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강을잊지못하는것은접촉과교섭이다.사랑과생명의가장원초적인장면들을강에서만나기때문이다.강은무심하지않다.강은저혼자흐르지않고저혼자질주하지않는다.강은언제나땅과교섭하고대화한다.자갈밭위에서물살은봄날나물캐러나온소녀들처럼재잘대며흐르고덩치큰바위를만나면바위얼굴을은근슬쩍쓰다듬다가(“오,너여기있었구나”)손목잡힐세라얼른비켜간다.높은곳에서강물은흰속살을드러내며깡충깡충뛰어내리거나좔좔미끄럼질타고,깊은곳에서는안단테의느린리듬에몸을싣는다.
고운모래밭을만났을때강물은그자신도맑은얼굴이되어마치오래기다린바람이치마폭을출렁이듯얕은모래밭위로넘실댄다.이넘실거림은강이땅과관계맺는비밀스러운만짐과비빔,스밈과적심의절정을연출한다.그렇게해서강과땅사이의그모든접촉의신성한제의들과그모든즐거운교섭의에로스로부터강바닥수초들이태어나고강가의나무와수풀이자라고물의안팎에서생명들이자라‘강의가족’을일군다.강의에로스에서빠질수없는것이강과인간의접촉관계다.생존목적의활동이인간활동의거의대부분을차지했던문명의초기단계로까지거슬러올라갈필요는없다.
우리가알고있는것은강과의자유로운교섭이우리가갖고있는가장즐거운유년의추억이며성장의비밀이라는사실이다.여름날강에서의물장구,멱감기,겨울의얼음지치기,발목을간질이는물살의찰랑거림,빛나는모래와자갈들,돌틈의가재와웅덩이의쉬리떼,새와나무와구름과꽃,물속에잠긴달,쏟아지는강변의별빛-이모든것과의교섭이우리를키운비밀스러운힘의기원이다.성년이되어서도우리는강에대한그리움을갖고있다.그그리움은우리를자라게한힘의기원을향한향수때문이며,강과의교섭에서얻어진그경이로운힘에대한겸손한존경때문이다.
오늘날우리의한강은이런에로스의강도아니고,접촉과교섭의강이아니다.오늘의한강은회색의거대한시멘트옹벽들사이에포로처럼갇혀어디론가떠밀려가는볼품없는물길에불과하다.그강은땅과의교섭을잃은지오래다.시멘트옹벽사이에갇힌한강은아우슈비츠집단수용소를향해질주하던포로수송용열차행렬을생각나게한다.그수송열차행렬에벗어남,자유,대화,소통이허용되지않았듯이지금의한강에도자유와소통,접촉과대화는없다.땅과의접속을차단당한강은인간과의접촉도상실한다.사람들은강으로걸어들어갈수없고강물에발목을적실수도없다.
강폭은넓어지고수심은깊어져자살을생각하는사람이아니라면아무도그강물로뛰어들수없다.이한강은어릴적우리가뛰어들어첨벙대던강,멱감던강,무릎위로올라오는물살과장난치며놀던그런정겨운강이아니다.강양쪽의옹벽너머에는또시멘트로된이중삼중의연안고속도로들이사람들의접근을차단한다.이한강은우리가사랑할만한강이아니다.그것은그자체로괴물이되어버린강이다.사랑할수없는강은사람들이기억해주지않는다.기억에서사라진강은잊혀진강이다.한강은오늘도거기에있고어제처럼오늘도우리눈앞을흐르고있다.
그러나우리는그강의존재를기억하지않는다.강과인간을이어주는연결의끈,접촉의끈,대화의끈이잘려나갔기때문이다.그러므로한강은있으면서동시에없다.물리적대상인한강은거기있으나사람들과교섭하는존재로서의한강은우리마음과기억에서떠난지오래다.한강은우리가잃어버린강,잊어버려야하는강이다.그것은우리가자동차로,전철로재빨리건너고잊어버려야할어떤것,출퇴근길을더디게하는,그러므로속도와효율을위해서는없는편이더나았을귀찮은장애물,그존재의귀함이나친밀성을경험할길이없는천덕꾸러기다.
한강에는스무개이상의다리가있다.그러나그다리들은강을생략하고강을건너뛰기위한것이지강과사람을가깝게이어줄연결의교량이아니다.그것들은오히려사람들을강으로부터더멀리떼어놓는분리와소외의장치다.강에말걸고강과친해지기위해걸어서그다리를건너는사람은없다.게다가,그다리들은대부분보행자를위한다리도사람을생각해서만든다리도아니다.거기에는보행자를배려한공간이없고풀한포기나무한그루심을녹지공간도없다.한강에서에로스가제거되었듯이한강에놓인다리들도철저히사람들을몰아내고생명의흔적들을제거한다.
그것들은그냥시멘트덩어리이거나쇳덩이다.옹벽과연안도로들,그리고그도로에인접한거대아파트들만이한강을죽이는것이아니다.한강의교량들도강을죽이고강을소외시킨다.한강을되살린다는것은한강에가해진이런소외와박탈,분리와망각의조건들을제거하는일이다.‘한강르네상스’라할때그‘르네상스’가정확히무엇을의미할것인지는아직선명하지않다.그러나‘르네상스’라불리는것들의핵심에는두개의지향,혹은두개의가치가놓여있다.하나는생명과사랑의복구로서의‘에로스의회복’이고다른하나는‘인간회복’이다.
이두가지는사실은동어반복일지모른다.에로스의회복없이인간회복은가능하지않고,인간회복은이미그자체로에로스의회복을의미하기때문이다.그러므로우리가‘한강의르네상스’에부여할수있는최선의의미는강과인간,강과땅,강과모든생명을가진것사이의친밀한접촉과교섭,대화와공생의관계를한강에되돌려주는데있다.그것은인간에게강을되찾아주고강에인간을,흙과바람과생명을되돌려주는일이다.이관계복구의지향은다른어떤목표보다도중요하고기본적인것이며다른어떤목표보다우선한다.
그것은지금한강을고립시키고있는분리와소외의조건들을제거하고수정해서한강을‘강다운강’으로회복시키는일이다.무심히스쳐지나가는풍경에도역사의흔적이스며있다.왼쪽은겸재정선이양화나루일대를그린‘양화진’(간송미술관소장)으로가운데높은언덕인잠두봉은병인양요당시프랑스함대와조선군이교전한현장이다.사진은오늘날의잠두봉.절두산으로더많이알려져있다.
강다운강은소박하게도물과흙과바람과불,이네개의기본요소가봄,여름,가을,겨울4계의리듬위에서영원히교섭하는강이다.이요소들은어떤고도기술의시대에도생명이의존해야하는항구한가치이며,그렇기때문에인간의삶을의미있게조직하는상징체계들은이네개의골간요소위에구성되어있다.영원한생명의세력을가진강만이살아있는영원한강,구원의강이다.작가호르헤루이보르헤스는그의도시부에노스아이레스를향해“물과공기처럼영원한도시”라고노래했는데,영원한도시는물과바람과흙과불이즐겁게교섭하는에로스의강으로부터태어난다.
한강은그무심해보이는얼굴너머로슬픔과상처,좌절과실패의역사를감추고있다.한강은140년전조선이처음으로서양을만난곳이다.그최초의조우가충돌로시작되었다는사실을기억하는이는많지않다.1886년로즈제독의프랑스제국함대는7척의군함과1000명의병력으로한강양화나루까지거슬러올라와잠두봉(지금의절두산)앞에서조선군과교전하고강의하구로내려가강화도를점령한뒤한달간섬을약탈한다.그때프랑스군이약탈해간강화도외규장각도서들은아직도반환되지않고있다.
19세기서양제국주의의파도가조선의강물과맞닥뜨린그충돌의순간으로부터우리의근세는시작된다.‘서세동진(西勢東進)’의첫물결이밀어닥친곳,거기가한강이다.그로부터100년이지나현대한국이근대적산업체계를성공시키면서그성공을자랑하기위해갖다붙인이름이‘한강의기적’이다.한강의기억은단순하지않다.한강은풍경이상의기억과역사의강이다.갈매기날아오르고유람선뜨는강의풍경이미지들을한꺼풀씩벗기면역사가할퀴고간상처의흔적들이무더기로드러난다.
이역사의강,한강에대한기억의상당부분은폭력,지배,전쟁과관계되어있다.한강인도교는철교와함께전근대의반도공간에들어선최초의근대적교량이다.이교량을만든것은일제식민세력이다.반도전역을소위‘근대적공간’으로재편하려했던식민지배자들의기획속에서가장충격적이고화려했던것의하나가한강을가로지른두교량이다.선사이래수천년동안나룻배와뗏목의기억만을가진강에어느순간철근과시멘트로된우람한수평의직선구조물이들어선것이다.조선인의인지구조에오랫동안각인되어온강은물과뭍의무한하고가변적인접선이만들어내는부드럽고섬세한곡선이다.
수평의거대한직선다리는이섬세한곡선의강을,혹은강의곡선을,한순간에무력화한다.그것은곡선을향한모든시선을거두어그자신에게로집중시킨다.최초의한강다리를구경하기위해몰려들었던식민지조선인들의놀라움은이영웅적근대구조물을향한시선이동이어느정도의것이었던가를잘말해준다.그시선이동은우리의문화사적성찰이아직주목하지못한의미심장한사건이다.그것은위풍당당한영웅,저항할수없을것같은힘,찬탄과경배가필요한대상의출현에대한놀라움의표현이었기때문이다.
그사건이후식민지수도경성의심리학에는심대한변화가발생하기시작한다.그변화의핵심은근대구조물로대표되는‘강대한힘’에대한외경과선망이근세조선인의,그리고마침내는현대한국인의무의식에깊이뿌리내리게되었다는점이다.이사실은지금의한강을이해하는데아주중요하다.강의남북양안에난공불락의요새처럼시멘트옹벽들을축조하고모든곡선을두들겨패직선화하고물과뭍의접촉을차단한지금의한강환경이만들어진것은1980년대에들어와서의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