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의등산로는거미줄처럼촘촘하다.등산지도를펼쳐놓고산길을이리저리엮으면등산코스만도아마50개는훨씬넘을것이다.이중남쪽우이암에서북쪽사패산까지이어지는도봉산종주는오봉을비롯해칼바위·선인봉일대를한눈에조망하며걸을수있는장쾌한눈맛이일품이다.하늘은금방이라도비를뿌릴듯한구름장을잔뜩매달고낮게떠있었다.
하지만며칠비가내린탓에콸콸소리를내며흘러가는발랄경쾌한개울물이잠시나마후텁지근한날씨를잊게해주었다.언제나그렇듯산행은처음엔힘들다가도한소끔땀이끓어오르고나면온몸이제대로풀리기시작한다.우이암매표소를지나한참올라가자독경소리가들렸다.낭랑한염불소리가퍼지는안개낀산속의정취는정신을몽롱하게만들었다.
물기를담뿍머금은채온몸이번들거리는나무들은거무칙칙한흉기처럼보이고,눈앞에불쑥나타났다가말없이안개속으로사라지곤하는등산객들은뭔가에홀린듯했다.하지만이런묘한기분도잠시뿐원통사와보문산장으로가는가파른오르막은두발을딛고서있는이곳이갈길이먼팍팍한이승이라는사실을일깨워주었다.
한됫박땀을흘리고나서도착한원통사.아담한경내에들어서자절집주변의기암괴석이눈길을끌었다.바위들하며절집분위기는마치불사를일으키기전인설악산의봉정암이나오세암에온것같은착각을들게했다.여기서보문산장은5분거리다.아무래도하늘이심상치않아보문산장에서쉬며날씨를지켜보기로했다.
‘북한산지킴이’로알려진산장관리인배용복씨가등산객들과막걸리를마시고있었다.낮술이라,그의깊은눈망울에평생을북한산에서보낸세월의더께가이끼처럼내려앉았다.보문산장옥상에매트리스를깔고누워흘러가는구름을바라보았다.무심한하늘,늦여름에이런심술을부리다니….오후접어들자하늘이조금밝아졌다.비를만나도어쩔수없는일.서둘러배낭을메고능선으로향했다.
우이암이‘어때,산은도봉산이최고지?’라며엄지손가락을치켜들었다.우이암능선에올라서자구름장에짓눌렸던마음이탁트였다.하지만사람의눈길은어찌이리경망스러울까.능선에만올라서면황급히목적지부터더듬는고약한버릇이나오니말이다.능선길따라이어가던눈길이선인봉일대에서멈추었다.바위봉우리는푸른숲을뚫고우뚝솟은흰성채와도같았다.
이성에들어가기위해선돈으로따질수없는통행료를지불해야한다.땀과열정,때로는상처를요구하기때문이다.구불구불오르락내리락하는도봉주능선길은푸른독을품고있는한마리뱀이어라.등산객들은몸에푸른독이퍼지는줄모르고푸른능선같은오이를꺼내깨문다.도봉산에처음오거나,고래힘줄같은감정을지닌사람일지라도나무계단전망대에서면파노라마처럼펼쳐진오봉·칼바위·주봉·자운봉·만장봉·선인봉의절경에저절로입에서탄성이터져나올것이다.
만약이런풍경앞에서무덤덤하다면생을반쯤포기한사람이리라.산길에서만난어느중년등산객은이런말을했다.‘전국명산을돌아다녔지만도봉산만한명산이없다.중국의산은바위가시커멓게죽었지만도봉산바위들은살아있다는느낌이든다.아내가옆에있으면귀한줄모르는것처럼사람들이도봉산이서울근교에있어명산이라는걸제대로못느낀다.’
칼바위부근에도착하자간혹햇살이비췄다.빠르게흘러가는먹구름사이로언뜻언뜻푸른하늘이보였다.하지만일기예보에따르면오늘밤에다시비가내린다고하니섣부른기대는아예하지않기로했다.리지꾼셋이칼바위암릉을스멀스멀내려오고있었다.아차하는순간에낭떠러지로떨어지는위험한구간인데도기본장비조차없이등반하는그들을보는내마음이오히려조마조마했다.
칼바위와관음암암릉구간을우회하니도봉산의명물중하나인주봉이나타났다.‘좋았던시절은가고’는바위에게도해당되나보다.색바랜낡은슬링과녹이슨링볼트들이박힌주봉이오늘따라왜이렇게쓸쓸하게보이는지.저크랙과직벽은지난날진한키스세례를퍼부었던군화와크레타슈즈의거친입술을잊지못할것이다.주봉을오르던그많던산꾼들은지금어디서무얼하고있을까.
뜀바위구간을돌아신선대정상에도착했다.도봉산의최고봉인자운봉은일반인들이쉽게오르지못해건너편신선대에서정상의기분을만끽하곤한다.신선대정상에서오늘걸어온도봉주능선을바라보았다.우이암은여전히조그만엄지손가락을치켜세웠고,북한산정상은비구름에휩싸여있었다.늦은시간인데도등산객들은거친숨을몰아쉬며신선대로올라왔다.
그들의얼굴표정에는정상을올랐다는어떤성취감이역력했다.속세에서는느낄수없는성취감이리라.
그래서도봉산은자신의정수리하나를인간에게내주며절망과좌절을품고오른자에게는희망과용기를불어넣어준다,또세상부러울게없다는자신만만한자에게는겸손의미덕을말없이일깨워주고있는것은아닐는지그런생각을해본다.
멀리북한산에서비구름이몰려오고있었다.산악경찰구조대로하산을서둘렀다.미리양해를구한구조대뒷마당에서비박할준비를끝내자빗방울이떨어졌다.잠시내리다가그칠비가아닐것같아서둘러배낭을꾸리고도봉산장으로후퇴했다.밤새잠자리를설칠만큼천둥을동반한많은비가아침까지내렸다.산장에서커피를마시는동안빗줄기가가늘어지고하늘이환해졌다.
일말의기대를걸고능선으로올랐다.궂은날씨에도포대능선으로가는등산객들이제법많았다.쇠난간이없었다면엄두도내지못했으리라.포대진지에서보이는사패산은주발을엎어놓은것같은모습이다.도봉산은북쪽끝에보물하나를숨겨놓고부지런한산꾼에게미끈한바위봉우리를하사하니그이름사패(賜牌)산이라칭할만하지않은가.
사패능선은산책길에가깝다.인적이뜸하고산길도잘나있어상념에잠기며걸을만하다.포대능선에서사패산으로가는길은고도가낮아지는산세인지라주로내리막이다.만약거꾸로올라간다면단전에힘좀집어넣어야하리라.이곳사패산도송추와의정부에서올라오는길이여럿있지만도봉산등산로만큼붐비지않는다.사패산정상의넓은바위에도착하자굵은비가쏟아졌다.
산불감시초소에서비를잠시피했다.골짜기에서피어오르는운무가도봉산을실루엣으로남기며산허리를감쌌다.그자태가설악산신선대에서보는용아장성능선이나공룡능선과비슷하다고말해도지나친비약은아닐것이다.능선을버리고안골로내려가는동안사람눈길이없어진운무는또누구의허리를감싸며농을던질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