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은큰바위로된봉우리가중의모자를쓴부처의형상이라하여이름붙였으며,필암산(筆巖山)·천보산(天寶山)이라고도한다.남북방향으로능선이뻗어있으며,산세는단조로우나거대한암벽과울창한수림이아름다운풍치를자아내고있다.기반암은화강암이며,당현천과용암천의계류들이발원한다.남쪽사면에는불암산폭포가일대장관을이루고있으며,824년(헌덕왕16)지증대사가세운불암사는예로부터신성시되어왔고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釋氏源流應化事蹟冊板:보물제591호,동국대학교보관)이보존되어왔다.
그밖에불암사의부속암자인석천암·학도암등이있다.돌아가신임금을지키는산이라하여태릉과강릉을비롯한동구릉·광릉등많은왕릉이주변에있으며,산정에는성터·봉화대터가남아있다.남쪽산록에는육군사관학교·서울여자대학교·삼육대학교·태릉선수촌·태릉푸른동산등이있다.불암마을-불암사-석천암-산정-덕능고개-상계동,상계전철역-정암사-산정-천보사-상계동,태릉-은행말-상계동-샘말-장암동-동막-수락산으로이어지는등산로가있으며,특히암벽등반코스로각광을받고있다.별내면화접리불암마을일대에호텔을비롯한숙박시설과식당등이있으며,시내버스가운행된다.
전철4호선상계역과당고개역은불암산을서울쪽에서오르는코스의대표적인장소다.불암산서면의등산로는이지역뿐아니라산자락과맞닿은중계동아파트단지에파악하기힘들정도로많이나있다.그러나아파트단지의등산로는지역주민들의산책로로양보하기로하고,타지역에서찾아가기쉬운전쳘역을기점으로등산로소개하면다음과같다.
ㅇ상계역-재현중고-정암사-주능선-정상-상계전철역(5km,2:00)
ㅇ상계역-영신1슬랩-영신2슬랩-해골바위-헬기장-정상-불암공원
ㅇ중계동-학도암-봉화대터-불암산(5.5km,2:00)
ㅇ태능-불암산-덕릉고개-흥국사-수락산-의정부시(15km,6:30)
ㅇ불암동-불암사-석천암-정상-덕릉고개-상계동(7km,2:40)
상계역에서불암산방향의주택가로들어서직진하면불암산산자락과닿은곳에산으로오르는등산로들을쉽게만날수있다.재현중고교북쪽에위치한불암산공원관리사무소를지나정암사로오르는계곡길은상당히가파른길에시멘트포장이되어있다.가파른길을지나정상능선까지는약1시간정도걸린다.불암산공원에서좌측으로능선을따라오르는길이또있다.이길은계곡길보다는전망이좋고가파름이조금낳다.수목과암벽으로이어지는산길이지만별다른어려움은없다.능선길의정상석장봉에서불암산정상을오르는암벽길이조금은힘들게한다.
불암산은서울의다른산에비해낮은산이지만정상은암벽과암벽으로형성되어정상에올라서기가쉽지않다.일단능선마루에올라서면바위산의장점인탁트인전망을즐기는것만으로도답답하던가슴이탁트인다.정상의암반도넓지않아오래서있을수도없다.정상에서덕릉고개쪽으로진행하여수락산으로계속산행을할수도있고,남쪽으로내려가면우측으로상계역방향으로하산하는길이고,좌측으로내려가면불암사가있는불암동으로하산할수있고,남쪽으로계속진행을하면헬기장(봉화대)를지나능선을따라걸으면태릉유원지로하산하는길이이어진다.
당고개역에서는정암사쪽보다천보사로오르는등산로가더가깝다.당고개역에서음식점들이줄지어이어진큰길을따라불암산쪽으로진행하다가상계동에서당고개로이어진도로와만나길을건넌다.빌라촌이들어선첫번재골목으로접어든후산쪽으로방향을잡으면산자락의텃밭과만나는데,이곳에서오른쪽으로돌아서상계동교회를지나천보사쪽으로길을잡는다.천보사를지나서만나게되는갈림길에주민들을위한체력단련운동기구들이설치된약수터가나온다.이곳에서오른쪽은불암산정상으로가는길이고,왼쪽은불암산정상에서북쪽으로약500m지점의능선과만난다.
상계동교회에서정상의암봉지대로들어서는데약1시간가량걸린다.불암산정상에서수락산방향의덕릉고개까지는약1시간거리로중간에20m높이의암봉과만난다.이암봉오른쪽으로우회로가나있어노약자나바위에자신없는사람들은피해갈수있다.불암산은가벼운반나절등산이라면몰라도당일등산의대상지로잡기에는좀미흡한점이있다.정상을경유해어떤곳으로내려오든3시간이내에산행을마칠수있기때문이다.만약짧은산행에만족하지못하면수락산으로이어진능선으로진행하면좋다.
불암동에서산행을시작하려면버스를이용해야하기에전철의편리함에비해상대적으로교통이불편한관계로등산객이그다지몰리지않는다.그러나불암산의대표적인사찰인불암사를찾는불자들의발길이잦은곳이다.이코스의들목은불암동에서불암사,석천암등의방향을가리키는이정표가서있는골목이다.개천을오른쪽으로끼고포장도로를따라가다보면붉은색간판의해장국집이나온다.이곳에서오른쪽의갈림길로들어서면포장도로가계속이어지는데,이길이불암사진입도로다.
불암사는신라헌덕왕16년인824년에서헌강왕8년인882년까지58년동안지증국사가창건한사찰로도선국사,무학대사가중창했다고전한다.산문을지나200m정도가면대웅전과요사채가들어선절입구에도착한다.간단한이정표가서있다.불암사오른쪽산사면을타고오르다보면오른쪽으로석천암으로가는갈림길과만난다.직진하여계곡을계속따라올라가면폭포가나오고그위에불암산장이자리잡고있다.이곳에서내원암까지산허리를타고산길이연결되어있다.
불암산산행을조금길게하려면태릉유원지에서시작하는게좋다.그런데태릉푸른동산를경유하려면유원지입장료를지불해야한다.태릉푸른동산를지나불암동방향으로조금더진행하다보면삼육대학정문으로들어가서뒤쪽으로산행로가연결되어있다.일요일은많은등산객들이이용하므로길을잘몰라도등산객을따라가면된다.태릉사격장과군부대가있어철조망으로막아놓아이길이아니면오를수없는것이단점이다.능선을따라오르면중계본동쪽에서오르는등산객들과만나게되고,골짜기마다능선마다산길이이어진다.
헬기장을지나정상안부에서정상으로바로오르지않고불암사쪽으로내려가다가석천암을지나면서좌측으로산길을오르면6.25전쟁시육사생도들의서울방어유격대가활동하던호랑이굴1,2,3을지나서암벽을타고오르는길은스릴과쾌감을경험하면서정상을오를수있는좋은코스이다.정상에서덕릉고개로하산하여당고개역으로하산을해도좋고,불암산과수락산의야생동물이동통로인다리를통과하여수락산산행을계속진행하여도좋다.불암산과수락산의산행코스이기도하다.
태·강릉은불암산줄기를따라남쪽으로내려오면노원구공릉동의노원고개를지나경춘철도에이르기직전산기슭에위치해있다.조선중종의계비문정왕후의태릉과13대명종과그비인인순왕후의강릉은사적제201호로지정되어있다.강릉은일반인에게공개되지않고태릉만볼수있다.능역주변에는과거에소나무숲이었던것이능의왼쪽에만남아있고오른쪽에는갈참나무숲으로바뀌었다.
능의앞쪽에는향나무노거수가있다.능의모든제도는국조오례의식을따르고있으며,두능은모두운채와12지신상이새겨진병풍석을두르고있고,문자로12지를새겨넣었다.능주위는푸른동산으로꾸며져있다.특히이곳에는국제적규모를갖춘사격장이있다.아울러시민들에게위락시설과도시공원시설을제공하기위하여부대시설로놀이기구와사격연습장을갖춘놀이시설·실외수영장·휴게실이있다.조류를중심으로만들어진동물원은어린이들을위한자연교육현장으로애용되고있다.
불암산의성터는최고봉의남쪽420m봉우리가돌출되어있는제2봉의정상에있다.정상부의최고지점을돌아가며석축의흔적이있는데,석벽의형태는부등변의5각형이지만산의형세를따라축조되어전체모습은원형에가깝다.전체둘레는200m정도이다.성벽은심하게파괴되어원형을파악하기어려우나남쪽방면의일부는어느정도확인이가능하다.성내부에는34척높이의토루가있으며,경사면에는굴러내린석재가산재하여있다.그축조와사용시기는알수없고,산성의규모가매우협소하여산성이라기보다는보(堡)라고칭하는것이적합하다.
3)사찰
불암산남쪽기슭남양주시주내면화접리797번지에불암산의대표적인사찰로불암사가있다.나무숲이우거진속에고찰로자리잡고있는불암사는신라헌뎍왕16년(824)에서헌강왕8년(882)사이에지증대사(智證大師)가개창하였다고한다.신라제52대효공왕때(897)도선국사가중창하였으며,조선태종때(1400년경)무학대사가삼창하였다.그후성종때중건하였으나연혁이전하지않으며,18세기후반의내용이’불암사중건기’에전한다.정조6년(1782)에서악화상(瑞岳和尙)이보광명전과관음전을중수하고,제월루를다른곳에서옮겨다지었다.
1910년에풍천임씨가독성각·산신각·동축당을창건하였다.그리고최근절뒤암벽에조각한마애삼존불은조각솜씨가우아하다.이불암사뒤편에는불암봉이우뚝솟아있는데,봉우리밑에한폭포가있어하늘에서떨어져내리는것같고,수많은물줄기를이루어가까운경기지방일대의명승지로유명하다.불암사는조선세조때한양을중심으로동서남북에원찰을정할때동불암(東佛岩),서진관(西津寬),남삼막(南三幕),북승가(北僧伽)등네곳을호국민안(護國民安)기도도량으로정하였는데불암사를그첫째로삼았다.
문화재로는조선현종14년(1673)에판각한석씨원류경책목판(釋氏源流經冊木板)212판(보물제591호)및지장경언해(地藏經諺解)30종379판(유형문화재제53호)등총591판의경판(經板)이보존되어있다.이책판은조선시대의목판으로완질을갖추고있으며신라의의상·자장,고려의의통등의행적이기록되어있어더욱소중한유물이다.현재는동국대학교박물관에소장되어있다.불암사는6·25전쟁발발당시에는육군사관학교생도들이주축이된불암산유격대(일명호랑이부대)가이곳을중심으로활약하기도하였다.
나)학도암(鶴到庵)
학도암은불암산제2봉서남쪽중턱노원구중계동산101번지에자리잡고있으며,많은등산객이찾는전통사찰이다.조선인조2년(1624)에무공대사(無空大師)가창건하였고,고종15년(1878)에벽운대사(碧雲大師)가중창하였다.6·25전쟁때파괴되었던것을1965년에다시중창하였다.주위에풍광이매우수려하여학이와서머물렀으므로학도암이라이름하였다.옛날엔학도암에서새벽불공을드리며두드리는목탁소리에마을사람들이깨어나서하루농사일을준비하였다고전해진다.학도암에는명성왕후의발원으로조성되었다는연꽃대좌위에가부좌를하고있는마애관음보살좌상이새겨져있다.그리고학도암에서약간내려온중계동산102번지에는성신앙의대상인음바위가있다.
석천암은경기도남양주시별내면화접리산97번지의불암산정상남쪽가장높은곳에위치한다.신라헌덕왕때지증국사에의해창건되었다고전한다.고종19년(1882)오위장(五衛將)이씨가군제개편에따라오위제도(五衛制度)가해체되자입산하여당시의황폐한절터에지금의석천암을짓고수도하였다고한다.불암사의부속암자로운영되며특이한호인상의마애불이있으며,석간수또한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