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전만하더라도55세면뒷짐지고거드름피울나이였다.김용기씨(金龍基·밀레종로·네파종로대리점대표)도올해쉰다섯이다.그런데도그는아직도피끓는청년이다.요즘도1주일이면두세번씩인수봉을오른다.지난해여름에는아예북한산기슭우이동으로이사를했다.한번이라도더인수봉을오르고싶어서다.부부가그렇다.아내이애숙씨(李愛淑)역시‘공범’이다.두사람은부부로출발했으니지금은10년째줄을묶어온자일파트너다.
부부는낡은승용차를몰고우이동에나타났다.아니,우이동에살고있으니마실나온셈이다.도선사주차장에도착하자트렁크에있는로프와암벽장비를배낭에주섬주섬담고,뒷동산으로향했다.
“아직발목이마음대로움직여지질않아요.그래서더열심히하는거예요.물리치료삼아.”
김용기씨는재작년여름미국요세미티의엘캐피탄등반에나섰다.91년미들캐시드럴록을등반하면서언젠가꼭오르리라다짐했던거벽이었다.아내이애숙씨를비롯해3명의동료와함께고전루트인노즈당일등반에나섰다.“아차하는순간미끄러졌어요.그런데툭하더니캠이빠져나가지뭐예요.한10m떨어진다음정신을차리고나니까뭔가이상하다싶었어요.발목을조금움직여보았지요.죽겠더군요.수직벽500m를하강하는데정말끔찍했어요.”
그는곧장귀국하여수술을받은다음네댓달은깁스한채지내야했고,또부러진뼈에박아놓았던핀을빼는수술을하다보니1년이상바위를찾을수없었다.겨우다시시작한게딱1년전이었다.사고경위에대한남편의얘기를듣던아내이애숙씨는“남들사고는담담하게대처했는데남편사고는당황하게되었다”며“그래서부부인가보다”고했다.
한갓진산길을따라하루재를넘고인수대피소를지나쳐인수봉기슭에도착한시각은오전11시경,김용기씨는“태풍이올라오고있다고하니사진멋지게나오는빌라길2피치까지만등반하자”며앞장서올랐다.빌레이는아내인이애숙씨가맡았다.
“아이들어릴때는남편이목마태우고올랐어요.하루종일야영장에서아이들과지내야했어요.애들놔두고남편따라갈순없는일이니까요.그래도남편과선후배들이나누는얘기를통해용어에대해선박사가되었답니다.”
아들둘이고등학교를마칠때쯤인97년부터아내도바위를타기시작했다.마침남편이월간山에서암릉과기초암벽,기초빙벽교실을연재하던시절이었던지라기초부터탄탄하게익힐수있었다.이애숙씨는한5년이지나고서부터선등을서기시작,지금은어지간한루트는앞장설수있는5.11급클라이머다.
김용기씨는말그대로물흐르듯부드럽게올랐다.클라이밍모습이저렇게아름다울수있구나싶어감탄할정도였다.강풍이몰아치는데도첫피치등반을끝내고사진기자를비롯해네사람이모두피치종료지점에도착하자그는두번째피치등반에나섰다.발목이제대로말을듣지않는다는건순거짓말이었다.가끔힘을모으느라훅훅소리를내기는했지만난이도5.12a급인막판트래버스구간도가볍게넘어서곤다시제1피치종료지점으로내려선다음사진촬영을위해다시등반할때에도전혀흔들림이없었다.
전북정읍에서태어나스무살이넘어서서울생활을시작한김용기씨는자연암벽에관한한30년넘도록국내최고수로서자리를유지해온클라이머다.그의바위실력은시작부터유별났다.76년인수봉취나드B코스첫바위때딱한번뒤쫓아올랐고,이후지금까지남들한테선등을넘긴적이기억에없을정도라고한다.
“시골서살다보니산은땔감이나구하러가는곳이려니했죠.서울에와서보니까배낭메고나서면등산이라하더군요.배지많이단사람이대장인시절이었으니까요.저도그들처럼배낭메고한2년워킹다녔어요.그러다서울의대다수바위꾼들이그랬듯이백운대에올랐다가인수봉을하강하는클라이머들의모습에빠져든거예요.클레터슈즈에면양말을장딴지위까지끌어당긴모습으로시작했어요.첫날오전취나드B를후등으로오르고오후엔의대길을톱섰어요.”
등반에대한개념도없이무작정오르다보니로프한동길이(40m)를생각하지못한채오르고말았다.“귀바위밑에서끊어야하는데그냥계속올랐던거예요.오도가도못하는상황에서마침위에사람이있기에부탁했더니슬링에줄사다리등있는것없는것다연결해내려주더군요.줄을잡는순간살았다싶었어요.”
그다음주에는선인봉맛을보기위해도봉산으로향했다.물개길에박쥐,표범길까지세코스를하루에해치웠다.그러나그는이등반에서평생잊을수없는고통을겪었다.
“표범두번째피치확보지점에서옆으로트는데발이빠지지않지뭐예요.발이빠질까두려워크랙에너무깊숙이집어넣은채등반에나섰던게화근이었죠.입이어찌나타던지거품도나오지않을정도였답니다.그래서지금누가너무힘들다하면,입에서거품나지않을정도로해봤냐고묻곤해요.”
선인봉과인수봉의모든루트를섭렵한그는79년부터5년가까이전국암벽순례를나섰다.그로도부족해82년MC산악회(MountainClimbingAlpineClub)창립이후에는더욱뜨거워졌다.야영장에서눈을뜨자마자바위에붙으면적으면5개코스많으면7개코스를등반해야직성이풀렸다.야영장에서저녁밥해먹고나면칠흑같은어둠속에서손전등에의지해하산해야했다.
그는매듭법도모르고바위를선등섰듯이빙벽도독학으로깨우쳤다.1년간에걸쳐대둔산에루트2개를개척한85년겨울동대문시장에서밴드식아이젠과허밍버드피켈을사가지고운악한무지개빙폭을찾았다.
“빙벽화에아이젠끈묶는데만해도한참걸렸어요.그런데빙벽은아무것도아니다싶더군요.너무쉽게올랐으니까요.그래서그다음주에구곡폭으로장소를옮겼죠.웃겼어요.생각없이피켈을휘두르다보니피크가부러진줄도몰랐던거예요.3분의2쯤오르고나서야알았으니까요.막판에스텝커팅하며오르느라정말힘들었답니다.”
그해겨울토왕폭에도전했다.당시만해도토왕폭은어지간한수준의클라이머는넘볼수없었던거대하고어려운빙벽이었다.그첫등반에서4시간반만에한국최대빙폭인토왕폭을해치웠다.그5년뒤인90년에는이상록씨와파트너를이루어1일3회연속등반과1시간45분이라는속도등반을기록하고,94년에는토왕폭에이어대승폭야간등반도해낸다.그의빙벽등반은설악산4대빙폭당일등반으로절정에다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