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사는사람이라면이여인한번쯤보았을것이다.무슨얘기냐고?기자가지하철역에서본것만꼽아봐도열손가락이모자란다.고어텍스로된재킷을입고헬멧에안전벨트까지찬최오순은오늘도출퇴근길바쁜사람들을향해웃고있다.이보게들,산에오라구.하지만사람들은그저훌쩍넘겨보며,‘요새아줌마등산객이늘었다더니…’하고스쳐지날뿐이다.광고판속의그가한국여성처음으로에베레스트에올랐다는사실은아마누구도알지못할것같다.
에베레스트란과연얼마나높으며,그산이우리사회에지니는무게는대체얼마나큰것일까.그리고그규모와높이란과연고스란히정당한저울에달려사람들에게전해지고있는것일까.“14명의대원중하나로,기회가있었을뿐”
우리는14명이서함께움직였는데,사람들의시선은등정자에게만쏠리는것도좋지않았어요.신문사에서인터뷰를할때도‘정복’,이런단어나누군가에게부각되는표현은제발쓰지말라고부탁했어요.그런데도기자들은꼭눈에띄는단어를써서….”작년그가킬리만자로를끝으로5대륙최고봉을모두올랐을때인터뷰를하며했던이야기가떠올랐다.그는“나는14명의대원들중하나였을뿐이며,산에오르며타이틀은중요하지않다”고누차강조했었다.
함께인수봉에서등반도하며이야기하고싶었지만주말계획이모두잡혀있단다.아마도,피치못할약속이란산에가는일일거라생각하며평일낮청계산에서그를만났다.마침차가꽉막혀약속시간에30분이나늦었다.푹푹찌는무더위속에기다리느라불쾌지수도이만저만높은게아니었을텐데나무그늘에서책을보고있던그가환한웃음을먼저보였다.혹시짜증이라도내면어쩌나졸아들었던마음은이내풀렸고우리는하드를하나씩물고서이야기를시작했다.
선운산에야영가서스님들한테불심검문(?)을받을때면선생님이전화를해주셔서무사통과하기도하고,암벽등반도그때해봤어요.”그는“선생님이야기를하면기분이좋아진다”며“꼭‘교사’가아니라‘선생님’이라는말이어울리는분이었다”고기억했다.지금도고향에내려갈때마다들러인사를하곤한다고했다.“에베레스트를다녀와서고산을몇개오르자선생님이‘5대륙최고봉중뭐가남았냐?’고물어본적이있었다.
무심코‘돈만있으면갈수있는곳’이라고말했던게두고두고가슴에남아요.그때정년퇴임을했던그분은‘내가가진돈이있다면너를산에보낼텐데’라고생각했었나봐요.”최오순은정이많다.사람욕심이많다고해도같은말이다.그래서눈물도많고웃음도많다.5대륙최고봉을모두오른그는그저“기회가있었을뿐”이라고말하지만,그것이선생님에대한선물과도같은것이리라는생각도했다.시골작은학교에서자신이키운제자가세상의고봉을올랐다는건,그타이틀보다도스승으로서가장뿌듯한일일테니말이다.
고등학교를졸업한최오순은수원삼성전자에취직했다.이미산맛을보았기에스스럼없이사내산악부에들었다.89년가을사내산악부에입회원서를내고,이듬해봄에야정식회원이됐다.기숙사생활로시작한낯선객지에서의일상에산은둘도없는친구가되어주었다.선배들은그에게등산학교에가기를권유했다.“처음에는무슨등산을학교에서배우냐고안간다고했어요.그러다결국정승권등산학교에들어가게됐다.
생각보다많은걸배웠죠.등반기술도그렇지만,인품이랄까.강한인상을풍기면서도사람을존중하는마음같은거.그때는왜선배들이후배들다잡곤했었잖아요.”
고지식하다고해야하나,최오순이조금만약았더라면‘에베레스트’의이름을빌려3일휴가가아니라더한것도받아낼수있었을것이라는생각이들었다.어쨌든뜻이있는곳에길이있다했던가.
정말뽑히고싶은간절한마음이있었거든요.4~5월에네팔전지훈련을보내줄텐데참가할수있냐고묻기에당연히그러겠다고했죠.꼭꿈을꾼것같아전화를끊고아무에게도이야기못했어요.복달아날까봐.”허나히말라야는최오순의의지와는무관하게녹록치않은곳이었다.내내병든닭처럼꾸벅꾸벅졸기만했던,6000m급첫고소였다.임자체와로부체훈련등반을마치고돌아온그는곧바로천산산맥으로향한다.
수원돌비알산악회의포베다(7439m)와칸텡그리(7010m)원정대에합류한것이다.7000m급등반을마치고나면에베레스트대원에발탁될가능성이높지않을까하는기대와함께선배들이마련해준자리였다.최오순은어렵지않게칸텡그리정상에올랐고,운명의여신은비껴가지않았다.꿈에그리던에베레스트로향한것이다.“지금도에베레스트다녀온분들은정말대단한것같고존경스러워요.”본인도다녀오지않았는가.
“저는운이좋은거였다고생각해요.당시2차공격조였는데,막판에기회가온거죠.고소에강한체질은아니에요.그때기록담당이라늘비디오카메라를들고등반했는데,대원들이짐도살짝빼서들어주고,도움을많이받았어요.그런데도하루운행을마치고돌아오면늘힘이30퍼센트쯤은남아있는기분이었어요.”
“안좋은기억은다잊어버리는성격이에요.오랜시간이지나기도했지만,정말기억안나요.지현옥대장은때로무섭고어렵기도했지만,저는많이좋아하고언니처럼따랐어요.”무거운이야기가시작되려는찰나,최오순은느닷없이보약의힘으로정상에설수있었다고화제를돌렸다.“출국전에선배언니가45만원을들여보약을지어줬어요.그걸먹고기운을낸게얼마나도움이됐는지몰라요.엄홍길이나박영석같은분들도보약먹는다던데?”
세상은에베레스트를오른그에게서과연무엇이필요했던것일까.인간으로서의,산악인으로서의최오순은처음부터그들에게존재하지않았던것인가.묻지않을수없다.매킨리는우여곡절이많았다.남벽아메리칸다이렉트를시도했던등반에서최오순은벽등반인원의제약때문에정상공격조가되지는못했다.그러다등반이끝날즈음1캠프에올랐던그에게낙석이떨어졌고,머리에맞아10cm가량찢어지는부상을당했다.
“의료구가없어서그냥벌어진양쪽머리카락을묶어붙였어요.”나빠진날씨로등반대는정상에서지못하고앵커리지로내려와야했다.멀리까지어렵게와서머리에땜빵만남겨돌아가나했는데,마침
1995년인도차우캄바2봉을다녀온이후근10여년간최오순은큰산에갈수없었다.
요즘은행복해요.오전엔운동하고오후엔산에다녀오고.”그는
돌이켜보면서로다를뿐틀리지않은것인데,
“그걸물어봐주지않아서감사해요.”우리는느티나무아래서캔맥주하나씩을사다먹었다.어느덧해가45도로기울어가는데도정말더운날이었다.그는이제가족들을위한저녁을준비하러집으로돌아갈것이고,우리는다음번에산에서보거든바위나한번하자고약속하곤헤어졌다.오기똘똘오순이는살아간다.에베레스트에서도찾을수없는‘산(生)악인’의모습이그의긴그림자를따라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