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의 4,000m급 명봉] [7] 폴룩스 *-

[알프스의4,000m급명봉][7]폴룩스

4,000m급연봉속에서도독야청청한봉우리
브라이트호른고개~남서릉~정상~서측면루트

지난여름,브라이트호른고개(BreithornPass·3,824m)의눈밭에서5일간묵으며알프스의4,000m급봉우리7개에올랐다.그중마지막으로오른봉우리가폴룩스(Pollux·4,092m)였다.체르마트(Zermatt)가있는발래(Valais)산군의남측경계선,즉스위스와이탈리아두나라의국경선을이루는4,000m급주능선에위치한이봉우리는우리가앞서오른카스토르(Castor·4,226m)와브라이트호른(Breithorn·4,164m)중간에있다.

브라이트호른에서몬테로자(MonteRosa·4,634m)까지이어진거대한국경능선상에위치하지만,베라(Verra)빙하에서보는폴룩스의모습은브라이트호른능선상의4,000m급다섯봉우리들과는달리설원위에홀로우뚝선단일봉우리다.어디서보든의연한4,000m급봉우리의위엄을갖추었으며,등반또한어렵지않아많은알피니스트들의사랑을받고있다.

▲정상부설릉을오를즈음동쪽에서구름이몰려오기시작했다.
이틀만이었지만캠프에는오랜만에활기가넘쳤다.체르마트에다녀온남동건선배의쾌활함이주원인이었다.캠프에남은이들에겐무엇보다그의보급품이반가웠다.싱싱한과일에군침이도는빵과고기들이텐트바닥에펼쳐졌다.그리고잠시나마잊고지냈던세상소식들로캠프에는금방화기애애한분위기가넘쳐났다.텐트속에서만은마치학창시절동계설악산의어느골짜기에와있는듯한기분이었다.

가장일반적인남서릉루트택해

텐트밖설원에는여전히바람이심했다.칼바람에알궁뎅이가베일까봐볼일까지미적일정도였다.그러나부지런함이몸에밴임덕용선배는눈삽으로텐트바람막이공사에분주했다.그렇게밤은깊어갔다.다음날새벽이었다.맑았던전날과는달리하늘에는구름이자욱했다.마지막등반이라미룰수는없었다.이미폴룩스를오른임선배만빼고우리셋(남동건선배,필자,후배나현숙)은브라이트호른고개의캠프를출발했다.후배는두번째오르는셈이었는데,기꺼이우리와동행했다.

희뿌연새벽대기를가르며베라빙하상단의눈밭을가로질렀다.날씨가좋았던전날에비해빙하에는사람들이많지않았다.1시간쯤빙하위눈밭을걸었다.곧폴룩스어귀에닿을즈음.이제껏잘걷던남동건선배의발걸음이무겁게만보였다.천천히느긋느긋걷고또걸었다.이제태양이떠남쪽의이탈리아쪽낮은산들에햇살이닿고있었다.우리가걷고있던베라빙하는동쪽의카스토르에가려태양이뜨려면1~2시간은더있어야했다.

▲1남서릉의크럭스바위구간에는이렇게쇠사슬이설치되어있다.2베라빙하를가로질러전방에보이는폴룩스로향하고있는일행.
시간의흐름에따른주변풍광의변화에남선배는민감한반응을보였다.아무래도자신이없는표정이었다.급기야발걸음을멈추고말했다.자신이계속따라붙으면시간이너무지체될테니포기하겠다고.알프스등반경험이누구보다많은그가이렇게쉽게포기하는게미덥지않아재차함께오르자권했지만고개를가로저었다.할수없이필자와후배는그와헤어졌다.조심해서다녀오라는남선배의말을뒤로하고우리는발걸음을재촉했다.

곧폴룩스의남서릉아래에도착했다.남서릉은폴룩스를오르는가장일반적인루트다.물론이능선좌측의서측면도비교적쉬워이용하는경우가있지만남서릉에비해등반중에대하는주변풍광이못하다.그리고서면은눈이많이내린후에는눈사태위험마저있기에남서릉이안전하다.

능선어귀에도착한우리는곧장등반채비를했다.워킹용폴을접어넣고피켈을집어들었다.배낭에자일은넣어왔지만안자일렌은하지않기로했다.PD+급루트라충분히확보없이오를수있다는믿음이서로간에있기때문이다.

처음한동안은설사면으로이어진작은안부로올랐다.이윽고바위들이드러난암릉에올라섰다.잡석이여기저기얹혀있는바위들을올랐다.등반은어렵지않았다.바로뒤에는60세가넘은듯한노등반가셋이자일확보를하며오르고있었다.그들은등반자세가굼뜨긴하지만차분히서로를확보하며오르는모습이보기좋았다.그들너머로베라빙하아래의이탈리아아오스타계곡이아침햇살에깨어나고있었다.

어렵지않은바위구간을계속해서올랐다.피켈이며아이젠이바위면을할퀴는소리가요란했다.그소리에폴룩스가깨어난듯어느덧햇살이능선에닿기시작했다.바로그즈음세산악인이안자일렌을하고내려오고있었다.가이드한명이손님둘을데리고하산중이었다.그들은영국인이었다.

전반부는쉬운암릉,후반부는칼날설릉

▲노등반가셋이남서릉초입을오르고있다.뒤로아오스타계곡이펼쳐져있다.

능선상의어렵지않은바위지대가한동안이어지더니루트는서쪽으로방향을튼다.이제부터외길이다.앞서오르는두명의산악인이있지만그들을앞질러가파른바위구간에설치된쇠사슬을움켜잡고올랐다.뒤따르는그들은중년의부부산악인이었다.가만히보니전날브라이트호른고개의설사면에서본적이있었다.

시간에쫓기지않는등반이라뒤따르는그들의모습을카메라에담으며인사를나누었다.프랑스인인그들은리옹인근에살며휴가차등반중이라했다.전날밤은로치아네라(RocciaNera·4,075m)아래의로치에볼랑비박산장(RossieVolanteBivouacHut·3,750m)에서자고왔다고했다.

가파른바위구간군데군데쇠사슬이설치되어있었지만그둘은서로자일확보를철저히했다.쉽다며자일확보없이따로오르고있는우리에비해안전의식이높은셈인데,이것은유럽산악인들의일반적인모습이다.분명본받을점이지만좀체지켜지지않는다.

이제가파른바위구간을통과해약4,000m지점의바위언덕에이르렀다.동쪽바위절벽위에아기예수를안고있는성모마리아상이우리를반겼다.우리키보다훨씬큰4~5m높이의청동상이다.남쪽인이탈리아의아오스타계곡을향해있는것으로보아이탈리아인들이세운게분명해보인다.
짙게피어오르는구름과카스토르의정상능선을배경으로한성모마리아상앞에서니왠지마음이숙연해졌다.신자가아닌필자가기도할내용이라곤그저무사등반을기원하는정도였다.아마이곳을오르는거의모든이들도그런마음일터.

아직정상은멀었다.이제부터눈덮인능선길이다.많은이들이오르내린발자국이설사면에길을만들어놓았다.어렵지않았다.차츰정상에다가가며시간이흐르자동쪽에서짙은구름이넘어오기시작했다.날씨가나빠질조짐이다.하여발걸음을재촉했다.묵묵히뒤따르는후배도서둘렀다.큰눈언덕두개를오르자드디어폴룩스정상이다.체르마트계곡과고르너그라트빙하가한눈에내려다보인다.하지만동쪽인카스토르나리스캄(Liskamm·4,527m)은구름에완전히가려있다.

▲브라이트호른고개의캠프.구름이자욱이깔리기시작한마지막날의아침.

차츰구름이정상부를에워싸기시작했다.마침정상에함께오른마농씨부부와등정사진을찍는다.우리가모른11번째봉우리다.알프스4,000m급우리가오른알프스4,000m급11번째봉우리다.마농씨는자신의이메일주소를건네주면서혹리옹쪽으로여행올기회가있으면꼭자신의집에방문해줄것을부탁했다.흔쾌히답한필자는그의등반사진을보내주리라약속했다.잠시나마함께한사이였지만우리는마치오래사귄듯한산악인의우정을느끼며굳은이별의악수를나누었다.정상에서좀더머물겠다는그들을뒤로하고우리먼저하산을서둘렀다.

정상부설릉을내려서는데,두팀이더정상으로오르고있었다.칼날설릉이라조심스럽게길을비켜주며그들에게행운을빌었다.산악인들이면으레나누는반가운인사였다.잠시후우리는무사히설릉을내려와성모마리아상이있는절벽모서리에닿았다.대여섯명의산악인이하산차례를기다리고있었다.

한명씩가파른바위벽에설치된쇠사슬을잡고하산하고있었다.잠시기다려보지만아무래도시간이많이소요될듯해우리는서면으로길을잡았다.그쪽으로하산하는이들은우리뿐이다.남서릉에서한참기다리며하산하느니서측사면을내려가는게훨씬빠를것같았다.

간간히얼음드러난서측면으로하산

초입부의오목한설사면은경사가세지않았지만본격적인측면에접어들자경사도가최소한50도이상은되었다.아이젠을신은발걸음하나하나에온신경을곤두세웠다.자칫잘못해한발이라도헛디뎠다간300~400m는추락이었다.앞서내려가는후배의모습을보니필자보다안정감이있다.물론한번도뒤돌아보지않는걸로보아녀석또한자신의발걸음에온신경을집중하고있음이분명했다.

차츰설사면이가팔라지고간혹몇몇구간은단단한얼음이라여간고역이아니었다.저아래에한쪽으로툭튀어나온바위지대만없어도마음이놓이겠지만혹슬립이라도하면분명추락의가속도에뼈도못추릴것이라생각하니할수없었다.한두강빙구간에선프런팅포인트자세를취하며하산했다.위험은가능한한피하는게상책일터.

▲4,000m지점의절벽모서리에세워진아기안은성모마리아상.

이윽고튀어나온바위구간을지나남서릉아래쪽으로길게설사면을횡단했다.설사면의경사가한결완만해져마음이놓였다.곧이어남서릉으로오르는설사면과만나빙하의편평한사면에닿았다.안도의한숨을내쉬었다.위험한고비를다넘긴후의기쁨이넘쳐났다.

이제베라빙하를건너브라이트호른고개의캠프로돌아가는길만남았다.배낭을벗어이마의땀을훔치고빙하트레킹복장으로고쳐입었다.후배또한배낭을벗고헬멧을벗었다.바로그때였다.배낭옆설사면에놓은후배가헬멧이미끄러져내렸다.슬슬흘러내리는헬멧을향해후배가전속력으로달려갔다.헬멧을따라뛰어가던후배가곧잡을것같았지만가속도를받은헬멧은끝내후배의발걸음보다빨랐다.50m이상헬멧을뒤쫓던후배는계속해서따라갈낌새였다.

한데,저만치아래에크레바스와세락지대가있었다.아마후배의눈에는보이지않았던것같다.필자가소리를질렀다.그래도녀석은미련이남았던지계속해서달리는것을필자가평소에는입에담아보지않던욕지거리를해대며그를제지시켰다.헬멧하나로위험을자초할순없었다.끝까지헬멧을따라가고픈유혹은등반중의어떠한위험보다컸다.

헬멧에대한미련을버리고우리는빙하를가로질렀다.기온이높아진빙하위의눈길은질퍽이기시작했다.1시간후브라이트호른고개로이어진오르막에접어들었다.우리는마지막남은체력을다해걸었다.한참을걷고또걸었다.마침저만치앞서걷는이가있었다.천천히걷는그의걸음걸이가왠지낯익다.가만히보니남동건선배였다.곧이어그를따라잡았다.

“아니,형!이제가시는겁니까?”
“아,X헐!가만히생각하니내가약을잘못먹었어.근육이완제를먹었거든.팔다리에힘이하나도없어.문어마냥흐물거리는것같아.”
“이런!쥐약드셨군요.그래도이만해다행입니다.”

쥐나지말라고먹었다는쥐약사건에얽힌우스갯소리를나누며우리는캠프에남아철수준비를하고있던임덕용선배와합류했다.곧이어5일간머문캠프를철수해7개의4,000m급봉우리를오른추억을간직하고서체르마트로하산했다.

▲정상에서프랑스인마농씨부부와함께한후배.뒤로체르마트계곡이내려다보인다.
등반정보

1864년8월1일에J.자코트일행이초등한폴룩스는알프스에서비교적접근이용이하고등반도쉬운4,000m급봉우리다.등반난이도또한PD+급이라알파인등반초중급자들도무난히오를만하다.일반적인루트는우리가오른남서릉(PD+/III급)이며,우리가하산한서면도종종이용된다.

서면루트는정상으로향하는지름길이긴하지만여름철에는얼음이드러나기에가파른구간에서는아이스하켄의확보가필요하다.물론여름철성수기에남서릉에사람들이붐빌때는종종이용할만하다.평균경사는약50도.

잠자리는우리처럼브라이트호른고개의눈밭에캠핑해도되며로치아네라아래의비박산장(RossieVolanteBivouacHut·3,750m·비상전화없음)을이용해도된다.12명이묵을수있는이비박산장에는침상과담요밖에없으니취사도구는따로준비해야하며,여름성수기엔붐빌가능성이있어일찍도착하는게바람직하다.

-글·사진/허긍열한국산악회대구지부회원/’월간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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