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山을 통해 제2의 인생 사는 김성기씨 *-

[이클라이머의삶]“산에서‘나’라는존재를찾았어요”

山을통해제2의인생사는김성기씨

▲<사진=허재성기자>

쳇바퀴돌아가듯하면서도스트레스의연속인사회생활,빠듯한살림살이.많은가장들이겪고있는생활일것이다.이러한삶을살다보면순간순간자신의정체성을잃어버리는경우가있다.김성기(金成基·45)씨역시그런삶을경험한사람이다.1986년5월결혼하기에는어린스물두살나이에두살연상인강연미(47·유치원교사)씨를아내로맞았다.

군복무를막마치고직장생활을하고있던터라그렇지않아도정신없이살던시절이었다.좁디좁은집에서신혼살림을차리고,그해말첫아이가태어나자더바빠졌다.무엇보다가족을먹여살려야한다는가장으로서의책임감때문이었다.그러던어느날불현듯자신만의공간이그리워졌다.도대체나는누구인가싶어졌다.

▲1김성기씨가토왕성빙폭상단등반중환한미소를짓고있다.2설악산노적봉‘즐거운편지’길등반.32007년알프스몽블랑산군의코스믹리지등반.4인수봉귀바위등반.

“살아온날중가장행복한나날”

“북한산에갔어요.너무좋았어요.그곳에서나를찾을수있었고요.내가올라선산전체가몽땅내가누릴수있는공간이었어요.그날이후산에다니기시작했어요.산에오르며마음을닦는거죠.오르막에선누구나힘들잖아요.그러나언젠가편안한내리막이나타날거다생각하면마음이편해졌어요.해맞이무박산행을할때면희망이넘쳐요.벌겋게달아오른,커다란아침해를보면서희망과꿈에부풀었어요.”

이렇게산에빠져든그는1994년코오롱등산학교정규반을통해정식으로전문등반에입문하고,2004년23년간다니던직장을그만둔이후5년째실내인공암장을운영하고있다.그는“살아온날중지금이가장행복하다”고자신있게말한다.3월18일오후2시30분,WBC한·일야구로온국민이열광하고있던시간.그런데은평구대조동의도로변건물지하에위치한실내인공암장서니사이드는딴세상이었다.

중년의남녀3명이스트레칭에여념이없고,관장인김성기씨는암장홀드안전상태를확인하고있었다.

“여기계신분들이나저나산밖에몰라요.여기도산이에요.시원찮은스피커지만산노래도나오잖아요.마음이가라앉으면산새소리도들릴거예요.(웃음)”그는5년전까지만해도평범한샐러리맨이었다.꽤이름난여성화전문제조업체개발실팀장이었다.그러나그는젊은날을몽땅쏟아부은직장을과감하게뛰쳐나왔다.

“회사사정이어려워지니까경영진이직원정리에나섰어요.처음엔말썽꾸러기나부양책임이적은총각위주로했는데2차,3차계속요구하는거예요.그러더니개발실직원들까지줄이라는거예요.차마칼을못들이대겠더라고요.차라리내가나가는게낫겠다싶었어요.그러면밑에사람두세명은지낼수있을테니까요.”

쉽지않은결정이었다.그러나한편으로는시원했다.이제부터라도하고픈일을하면서살아야겠다마음먹었기때문이다.“늘부러웠던게주중산행이었어요.휴일이면인수봉이나선인봉같은암벽에는사람이정말많아요.마음먹은바윗길한번오르려면새벽부터서두르거나아니면바위밑에서한참기다려야하고.한가하고호젓한등반을하고싶었던거예요.그게가능해졌으니얼마나좋았겠어요.”

김성기씨는첫애가태어난이듬해인1987년부터도보산행에맛을들였다.재미있었다.봉우리하나올라설때마다새로운세상이맞아주었고산을내려설때면희망에가득찼다.게다가1990년직장선배는새로운즐거움을얹어주었다.바위였다.“바위해볼래하기에좋다고했죠.처음간바위가불암산이었어요.

바위에다가서니까한번올라가보라고하더군요.그냥쑥올라가버렸죠.그후그선배가여기저기데리고다녔어요.서니사이드에서멀리떨어지지않은북한산수리봉도그중자주찾던바위예요.지금은바위면이반질반질하지만그땐정말바위면이살아감촉이좋았어요.”그렇게바위맛에빠져이태쯤지낼때가슴철렁한일을겪었다.로프하강중일어난추락사고였다.

“저희팀은아니었는데도정말많이놀랐어요.15m쯤떨어졌으니많이다쳤죠.그런데그를위해해줄수있는일이아무것도없는거예요.그사고로마구잡이식으로산에다니다보면큰일나겠다하고깨달은거예요.”김성기씨는1994년정규반19기로코오롱등산학교에입교했다.지금은북한산백운산장이교장이자숙소지만당시엔북한산대피소앞마당에서토,일요일6주간캠핑생활을하면서교육을받았다.

“그때처음으로텐트생활을해봤어요.조별로공동생활을하자니챙겨야할게많은데도즐거웠어요.토요일밤산노래강좌는정말색달랐어요.등산에도이런문화가있구나싶었으니까요.암벽교육중그전에무심코넘겼던것들에대해깨달을때면정말기뻤어요.인수봉도처음올랐어요.함께바위를탄직장선배는인수봉가자는말만꺼내면대꾸를안하는거예요.가본적이없었던거죠.”

등산학교를마친그는선배기수들이주축이되어활동하는산바라기산악회에들어가면서더깊숙이산에빠져들었다.‘산바라기’란‘산만바라보며살자’는의미.산에홀린사람들의모임이었다.그런골수산꾼들과정말미친듯이다녔다.그해겨울빙벽반까지마친그는봄·여름·가을엔바위,겨울엔얼음에서살다시피했다.

악수북벽에서절친한동기와후배잃어

그의등반열정은1997년미국의요세미티거벽으로뻗어나갔다.코오롱등산학교동문원정이었다.등반팀3개조중김성기씨조는엘캐피탄와하프돔북벽이목표였다.수직고1,000m높이의엘캐피탄을대표하는노즈등반은7피치에서우박을맞고막을내려야했다.“원정계획을세우면몇달전부터작업에들어가요.

“부가부첫등반때는정말고생했어요.밭갈고논갈았다는표현그대로였어요.밑에서보면수직벽인데붙으면오버행이었어요.확보물하나박을때마다주변의이끼를다떨어내야했고,그이끼와흙을다뒤집어쓰면서등반해야했으니까요.800m벽오르는데1주일이나걸렸어요.그래도국산장비로대원6명이모두정상에올라선등반이었어요.

▲1영동빙벽장에서진행된코오롱등산학교동계반에참가한수강생과함께빙벽을오르는김성기씨.(오른쪽)21999년캐나다원정중부가부정상에올라선산바라기산악회회원들.왼쪽부터송해범,고박기정,김성기,박춘경,박춘길씨.3김성기씨가정규반교육중수강생에게등반요령을가르치고있다.

등산학교강사로12년째후배산악인교육

김성기씨는키르기즈스탄의악수북벽등반후에도알프스와중국쓰촨성스쿠냥등한두해마다한번씩해외고산을찾으면서도개척등반에도힘써왔다.2004년에는코오롱등산학교강사진의설악산장군봉남서벽개척등반에참가하고,장군봉맞은편유선대에‘그리움둘’이란암릉길도냈다.2006년에는설악산토막골상단에형제봉리지와유선대암벽에이륙공천등반로도개척했다.

장군봉남서벽과유선대암릉은휴일이면줄을서야차례가올만큼인기만점의길들이다.“장군봉을개척하다가멋진암릉이눈에띄었어요.그래서함께등반하던원종민형한테‘저기다길내도되겠다’고얘기했더니손도대지말라는거예요.우리산악회거라면서말이에요.악수에서사고를당한산우들을위한추모등반로를내고싶다니까양보하더군요.그래서이름을‘그리움둘’이라고지은거예요.

형제길요?말도마세요.길을내자마자사람들이많이찾아유선대와마찬가지로정식암릉길이되려니기대했는데,글좀쓴다는사람이형제봉암릉에서산양똥이나왔다는글을신문에올리는바람에공단에서개척자세사람에게50만원씩벌금을물리고,확보용을박아놓은볼트행거도뽑아내야했어요.유선대와마찬가지로외설악조망이멋진암릉인데정말아쉬워요.등반대상지를넓힐기회이기도했는데요.”

김성기씨는본인의등반못지않게등반교육에열의를다하고있다.그는1997년여름요세미티원정을함께나간이용대코오롱등산학교교장에게강사로발탁되어그해가을부터후배산악인들의교육에열정을쏟고있다.“등반실력이시원찮았을텐데이용대교장선생님께서잘봐주셨던것같아요.누구를가르친다는게너무도즐거워요.저역시배우는것도많고요.

IMF이후연령제한이없어지면서등산학교에들어오는분들의나이도많아졌어요.대부분사회경험이많은분들이에요.그래서배울것도많아요.또가르치면서새삼스레깨닫는것도많고,교육생을통해산(山)열정이더욱뜨거워지곤해요.그러고보니벌써12년째네요.처음엔보조강사에뒤치다꺼리하는게제역할이었는데말이에요.지금은정규반8개조중4조나5조담임강사예요.1조담임강사가최고참이에요.그정도면제위치가어느정도인지아시겠죠.아무튼동료강사중한명이남들가르칠때가가장행복해보인데요.”

지금군복무중인둘째민주군역시코오롱등산학교를나왔다.

“강요한게아니에요.민주가해보고싶다고해서한거예요.모르는사람가르칠때는아무렇지않더니내아이는다르더라고요.다른조에서교육을받는데도아이가바위를오르는모습이눈에들어올때면속으로‘야임마,다리를쭉뻗어야지’‘어어,저러면떨어지는데’하면서외쳐요.졸업하면열심히다닐줄알았는데그후로는산에가겠다는소릴한번도안했어요.질렸나봐요.집사람도한동안워킹산행을같이했는데고소공포증때문에아예안다녀요.평범한능선에서도밑을바라보지못할정도로심하니까요.”

“서니사이드는제게천국이에요”

김성기씨는봄·여름정규반과기초반외에여름암벽반,겨울빙벽반등코오롱등산학교전과정에참가하고,주중에는코오롱스포츠관련등산교실강의도맡고있다.지난2년간은강서구방화동집근처의마곡레포츠센터인공암장에도1주일에3일씩나갔다.주로지역주민들을대상으로하는스포츠클라이밍교육이었다.

“아이들다학교가고나면얼마나무료하겠어요.우울증걸린주부도있었어요.그런데운동하면서체력도좋아지고성취감을느끼면서밝아지는거예요.한창재미붙인주부손에이끌려나온남편들도꽤됐어요.등반만큼건강에도움이되는운동은없는것같아요.현대인들의병이란게거의다영양과다섭취로인한것아니겠어요.

그런현대인들이몸에무리를주지않으면서할수있는최고의운동이스포츠클라이밍이자등산인것같아요.”지역주민을대상으로하는등반교육이보람있는일이었지만계속할수는없었다.무엇보다새로운인생을꿈꾸며마련한보금자리관리에소홀해졌기때문이다.그래서지난2월말로그만두었다.“주말에도전화받고달려올때가있어요.

특히수리봉에갔다가날씨가나빠등반을포기하는대신실내암장을찾는사람들이지요.그래서회원가운데수리봉파들도꽤많아요.요세미티에있는캠프4(camp4)는따스한햇살이내리쬐는곳이란의미에서서니사이드(sunnyside)라고도불려요.거기에서산이라는매개체를통해나라와인종을초월해어울리는모습이너무도좋았어요.

암장이름을서니사이드라지은것은서로다른사람들이모여즐겁게등반했으면하는바람에서예요.그런데마곡인공암장에시간을많이뺐기다보니서니사이드에소홀해질수밖에없었어요.그래서초심으로돌아가야겠다고생각한거예요.”김성기씨는올여름엘캡노즈와하프돔북벽에다시도전한다.루트도같다.12년전매끄럽게마무리하지못한루트를이번에끝내야겠다는마음에서다.

“사회생활할때보면학연과지연이여러곳에서작용해요.산은달라요.모든사람에게공평해요.출발도같고노력한만큼오를수있잖아요.사회도그러면좋겠는데.그런사회는오지않겠죠.(웃음)올여름등반할루트는12년전과같아요.너무빡센데가면고생만하고재미가없어요.그러고나서등반을그만두는사람도많고요.요세미티를목표로서니사이드에서2년간훈련했어요.물질적인면만아니라면서니사이드는제게천국이에요.좋잖아요.산음악이잔잔하게나오는나만의공간에서몰입하며오름짓하는게.무엇보다내가살아있다는사실을깨달을수있잖아요.”

-글한필석차장/월간산에서-

▶소속김성기씨
실내암장서니사이드대표
산바라기산악회
코오롱등산학교강사

▶등산관련자격
경기지도자2급
한국스포츠경영지도자

▶등반및대회수상경력
1997년미국요세미티엘캐피탄등반
1999년캐나다부가부등반
1901년캐나다부가부등반
2002년이탈리아돌로미테등반
2004년설악산장군봉개척등반
설악산유선대그리움둘리지개척
2005년키르기즈스탄악수북벽등반
2006년설악산형제봉리지·유선대이륙공천개척
2007년중국스쿠냥빙벽등반
유럽알프스원정
2008년알프스몽블랑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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