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산 [19] *-

6.도봉산,너무가까이있어’잊혀진명산'(4)


◇도봉산의최고봉인자운봉정상.일반인들은쉽게오르지못해건너편신선대에서정상기분을만끽한다.

한나라의수도안에국립공원이있는국가는세계에서우리나라가유일하다.서울시도봉구와경기도의정부시·양주군장흥면에걸쳐있는도봉산은북한산의명성에가려제대로진가를알아주지못하고있지만북한산과는다른산세와정취를지니고있다.그래서걷기산행을위주로하는등산객들사이에서도봉산파가있을정도로도봉산마니아들이많다.1천만서울시민들의쉼터이자녹색허파역할을하는도봉산의다양한모습을담았다.

●시원시원하고자상한‘맏형’


백두대간의추가령에서서남쪽으로가지를친한북정맥이휴전선을넘어대성산·백운산·운악산을거쳐종착지인한강과임진강하류를앞두고마지막기세를모아솟구쳐올린도봉산은암릉산으로유명하다.산이든예술이든마지막불꽃은언제나장엄하다.그래서도봉산을바라보면한북정맥의장엄한몰락을예고하는거대한전주곡처럼느껴진다.

이전주곡에는자운봉·만장봉·선인봉·주봉·오봉·우이암등의봉우리들이저마다높낮이가다른음색을내고있으며,회룡골·안골·무수골·거북골등의계곡들이모여저음을깔고있다.장엄한몰락은비장미의정서를품고있다.신들의몰락을그린바그너의4부작악극<니벨룽겐의반지>처럼도봉산도자운봉·만장봉·선인봉·우이암의4개봉을지나면서그불꽃이서서히사그라진다.

이‘바위들의황혼’이빚어내는풍경은봄·여름·가을·겨울사철가리지않고서울·경기지역의2천만수도권시민들을매료시킨다.도봉산의산계는크게사패산·만장봉·오봉·우이암을주봉으로잇는사패능선·포대능선·오봉능선·도봉주능선으로이루어져있다.같은국립공원지역에포함되어있으면서도도봉산은우이령너머의북한산과는사뭇다른정취를지니고있다.

북한산의산세가오밀조밀하고여성적이라면,도봉산은시원시원한성격의남성적이미지가강하다.속세에서힘깨나쓴다는사람일지라도다락원능선에서선인봉·만장봉·자운봉의우람한풍채를보는순간일거에압도되고만다.그렇다고도봉산을속정없고사람의발길을거부하는무뚝뚝한산으로생각하면오산이다.살다가지친사람들이찾아오면도봉산은여러능선과계곡들을내주며자상한맏형처럼위안을주기도한다.

도봉산은또바위를오르는전문산악인들에게는요람과도같은산이다.선인봉·만장봉·우이암등의암봉들은북한산의인수봉과더불어이땅에알피니즘을태동시킨주역이다.이처럼마음만먹으면훌쩍전철이나버스한번타고오를수있는도봉산을지척에둔수도권시민들은산복(山福)하나는타고났다.도봉산은이웃한북한산의명성에가려상대적으로덜알려졌다.

하지만최고봉인자운봉739.5m을비롯해남쪽으로만장봉·선인봉이병풍처럼둘러쳐져있고,서쪽으로는다섯봉우리로이루어진오봉의자태가탄성을자아내게한다.뿐만아니라문사동계곡·원도봉계곡·무수골계곡·오봉계곡등수려한계곡을품고있어일찍이금강산을빚어놓은것같다고해‘서울의금강’이라불렀다.서울의명산답게도봉산에는유서깊은사찰들과선조들의발자취가곳곳에남아있다.

사찰과암자만도망월사·회룡사·원통사·천축사·광법사·원각사등20개가까이된다.이중신라선덕여왕8년(639)에해호스님이왕명을받고창건한망월사는고승들을배출한사찰로유명하다.고려시대의혜거와영소대사,조선시대의천봉·영월·도암스님,그리고근대에이르러만공·한암스님등이거쳐갔다.우이암밑에있는원통사는신라경덕왕3년(863)에도선국사가창건한사찰로주변에갖가지형상의바위들이장관을이루고있다.

회룡사에는조선을창업한이성계와무학대사의전설이전해지고있다.도봉산계곡에는송시열·김수항·권상하·송준길·이재등조선시대의걸출한문인과유학자들이풍류를즐기며바위에새긴글씨들이남아있다.도봉서원앞에있는계곡의큰바위에는송시열이활달한필체로‘道奉洞門’이라는글씨를남겨탐방객들의눈길을끌고있다.이밖에조선후기화가김석신은이재학·서용보등과도봉산을산책하면서가진시모임을기념하기위해수묵화로그린<도봉첩>을남기기도했다.

◇다락원능선에서면불꽃같은선인봉·만장봉·자운봉의전경을한눈에조망할수있다.

●도봉산종주우이암~신선대~사패산푸른독을품은뱀이어라.


도봉산의등산로는거미줄처럼촘촘하다.등산지도를펼쳐놓고산길을이리저리엮으면등산코스만도아마50개는훨씬넘을것이다.이중남쪽우이암에서북쪽사패산까지이어지는도봉산종주는오봉을비롯해칼바위·선인봉일대를한눈에조망하며걸을수있는장쾌한눈맛이일품이다.하늘은금방이라도비를뿌릴듯한구름장을잔뜩매달고낮게떠있었다.

하지만며칠비가내린탓에콸콸소리를내며흘러가는발랄경쾌한개울물이잠시나마후텁지근한날씨를잊게해주었다.언제나그렇듯산행은처음엔힘들다가도한소끔땀이끓어오르고나면온몸이제대로풀리기시작한다.우이암매표소를지나한참올라가자독경소리가들렸다.낭랑한염불소리가퍼지는안개낀산속의정취는정신을몽롱하게만들었다.

물기를담뿍머금은채온몸이번들거리는나무들은거무칙칙한흉기처럼보이고,눈앞에불쑥나타났다가말없이안개속으로사라지곤하는등산객들은뭔가에홀린듯했다.하지만이런묘한기분도잠시뿐원통사와보문산장으로가는가파른오르막은두발을딛고서있는이곳이갈길이먼팍팍한이승이라는사실을일깨워주었다.

한됫박땀을흘리고나서도착한원통사.아담한경내에들어서자절집주변의기암괴석이눈길을끌었다.바위들하며절집분위기는마치불사를일으키기전인설악산의봉정암이나오세암에온것같은착각을들게했다.여기서보문산장은5분거리다.아무래도하늘이심상치않아보문산장에서쉬며날씨를지켜보기로했다.

‘북한산지킴이’로알려진산장관리인배용복씨가등산객들과막걸리를마시고있었다.낮술이라,그의깊은눈망울에평생을북한산에서보낸세월의더께가이끼처럼내려앉았다.보문산장옥상에매트리스를깔고누워흘러가는구름을바라보았다.무심한하늘,늦여름에이런심술을부리다니….오후접어들자하늘이조금밝아졌다.비를만나도어쩔수없는일.서둘러배낭을메고능선으로향했다.

우이암이‘어때,산은도봉산이최고지?’라며엄지손가락을치켜들었다.우이암능선에올라서자구름장에짓눌렸던마음이탁트였다.하지만사람의눈길은어찌이리경망스러울까.능선에만올라서면황급히목적지부터더듬는고약한버릇이나오니말이다.능선길따라이어가던눈길이선인봉일대에서멈추었다.바위봉우리는푸른숲을뚫고우뚝솟은흰성채와도같았다.

이성에들어가기위해선돈으로따질수없는통행료를지불해야한다.땀과열정,때로는상처를요구하기때문이다.구불구불오르락내리락하는도봉주능선길은푸른독을품고있는한마리뱀이어라.등산객들은몸에푸른독이퍼지는줄모르고푸른능선같은오이를꺼내깨문다.도봉산에처음오거나,고래힘줄같은감정을지닌사람일지라도나무계단전망대에서면파노라마처럼펼쳐진오봉·칼바위·주봉·자운봉·만장봉·선인봉의절경에저절로입에서탄성이터져나올것이다.

만약이런풍경앞에서무덤덤하다면생을반쯤포기한사람이리라.산길에서만난어느중년등산객은이런말을했다.‘전국명산을돌아다녔지만도봉산만한명산이없다.중국의산은바위가시커멓게죽었지만도봉산바위들은살아있다는느낌이든다.아내가옆에있으면귀한줄모르는것처럼사람들이도봉산이서울근교에있어명산이라는걸제대로못느낀다.’

칼바위부근에도착하자간혹햇살이비췄다.빠르게흘러가는먹구름사이로언뜻언뜻푸른하늘이보였다.하지만일기예보에따르면오늘밤에다시비가내린다고하니섣부른기대는아예하지않기로했다.리지꾼셋이칼바위암릉을스멀스멀내려오고있었다.아차하는순간에낭떠러지로떨어지는위험한구간인데도기본장비조차없이등반하는그들을보는내마음이오히려조마조마했다.

칼바위와관음암암릉구간을우회하니도봉산의명물중하나인주봉이나타났다.‘좋았던시절은가고’는바위에게도해당되나보다.색바랜낡은슬링과녹이슨링볼트들이박힌주봉이오늘따라왜이렇게쓸쓸하게보이는지.저크랙과직벽은지난날진한키스세례를퍼부었던군화와크레타슈즈의거친입술을잊지못할것이다.주봉을오르던그많던산꾼들은지금어디서무얼하고있을까.

뜀바위구간을돌아신선대정상에도착했다.도봉산의최고봉인자운봉은일반인들이쉽게오르지못해건너편신선대에서정상의기분을만끽하곤한다.신선대정상에서오늘걸어온도봉주능선을바라보았다.우이암은여전히조그만엄지손가락을치켜세웠고,북한산정상은비구름에휩싸여있었다.늦은시간인데도등산객들은거친숨을몰아쉬며신선대로올라왔다.

그들의얼굴표정에는정상을올랐다는어떤성취감이역력했다.속세에서는느낄수없는성취감이리라.
그래서도봉산은자신의정수리하나를인간에게내주며절망과좌절을품고오른자에게는희망과용기를불어넣어준다,또세상부러울게없다는자신만만한자에게는겸손의미덕을말없이일깨워주고있는것은아닐는지그런생각을해본다.


멀리북한산에서비구름이몰려오고있었다.산악경찰구조대로하산을서둘렀다.미리양해를구한구조대뒷마당에서비박할준비를끝내자빗방울이떨어졌다.잠시내리다가그칠비가아닐것같아서둘러배낭을꾸리고도봉산장으로후퇴했다.밤새잠자리를설칠만큼천둥을동반한많은비가아침까지내렸다.산장에서커피를마시는동안빗줄기가가늘어지고하늘이환해졌다.

일말의기대를걸고능선으로올랐다.궂은날씨에도포대능선으로가는등산객들이제법많았다.쇠난간이없었다면엄두도내지못했으리라.포대진지에서보이는사패산은주발을엎어놓은것같은모습이다.도봉산은북쪽끝에보물하나를숨겨놓고부지런한산꾼에게미끈한바위봉우리를하사하니그이름사패(賜牌)산이라칭할만하지않은가.

사패능선은산책길에가깝다.인적이뜸하고산길도잘나있어상념에잠기며걸을만하다.포대능선에서사패산으로가는길은고도가낮아지는산세인지라주로내리막이다.만약거꾸로올라간다면단전에힘좀집어넣어야하리라.이곳사패산도송추와의정부에서올라오는길이여럿있지만도봉산등산로만큼붐비지않는다.사패산정상의넓은바위에도착하자굵은비가쏟아졌다.

산불감시초소에서비를잠시피했다.골짜기에서피어오르는운무가도봉산을실루엣으로남기며산허리를감쌌다.그자태가설악산신선대에서보는용아장성능선이나공룡능선과비슷하다고말해도지나친비약은아닐것이다.능선을버리고안골로내려가는동안사람눈길이없어진운무는또누구의허리를감싸며농을던질것인가.

◇1966년10월의어느가을날,산악인들이주봉을하강하고있다.당시주봉은최고클라이머가되기위한관문이었다.


●선인봉,알피니즘의태동지,클라이머의요람


도봉산은북한산과더불어우리나라근대알피니즘의태동지로손꼽히고있다.도봉산의선인봉을비롯해만장봉·자운봉·우이암·주봉·오봉등지에서일찍이수직의세계를향한오름짓이시작되었다.이중높이약200m,폭이약500m에달하는선인봉은북한산의인수봉과함께쌍벽을이루는암벽등반의대상지다.선인봉초등반의역사는일제시대로거슬러올라간다.

하지만정설로받아들여질만한정확한기록이아직발굴되지않아의견이분분하다.선인봉초등반에대해선원로산악인손경석씨의저서<산또산으로>와<그산길그여로>에언급되어있다.손경석씨는<산또산으로>에서선인봉최초의암벽초등반기록은1926년8월임무·이야마등이오른서면코스라고하는데,이는흔히측면코스로불리는곳이다.

둘은십자가에서직등하지않고일단아래로압자일렌으로하강했다가올라가는것으로설명되고있으나하단부코스가확실치않다고적고있다.선인봉에관한‘초등반초록’과‘등산50년’에따르면1934년경성제대마에가와의제3코스(동측면),1937년김정태·엄흥섭·이시이요시오의정면벽(A코스),1938년엄흥섭·김정태의측면코스,1940년주형열·김병옥·채숙의남측면(하단부)등반이기록되고있다.

이처럼조선인과일본인사이에경쟁이붙었던선인봉등반은해방후한국전쟁이끝날때까지소강상태를보이다가1956년전담·조장희·고재경등이정면벽(B코스)을초등반하면서다시불이붙기시작해초등반의황금시기인1960년대를맞이하게된다.1960년선우중옥·이강호·홍순국의박쥐코스,1965년유창서·안영철·유기수의남면암릉,같은해6월조상규·백인섭·한덕정의서면양지길Y코스를개척하였다.

1966~67년백인섭·조상규·장길건의동남면표범길과허리길,1968년유기수·김종철의B코스지상1/2코스,1969년전병구·김인식·박창현·이상직의우측오버행코스등1970년대중반까지단위산악회와대학산악부등이주축이되어정면에정양길·영길·표범길·박쥐길·재원길·선인A·거미길·현암길을비롯해측면에선인B·요델버트레스·연대배첼로·청암길·은벽길·경송A·어센트등총30여개에달하는루트를개척해바야흐로암벽등반의전성기를누렸다.

이후에기존루트에서가지쳐나간변형루트와하드프리용루트들까지많이개척돼선인봉에나있는루트의정확한숫자를파악하기가쉽지않다.60,70년대에는인수파와선인파로양분되기도했다.선인파의대표적인산악회는요델·은벽·에코·어센트·서울·청화·경송·청암산악회등이손꼽히며,산악인으로는선우중옥·백인섭·이시구·허정식씨등이거론되고있다.

당시할머니가게를중심으로산악활동을한선인파의특징에대해산악인들은“보수적이었다”“인수보다바위가힘들어자부심을가졌다”고말하는가하면,또어느산악인은“첫바위와자신이속한클럽이어느쪽이냐에따라구분된것뿐”이라는등조금씩다른시각과견해를보여주었다.인수파·선인파의구분은1980년대에접어들면서점차사라졌다.

-글박성용기자·사진송은지기자/월간마운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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