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2월1일인사동(실제행정구역은관훈동)에있는경인미술관을찾았다.한국의학한림원정회원이자연세대영동세브란스정신의학과에재직중인이홍식(李弘植·59)교수가자신의첫유화개인전‘히말라야’를연다고해서였다.정신의학과교수와산과그림.묘한느낌에뭔가있을것같다는생각이스치고지나갔다.동시에많은메시지와교훈을독자들에게전해줄수있을것같았다.
이교수는국내정신의학분야에서내로라하는권위자로꼽힌다.그가속한의학한림원은2004년4월국내의학발전과국민건강증진에이바지하기위해창립된기구이며,현재전체회원이350명으로의학연구자5%만가입돼있다.이와함께세계정신분열학회이사,대한신경정신의학과국제이사,대한정신약물학회2대이사장,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원장,대한정신약물학회회장,한국자살예방협회초대회장,국제신경정신약리학회위원장등은이교수가역임했거나맡고있는직책들이다.
그에대한기본정보만가지고전시관으로들어섰다.1년여지나면환갑을맞을이교수였지만직접보니의외로젊게보였다.동그랗고밝은얼굴,뒤로넘긴머리에서오랜세월의사로서지낸권위는찾아볼수없었고,오히려이웃집아저씨처럼더가깝게,더친근하게다가서게만들었다.
드러난외면만큼내면도그에못지않은것같았다.의사로서,인간으로서그는상대방을친근하게무장해제시키는치명적(?)무기를갖고있는듯했다.보통환자들은증세를말하며의사도자세한설명을곁들인진단을내려줄것을은근히기대하지만대개그렇지못한게현실이다.하지만이교수는정신의학전공이라그런지달라보였다.
그에게많은전공과목중에서왜하필정신의학을선택했는가물었다.바로돌아왔다.“할게없어서”라고.한바탕웃은뒤설명을덧붙였다.“인턴시절몇가지경험을했다.다들정신이상자들을피하고멸시하는듯한분위기에묘한연민이느껴졌다.내가이들을돌봐야겠다는사명감이생겼다.병원근무자들은입원환자들을푸대접하기도했다.‘이러면안되는데’라는생각과더불어참안돼보였다.그래서나라도이들을돌봐야겠다고해서선택했다.”그의인간성이엿보이는대목이다.
후회한적은없을까.세속적인기준으로돈되는분야를전공으로택할수도있었을텐데….
“75년의대졸업할당시만하더라도돈에의해서전공선택이좌우하는분위기는아니었다.스승들한테도그렇게배웠다.경제적대가는부수적인문제였지,우선고려대상은아니었다.관심이있느냐가우선이었다.그런교육을받은게참다행이라고생각한다.솔직히말해지금은후회되는부분도있다(웃음).돈도안벌리고,개업도안하고얽매여있으니.그러나돈이이사회의절대적기준과최고가치가돼서는안된다.
돈이파워를휘두르는우려스러운상황은지금그대가를치르고있다.뭐가존경스럽고,일류고하는모든가치가돈에의해좌우된다.인간상실시대다.금융위기로인한거품이집값으로빠질게아니라정신적거품도걷어버리는변화가오리라본다.아니,와야한다.3,000년전공자가한말이지금하나틀린것이없지않나.돈못벌어도내가좋으면되고,그렇게스스로만족하며살면된다.”
지극히인간적인그가환자에게도지극히인간적일수밖에없는모습이다.한마디로정신건강이튼튼한정신의학자다.공무원이셨던아버지의권유로누군가를구체적으로도와줄수있는직업을선택하라고해서의대에입학했다고했다.봉사하기위해선택한삶은감성을가진의사로서환자에게,아니의료계에서평가받는의사로자리매김했다.
의사에겐세가지무기가있다고한다.메스와처방약,그리고말이다.의사들은가장강력한무기인말을잘쓰지않는다.환자(患者)는한자에나와있듯이먼저마음을어루만져줘야하는사람을말한다.누가?바로의사다.모두이교수같으면환자들이살맛나고병도빨리나을수있을것같았다.
그가의예과에입학한69년,동아리모집포스터를보고화우회에가입했다.중고교당시엔공부만했지,그림은관심밖이었다.학창시절억눌렸던감정을마음껏화폭에담았다.그러나그림은마음대로되는건아니었다.빡빡한의대공부일정에본과에들어서니시간적여유가더없었다.언젠가제대로배우고싶다는열망을간직한채유화도구들을뒷방으로물렸다.
의사본연의일에충실하면서세월은흘렀다.97년미국일리노이주립대학의학교육과정에연수떠났다.공부하기위한세번째미국행이었다.이번엔가족과떨어져혼자집을얻어생활했다.마침그집사위가인디언으로서독특한감정을지닌화가였다.말동무가되어많은기법을배웠다.30여년전뒷전으로물려뒀던그림에대한열정이다시솟구쳤다.내친김에성인을위한그림코스에아예등록했다.1주일에2회과정이었다.교장,우체부등다양한직업을가진사람들이눈에띄었다.열의가느껴졌고열심히배웠다.외로움을느낄겨를도없이시간은훌쩍지났다.벌써귀국날짜가다가왔다.
이끈을놓을수는없었다.30년만에되살린소중한추억의끈이었고,정신적안식의끈이었다.귀국해서집에별도의화실을마련했다.부인도흔쾌히승낙했다.틈틈이유화를그렸다.찍어온사진을바탕으로화폭에담았다.많은자연풍광을담아그렸지만히말라야에대한느낌은남달랐다.히말라야를보는순간,강렬한그무엇이다가왔다.말로표현하기어려운거대한느낌이었다.히말라야에세차례나트레킹다녀왔다.몽블랑,킬리만자로,중국다꾸냥도갔다와산에대한느낌은풍부했다.스페인산티아고순례길800km도걸었다.
황량한산은인간에게‘원래아무것도없었던’태초의느낌을전했고,종교,무속인들에게까지영적인느낌을받게했다.자연의풍광은인간을압도했고,사상이나이론이전의세계가있는듯한느낌을주기에충분했다.그의표현대로’나같은사람이한번당해봐야하는느낌을강하게받았다’는것이다.자연의위세에인간은미물에불과하며,오만하게살지말라는교훈으로들렸다.
사진으로찍은풍광을산에서받은느낌까지함께화폭에담으려애썼다.산에서깜깜한밤을맞으면밤이까맣지않다는느낌을받는다.밤하늘은별이라는모래를깔아놓은듯밤이많은지별이많은지구분이안될정도였다.밤의색깔은검은색이아니었다.깊은바다색이었다.망망한바다,끝이어딘지보이지않은그런무념무상의색이었다.이순간은사진도찍지않는다.못하는게아니라안찍는거다.도대체표현할수없고느낄수밖에없다.신이만든오묘하고입체적인색깔이다.자연의촉감과소리,시각이일치해야제대로느낄수있다.
모든현상은전체를알아야지조화를볼수있다.조화를캔버스에옮길때피사체와공간을여하히처리하느냐의문제가대두된다.그촉감과소리,눈을되찾으려상념에빠진다.결국관계의문제가떠오른다.관계를제대로파악하면균형이잡혀이상적인그림으로완성된다.
관계를형성하는것은팩트(fact)들이다.팩트를빠뜨리면구성이안된다.팩트는있는그대로의모습이다.웬만한수준이면볼수있고,본것을그릴수있다.그러나산이주는느낌,팩트끼리의관계이상으로감성을실어야한다.그게바로산이주는영적인부분이고,인간관계에서필요한정이다.화가에게는그림에담아야할혼인것이다.
그는이미산에서받은영적인느낌을느꼈고,그림에는혼을담으려애쓰고있다.정신과의사로서그는환자에게인간관계에서의정을전달하려하고있다.타고난인간성에그림과산을통해체득한감성이덧붙여져있는최적의의사인것이다.산행은동적명상이고,좌선은정적명상이다.명상은정신건강에도움을준다.
동적명상은정신뿐만아니라육체건강에도더할나위없이좋다.그게바로등산이다.걷기등과같은운동만큼공평한것도없다.고생한만큼육체에유익하다.산은덤으로조금더준다.걸어올라갈때힘들지만내려갈때육체적건강에덧붙여만족감,행복,즐거움을만끽하도록한다.우울증치료에등산만한운동도없다고권한다.깊은호흡은생리적변화에임팩트를주고,긴장을완화시켜스트레스를해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