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의 4,000m급 명봉(3)] 피셔호른 *-

[알프스의4,000m급명봉](3)피셔호른

생애가장긴하루를보내야
피셔빙하~힌터피셔호른~피셔자텔~그로스피셔호른~북서릉

베르너산군중심부에어깨를나란히하고있는형제봉이있다.바로그로스피셔호른(GrossFiescherhorn·4,049m)과힌터피셔호른(HinterFiescherhorn·4,025m)이다.그린델발트계곡에서는형인그로스피셔호른만보이는데,표고차1,300m의북벽은알프스에서가장어려운빙벽들중하나로,그위협적인모습은아이거북벽과도견줄만하다.

알피니스트들이일반적으로접근하는융프라우요호쪽에서이형제봉을봤을때는북벽에비해덜웅장하지만여전히매력적인모습을갖추고있다.그것은두드러진암릉등반선때문이다.물론이봉우리들을오르는가장일반적인루트(PD/II급)는뮌히요호산장에서에비히슈네펠트(Ewigschneefeld)빙하를경유해두봉사이안부인피셔자텔(Fieschersattel·3,923m)을경유한다.

그러나지난여름필자일행은동남쪽으로흐르는피셔빙하상의핀스터라르호른산장(FinsteraarhornHut·3,048m)에서출발해긴빙하를타고올라두봉우리를오르고서4km길이의암릉인북서릉(AD/III급)으로하산했다.

▲네번째로오른4,000m봉그로스피셔호른정상.

핀스터라르호른산장에서피셔빙하로


새벽4시,알람시계의울림에일어난다.임덕용선배와후배나현숙과함께였다.서둘러침상을정리해두고간밤에챙겨둔짐을들고나온다.핀스터라르호른산장의작은윈터룸에함께묵은독일산악인둘을위해우리는아침도먹지않은채조용히산장을떠난다.

헤드랜턴을밝히며산장에서100여m떨어진곳까지내려온다.설피를놓아둔설사면이시작되는지점에서우리는간단히아침을챙겨먹는다.스프에빵이다.그러면서수통에물도채우고안전벨트도착용하고배낭을다시꾸리면서긴긴하루의산행을준비한다.

곧설피를들고100여m높이의쿨와르를내려서서평탄한피셔빙하에닿는다.이제부터본격적으로빙하를거슬러오른다.설피를단단히조여맨우리는한발두발완만한경사의빙하위를걷는다.어느새날이밝아와헤드랜턴이필요없을정도다.이른시각이라빙하표면이얼어있어플라스틱설피의버적거리는소리만들려온다.드넓은빙하좌우로그로스그룬호른(GrossGrunhorn·4,044m)과핀스터라르호른(4,274m)이솟아있다.

이제그로스그룬호른정상부에아침햇살이비치기시작한다.빙하를타고내려오는바람이차지만매섭지는않다.아직빙하바닥이라고도가높지않기때문이다.얼마를걸었을까.2시간쯤되자크레바스지대가나타난다.오늘우리가오를피셔호른에서시작한빙하가동쪽으로흐르다가남쪽으로방향을틀며고도를낮춰형성된세락지대다.우리는이곳을오른쪽으로우회한다.머리위사면에서는거대한눈사태가발생해있다.그위를타고넘는다.

▲모진바람에맞서힌터피셔호른정상으로접근하고있다.뒤로핀스터라르호른이솟아있다.

뒤따르던임선배는이세락지대를왼편으로오르자고제안하지만필자는오른편이라주장한다.바로9년전이빙하를내려와본경험이있기때문이다.가파른빙설사면을설피를신은채오른다.균형을잡으며몸을밀어올리기위해스키스틱에힘을잔뜩주다보니팔이저려올정도다.

몇몇크레바스들을건너고우회하며계속해서오른다.고도를높이자꽤나찬바람이옷깃을여미게한다.동쪽능선에가린빙하에는여전히응달이져있다.차츰방향을피셔호른쪽으로틀어저멀리눈언덕에드리운양달에빨리접근하고픈생각뿐이다.

드디어크레바스지대를벗어나한동안완사면의응달진빙하를거슬러오른다.이윽고빙하표면에햇살이닿는곳이다.2시간반이상쉬지않은터라우리는배낭을내려놓고쉬며따뜻한차를끓여마신다.우리가오른빙하너머로핀스터라르호른이거대한성곽처럼아침햇살을등지고있다.알프스4,000m급82개봉중에서우리가두번째로오른봉우리다.

이제또출발이다.햇살을받아한결따뜻하다.이제발길은피셔호른을따라서쪽으로빙하를굽어돌며오른다.드넓은설사면을지그재그로길을내며걷고또걷는다.큰눈언덕을오르자마침내그로스피셔호른과힌터피셔호른이보인다.동쪽에서접근하는우리에게는힌터피셔호른이좌측에위치해있다.말그대로큰피셔호른뒤에숨어있는형상이다.

▲우리가이미오른핀스터라르호른을등지고긴긴피셔빙하를거슬러올랐다.

자일이수평으로휘날릴정도의강풍속으로


우리는우선왼편에있는작은피셔호른으로접근한다.이윽고정상아래설사면이다.고도가4,000m나된탓에태양이솟아있건만춥다.바람이매섭다.배낭을벗어두고설피대신아이젠을착용한다.남북으로이어진정상능선을오르기위해남쪽능선을택한다.북쪽에서오르는능선은출발부터위험해보인다.습설의가파른설사면위에커니스가심하게형성되어있기때문이다.우선남쪽에서접근하기위해가파른설사면을10시방향으로오른다.

눈이깊어한발한발조심해서내딛는다.이윽고정상부능선에올라선다.우리가새벽부터올라온피셔빙하가한눈에내려다보인다.능선을따라조금오르니마침내반대편산들이훤히보인다.융프라우와뮌히,아이거가눈에들어온다.하지만바람이세차다.안자일렌을한자일이바람에수평으로휘날릴정도다.강풍에맞서기우뚱거리는몸을가누며약100m북쪽으로이동한다.

비좁은바위능선을조심해서횡단한다.긴능선중간쯤이다.가장높아보이는바위정점이두군데다.약10여m떨어진두곳중어디가정상일까싶어좀더북쪽으로가본다.막상그곳에가보니아닌것같아돌아온다.바로그때남쪽정점의바위위에조그마한차돌맹이가눈에들어온다.누군가가등정기념으로두고간거였다.가만히보니M자의산모양에피켈을들고있는사람의형상이그려져있다.이곳이힌터피셔호른의정상임을증명하는표시였다.

우리셋은세번째로오른4,000m봉등정을축하하며잠시머물고서곧장하산길에접어든다.여전히맹렬하게불어대는바람때문에오래머물수없었다.얼마후배낭과설피등을둔지점으로돌아온우리는곧장피셔자텔로이동한다.그로스피셔호른을오르기위해서다.

한동안설사면을비스듬히내려가완사면을오르니피셔호른안부다.오목한눈밭에닿으니한결따뜻하다.이곳서점심을먹으며쉰다.물론본격적인등반을위해장비도새롭게착용한다.조금전의힌터피셔호른등정때와는달리모든짐을지고올라야하기에배낭에설피까지매단다.

다소묵직한배낭을짊어지고그로스피셔호른을오르기시작한다.한동안남릉의우측설사면을가로지른다.형이라그런지힌터피셔호른보다높고어렵다.한낮의열기에녹은눈표면아래에는강빙이형성되어있다.여간조심스럽지않다.조심해서혼합지대를올라바위능선에선다.

이제부터암릉좌우를오가며정상으로향한다.몇몇바위구간에는아이젠자국들이보여길잃을염려는없다.하지만설사면에서는이른시즌이라누군가지나간발자국은없다.조심조심하며오르고또오른다.홀드들이커등반은어렵지않다.

▲북서릉을따라조심스럽게하산하는일행.우측아래는그린델발트빙하다.

힌터피셔호른~피셔자텔~그로스피셔호른한번에꿰


안부를출발한지약1시간걸려정상에선다.편편한바위에주저앉아등정의기쁨을만끽한다.우리의네번째4,000m봉등정이었다.첫번째로오른,서쪽에있는뮌히로부터남동쪽의핀스터라라호른,그리고바로몇시간전에오른힌터피셔호른까지훤히건너다보인다.그러한기쁨을느긋하게즐기기에는시간이없어우리는곧장하산을시작한다.

북서릉으로길을잡는다.9년전이북서릉을따라오른적이있기에이길을택했지만처음대하는것처럼낯설다.조심조심발걸음을뗀다.칼날설릉과암릉이연이어진다.어려운구간에서는임선배가먼저내려간다.뒤이어후배가,그리고필자가조심스럽게뒤따른다.우리가지닌자일이30m짜리뿐이라어떤구간에서는애를먹지만한발한발북서쪽으로고도를낮춘다.

먼저내리는이들아래로거대한그린델발트빙하가펼쳐져있다.수많은크레바스들이입을벌리고우리들을기다리고있는듯해마음을졸인다.그리고저멀리아이거가솟아있다.북벽의명성에걸맞게남벽도위압적인형상이다.

채4,000m가되지않는아이거이지만검은형상의단일바위벽이주변을압도하고있다.그좌측으로뮌히와융프라우가솟아있다.하지만그린델발트계곡이나크라이네샤이데그쪽에서보는압도적인파노라마풍광보다는못하다.

▲피셔빙하상부의크레바스지대를지나자아침해가솟아올랐다.

약2시간쯤클라이밍다운을하고마침내경사가완만한설릉에닿는다.이미시간은오후4시가다되어간다.하지만해가지려면네댓시간은더있어야하기에우리는눈밭에퍼질러앉아쉬기로한다.바람부는설릉에모여앉아눈을녹인다.수통의물이다떨어져모두목이말라있었다.셋모두손바닥을펴모아바람을막으며가스버너주위에앉는다.

지루한기다림후미지근한물을마신다.그리고내친김에라면까지끓여먹기로한다.이번산행을위해임선배가특별히준비한것인데,이렇게힘들때그진가가발휘되는식품이다.많은시간을공들인만큼라면맛은일품이었다.이힘을바탕으로우리는또다시배낭을짊어진다.

이제길은완만한설릉을따르기에셋이함께움직인다.안자일렌을하고간다.앞장선임선배가크레바스에한쪽발이빠져바짝긴장하기도한다.능선위였지만작은크레바스가있었던것이다.

설릉은끝없이이어졌다.이젠아이젠이필요없을거란생각에설피로갈아신는다.한데얼마가지않아거대한급사면이나타난다.할수없이설피를벗고킥스텝으로내려간다.

높이100m이상의설사면은한낮의태양열에잔뜩녹아발걸음을떼자조그마한눈덩이에도흘러내리면서차츰커다란힘을합치더니저아래쪽에서는제법큰눈사태를이룬다.바짝긴장하며킥스텝을하는데,이미눈사태로흘러내린사면을타고내리는게안전해그쪽으로내려간다.사태가난사면에서는더는눈사태가없을거란생각에서다.

제는단단해진사면위를스텝을확실하게만들며내려간다.이윽고하단부에서는엉덩이를이용한글리세이딩을하기적당한거리와경사도라털썩주저앉는다.바짝긴장하며미끄러운설사면에몸을맡긴채흘러내린다.어느새작은눈언덕하나를지났는데,베르그슈른트였다.

잠시후,온몸에잔뜩묻은눈을털고뒤돌아보니아래에는제법큰크레바스가있었다.아무것도몰랐기에눈썰매를탄것이지알고서는행하지못했을것이다.

▲(좌)에비히슈네펠트빙하에서본그로스피셔호른(좌측)과힌터피셔호른.뒤쪽에서올라좌측능선으로횡단했다.(우)정상부혼합지대를조심해서지나고있는임덕용선배뒤로힌터피셔호른이보인다.

이윽고셋모두안전하게급사면아래에당도한다.이젠정말우리앞에놓인위험은없을거라여기며눈밭을가로지른다.이제시간은제법흘렀다.어느새구름이하늘을뒤덮기시작했다.빠르게다가와흩어져지나가는구름들로보아곧뭔가한바탕쏟아질기세다.발걸음을서둘지만힘겹다.큰눈언덕을하나오른다.드디어저멀리빙하건너편에뮌히요호산장이자그마하게보인다.하지만갈길이멀기만하다.북서릉끝자락은거의다내려왔지만설사면을비스듬히타고내려빙하에닿아야했다.그리고마지막으로완사면의빙하를거슬러올라야했다.

급기야비마저내린다.이윽고우박이다.급히복장을챙겨입는다.콩알만한우박이쉴새없이쏟아진다.그래도묵묵히걸을따름이다.셋모두말이없다.이윽고빙하에닿았다.이젠좀편하게걷나싶지만편편한빙하바닥의눈은한층더젖어있다.설피를신고걷는발걸음이무겁게만느껴진다.그래도설피가한결수월하다.아마설피가없다면몇걸음이라도제대로뗄수없을것이다.모두말없이고개만내밀고걷고또걷는다.다행히저녁9시가다되어도날이훤하다.

이윽고산장에다가가자우박이멈춘다.산장으로이어지는마지막가파른설사면을오르자산장지기여주인이창문을열고손을흔든다.반갑지않을수없다.새벽4시부터움직인긴긴하루였다.우리셋모두에겐잊을수없는하루였다.뮌히산장의포근한침상에서하룻밤묵은우리는다음날융프라우요호를거쳐그린델발트로하산했다.

산행정보

베르너산군의형제봉그로스피셔호른과힌터피셔호른은1862년7월에H.B.조르주와가이드C.알머일행에의해남서릉을통해초등되었다.이봉우리들을오르는일반적인루트는뮌히요호산장에서출발할때는에비히슈네펠트빙하를경유해두봉우리사이의안부인피셔자텔을경유하는코스(PD/II급)다.하지만핀스터라르호른산장에서출발해등정후우리가택한하산길인4km길이의북서릉(AD/III급)을경유하는경우도많다.한편산악스키를이용한산행도권할만하다.두봉우리정상부가까이까지산악스키로접근이가능하기때문이다.

핀스터라르호른산장은봄여름성수기에산장지기가상주하며,그외에는작은윈터룸만개방해둔다.성수기에는예약후이용하는게바람직하다.전화번호41(0)338552955.스위스산악회소유인이산장의1박요금은28스위스프랑이며,UIAA가맹단체산악회원인경우1/3할인을받을수있다.

뮌히요호산장은사설산장이기에할인혜택이없다.산장지기가4~5월과6월말~9월중순까지상주한다.융프라우요호에서접근이쉽고인기가있어성수기에는예약후찾아가는게바람직하다.1.5리터물1병이12프랑,하룻밤숙박비는28프랑이며기타식비등은비싼편이다.전화번호41(0)339713472,email:info@moenchsjoch.ch

-글·사진/허긍열한국산악회대구지부회원/월간산[470호]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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