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산을 하되 산이 자신을 구속치 않도록 하라’ *-

[알프스에서온편지/헬브로너]

‘등산을하되산이자신을구속치않도록하라’

월터보나티(WalterBonatti·1930-),그는당대가장위대한산악인이었을뿐더러아마도알피니즘의역사에서가장위대한인물이라평해도손색이없을알피니스트가아니가한다.18세였던1948년부터35세였던1965년까지그가남긴발자취는알프스에,특히몽블랑산군곳곳에남아있다.이탈리아태생의보나티가등반활동의본거지로삼은몽블랑남측의쿠르마예(Courmayeur)를기점으로한이태리-프랑스국경의헬브로너(Helbronner·3,462m)주변은그의활약상을쉽게엿볼수있는곳이다.
▲제앙빙하북사면에서본그랑카퓨셍.오전에통과한크레바스지대가보인다.

보나티의위대성이쉽게다가오지않는다면,음악의신동모차르트와비교해보면어떨까.바로이몽블랑산군을위시해알프스에서행한그의등반만보더라도그가얼마나뛰어난등반가였는지상상하고도남는다.평범한필자가등반을시작한나이와비슷했던18세에고향땅그리냐(Grigna)의작은암장에서등반을시작해1년도되지않아그랑조라스북벽의워커스퍼(4등)나바딜레북벽을오른것만보아도보나티의천재성을짐작할수있다.

하지만아쉽게도그의천재성은자발성에의해30대중반까지만발휘되었으니필자와같은평범한산악인들은이해하기힘들뿐더러아쉽고안타까울따름이다.산을떠난이유가K2초등사건이나그후에몽블랑에서있었던두번의조난사고에얽힌논란들로인해산악계에환멸을느껴서든,또다른차원의모험을갈구한개인적인이유에서든,산에서더이상그의활약상을접하지못하게됨은아쉽기만하다.

모래섞인눈까지먹으며이룬그랑카퓨셍초등
▲보나티의책<내인생의산들(TheMountainsOfMyLife)>
보나티의책<내인생의산들(TheMountainsOfMyLife)>을펼쳐든지며칠지나지않은3월말이었다.그를좀더느껴보기위해몽블랑산군의심장부라할수있는이태리-프랑스국경의헬브로너쪽으로향했다.이른아침샤모니계곡에는잔뜩구름이머물러있었지만,3,800m고지의미디(Aig.duMidi)전망대에오르니태양이쨍하게빛난다.단숨에구름위로솟아올라만년설을손쉽게대면할수있음은오늘날의산악인들에겐행운이아닐수없다.

▲이태리-프랑스국경인헬브로너전망대.
스키를들고북동설릉을내려간다.저멀리동쪽에그랑조라스가구름위에솟아있다.등반을시작한지1년밖에되지않은19세의보나티가친구들3명과겁없이덤벼들어성공한워커스퍼가하늘을배경으로버티고섰다.그가오른후40년후필자또한올라보았던워커스퍼는지금도많은알피니스트들의도전의대상이되고있는거벽임에분명하다.

스키를신고드넓은발레블랑쉬설원의상단을가로지른다.쏜살같이타고내리며여전히남아있는겨울찬바람을가슴속깊이들이킨다.이제몽블랑뒤타퀼(MontBlancduTacul·4,48m)동벽쪽으로방향을튼다.몇몇쿨와르아래에선클라이머들이등반을준비하고있다.눈밭에꽂은스키에스키화를걸어둔풍경은요즘같은삼사월에나볼수있다.

계속해서스키를타고내린다.혼자이렇게설원을가로지르는홀가분함이좋다.이제제앙(Geant)빙하의가장낮은지대에이른다.여기서스키를벗고바닥에실을붙인다.이때대여섯의산악스키어들이뒤따라도착하고있다.이들도스키를벗어실을단다.독일에서왔다는이들은가이드한명에손님다섯이다.자신들도이태리로넘어갈거란다.동행이있어적적하지않을거라여기며먼저크레바스지대에들어선다.

몽블랑국경능선에서월터보나티를생각한다

▲발레블랑쉬설원을지나제앙빙하에접어들고있는산악스키어들.뒤의침봉이그랑카퓨셍이다.

한동안크레바스지대를오르내리다주변에펼쳐진경치를놓치기아쉬워뒤따르는그들을기다린다.사진기에담기는그들또한즐거워한다.마침그들뒤로그랑카퓨셍(GrandCapucin·3,838m)동벽의붉은화강암이시야에들어온다.수도승의고깔모자를닮아이름붙은그랑카퓨셍.보나티는이벽을세번째시도만에초등한다.그의나이21세에이룬위대한등반이었다.첫시도에서날씨가나빠후퇴한보나티와그의친구는3주후두번째시도에서세번이나비박하며화강암직벽을오른다.

갈증에시달린이들은내리는눈까지받아먹고,심지어모래가섞인눈을집어먹으면서까지등반해벽을거의다오른상태였지만,역시악천후로단념한다.1년후인1951년여름,보나티는동료지고(Ghigo)와의약속을지키며드디어세번째시도에서한번의비박후정상에선다.몇년후또다른불세출의알피니스트인오스트리아의헤르만불(HermannBuhl·1924-1957)은이루트를오르고서알프스에서행해진가장어려운화강암등반이라극찬하였다.

이등반후보나티는약관의나이에등반계에더욱이름을떨치게된다.그리고25년후이루트를다시찾은보나티는초등시보다엄청많이박혀있는하켄들을목격하고서불확실성과불가능성은전통적인알파인등반의필수요소로서,인위적인요소들에전적으로의존하는등반은그저육체적인노동일뿐이라설파하였다.

▲제앙빙하상부투르롱드앞크레바스지대를가로지르고있다.

한편그는등산은산을오르는것뿐아니라자기극복의길로보았다.그에게알피니즘은자기인식에이르는길이었으며,대자연과의접촉을통해성장하고부활하는수단이었다.

▲엄한아버지처럼보나티에게많은매질을한몽블랑이동벽을펼쳐보이고있다.남면의프레니필라가살짝고개를내밀었다.

제앙빙하의크레바스지대에서한동안그랑카퓨셍쪽으로향하던독일산악스키어들은이제투르롱드(TourRonde·3,792m)앞에서방향을튼다.프랑스와이태리의국경쪽으로가기위해서다.앞서걷고있던젊은산악가이드슈테판은뒤따르는일행의속도에맞춰일정한속도로러셀을한다.직업가이드로서의면모가엿보인다.줄지어가는그들을가로지르며앞뒤에서사진을찍으니일행중한명이사진을보내줄수없냐며자신의명함을건넨다.

▲제앙빙하상단의크레바스지대를지나고있는산악스키어들.

멋진모델이되어주는그들뒤로저멀리몽블랑동벽과그너머남벽의상단부가펼쳐져있다.보나티는몽블랑을통해많은것을배웠다고고백하였다.1956년크리스마스때찾은동벽의브렌바스퍼를모진눈보라속에올라생환하지만,우연찮게함께오른다른자일파티의조난사에대한논란이나,너무도유명한1961년몽블랑남벽의프레니(Freney)중앙벽의참사에대한,이상하게도유독자신의동포이태리인들이제기한그들의죽음을막기위해좀더노력하지않았다는비난은그를더욱혹독하게단련시켰다고.하여몽블랑은자신을심하게채찍질한친아버지와같은존재였다.

물론보나티는동벽옆에위치한그랑필리에당글(GrandPilierd’Angle)이나프레니옆의레드필라(RedPillar)를역시초등으로오르며즐거운시간을가진적이있기에몽블랑은그에게기쁨과슬픔을동시에안겨준셈이다.몽블랑동벽이나레드필라는10여년전에필자또한오른적이있기에그의심정을조금은이해할만도하다.

양심선언하며보나티에게사죄한K2초등자

한동안오르막이이어지더니넓은사면이펼쳐진다.곧툴안부(ColdeToule·3,444m)다.그너머는이태리땅이다.한데이국경능선너머엔구름바다가펼쳐져있어그아래로는아무것도보이지않는다.몽블랑에서동서로길게뻗어내린3,000m이상의거대한알파인능선을사이에두고이렇게날씨가다르리라곤생각지못했기에필자나독일인들이나망설인다.어차피구름때문에몽블랑남면을볼수없을테니굳이툴빙하(GlacierdeToule)를따라스키를타고내려갈필요성이없던필자였지만,여기까지온마당에또한가이드를앞세운독일인들이먼저내려가는것을보고마음이동한다.

가파른사면에서스키를들고조심해서내려가는데,그들이먼저가라며길을내준다.그러지못할이유가없다며먼저내려와스키를신는다.한데뒤따르던그들은구름이흩어지길기다리는눈치다.이런짙은구름이언제사라질지모르는터라그냥혼자빙하를타고내린다.한데,내려갈수록구름은짙어1~2m앞도보이지않는다.눈을감고스키를타는것과같다.

몽블랑남측의이빙하를타고내리며보나티가살던쿠르마예계곡과몽블랑남면을지켜보려던계획은물거품이된셈이다.무엇보다이짙은구름층을뚫고무사히몽프레티(MontFrety·2,174m)까지내려가는게급하다.두세번이곳을타고내린경험을최대한살려직감으로내려간다.최대한빙하왼편으로바짝붙어내려선다.급사면이이어진다.특히남면이라녹았다언사면이짙은구름에녹지않아스키타기가여간불편하지않다.무릎에심한충격이가해질정도다.

▲앞에솟은그랑카퓨셍쪽으로빙하를가로지르는산악스키어들.

그랑카퓨셍을초등하고서18개월간군복무를마친보나티는트레치메디라바레도(TreCimediLavaredo)를동계에초등한다.곧이어그에게1954년K2원정대원에뽑히는행운이찾아든다.하지만8,000m이상에서죽음의비박까지하며정상캠프가까이산소통을옮겨초등반에공헌한그가많은이들로부터받은비난과소외,갈등은평생따라다니게된다.

그가느꼈을답답하고어두운마음을생각하며계속해서안개속을타고내린다.어떤구간에선사이드스텝으로미끄러져내리기까지한다.이렇게1,000m이상내려오니마침내두터운구름층아래다.저아래에중간케이블카역인몽프레티가보인다.


▲몽프레티로오르는케이블카.뒤로쿠르마예계곡이펼쳐져있다.

짙은구름아래지만시야가트여수월하게케이블카역에이른다.보통때같으면몽블랑터널쪽차도까지스키를타고내려가겠지만여기서단념하고헬브로너로오르기로한다.휴게소주인에게케이블카표를말하니아래에전화하여다음케이블카로표를올려보내겠다고한다.잠시쉬며쿠르마예쪽으로시선을던진다.잔뜩흐려있는하늘아래에보나티산장(RefugedeBonati·2,022m)이있는곳도보인다.7년전보나티의세친구들이그를기념하기위해세운현대식산장이페레계곡너머의알파인트레킹루트에세워져있다.물론겨울인지금은문이닫혀있다.


얼마후밑에서올라온케이블카직원이건네준표를가지고헬브로너로오른다.대여섯명밖에탈수없는작은곤돌라를두번갈아타고다시프랑스땅에발을들여놓는다.구름위로올라서며전망대에이른다.10대후반의여학생10여명이쌀쌀한날씨에도전망대의나무바닥에앉아해바라기를하고있다.이제한낮의열기로남쪽에머물던구름이한껏솟아올라몽블랑쪽은아예보이지않는다.그러나동쪽으로고개를돌리니구름바다위에솟은그랑조라스남면너머에마터호른이자그마하게보인다.


1965년겨울에단독으로마터호른북벽에직등루트를낸보나티는그후알피니즘과영원히결별하고만다.왜?이문제는그가한때고향처럼머물던쿠르마예위에드리운먹구름처럼파헤치기힘들것같다.지면상K2초등사건의전말을논하지못하는아쉬움외에도몽블랑에서일어난두조난사고후의논란이나,심지어그의고별등반이었던마터호른북벽에서새루트로동계단독초등을이루고서도그는고운시선을받지못했다.천재에대한범부들의질투때문이었을까.진실은언젠가밝혀지듯지난해에K2초등자중한명이양심선언을하며보나티에게사죄했다.

지금도도전받는드류보나티필라

전망대의수정전시관을둘러본다음곧바로스키를들고계단을내려온다.한데북쪽설사면위로한둘씩오르는이들이있다.가만히보니오전에함께제앙빙하를가로질렀던독일인들이다.결국그들은짙은구름때문에이태리쪽으로활강하지않고되올라와이곳으로오고있었다.그들이도착하길기다리려면적어도10분이상소요될것같아어차피저녁에만나기로약속했기에그냥사면을타고내린다.

북향인설사면의설질은최상의분설상태라신나게미끄러져내린다.아무도긋지않은백지상태의사면에멋진굴곡을그으며메르데빙하를따라내린다.이윽고크레바스지대옆으로하여르켕산장(RefugeduRequin·2,516m)을지난다.계속해서드넓은빙하위를타고내리니일반스키어들이지나가는슬로프가나온다.곧메르데빙하가레쇼(Leschaux)빙하와만나는모레인지대다.


레쇼빙하상부로시선을던진다.정상부에구름을이고있는그랑조라스북벽이살짝고개만내밀고있다.19세의나이에워커스퍼를오른보나티는14년후인1963년1월에바로이워커스퍼를겨울에올라동계초등을이룬다.혹독한추위에맞서동료자펠리(Zapelli)와다섯번비박하며오른것이다.그리고이듬해여름에그는이북벽을다시찾아윔퍼봉으로직상하는새로운루트를4일만에내며또한번자신을확인한다.


▲헬브로너개념도

과연그가계속해서산행했다면이알프스에서만남긴발자취가어디까지뻗쳤을까상상해본다.그는파타고니아에도수많은초등을이룩했으며,필자또한가본적이있는카라코람의가셔브룸4봉을초등하기도했다.그의책에는열악한장비로도혹독한상황에맞서는그의활약상들이땀을쥐게할정도로가득차있기에400페이지가넘지만결코지루하지않다.

작년에발간된,산을떠나극한의오지포토저널리스트로활동했던그의사진집을포함하여그가쓴저서가10권이나되지만단한권도국내에소개된적이없음은국내산악문학의빈약함을반증하는것이아닐까.

이제메르데글라스빙하아래로발길을돌린다.이후몽탕베르(Montenvers·1,909m)까지드류를앞에두고달린다.생애에가장큰악영향을끼친K2등반에상심한보나티는단독무산소알파인스타일로K2를시도하려했지만뜻을이루지못한다.반세기전당시국가적인차원의행사로꾸려져야가능했던8,000m급거봉원정이었기에끝내실현되지못했으며,오늘날의최고산악인들도감히생각지못할대담한계획이다.

보나티는혼자만의힘으로불가능의등반선을그으며그전엔어느누구도생각지못한등반을바로이드류에서감행하기로한다.1955년여름이었다.한피치등반에두세번씩오르내리며6일만에오른그를기리기위해사람들은드류남서필라를보나티필라라명명했다.몽탕베르전망대에서바라보는드류는여전히위엄을갖추고있었다.물론몇년전에발생한거대한낙석사고로보나티가올랐던필라는많은부분사라지고없다.

하지만그후에도기라성같은후배산악인들은여전히그의길을따르고있다.이후틈틈이보나티의책을펼쳐들며거의다읽을무렵이었다.아침부터그의책에빠져지내다보니점심때가되었다.창밖의뭉게구름이손짓하듯유혹했다.몸이근질거려숙소에서만보나티의책을읽을게아니라또다시그가활동하던무대로가보고싶었다.이른점심을먹고곧장배낭을꾸린다.


한데3,800m고지의미디에올라보니남쪽하늘엔지난번보다더짙은구름바다가펼쳐져있었다.할수없이헬브로너까지가지않고그저메르데빙하를따라스키를타고내린다.그의위대함을그저곁눈질로만느껴보려던나의시도가가당찮음을느끼며빙하위를달린다.훌륭한산악인이되기위한자질은훌륭한인간이되기위한자질과같으며,등산을하되산이자신을구속치않도록해야한다고한보나티의말이내내귓전에울렸다.

-글/허긍열한국산악회대구지부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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