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첫휴일에오른검단산
산행시간/2009,01,04.오전09:00.
모임장소/전철2호선잠실역8번출구
산행회원/1.장성근님2.시몬님3.핸섬가이님4.목동님,5.옆지기님.
6.들소님.7.저녁노을님8.미진님9.청산님10.은하수님
11.소나무님12.드리님13.현이님14.아우게님
산행코스/에니메이션고등학교-유길준묘-큰고개(295m)-전망대바위
(585m)-검단산정상(657m)-헬기장(554m)-산곡초교하산-
뜰안집에서뒤풀이
다우산방의새해첫산행은검단산으로정했다.약속시간보다10여분늦게잠실역에서올라가니모든산행회원님들이모여서기다리고있었다.늦어서죄송하다는인사를하였다.그래서건대역에서조금늦겠다는전화를하였다.집에서서둘러나오느라고버스정류소에서버스표를가져오지않아다시들어가서가져오느라고조금더늦었다.검단산에니메이션공등학교까지가는버스는잠실역까지운행하는버스여서우리팀원들만타고출발하였다.종점에내리니35분가까이걸렸다.그래서10시쯤에유길준님의묘가있는곳의코스로출발을하였다.
새해첫산행이라그런지날씨가쌀쌀한데도산행객들은무척많았다.우리는산행을시작하면서조금넓은공간에모여서서오늘처음나오신노을님친구미진님과목동님의엎지기님도참여를해주셨고,들소님도오랜만에참석을해주셔서새해인사와함께서로의닉네임을알리는시간을가졌다.그리고청산님의후령에맞추어산행전스트레칭으로몸푸는운동을시작하였다.10여분간준비운동을하고다시본격적인산행을시작하였다.바람이불지않아날씨는그렇게춥게느껴지지는않았다.그러나오르막길을올라가니점점숨도차고땀도흐르기시작하였다.
먼저올라간팀원들이유길준님의묘가있는곳에서쉬면서기다리고있어서우리도함께휴식시간을가지며과일과배즙(드리님)을나누어마시고는다시올라갔다.겨울에얼마나눈이내리지않았는지걸음옮길때마다먼지가풀풀날렸다.산에눈이좀쌓여야겨울산행의멋과재미가있을텐데매마른산하는더을씨는스럽기만하였다.큰고개에올라서니그래도산하의전망은시원하고좋았다.한강의물줄기는언제어디서보아도우리의마음을폭넓게감싸주는평화로움이전해온다.수심이얕아서인지한강에는조그마한섬들이군데군데보였다.
멀리삼각산과도봉산쪽에는공해의산물인운무에쌓여시야가좋지않았다.조금오르다보면오르는길은산길과암벽길이전개되는데,많은사람들은산길로오르고우리몇은암벽길로올라갔다.검단산의이암벽길은그렇게만만치가않았다.힘든곳엔로프가드리워져있고음지쪽에는얼음까지얼어있어주의를하면서올라갔다.전망대바위위에올라사니팔당땜이한강을가로막고있었으며그아래의한강두미강에는강폭이좁고물도얕게흐르는것처럼보였다.양수리는호수에묻혀겨울에는무척춥다고하는데오늘은양수리호수에얼음이얼지않았다.
중부고속도로가서울과경계를이루는하남시는아파트군이더많이형성되어있었다.겨울에는가능하면암벽코스를피해가는것이정도이지만암벽길은그오르는설레임과올라서서느껴지는쾌감이공존하는감동이있어산행의묘미를한층더즐길수있어좋다.그기서암벽코스를벗어나면정상이손에잡힐듯이보이지만그곳에도착해다시올려다보면정상은더멀리높은곳에자리하고있었다.양수리의시원한조망에눈길을주면서잠시쉬었다가다시출발을해서정상을향해올라갔다.
그암벽코스를피해가면검단산은육산이다.그래서조금은편하게산행을할수있어서등산객들이많이찾아오는산이기도하다.정상에올라서니생각보다많은등산객들이모여있었다.우리도정상석에서기념사진을찍고쉬면서산하의조망을즐기고하산을하다가헬기장에서12:30분쯤에점심식사를하였다.식사시간은산행시간보다더마음을나누는시간이기도하다.충분하게휴식시간을가진후우리는산곡초등학교쪽으로하산을하였다.하산길도그렇게가파르지도않고곳곳에돌탑이서있어돌을주어하나씩올려놓으며서서히내려갔다.
산곡초교를내려오다가뜰안집에들어가뒤풀이를간단하게하였다.점심시간과뒤풀이시간은서로의마음을알아가면서상대를이해할수있는시간이되기도하여산행에서빼놓을수없는시간이되어준다.우리는간단하게생맥주한잔씩하면서산행에서못다한이야기를나누며다음주산행은북한산에서만나기로하였다.자난번산행에이어목동님과함께옆지기님이같이산행해주셔서너무고마웠고,들소님도오랜만에만날수있어반가웠습니다.노을님의친구미진님도산행의배태랑으로열심히함께산행해주셔서감사를드립니다.모두들수고많으셨습니다.
——–<검>——-<단>——–<산>———
검단산은서울의동쪽하남시에위치한산으로백제때검단선사(黔丹禪師)가이곳에은거한하였다하여검단산으로불리게되었다는설이전해오고있다.’검’은’감’으로신(神)을뜻하며’고마’,’가마’와같이’신성스럽다혹은크다’라는뜻을가지고있으며,’단’은제단을뜻해전체적으로’신성한제단이있는산’이란뜻으로해석이된다.또한향토사학자들이불암산에서검단산으로이전된동명묘로추정되는제단을검단산정상으로부터남쪽에있는봉우리에서찾았다하여’신성한제단이있는산이란뜻의검단산’이정설(正說)로하고있다.
또산아래마을이름이배알미리(拜謁尾里)로’신성한제단을향해배알한다’혹은’선조에게제사하러납신왕에게배알한다’라는뜻의지명으로유래하였으며,윗배알미리와아래배알미리사이에해발371m의’배알산’라는지명도남아있어검단산을상당히신성시했음을알수가있다.조선시대에하늘에기우제나,기청제를올리는터였으며,봉수대도있었다고한다.검단산은이러한신성한산이라하여지금도많은산악회에서시산제를올리는산이기도하다.산의정기(精氣)가강화도마니산다음으로검단산이상당히강한산이라고한다.
검단산은또일문산(日門山)이라불리기도하는데,’태양이떠오르는문과같은산’이란의미를가지고있다.또검단산에는정송오죽(‘正松五竹’과’淨松汚竹’)이란글이있다.이는’소나무는정월에,대나무는오월에옳겨심어야잘자란다.라는뜻과’소나무는깨끗한곳에,대나무는더러운곳에서잘자란다.는뜻이다.그래서이땅의선비들은올곧으며깨끗하고늘푸른소나무를칭송했다.이는사시사철푸르름이자신들의절개를상징하는것이라하여소나무를자신들과동일시하며대접했다고한다.
검단산정상(657m)에서동북쪽으로눈에들어오는조망은시원한양수리의모습에흡뻑빠저들게된다.북한강과남한강이합쳐지는곳양수리를두물머리라고도부른다.팔당땜이있는곳부터미사리까지좁은부분의강을두미강(斗尾江)이라불렀다고한다.팔당(八堂)이란지명은두미강을거쳐노량으로가는뱃길의안전을기원하는당집이여덟개가있었기때문에팡당이란지명이되었다고전한다.그리고검단산아래창우동팔당대교밑에있던나루터를도미진이라불렀다하는데,이나루터엔도미와그의부인아랑,그리고백제4대왕개루왕(128~165)에대한모질고도슬픈사랑의전설이지금껏전해오고있다.
아랑과도미부부의사랑이야기
미인의눈썹을선비들은아미(蛾眉)라고부른다.아미에는원앙미,소산미,오악미,삼봉미,수주미,분초미,월릉미,합연미,불운미,도훈미를가장아름다운십려미(十麗眉)라고하였다.역사상으로원앙미를소유했던미녀로는백제국4대임금인개루왕(蓋婁王)시절도미의아내였던아랑을꼽는다.아랑은백제제일의미녀로개루왕의교묘한유흑을받았으나목슴을걸고이에저항하였다는이야기를해보려고한다.사서에보면개루왕은시조인온조의증손자로서성질이공손하고조행이있었다고기록하고있다.
그러나점잖은강아지가먼저부뚜막에오른다고사관의기록과는전혀달리그에게는음일방종(淫逸放縱)하고잔학무도한성깔이내면에숨어있었다.이런것을소위권위주의라고한다.개루왕은절대왕권을악용하여도미-아랑부부를궁궐에불러들여야욕을채우려하였다.먼저도미에게아내를포기하고양도하는댓가로높은지위와출세를제시하였다.그러나도미는부귀영화때문에조강지처를배신할수없다고거절한다.그러자개루왕은어리석게도혼자서의를지키려하느냐계집은제가유리할듯싶으면서방이라도배신하는게계집의본성이라고말한다.
이에도미는자기처는절대그렇잖다고반박한다.왕은그럴까?얼굴잘난것들치고맘씨예쁜것들이없는법이고,자고로얼굴반반한것들이꼭얼굴값을하는법이라했다.도미는세상에자기가유일하게믿는사람이자기아내아랑이라고확신에찬대답을했다.제스스로옷을벗잖은계집이없었노라하면서내기를해도자신있느냐고다그쳤다.도미는자존심반자신감반으로개루왕과죽음의내기를걸었다.아랑이정조를꺽으면도미의눈을뽑고,못꺽으면상금을주어무죄방면하겠노라고교활한개루왕은이들부부를쉽사리꺽을수없다고보고일종의속임수를쓰기로하고각개격파로들어갔다.
도미는궁궐에붙잡아두고,아랑은집으로돌려보냈다.그리고선아랑을찾아가서는정조를바치면남편도미를살려주고아니면죽이겠노라고협박하였다.이에아랑은심사속고하다가왕의야욕에서벗어날길이없음을알고왕과동침하겠노라고약조를하여방심하게만든다.왕은약조의증거로아랑에게도미가끼워준반지를증거로달라고한다.그반지를도미에게가져가서아랑이몸을허락한증거라고제시하고는도미의양눈을화젓가락으로뽑아버린다.아아,도미는억울하게눈을잃었는데,이것이다마누라가반반한탓이었으니속모르는남들은말하기좋아마누라잘둔탓이라고빈정거렸다.
아랑의계교로도미는눈은잃었지만,목슴을부지한채욱리하한강변에버려지게되는데,그날밤기분이좋아서술까지얼근하게한잔걸치고침실에들어온개루왕에게아랑은더욱교태를부리며술을권하여인사불성을만들고,자기대신몸종은월이를시침케한다음자신은집을빠져나가남편을버렸다는욱리하강변으로달려간것이다.고요히흘러가느밤의강물을바라보며두사람은서로를부여안고울다가울다가구슬프게노래를불렀다고하였다.
"돛대도아니달고…삿대도없이…
가기도잘도간다…서어쪽나라로오"
이로부터죽음을초월한부부간의처절한사랑을원앙새사랑이라고부르는연유는아랑의눈썹모양이원앙미였던데에기인하는것으로전해오고있다.눈은멀고강변에홀로버려진도미가개루왕의품안에서갖은호사를누리고있을사랑하는아내,잊을수없는아내,믿어야만하는아내,아랑을그리워하며피눈물을흘리며부른노래가아랑의노래였다.
이것이후세에구전하여아리랑이되었다는학설이있다.아랑의노래는한국을대표하는한서린민요이다.이아랑의노래에나타난이별의정한이고려시대로오면가시리로접맥되고,구한말로오면드디어아리랑으로정착되는것이다.그런데한국에아리랑이오랜세월과여러지방을거치면서수백종이생겨났다.그중에서도강원도정선지방의아리랑이특히유명한데그중한곡조를소개하면신승근의정선아라리연작이가장뻬어나더라.
정선아라리
아우라지강뚝에와서
굽이치는물이되어휘돌아보라
가슴부터하얀자갈밭에와서
맨발의바람되어머물러보라
슬픔이풀어져안기는산덜미로
그리움만자욱하게걸리는숲으로
기우뚱기우뚱떠메가ㅣ는바람소리
하늘소리,땅소리,물소리를들어서
검은산그리메에처박아보라.
(정선아라리중에서한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