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인의중심지인프랑스에는전통을고스란히간직한귀족와인이많다.그중에서도
로마네콩티는어떻게생겼을까.원래‘로마네’라는포도밭이있었고,그남쪽상단부분을콩티란사람이사들여그구역이름을로마네콩티로바꾸었다.
그선조의고향인콩티-쉬르-셀르(Conti-Sur-Selles)의콩티를따서왕자칭호를붙였다.풀어쓰면콩티마을출신의왕자인것이다. 루이15세의애첩으로베르사유를휘저었던마담퐁파두르는콩티왕자와사이가좋지않았다.절대권력을탐한그녀에게왕의장조카는항상걸림돌이었을것이다.왕자는이포도밭을구매할때퐁파두르에게는철저하게비밀로했다.사사건건트집잡는그녀가무슨떼를쓸지몰랐기때문이다.
그럼에도결국그녀의모함으로콩티는베르사유를떠나게되지만,대신그는자신의이름이최고의와인에붙는영광을누렸다.1760년왕자는당시주변포도밭의11배에해당하는액수인9만2400리브르를주고이포도밭을사들였다.포도밭을구매한정황은미국음식평론가리처드올네의저서 이포도밭의피노누아품종은1584년에심었는데,콩티왕자가밭을차지했을때에도그대로유지됐고이후1945빈티지까지같은포도로양조돼왔다.
16세기의포도가20세기중반까지이어져왔다니참놀라운일이다.뿌리도프랑스산,줄기도프랑스산으로,즉360년동안순수프랑스토종피노누아로전해내려왔다.그러나왕자의식탁에오른로마네콩티는오늘날과는좀달랐다.그당시에는피노누아외에도피노블랑을같이심어혼합해만들었다.1880년대부터1910년대까지기승을부린필록세라(포도뿌리혹벌레)영향으로프랑스포도밭생태계는근본적인변화를겪는다.이때포도나무뿌리가거의시들어죽었다.
작지만생명력이질긴진드기에유서깊은포도밭들이맥을추지못했다.필록세라에내성이있는미국산대목에프랑스산줄기를접붙이는방법이유일한타개책이었다.그러나로마네콩티는미국산대목을탐탁지않게여겼다.대신포도나무번식의방법을달리하거나,이산화황을밭에뿌려서상당기간피노누아의순수성을지켰다.그럼에도필록세라를이길수없었다.
결국1946년로마네콩티양조장도백기를들고,포도나무를모조리뽑아버리고말았다.그러니1946년부터1951년까지는와인이생산되지못했다.땅을완전히갈아엎고이듬해인1947년에다시포도를심었다.이렇게해서2008년기준으로로마네콩티의나이는거의환갑이된다.
오늘날의밭면적은왕자가살아있던시대그대로다.1.8헥타르(135m2내외의면적)의‘손톱만한’밭에서매년평균약500상자(6200병)가나온다.거라지와인(창고를뜻하는garage에서온말로소량생산와인을일컬음),컬트와인(숭배의뜻을지닌cult에서온말로이역시소량생산된고급와인을일컬음)이란말은1990년대프랑스와미국에서생긴신조어이지만,따지고보면로마네콩티가이들의원조다.
로마네콩티의생산량은보르도의샤토무통로쉴드의50분의1에지나지않는다.또한연평균4000상자를병입(甁入)하는보르도의최고가와인샤토페트뤼스의5분의1밖에되지않는다.그래서로마네콩티를최초의거라지와인,최상의컬트와인이라고도한다.생테밀리옹의발란드로(연간약1000상자생산),라몽도트(약800상자생산)혹은미국나파밸리의스크리밍이글(약600상자생산)보다적다.
로마네콩티의와인제조작업은수작업수확,극심한가지치기,여름날의열매솎기등을통한품질향상이특징적이다.2007년6월필자가로마네콩티를찾았을때포도밭에서일하는젊은일꾼을보았다.그는나무하나하나를살피며꽃망울이터진송이의개수를세고있었다.계절이가면그중상당부분은열매가익기도전에잘려나간다.남은송이에당분이집중되도록해야하기때문이다.
무엇보다포도열매가좋아야와인이좋다.양조장에서는되도록이면공정에간섭하지않고자연스럽게와인이만들어지도록한다.자유방임형이라고할까.어찌보면하는일이거의없을정도로내버려두는것이가장까다롭지만가장효과있는일이다.그럼에도로마네콩티만의독특한양조방식은있다.이곳은포도송이에서포도알을골라내지않고전체를양조통에집어넣는다.
그러면가지에서나오는타닌을확보할수있다.로마네콩티는품질이좋지않은송이를골라내기위해오래전부터컨베이어벨트를사용했다.양조장에따라서혹은빈티지에따라서어떤경우에는,즉포도알의타닌이충분하다면가지를제거하고후에는통바닥에침전된효모찌꺼기를완전히제거하지않는다.한번정도만빼내고그대로둔다.그러면효모찌꺼기에서비롯되는아로마와맛의힘을얻을수있다.
맑은와인을얻기위해여과작업은수행하지않지만,달걀흰자로정제작업을한다.오크통을제작하는것도남다르다.오크널빤지는3년동안건조해사용한다.와인에과도한오크향취가묻지않도록하기위해서다.로마네콩티에쏠리는관심은사실작명방법혹은양조특징에있지않다.바로가격에있다.세계에서가장비싼와인이로마네콩티다.가격이비싼이유는우선공급을휠씬뛰어넘는수요에있다.
한때코스닥에벤처열풍이불었다.어떤투자자들은벤처주식매입보다는공모주에기대를걸었다.소규모회사의기업공개에수조원이몰리는일도다반사였다.경쟁률이수백대일에이르니고작몇주를받는경우도있었다.로마네콩티도마찬가지다.매년수천병을병입할뿐인데,전세계와인중개상들이서로사겠다고아우성이니가격이오르는것은당연하다.경쟁이치열한발행시장인셈이다.
둘째이유는유통시장에서조차매물을발견하기힘들다는사실이다.일반적으로투자등급와인을구매한애호가들은일부는소비하고일부는경매장에내다팔지만,로마네콩티는그렇지않다.소량이다보니재판매보다는직접음용을목적으로한다.결론적으로발행시장에서한껏부푼가격은매물부족이란매력을지니고유통시장에서다시천정부지로상승한다.
로마네콩티는와인의지존으로일본만화‘신의물방울’의소재이기도하다.그작가는우연히접한그와인한잔으로심미안이생긴것일까.그는누이와함께진지한작품탐구의길로들어섰다.이를통해프랑스인조차흥미롭게읽을만화를제작했다.와인애호가들이넘치는일본에서도역시로마네콩티는꿈의와인이다.대부분의와인은빈티지에따라희비가교차한다.좋은빈티지는맛도좋다.
가격이비싸도그맛을보려는욕구로인해인기가높다.하지만빈티지가좋지않으면인기도같이시들해진다.물론가격도내린다.그러나로마네콩티는예외다.중력의법칙에서벗어나있는물건이있을리만무하지만,로마네콩티만큼은전혀새로운세상에있는존재같다.이처럼귀한로마네콩티가30년정도잘익으면일본에서는‘신주(神酒)’라고표현하며이세상최고의와인으로인정한다.신주(神酒)라,얼마나귀해또얼마나대단해서그말을쓴단말인가.
일반인이로마네콩티를만나는유일한방법은경매장에가는것이다.2006년맨해튼에서의일이다.1999빈티지36병이다양한용기에담겨서출품됐다.낙찰가는21만1500달러.병당약600만원이었다.하지만국내상황은사뭇다르다.2005년조선호텔에서열린아트옥션와인경매에로마네콩티1999년산1병이출품됐다.350만원부터입찰을받았다.주위가좀소란해지면서‘너무비싸다’는말이들리기도했다.지금생각해보면터무니없이낮은가격이다.로마네콩티한병이,그것도세기의빈티지라할만한게350만원에그쳤으니놀랄일이아닐수없다.
그러나경매에임한응찰자들은이런사실을잘몰랐던것같다.입찰경쟁은시시했고,결국로마네콩티는370만원을제시한중년의신사품으로날아갔다.와인정보가들쑥날쑥한서울에서가끔있는이런해프닝은눈밝은애호가들에게는횡재가되기도하는것이다.지난11월해외뉴스에서는2005년로마네콩티한병이2만유로의가격표를붙이고유명와인가게에진열되어있다는기사가나왔다.
엄청난부를거머쥔중국인들이뒤늦게와인에눈을떠서특정와인의가격을터무니없이올려놓곤한다.2004년까지만해도서울에서로마네콩티구하기란그리힘든일이아니었다.물론돈만있다면.그러나이젠돈이있다고해도구할수없다.선견지명이있는애호가들로이미구입예약자명단이꽉찼다.그들은로마네콩티한병을얻기위해다른종류의와인열한병을부담없이함께구입한다.
포도밭의구분이그리분명하지않은부르고뉴에서로마네콩티찾기는식은죽먹기다.본-로마네마을뒷산으로이어지는경사길을조금만걸으면십자가를만난다.높이솟아있어멀리서도보인다.그십자가왼편이로마네콩티다.비오는날에도그근처엔항상여행자들이몰려있다.십자가주변에서서포도밭을뚫어져라쳐다보는각양각색의여행자들은자유복장으로길을떠난순례자같다.그들은성지에온양조용히속삭이며예순을바라보는나무와땅을마냥바라보고있다.
페트뤼스는유서깊은보르도에서도역사나전통이전혀받쳐주지않는무명샤토였으나,완벽주의를추구하는양조장관리인에의해오늘날성대한잔치의주인공와인이되었다.특히1945년에생산된페트뤼스는와인평론가‘로버트파커’가97~100점을준와인으로가치및희소성이더욱높다.
영국엘리자베스여왕혼사에등장해갈채를받은페트뤼스는케네디가문의행사에도자주쓰여대서양을넘나들며큰사랑을받고있다.1945년이전까지는무명의양조장이었던페트뤼스는이제보르도에서최고로빛나는보석같은존재가됐다.
흥미롭게도페트뤼스는보르도와인이지만보르도답지않다.즉여느보르도와인처럼여러품종을혼합해만드는전통적인양조방법을쓰지않고대신부르고뉴처럼단일품종으로와인을만든다.페트뤼스는보르도양조특성을따르지않으면서도보르도를대표하는역설적인와인이다.메를로만으로양조했는데도어찌그리와인이힘찬지마시는사람마다놀란다.
특히빈티지가좋은경우의페트뤼스는수십년이상을숙성하면서올곧은질감속에감추어진단단한속을드러내며애호가들의마음을흔들어댄다.길을나서샤토페트뤼스를찾는것은그리어려운일이아니다.보르도의젖줄기지롱드강의오른편에자리잡은마을인포므롤에서비교적쉽게눈에띈다.흰색바탕의건축물인데다,멀리서도알아볼수있을만큼이름을크게새겼기때문이다.
강오른편출신이란뜻을지닌무엑스(Moueix)를성(姓)으로쓰는일가가현재페트뤼스를경영하고있다.보르도에서가장작은규모의원산지인포므롤은바로이페트뤼스때문에결코무시할수없는‘작은거인’이다.이곳주인인장피에르무엑스는부지런한세일즈맨이었다.페트뤼스를실은수레를끌고이마을저마을,더멀리는보르도구석구석을누비며와인을팔았다.
그는성실함과완벽한품질을추구한덕분에훗날샤토의지분을거머쥐었다.그가세상을뜨고는페트뤼스의생산과유통은두아들이맡았다.전세계를돌면서페트뤼스의이름을알리고있는크리스티앙은유통을맡고있다.최근에는크리스티앙의아들에두아르가목소리를높이고있다.로마네콩티가족은한국에한번도오지않았지만페트뤼스가족은여러차례방한했다.
페트뤼스는영어피터(Peter)에해당하는데,성경에나오는베드로와같은이름이다.예수의열두제자가운데수제자로꼽히는베드로가이와인의라벨에서오른손으로열쇠를쥐고있다.그열쇠는천국의열쇠를상징한다.노란바탕에붉은글씨로쓰인페트뤼스는그안에최고와인의비밀이담겨있다는메시지로읽힌다.
페트뤼스의비밀은기실포도밭에있다.마을대부분이자갈이나모래토양인데반해,페트뤼스는진흙으로된단춧구멍같은표토층이특징이며,그아래에자갈토양이자리잡고있다.또그아래에는철분이풍부한토양층이형성되어있다.총체적으로배수에능한구조다.철분함유량이높은토양이라색이검어자갈과모래가표면을이룬인근포도밭과구별된다.
페트뤼스포도밭도유서깊다.어떤카베르네프랑의수령은80년이넘는다.1956년포므롤을휩쓴냉해로많은포도밭에서포도나무가뽑혀나갔지만,페트뤼스포도밭에서는추위를이겨낸나무들을남겨두었다.이것이오늘날깊게뿌리박은메를로의맛을잉태했다.포도밭면적은10.9헥타르인데,이는로마네콩티의5배에해당한다.부르고뉴기준으로는넓을지몰라도,보르도에서는아담한양조장이다.
포도밭의95%면적에는메를로가자라고있고,나머지는카베르네프랑이다.그러나카베르네프랑은1960년대이후양조에잘쓰이지않는다.포도나무가기력이쇠하면나무대나무로교체하는방식이있고,일정구역의힘빠진나무를모두한꺼번에바꾸는방식이있는데,페트뤼스에서는후자를택하고있다.페트뤼스양조장의특징을한마디로하자면완벽주의일것이다.
면적당수확량이적어여느양조장의절반에도못미친다.크리스티앙이책임을맡은후부터소출량통제에더힘을썼다.튼실한포도알을얻기위해미리송이크기를제한하는방법이다.여름에포도가여물기전에송이의일부를잘라내며,가을에익어가는동안에도부지런히포도밭을오가며송이크기를살핀다.빈티지가좋은경우라면좀다르지만,빈티지가좋지않다면소출제한은품질확보의유일한방법이다.
포도가골고루다잘익지못하는결과를빈티지가좋지않다고말한다.빈티지가좋지못할때생산량은줄어든다.잘익은걸로만골라야하기때문이다.2002년이그랬다.일조량이충분하지못해품질이좀떨어졌다.빈티지가좋으면5만병정도생산하는데그해에는2만병정도밖에는병에담지못했다.포도의품질이극히나빴던1991년에는아예페트뤼스를생산하지않았다.포도품질에대한완벽주의의한예다.
페트뤼스는단번에확사로잡는입맛이단연일품이다.영화‘머큐리’에서주인공브루스윌리스가페트뤼스병을들고나발을불며마시는장면이나오는데,그역시확실하고강력한입맛을잘표현한것아닐까.단단한타닌의구조가어찌그리강한지모르겠다.아주남성적이며힘찬기상이느껴진다.하지만향기속에감춰진묘한나무냄새는페트뤼스만의개성이라하겠다.
이런방향은로마네콩티에서도풍긴다.나무가빽빽하게들어찬삼림에들어섰을때나는나무냄새같은식물성향기가있다.그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