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불암산[佛岩山/507m](1)
1.명칭과연혁
불암산은옛양주고을남쪽40리거리에서수락산의남쪽으로이어져서울특별시노원구상계동·중계동·하계동·공릉동과경기도남양주시별내면화접리와경계를이룬다.불암산이라는명칭은화강암의큰바위로된봉우리가마치송낙을쓴부처의형상이라하여붙여졌다.화강암으로된주봉남쪽에는높이420m의제2봉이있다.
507m의우뚝솟은바위산인불암산은일명필암산(붓바위산)이라하여먹골·벼루말과함께땅의기운을꺾는다는문방사우의이름을빌린풍수지명(風水地名)이었다.산의남쪽기슭에는불암산폭포·석천암·불암사·불암굴·학도암등이있고,서쪽기슭에는정암사·약소암등많은사찰과암자가있다.
불암산에는다음과같은전설이있다.서울의동북편에자리잡고있는불암산은원래금강산에있던산이다.조선왕조가건국되고도읍을정할때한양에남산이없어서결정하지못하고있다는소문을금강산에서듣고자기가가서한양의남산이되고싶었다.이에금강산에서떠나한양으로오다가지금의위치까지와보니벌써한양에는남산이들어서있었다.
그래서돌아선채로그자리에머물고말았다.이때문에불암산은현재보는것과같이서울을등지고있는형세라는것이다.이러한형세의불암산은수락산과더불어조선시대에들어서울의북쪽방어선을이루며서울을수호하는기능을하였다.따라서세조때는도성외곽에있는왕실의4대원찰의하나로동쪽은불암사가손꼽혔다.
그리고조선후기에는금강경등불경이판각되고석가의일대기를새긴’석씨원류응화사적’목판이새겨져전하기에이르렀으니,불암사는조선시대사찰문화의핵심적인위치에있었다는것을알수있다.더욱이산이름역시불암인것이다.
-남성적인풍모를자랑하는불암산정상-
이러한불교와의인연이닿은것인양조선시대불교를중흥시키는데많은공을들인중종비문정왕후의태릉이불암산남쪽기슭에자리잡고있다.이후그의아들명종의강릉이또한인근에위치해,불암산은조선왕실의특별한불교성지로서의성격을띠게되었다.불암산은형형색색의기이한모양과수십길이되는절벽에노송과괴목이어우러져있다.
단풍또한아름다워많은시인과묵객이찾아들었다.또한지역주민들은자연의힘을빌어안녕을기원하니,중계동에서는구릉할머니와할아버지를제사하는치성터가있고,하계동용동마을에서는용(天神)에게마을의태평을기원하는산제의식을행하고있으며,남양주시별내면덕송리주민들은불암산신령님께산신제를올리고있다.
그리고6·25전쟁때는육군사관생도를중심으로한불암산유격대가활동하여큰성과를올린게릴라기지로서활용되기도하였다.한편근년에들어서는불암산서남쪽에고층아파트가지어지고주택지역으로개발되면서,남동쪽에있던배밭등과수원지역이축소되었다.
불암산남쪽기슭에는태릉선수촌이자리하여국가대표운동선수들의체력단련훈련장으로주목받고있다.별내면지역은아직한적한농촌모습을보이기는하나불암동계곡으로이어지는등산길에는유스호스텔과불암수영장등이위치하여관광지로개발되어있다.
2.자연생태
한북정맥이양주지방에이르러주엽산을이루고,그남쪽으로뻗은여맥하나가수락산으로이어지는데,그주능선을따라덕릉고개를넘으면불암산이된다.따라서불암산을중심으로북쪽으로는의정부시방향,동쪽으로는남양주방향,남쪽으로는노원구공릉동쪽으로능선이형성되어,불암산제2봉은남쪽기슭에있는태·강릉의진산을이룬다.
서쪽으로는중랑천을끼고마들평야가발달되어있고북한산과마주하고있다.전체적인지형지세는남북으로능선이뻗어내린장방형의산지로지형변화가심하고암반노출지가많다.경사의대부분이30%이상의급경사면을이루고있으며,주경사방향은남향또는서향이많다.
불암산은수락산과같이바위산을이루고있으며최고봉의표고는507m로그자체가준험한화강암의바위덩어리같은느낌을준다.그런가하면불암의제2봉은제1봉남쪽에420m의표고로깎아지른듯우뚝솟아있다.불암산의봉우리는암석이면서도정교하고기이한모양과수십·수백길의절벽바위틈에그림처럼자란소나무가아름답다.
봄의철쭉꽃,9월의단풍은산전체를하나의거대한화원으로만든다.이아름다운경치때문에불암산에는등산·관광객들의발걸음이사계절끊임없이찾아들고있다.한편불암산의주능선과부능선에의해5개의분수령이이루어져있다.분수령으로둘러싸인유역에는강우시일정한배수체계를형성하지못하고경수사계곡,재현중고교뒤편계곡등주로자연적인배수로를따라서당현천을거쳐중랑천으로유입된다.
식생분포는활엽수와침엽수의혼용림이59.2%,침엽수림이15.5%를이룬다.나무종류로는떡갈나무·상수리나무·소나무등이주종을이룬다.지역을구분해보면경수사뒷편제1야영장에서제2야영장으로이어지는능선과계곡부는산불로식생이훼손되었으며,일부소나무를제외하고는떡갈나무·오리나무·현사시나무등이주종을이룬다.
재현중고교뒷편정암골은수목의생태가양호하며,특히계곡하단부의수종이매우다양하여아름다운산림경관을이루고있다.그리고중계4동183번지밤나무정이골입구에는수령800년에높이31m,둘레8.6m인큰은행나무가있다.조선고종때명성왕후가임오군란을피해여주로피신하면서이정자목앞민가에서하룻밤을지내게되었다.
이때명성왕후가은행나무에치성을드린이후성황당으로변하여토속신앙의대상물로오늘에이른다고한다.학도암아래뒷개울골은소나무가주종을이루며수형과질감이매우양호하다.개발제한구역밖으로는배나무과수원단지가인접해있다.한전연수원과태릉선수촌및삼육대학에접하는남측수림대는낙엽·활엽교목림지역으로완만한경사를이루고있다.
불암산은전체적으로암석정원형태를띠고있어바위틈새로뿌리를뻗고살아가는소나무·신갈나무·진달래·철쭉등이자연경관을한층돋보이게한다.그리고계곡깊은곳에서는소쩍새울음소리와딱다구리의나무쪼는소리가정취를더해준다.소쩍새는천연기념물제324호로지정보호되고있다.옛날에소쩍새가‘솥작다솥작다’라고3음절로울면불암산기슭의배밭은풍년이들었다고한다.
-불암산정상에도태극기가휘날린다.-
-한국의산하에서옮겨온불암산사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