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의 4,000m급 명봉] [8] 그랑 조라스 워커 봉 *-

[알프스의4,000m급명봉][8]그랑조라스워커봉

수많은알피니스트들,자신을시험하는등반선그어
네번째의그랑조라스북벽등반…이탈리아보칼레트산장으로하산

알프스의최고봉몽블랑이위치한몽블랑산군은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등3개나라가인접해있다.이산군의북동쪽끄트머리에접해있는스위스를제외하고동서로길게이어진3000m이상의능선은이탈리아와프랑스두나라의국경선을이룬다.몽블랑에서부터동쪽으로뻗어내린눈덮인능선은많은침봉과칼날능선을거쳐그랑조라스에서절정을이룬다.

2km길이의그랑조라스능선에는국제산악연맹(UIAA)이공식인정한4,000m봉우리가다섯개나된다.주봉워커(Walker·4,208m)외에도윔퍼(Whymper·4,184m),크로(Croz·4,110m),헬레네(Helene·4,045m),마가리트(Marguerite·4,065m)등이다.필자는지난겨울가장높은워커를북벽을통해올랐다.알피니스트에게알프스의3대북벽은언젠가는꼭오르고픈꿈의대상이다.

개인적으로아이거나마터호른북벽보다바로이그랑조라스북벽에더애착이간다.학창시절부터이제껏이북벽에서4개의루트로올랐는데,어느것하나멋진추억이아닐수없다.2km나펼쳐진1,200m높이의광대한북벽에는이시대의수많은알피니스트들이자신을시험하기위한등반선을그어놓았다.

▲전위봉을거쳐워커봉정상으로향하는민경원씨뒤로운해가펼쳐졌다.

혹한의겨울에그랑조라스북벽을찾다


지난겨울알프스에는유독많은눈이내렸고추웠다.혹자는30년만의최악이라했다.그렇지만북벽을오르고픈열정은식지않았다.겨울이한창이던1월중순이었다.함께한이는교사로서방학을이용해종종알프스를찾는민경원씨였다.샤모니를떠난몽탕베르행산악열차에는우리외에도이진기씨와현지산악인가브리엘제탕도함께했다.

두사람은종종산행을함께하는사이로필자와민경원씨가며칠전북벽을정찰하며고생한사실을알고도움을주려고동행했다.물론제탕은자신의다음등반목표가우리가오를루트와같아정찰겸함께하기로했다.몽탕베르언덕에서우리는곧메르데빙하로내려섰다.화창한날씨였다.발레블랑쉬를경유해빙하를타고내리는스키어들이간간이지나갔다.

우리넷모두설피를신었지만스키어들이타고내린트랙위가아무래도걷기편하다.한시간쯤빙하를거슬러올라빙하가오른편으로방향을트는지점이었다.두명의스키어가우리를알아봤다.얼마전에에귀디미디쪽의어느한루트를오르며만난이들이었다.잠시그들과반가운인사를나눈후,또걸었다.빙하를타고내리는공기가차지만한낮의햇살이따뜻함을주었다.

▲(좌)겨울에레쇼산장으로가려면산장오른편의화장실쪽으로가야한다.(우)동릉인이롱델리지에접근할무렵구름이몰려오기시작했다.

빙하위를질주하며스쳐가던스키어들중에등반장비를잔뜩짊어진우리를보고멈춘이가있었다.가만히보니몽블랑남측쿠르마이어의산악가이드프란체스코였다.몇년전여름에당뒤제앙의능선에서만나알고지내는사이였다.그는우리가그랑조라스북벽에간다고하니엄지손가락을치켜세웠다.그리고바로얼마전에스위스의유명산악인율리스텍이북벽의한루트를한시간반만에올랐다는소식도전해줬다.행운을빈다는그의인사를뒤로하고빙하를거슬러올랐다.

율리스텍의속도등반소식은침낭과같은비박장비까지잔뜩챙겨멘우리를놀라게했다.시대의변화에따라첨단알피니즘의행위또한변화의물결에동참하는것이분명해보인다.물론알피니즘의진정한행위에서는그런경쟁적인기록은어디까지나부차적이지않을까라는생각을하며우리는메르데글라스에서벗어나레쇼빙하에접어들었다.

이제부터눈이깊다.태양또한서쪽침봉들뒤로넘어가기온이갑자기내려갔다.옷을고쳐입고방한모를눌러쓰고심설을헤쳐올랐다.차츰그랑조라스의북벽이위용을드러냈다.우리가오를루트는워커능왼편의랑쉘(LeLinceul,IV/4)이다.750m높이의거대한빙벽을오른후동릉을따라워커봉에오르는코스다.북벽은하얀면사포를쓴듯여름철에비해많은눈을뒤집어쓰고있었다.

몽탕베르를출발한지4시간쯤,레쇼빙하중앙의좌측절벽위에위치한산장어귀에이르렀다.우리는빙하에설피와스틱을남겨두었다.산장에오르는길은여름철과는달리화장실아래쪽이다.한동안심설을헤치며작은쿨와르를올라가파른바위사면을올랐다.쇠사슬이설치돼있어어렵지않았다.마침내산장에이르렀다.아무도없었다.한겨울에이곳을찾는이들이드물기때문이다.

차를끓여마시며늦은오후를보냈다.곧해가지고밤이찾아왔다.산장에서바로건너다보이는북벽이어둠과함께더욱거대해보였다.과연저것을오를수있을까싶은의구심마저들었다.하지만이제껏세번이나북벽을넘었기에자신감을찾으며일찍잠자리에들었다.적어도밤12시에는일어나야하기때문이다.

▲하늘에서본그랑조라스남면.가장오른편눈덮인봉우리가워커봉.일반루트인남서측면코스는정상에서대각선아래로내려온다.

이제우리는아래세계와단절되었다


서늘한공기가감도는산장의침상에서서너시간뒤척이다알람시계소리에일어났다.모두피곤한기색이역력하지만알프스에서는으레하루를일찍시작하기마련이다.전날밤에제탕이말한우스갯소리가떠올랐다.자기친구중하나가조라스북벽에오르기위해세번이나바로이레쇼산장에왔지만모두실패했단다.그이유는다름아니라늦잠때문이었다고하였다.

물론그산악인은조라스북벽이라는큰등반의부담감때문에늦잠을핑계로등반을포기했을가능성이다분하다.여하튼등반은일찍시작하는게여러모로유리하기마련이다.잠에서깬모두가분주하게움직였다.눈을녹여차를마시고미리준비해둔아침을먹었다.잘넘어가진않지만하루종일움직이기위해서는억지로삼키다시피먹어야한다.장비를챙긴후이윽고산장을나섰다.

밤하늘에별들이촘촘히박혀있다.바람또한잔안정된날씨라마음이놓였다.산장에서빙하에내려설때는자일을이용한다.길게설사면을횡단한다.화장실아래의바위사면에서는자일을이용,하강을두번했다.곧빙하에내려선우리는설피를찾아신었다.새벽2시,반달이었지만제법밝은달빛이빙하위에드리워져있었다.북벽을향해빙하를거슬러올랐다.

빙하를타고내리는바람이매서웠다.하지만한걸음두걸음서두르지않고걷고또걸었다.며칠전에정찰을위해오르내렸던발자국들은바람에날린분설에흔적도없다.두시간이상걸어오르자북벽이달을가리는밤그늘속으로들어섰다.온기라곤없는달빛이지만그늘속에드니한결춥게느껴졌다.이제워커능의아래쪽이다.여기에서우리가오를랑셸루트는좌측위로좀더올라야한다.

북벽에접근할수록눈이점점깊었다.마침내벽아래에도착했다.다섯시간걸렸다.도우미둘이아니었다면훨씬더지체됐을것이다.가파른설사면에자리를잡고조심해서장비를챙겼다.마침내출발이다.

▲이탈리아발페레계곡을향해남서측면설릉을하산하고있다.

등반의첫난관은베르그슈른트였다.며칠전정찰때는루트오른편의베르그슈른트가가능했는데,지금보니그게아니었다.약5m의오버행설벽은도저히넘지못할난공불락이었다.며칠사이에작은설벽하나가무너진것이다.할수없이우리는다른길을찾아야했다.그래서이제는좌측으로향했다.약50m이동하니길게이어진베르그슈른트중가장낮은곳이눈에들어왔다.

약3m의오버행설벽으로서가장만만해보였다.민경원씨의확보를받으며오버행에붙었다.중간높이에아이스하켄을하나설치하지만믿을만하지않다.여하튼발아래에는작은크레바스마저입을벌리고있기에바짝긴장했다.두손의피켈을찍으며몇걸음오르지만오버행턱은도저히넘을엄두가나지않았다.세번이나시도하다돌아섰다.

마침아직돌아가지않고밑에서걱정스럽게지켜보던이진기씨가가지고있던워킹용피켈을빌렸다.그것을오버행설벽의무른벽면에깊게찔러박고체중을실었다.그래도불안하긴마찬가지다.하지만더이상물러설순없었다.기회는단한번.여기서추락하든그냥물러서든한번은시도하고볼일이라온힘을다해오버행을넘어섰다.드디어성공이다.간신히오버행을넘어섰다.

이후약50도이상의설벽을한피치올라자일을고정시키니안도의한숨이나왔다.얼마후,민경원씨도오버행을넘어섰다.이제우리는아래세계와는단절이었다.60m로프한동으로는베르그슈른트아래로더하강할수없기때문이다.오직북벽을넘어정상에올라야만했다.우선넓게펼쳐진빙벽초입에서길을찾아대각선아래로조금내려갔다.곧이어좁은강빙구간을발견하고오르기시작했다.경사도는약70~80도되지만빙질이좋아어렵지않았다.

피켈피크가부러졌다!


아직어둠이가시지않았지만차츰밝아오는상태에서등반이순조로웠다.서너피치오르자날이밝았으며빙벽의경사도도차츰누워갔다.그래서우리는함께오르기로했다.필자가도중에아이스하켄한두개를설치하고자일을통과시키며오르면후등자도함께따라오르는연등방식이다.물론이렇게서너피치오르면아이스하켄을후등자로부터건네받기위해멈추곤했다.

어렵지않은빙사면에서낙빙의통로를피해좌측대각선으로길을잡았다.지루할정도로오르고또올랐다.차츰고도를올릴수록추위가엄습했다.둘다우모복을두개나겹쳐입었지만땀이라곤나지않았다.계속되는빙벽이라편하게자리를잡고쉴공간도없다.보온병의물만마시고또출발이다.

▲정상에서남서측면을따라하산하는가운데저멀리몽블랑이보인다.

시간은정오를훨씬넘겨3분의2쯤올랐을때였다.왼손에든피켈의피크가부러졌다.이등반을위해새것으로교체한건데부러져버렸다.단단한얼음에기온마저찬탓이었다.이후몽땅해진피크로훨씬힘을더들이며오르고또올랐다.이윽고동인이롱델리지(HirondellesRidge,D+/V)가멀지않았다.

60m이상믹스지대를통과하니능선에올라섰다.바람이아플정도로뺨을후려쳤다.구름마저우리를휘감아불안감이엄습했다.조심해서이탈리아쪽으로넘어서서길게빙설암믹스지대를횡단하니바람이잤다.이후믹스지대를계속올랐다.이제해가지고있었으며우리의체력도바닥이나고있었다.적당한비박지를찾아야하지만좀체로눈에띄지않았다.

▲리지의마지막칼날능선을오르는민경원씨뒤로멋진운해가차오르고있다.

이미어둠이우리를에워쌌다.헤드랜턴을밝히며오르고또올랐다.몇번길을잘못들어불안하게클라이밍다운까지했다.마침튀어나온바위벽아래에두명이앉을만한자리가보였다.바닥에눈이가득했지만더이상움직이는건무리여서자리를잡았다.한동안피켈로눈과얼음을깎아냈다.바위벽이앞으로기울어져있어바로앉기에도여간불편하지않았다.

피곤에지친우리는저녁을지어먹을생각조차못하고보온병에남은물만마시고각자자신이지고온침낭을펼쳐파고들었다.우선아이젠을조심해서벗었다.혹실수라도해서떨어트리면끝장이라조심해서벗어자일에매달았다.

침낭속에들어가는것이여간고역이아니지만용케들어가자리를잡았다.배낭을깔고앉았지만자꾸만미끄러져내렸다.그래도침낭속이라한결견딜만했다.잠을자기보다그저시간을견뎌내는고역이었다.지루한시간들의연속.새벽2시,더는참지못하고일어나버너를켜눈을녹여차를마셨다.지루함도달래도목도축이니한결추위가가셨다.

민경원씨추락으로큰사고날뻔


두세시간후,이렇게한번더부산을떠니마침내아침이다가왔다.드디어태양이떠오르기시작했다.햇살이우리가앉아있는동릉의끄트머리에닿았지만조금도온기가없어미적거리기만했다.한시간쯤지체하다마침내용기를내어침낭을박차고나왔다.장비를챙겨떠날준비를하니아침8시다.

정상으로이어진능선은칼날능선이었다.바람이불고추워스키고글을쓰고우모장갑까지끼고서가파른칼날능선을오르내렸다.추위에카메라마저작동불량이라품에넣어녹였지만몇컷찍히지않았다.후등자뒤로펼쳐진풍광은이루말할수없이멋졌다.보다수월한여름에꼭다시찾고싶은능선이었다.

두시간후,이윽고정상부설릉에이르렀다.완만한설사면을넘어서자마침내정상이나타났다.힘들게오른정상등정의기쁨도잠시,하산을서둘러야했다.남쪽에서구름이몰려왔기때문이다.하산은이탈리아쪽인남서측면(South-WestFlank,AD/III)이다.빙사면을클라이밍다운하고암릉에서자일하강까지하며하산했다.

마지막암릉에서였다.제대로확보되지않은상태에서한발을헛디딘민경원씨가몇미터추락했다.이젠정말끝장이다싶었는데,천만다행으로그가바위턱에걸렸다.이렇게마지막고비를넘긴우리는보칼레트(Boccalatte)산장옆으로해서발페레계곡으로긴긴하산길에접어들었다.차츰계곡아래안전지대로내려갈수록힘든등반후의만족감이우리들가슴에차오르기시작했다.

등반정보

그랑조라스워커봉은1868년6월30일에워커(H.Walker)일행이초등했다.물론이탈리아쪽인남서측면을경유해올랐다.이코스는워커봉을오르는일반루트로서북벽을오른대부분의산악인이하산하는코스다.등반은보칼레트산장이문을여는6월말부터이뤄지며정상부세락지대의위험때문에새벽일찍등반을시작하는게바람직하다.

한편북벽에서우리가오른랑셸루트는1968년1월17~25일에르네드메종과로버트프레마티가초등했다.하단부빙벽의경사도가70~80도이지만오를수록차츰약해지고마지막구간의믹스지대한피치를오르면동릉이다.일단동릉에접어들면정상을향해능선을따라오르면된다.그랑조라스의워커봉등반을위해서는어떠한루트를택하든하루이상힘든등반이되기때문에체력및기술적인준비가필요하다.

-글·사진/허긍열한국산악회대구지부회원/’월간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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