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곬수.’선인봉앞에서이단어를되뇌어야한다면요델클럽을한번쯤생각지않을수없다.누구보다선인봉에깊이빠져살았지만기억하기도어려울만큼오랜동안그품을떠나살았던사람들.그들이다시돌아오고있다.선인봉은사람을집요하게하는마력이있다.인수봉이우리의가슴을한없이뛰게했다면,선인봉은미치도록그곳에빠져들게했다.
많은산친구들이젊은나이로세상을떠나가는동안에도요델식구들은선인봉의마력에서헤어날수없었다.그들은점점외곬수가되어갔으나그게바로운명이라면운명이었다.세월은흘러시간의힘에의해마력이풀리게되자요델식구들은소리없이선인봉을떠나갔다.그리고아주오랜동안잠을자기시작했다.
바람불고낙엽지는계절이수십번지나는동안에도잠은깨지않았다.얼마가지났을까.이들이문득일어났을땐세상이변하도록잠든사실조차잊고있었다.어느날과거의사실을기억해냈을땐이미흰머리흩날리는모습이되어있을뿐이었다.선인봉과요델의관계는끝난것일까.천만에!그것은성서의예시대로교제가끊긴것일뿐관계가끝난것은아니었다.
청춘을온전히받아주던바위는그자리에의연하게있었다.요델의전사들은해묵은장비를들고다시선인봉으로갔다.요델이선인봉의맹주가되도록한장본인백인섭도여느때와다른마음가짐으로그앞에섰다.40년이란세월이소리없이그앞으로흘러갔다.
표범길에요델의목소리가울려퍼진것은정말오랜만의일이었다.약속이나한듯요델식구들은또다시예의그일을시작했다.첫째마디의몸짓을기억해용감하게앞서나가는도종득씨.그리고그에이어줄을함께묶은회원들이스스로말한다.“어!쉽지않네.”선인봉에숱한길을만들었어도떨어져본기억이흔치않은백인섭씨도표범길이예전보다어려워졌음을실감한다.
하켄에의지하여넘던곳이니첫마디부터미끄러지는것이이상한일이아니다.추락에주눅들지않을만큼마음은그대로이건만몸이그만큼변한것뿐이다.도종득과김영욱이루트를돌파해가는동안백인섭,강구영,이건영,신흥수,나경봉,김한경씨등이차례로등반을시작했다.요델에괴짜들이많다고하지만그런것말고도남다른점하나를발견한다.
오늘참가자들모두가50세를넘겼으며그나이면워킹하면서막걸리나마셔도좋을법한일이지만,다시또바위에오를수있다는것은분명평범한일이아니다.유효기간이오늘뿐이라해도그건분명다른점이었다.그리고그것은또다른가능성하나를잉태하는일이었다.1963년5월에창립을본요델의창작활동은이듬해부터시작되었다.
1964년양지길개척을신호로1965년허리길,1966년표범길,1967년설악산범봉과석주길,1968년칠형제봉,1968년만장봉그림길,측면Y길,1969년범봉연봉,1971년요델버트레스,1972년동계용아장성,1973년선인봉막내길,1974년설악산흑범길,1975년염라길등.열거하기힘들정도로70년대중반까지한국의주요한바윗길들이요델의손에의해그려졌다.
시대가만들어준성과라하기엔너무나많은열정과땀이그속에녹아들어갔다.60년대초까지선인봉엔전면A,B,C와박쥐길그리고남면과측면에각기하나씩루트가있었다.6개의루트만존재하던당시엔바위를하는자체가특별한일이었고바윗길을개척하는것은물론선구적인일이었다.백인섭씨는허리길을개척한다음해인1966년경부터표범길을주목했다.
그리고연결되지않은선을줄곧관찰했다.1966년5월22일.그불연속선을잇기위한작업이시작되었다.모든일은불확실했고어떻게올라야하는지해답은없었다.1피치상단에서진자횡단으로테라스로연결하는일그리고언더크랙을지나변형침니에서의동작전환등막연하지만허리길개척당시만났던기적같은바위구멍처럼스탠스와홀드들이그곳에도있을것같았다.
백인섭과강길건,이희구,조상규등이먼저개척의첫발을뗐다.두동의로프와하켄17개,볼트5개,카라비너10개,사다리6개를갖고출발점에섰는데우연치않게작은사건이발생했다.하켄을박기위해첫해머를치는순간자루가부러져나갔다.불안했지만그러나이것은나쁘지않은징조였다.만일바위중간에서이런상황이벌어졌다면얼마나낭패스러운일인가.첫번째난관을돌파하고4m위의나무가있는턱에올라섰다.
거기서위로쭉뻗은크랙은레이백이가능한멋진선이지만흙이꽉차있어손톱으로후벼파면서오를수밖에없었다.크랙이끝날때는손톱에서피가흘렀고아파서더이상오를수가없었다.할수없이하켄을설치하고조심스럽게후퇴했다.다음주말이희구씨의선등으로다시그곳까지갔다.지난주에오른곳에서윗부분의크랙이까다로워앵글하켄을쳐야했다.
그러나크랙이막혀끝만살짝박을수밖에없었다.그뒤로오르던백인섭씨가미끄러지면서하켄이빠졌고허벅지가바위에부딪쳤다.다행히큰부상은없었다.하지만그런끝에1피치에튼튼한확보하켄을설치하는데성공할수있었다.그러나그보다큰수확은석양빛에빛을발하는보석같은스탠스의발견이었다.그것은1피치와2피치를연결하는절대적인끈이었다.
1966년5월29일,백인섭,강길건,정지혜등이다시등반을시도했다.1피치상단에박은하켄에줄을걸고진자운동을시도한끝에비로소2피치시작지점의바위턱을잡을수있었다.그곳에는예상대로레이백이가능한크랙이형성되어있었다.그러나처음부분은손가락조차들어가지않을정도로좁았다.앵글하켄한개를박고몸을허공에노출시키며,레이백으로오르다가변형침니로자세를바꾸어스탠스위에올라섰다.
그곳에는하켄을박을수있는크랙이이상적인각도로형성되어있었다.뚜껑덮인바위속에돌출된크랙은3~4cm만안쪽에있어도해머질이불가능했다.해머가위턱에걸리기때문이었다.이것은마치도봉산산신령이딱필요한만큼만쓸수있도록밖으로뽑아놓은것같았다.그하켄은표범길을완성시키는데아주중요한실마리였고어떠한추락도안전하게잡아줄확보점이었다.
언더홀드는예상대로아주양호한형태였다.하지만몇스텝을오르자다시난관에부딪혔다.주걱처럼불거진부분이너무나얇고바위가삭아서흔들거렸다.잡으면떨어져나갈듯바위가불안했다.여기에한두개의확보지점을더마련해야하는데유일한대안은대형봉봉하켄이었다.당시고대산악부OB인장영환씨가대형두랄루민봉봉하켄을갖고있다는것을알고서울공대산악부홍종만씨를통해그것을빌릴수있었다.
7월3일,홍종만,오준보와함께등반을시작했다.신기하게도불연속선이끝나는지점에는항상어떤형태로든돌파구가마련되어있었다.문제의언더홀드를돌파하는데는봉봉하켄이바로해결책이었다.3피치는예상보다양호한상태였다.굴곡이적당하고크랙은훌륭할정도로형성되어있었다.크랙이끝나는지점에볼트를설치하기위해서앵글하켄을박았다.
크랙이막혀반도들어가지않았지만불안한대로균형을유지하면서볼트작업을시작했다.그런데20여분동안구멍을뚫었을때사다리를건앵글하켄이밑으로쑥밀리는것을느꼈다.놀란나머지얼른드릴부터뽑았다.드릴을떨어뜨릴경우를대비해서손가락에줄을매고작업을했기때문이다.그런데드릴과해머를색에넣는순간하켄이쑥빠지면서슬립을시작했다.
그의몸은순식간에미끄러져10m아래있던세컨드인송종만의옆을지나갔다.“앙카”하고내지르는비명에놀라황급히줄을잡았지만제동이될리없었다.한참을더떨어지다가움푹파인바위속에서덜컥멎었다.그러나다행스럽게도아무런사고가없었다.결국그곳을다시올랐고볼트작업을마무리지을수있었다.
마지막볼트에서10시방향으로이어지는구간은크랙이없는깨끗한페이스였다.그러나등반은역시쉽지않았다.페이스의등반가능성판단은겨울로미루게되었다.눈이바위에붙어있다면완만한경사이며사람이설수있다는생각때문이었다.그해겨울어느날,바라던상태의눈이내렸고전면샘터에서그부분을살폈다.
사면에는하얀눈이발자국처럼쌓였고전체적으로급사면이지만가능성은확인되었다.그리고1966년이흘러갔다.이듬해인1967년5월,다시등반이시작되었다.지금껏절묘한해결책이등장되어루트를이어간것에비해나머지는그리어려운작업이아니었다.겨울에확인한대로마지막슬랩은돌파되었고.개척을시작한지1년만에허리길로연결된4피치크랙구간을이어드디어표범길이완성되었다.
그런데그무렵,예기치못한사건이하나발생했다.ROTC로전방에근무하던조상규씨가돌연세상을떠난것이다.조상규는백인섭의악우이자요델의전성기를만든장본인이었다.그의별명은‘표범’이었다.그리하며2년의각고끝에선인봉왼쪽에그어진그길은조상규를영원히기억하기위해‘표범길’이라명명되었다.
노출된인수봉과숨겨진곳이많은선인봉의형태를두고흔히들남성과여성성에비유한다.페이스가많은인수봉은밸런스,크랙이발달한선인봉은힘이필요하다는말도거기서생겨났다.하지만현대등반은그런형태적기준을이미뛰어넘는다.바위로접근하는시간은짧게난이도는어렵게등반루트도변하고있다.원피치루트와볼더링이거기에부합한다.
그러나이런흐름속에서도아직껏
술잔을기울이며하던말대로표범길은애초부터기인이아니면만날수없는길이었는지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