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북악산아래가장좋은자리에존재하는청와대에대한이야기를해보려고한다.사실불로그에정치적인이야기와종교에관한이야기,그리고이념논쟁에관한이야기는금하는것이일반적이다.그러나서울의산을이야기하면서북악산과관계가있는역사적인건물청와대를이야기하지않고지나갈수가없어간단하게청와대에얽힌이야기를집고넘어가려한다.청와대는예로부터풍수지리상으로길지중의길지에속한다고알려져왔다.북으로는북악산을주산으로좌청룡인낙산(駱山),우백호인인왕산(仁旺山),안산(案山)인남산이있으며,명당수인청계천이북북서에서시내를통과해동쪽으로흘러가고,객수(客水)인한강이동(東)에서서(西)로흘러가는매우길한배산임수(背山臨水)의형상을하고있기때문이다.
청와대가위치한세종로1번지일대가역사에처음등장한것은고려숙종때인1104년경,고려의이궁(離宮)이이곳에들어서면서부터이다.고려는풍수지리설에따라개경(개성)과함께서경(평양),동경(경주)의세곳을삼경(三京)으로삼았는데,숙종때동경대신한양이곳에이궁을두고남경으로삼았다.청와대자리는고려시대의궁터였고조선시대1426년(세종8년)경복궁이창건됨에따라궁궐후원으로정해져연무장,융무당,경농재,과거장이서고왕의친견장소로사용했다.1927년일제총독이오운각외의모든건물을헐고관저를지었다.1945년해방과더불어군정장관관저가되고,1948년대한민국정부가수립되면서이승만대통령은과거이곳에있던경무대의이름을따서‘경무대’로명명하여집무실겸관사로사용하였다.
1960년4.19혁명후윤보선대통령이취임하면서경무대에대한국민의인상이좋지않다하여’청와대’로개칭하였다.청와대(靑瓦臺)는대한민국대통령과관계된행정기관을말하며,동시에집무공간인대통령관저를말한다.1).본관-대통령의집무와외빈접견등에사용되는건물로1991년에신축되었다.2).영빈관-대규모회의와외국국빈들을위한공식행사를개최하는건물로서1978년에준공되었다.3).대통령관저-대통령과그가족이생활하는곳으로1990년에준공되었다.4).상춘재(常春齋)-외빈접견등에사용되는곳으로전통한옥이다.1983년에준공되었다.5).춘추관(春秋館)-대통령의기자회견장소와출입기자들의기사송고실로사용되는곳으로1990년에준공되었다.
현재청와대경내대지는세종로1번지,삼청동157-94번지외9필지,영빈관,101단,구연무관위치인세종로1-91번지외17필지,궁정동1-2번지외43필지등총면적이3개동73필지76,685평에달한다.청와대주인인한국대통령의약사(略史)를돌아볼때,풍수지리설에의하면한국에서가장좋은길지에자리잡은대통령관저의주인들의면면은불행하기만하였다.초대대통령이승만대통령은장기집권으로인하여부패정치에빠져4,19혁명으로하야를하여외국에서불행한일생을보냈다.
박정희는5대~9대대통령으로재임하면서군사독재정치로비난을받았으며,경제발전을이룩한대통령으로인정을받고있다.그러나장지집권으로인하여결국핵심참모인중앙정보부장김재규의저격으로서거하였다.총칼로정권을잡은박정희는부인육영수여사와같이총격으로사망하는불행을당하였다.전두환,노태우대통령은박정희대통령의급서로12,12사태를일으켜정권을잡은군인출신으로군사정권의연장을이어갔다.그러나물러난후감옥을다녀오는불행한대통령이되었다.
문민정부의기치를들고등장한김영삼대통령도금융실명제라는혁명적인경제정책을강력히추진하였으나기존세력의강한반발에분루를먹음고,끝내IMF사태를불러오는불행한대통령으로전락하고말았다.이어서3김정치의두번째주자인김대중대통령은문민정부의실패로정권을창출하였다.IMF위기관리를성공적으로극복하고,노벨평화상을받았지만,그도성공한대통령은되지못하였다.
노무현대통령은국회에서탄핵소추를당한최초의대통령이되었으며,국민의지탄을가장많이받은대통령이었고,전국균형발전이라는핵심정책을추진하였으나단임제의한계에부딪혀추진만요란하게하고결과는없는정책으로유보된상태이며,경제정책으로뚜렸한것은전국적으로집값과땅값을올려놓았다는원성을듣고있다.윤보선대통령과최규하대통령은단기간의재임으로결과물은없다.
청와대하면북악산아래가장좋은명당의조건인배산임수의자리에있으면서도그주인공들은불행한대통령을많이배출하였으며,성공한대통령을꼽으라면글세누굴꼽아야할지한참을생각해도정답은없는것같다.풍수지리설은하나의설로존재하며전해오는하나의전통사상이라는의미로받아드려야지그것으로인하여무엇을얻으려고하는것은욕심일뿐인가하노라.요즘노무현전대통령도뇌물혐의로검찰에출두하여조사를받고하였으니,한국의대통령은모두가한결같이불행한대통령이었다.이명박대통령은조금다른희망과비젼을주는대통령으로남았으면좋겠다.
육사11기전두환과동기로써12.12사태의주역의한사람으로전두환집권후항상2인자로군림하며87년대통령선거에서김대중김영삼의분열로대통령에당선됐다1974년준장으로진급하여공수특전여단장과
1981년대장으로예편한후외교안보담당정무제2장관,1982년체육부장관을거쳐
1980년이후
1975년제17회
1988년부산동구에서제13대
2002년초
임기중대통령선거중립의무위반과측근비리등에대한야당의사과요구에대해거절하자,2004년3월국회는본회의에서193대2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