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클라이머의삶]“산에서‘나’라는존재를찾았어요”
쳇바퀴돌아가듯하면서도스트레스의연속인사회생활,빠듯한살림살이.많은가장들이겪고있는생활일것이다.이러한삶을살다보면순간순간자신의정체성을잃어버리는경우가있다.김성기(金成基·45)씨역시그런삶을경험한사람이다.1986년5월결혼하기에는어린스물두살나이에두살연상인강연미(47·유치원교사)씨를아내로맞았다.
군복무를막마치고직장생활을하고있던터라그렇지않아도정신없이살던시절이었다.좁디좁은집에서신혼살림을차리고,그해말첫아이가태어나자더바빠졌다.무엇보다가족을먹여살려야한다는가장으로서의책임감때문이었다.그러던어느날불현듯자신만의공간이그리워졌다.도대체나는누구인가싶어졌다.
“북한산에갔어요.너무좋았어요.그곳에서나를찾을수있었고요.내가올라선산전체가몽땅내가누릴수있는공간이었어요.그날이후산에다니기시작했어요.산에오르며마음을닦는거죠.오르막에선누구나힘들잖아요.그러나언젠가편안한내리막이나타날거다생각하면마음이편해졌어요.해맞이무박산행을할때면희망이넘쳐요.벌겋게달아오른,커다란아침해를보면서희망과꿈에부풀었어요.”
이렇게산에빠져든그는1994년코오롱등산학교정규반을통해정식으로전문등반에입문하고,2004년23년간다니던직장을그만둔이후5년째실내인공암장을운영하고있다.그는“살아온날중지금이가장행복하다”고자신있게말한다.3월18일오후2시30분,WBC한·일야구로온국민이열광하고있던시간.그런데은평구대조동의도로변건물지하에위치한실내인공암장서니사이드는딴세상이었다.
중년의남녀3명이스트레칭에여념이없고,관장인김성기씨는암장홀드안전상태를확인하고있었다.
“여기계신분들이나저나산밖에몰라요.여기도산이에요.시원찮은스피커지만산노래도나오잖아요.마음이가라앉으면산새소리도들릴거예요.(웃음)”그는5년전까지만해도평범한샐러리맨이었다.꽤이름난여성화전문제조업체개발실팀장이었다.그러나그는젊은날을몽땅쏟아부은직장을과감하게뛰쳐나왔다.
“회사사정이어려워지니까경영진이직원정리에나섰어요.처음엔말썽꾸러기나부양책임이적은총각위주로했는데2차,3차계속요구하는거예요.그러더니개발실직원들까지줄이라는거예요.차마칼을못들이대겠더라고요.차라리내가나가는게낫겠다싶었어요.그러면밑에사람두세명은지낼수있을테니까요.”
쉽지않은결정이었다.그러나한편으로는시원했다.이제부터라도하고픈일을하면서살아야겠다마음먹었기때문이다.“늘부러웠던게주중산행이었어요.휴일이면인수봉이나선인봉같은암벽에는사람이정말많아요.마음먹은바윗길한번오르려면새벽부터서두르거나아니면바위밑에서한참기다려야하고.한가하고호젓한등반을하고싶었던거예요.그게가능해졌으니얼마나좋았겠어요.”
김성기씨는첫애가태어난이듬해인1987년부터도보산행에맛을들였다.재미있었다.봉우리하나올라설때마다새로운세상이맞아주었고산을내려설때면희망에가득찼다.게다가1990년직장선배는새로운즐거움을얹어주었다.바위였다.“바위해볼래하기에좋다고했죠.처음간바위가불암산이었어요.
바위에다가서니까한번올라가보라고하더군요.그냥쑥올라가버렸죠.그후그선배가여기저기데리고다녔어요.서니사이드에서멀리떨어지지않은북한산수리봉도그중자주찾던바위예요.지금은바위면이반질반질하지만그땐정말바위면이살아감촉이좋았어요.”그렇게바위맛에빠져이태쯤지낼때가슴철렁한일을겪었다.로프하강중일어난추락사고였다.
“저희팀은아니었는데도정말많이놀랐어요.15m쯤떨어졌으니많이다쳤죠.그런데그를위해해줄수있는일이아무것도없는거예요.그사고로마구잡이식으로산에다니다보면큰일나겠다하고깨달은거예요.”김성기씨는1994년정규반19기로코오롱등산학교에입교했다.지금은북한산백운산장이교장이자숙소지만당시엔북한산대피소앞마당에서토,일요일6주간캠핑생활을하면서교육을받았다.
“그때처음으로텐트생활을해봤어요.조별로공동생활을하자니챙겨야할게많은데도즐거웠어요.토요일밤산노래강좌는정말색달랐어요.등산에도이런문화가있구나싶었으니까요.암벽교육중그전에무심코넘겼던것들에대해깨달을때면정말기뻤어요.인수봉도처음올랐어요.함께바위를탄직장선배는인수봉가자는말만꺼내면대꾸를안하는거예요.가본적이없었던거죠.”
등산학교를마친그는선배기수들이주축이되어활동하는산바라기산악회에들어가면서더깊숙이산에빠져들었다.‘산바라기’란‘산만바라보며살자’는의미.산에홀린사람들의모임이었다.그런골수산꾼들과정말미친듯이다녔다.그해겨울빙벽반까지마친그는봄·여름·가을엔바위,겨울엔얼음에서살다시피했다.
그의등반열정은1997년미국의요세미티거벽으로뻗어나갔다.코오롱등산학교동문원정이었다.등반팀3개조중김성기씨조는엘캐피탄와하프돔북벽이목표였다.수직고1,000m높이의엘캐피탄을대표하는노즈등반은7피치에서우박을맞고막을내려야했다.“원정계획을세우면몇달전부터작업에들어가요.
“부가부첫등반때는정말고생했어요.밭갈고논갈았다는표현그대로였어요.밑에서보면수직벽인데붙으면오버행이었어요.확보물하나박을때마다주변의이끼를다떨어내야했고,그이끼와흙을다뒤집어쓰면서등반해야했으니까요.800m벽오르는데1주일이나걸렸어요.그래도국산장비로대원6명이모두정상에올라선등반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