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가우이암이고바로밑에보문산장이있지?오래간만에오니길을잘모르겠네.”
매주토요일산행을하는토요산행멤버들과도봉산종주산행에나선
‘귀로듣고눈으로본것이갑자기기이하고장엄하니내마음도우쭐거려져어제와다름을느끼겠노라.대개사람의마음이환경에따라변한다는것을알겠노라.’
조선조후기문인인김창협이금강산구룡연폭포앞에서느낌을이렇게표현했다.선인들이그러했듯유장관역시산수의천기를온몸에가득채우려고산을찾아나선다.눈을동그랗게뜨고정신을차리며이것저것따지면서산을찾아가는것이아니라유유자적하려고산을올라자유로움을즐겼다.
“등산처럼자유로운운동도없지요.산에가면마음이우선편해요.”
골프도치고스키도타지만등산만큼여유로운운동은없다고
중고교시절부터비봉골짜기며북한산여러곳을오르내리면서산의정취에흠뻑젖은소년은이제환갑을훌쩍넘긴나이가됐다.한때경기도시흥에살았던소년은뒷산과논두렁을찾아다니며메뚜기를잡고나물을뜯기도했다.지금도산야초에대해서풍부한지식을갖고있는것도그때보고듣고배운덕이다.
서울로올라와용산구후암동에있는삼광국민학교를졸업하고,지금은이사를가서강남의서초동에자리잡고있는서울중고등학교에입학했다.원래서울고교는인왕산이올려다보이는옛경희궁터에있었다.교가에나오듯유장관은‘인왕산의억센바위정기를타고’,이화여대와연세대뒷산인안산의정기도듬뿍받고자랐다.
고교시절에는산악반에들어가주말이면배낭과군용A형텐트를짊어지고북한산으로내달렸다.자하문에서우이동까지8시간씩종주하고항고에불을지펴밥을해먹으면서선배들과암벽등반을배우기시작했다.등산화가따로없는시대여서군화를신었고,등산용자일이없어군용나일론줄에매달려북한산인수봉을오르내렸다.산악반선후배들은졸업하고마운틴빌라(서울고산악반OB)를만들어북한산과설악산에새로운바윗길을개척하는등왕성한산악활동을펼쳤었다.
그는서울대법대에입학하면서곧바로산악부에가입해산을계속다녔다.현한국산악회최홍건회장(중소기업연구원원장)은법대산악부선배중한분이다.
“서울법대산악부OB들모임인한오름회는현재회원수가300여명이나됩니다.반세기의역사와전통을가졌지요.회원들가운데이번새정부내각에유장관까지포함하여4명이장관으로입각하게됐습니다.
최홍건회장의산악회자랑이계속이어진다.
“다들산에도열심히다니고공부도열심히했지요.그동안송종의전
“당시유장관의산악회동기생들이20여명있었는데,암벽등반도잘하고친화력이좋아그는두각을나타냈습니다.그러나학년이올라갈수록고시공부를하느라산악활동을그만두는회원들이많았습니다.”
임도빈씨말대로유장관도고시공부하느라산을멀리할수밖에없었다.1973년제7회외무고시에합격한그는주일본대사관3등서기관을시작으로주싱가폴대사관1등서기관,외무부미주국북미과장,주미국대사관정무참사관,외무부대변인,UN대표부공사,
주일대사로근무하면서일본과의관계개선과유대강화에힘써온그는잘알려져있듯미국통으로서이번새정부에서대미외교활동에큰역할을할것으로기대된다.
그는지난해주일대사로있을때부임한지5개월만인8월
후지산을두번째로오르는날
긴장대를짚고3,000m를넘는고산에서겪어야하는고소증의고통을이겨내며한발한발씩정상을향해유명환대사는일행들과함께무사히후지산정상에올랐다.어렸을때부터이산에서저산으로뛰어다니고암벽등반을열심히한덕에3,700m가넘는산을거뜬히오를수있었다.
“힘들었어요.그러나정상까지어어진쇠줄난간을주마링하듯잡고당기면서올라가니힘이좀덜들더군요.암벽타면서배운요령의하나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