이백크랙을오르는데매듭이잘못되었다하여원위치했다가테라스에올라서니까다리가통나무처럼빳빳해져있더군요.태어나서내심장이쿵쾅거리는소리를들어본건그때가처음이었던것같아요.내가모르고지냈던제3의세상이있구나싶었으니까요.그다음주모임에나가니까,‘와,정말왔다’하면서선배들이합창을하는거예요.허리길등반에질려다시는못볼줄알았는데모습을보이니까모두들놀라우면서도반가웠던거죠.”
이연희씨의산은이렇게얼떨결에시작되었다.그렇지만그녀는몸을아끼지않고온몸에피멍이들도록열심히다녔다.대중목욕탕에들어서는게부끄러울정도였다.
“고등학교졸업이듬해부터어린이집교사를했어요.그러다산에다니면서고압가스냉동기술을배웠어요.시간이많이나는특수업종이란이유때문이었죠.쉬는시간이많아산에더자주갈수있겠다싶었던거죠.이론시험은패스했는데,아쉽게도실기에서는떨어졌어요(웃음).”
이상했다.남자들은같은크럭스를만나도순탄하게오르곤했다.어느날이유를깨달았다.남자회원들은홀드를잡아당기는순간근육이불룩튀어나왔다.힘이었다.그날하산길에악력기와15kg무게의바벨도샀다.그리곤아침에눈을뜨면남한산성을뛰어오르내리고,세손가락으로팔굽혀펴기,2단줄넘기등으로이어지는트레이닝으로체력을다졌다.출퇴근버스안에서도가만히있지않았다.한손은한두마디로손잡이를잡고버티면서다른한손으론악력기를쥐었다폈다했다.
“어렸을적에묘목을넘어다닌적이있어요.매일매일그렇게하다보면나무가아무리크게자라더라도넘을수있으리라는어린마음에서였죠.아무튼그렇게힘을키우는데주력하다보니까멍도덜들고산에가면날아다니듯몸이가벼워졌어요.”
월계수산악회선배들은보수적이었다.때문에신형장비를마음놓고사용할수없었다.그러다먹고사는일에바빠선배들이산에제대로못나오고,동기들은군복무로산을못다니게되자빤빤이암벽화며초크같은장비를사용할수있었고,기량은순식간에한단계업그레이드되었다.그러나클라이밍을하는회원들이한명씩줄어들면서파트너를구하기도쉽지않아졌고,외로움마저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