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산과 철학 *-

[특별기고]등산과철학

등반가의죽음이헛되지않으려면……

산을좋아하는사람들에게왜산에가는가묻는것처럼어리석은일은없다.분명우문(愚問)일테니현답(賢答)을기대하기는어려울것이다.그런줄알면서도우리는이러한우문을계속하고있다.등산이란무엇이며,우리는왜산에가는가.이때‘무엇’이란무엇이며,‘왜’는또한무엇인가.이렇게이어지는물음속에다름아닌철학이있다.적어도철학적사고가있다는이야기다.이철학또는철학적사고는그옛날그리스의소크라테스때부터시작해오늘에이르렀는데철학이란무엇인가하는물음에대한답은여전히풀리지않고있다.저명한철학자들이저마다<철학입문>이라는책을내놓고있는까닭이다.

오래전일본의이름난학자가<철학이전(哲學以前)>이라는책을내서당시많은사람이읽었는데,그첫머리가이렇게시작됐던것으로기억한다.“철학이란무엇인가.무엇은무엇인가.무엇은무엇인가는무엇인가…….”요는철학이의문에서시작해문제제기가이어진다는이야기였다.이것은등산에서도마찬가지다.산은우리에게무엇인가.우리는왜산에오르는가.이러한물음은철학적이라고할수있다.그런데산에가는사람들은많아도이렇게스스로묻는사람은별로보이지않는다.산이좋아산에가는데여기더이상문제삼을것이있겠는가하는것같다.틀린말은아니다.그런데그렇다하더라도여전히그물음은남아있다.

왜오르는가고민하지않는다면그것은등반아닌야외운동일뿐이다.파스칼의유명한수상록<팡세>속에‘철학자들’이라는장이있는데여기에‘인간은생각하는갈대’라는말이나온다.사람은갈대같이약해도생각하는동물로,그의존엄성이이생각하는것에있다는이야기다.이렇게생각하고생각하는학문이바로철학인것이다.그리고등산에대해생각하는것도이를테면철학적인셈이다.그런데사람들의생각은다른것같다.즉등산은자연을상대로하는일종의스포츠로야외활동이며,철학은인문과학의한분야이니양자사이에는아무런관계가없다고본다.사실겉으로보면하나는운동,하나는학문이니별개의것이분명하다.

그러나등산이일반스포츠와다른것도사실이다.그까닭은무엇인가.등산에대한물음,다시말해서등산이란무엇이며,우리는왜산에가는가등의문제제기는다른스포츠에는없다.만일산에가면서이런생각을가져본적이없다면그의등산은한낱야외운동에지나지않을것이다.그런데우리는등산에250년에걸친독특한역사가있다는것을알며,그속에담긴의미를언제나생각하게된다.등산이단순한야외운동이라면그런역사는기록되지않았을것이다.등산은수직의세계와수평의세계에서이뤄지는행동과사고(思考)다.그리고이가운데하나라도빠지면등산은제대로의모습이아니다.

그것은등산의전개과정에잘나타나는데,이때양자가하나의결정(結晶)을이루면등산가에게새지평(地平)이열리고새전기(轉機)가된다.등산은산과사람의만남에서비롯됐지만그것은단순한만남이아니었다.여기에는인간의‘아(我)’의자각이있었다.즉인간의자기인식이있었다.이때그에게새로운의식의세계가열리며,눈앞에늘보던자연이아니라새로운존재로서의산이나타난다.‘아(我)의자각(自覺)’은일찍이중세(中世)에는없었다.그래서<근세(近世)의아의자각사(自覺史)>를저술한철학자가있었으며,서구의근대화는이에이어시작됐다.18세기후엽,등산이서구의근대화와때를같이해시작됐다는사실은특기할만한일이다.

등산의본래명칭은‘알피니즘’인데등산이알프스최고봉에도전했던그무렵,그러한행위와의식을대변하는표현이아직없었다.그리고알프스에서침봉군이니북벽에로그활동무대가넓어지던100년의세월에알피니즘이라는개념이확립되어나갔다.이러한등산은그뒤알프스에서히말라야로활동무대를이행(移行)하며등산사조(思潮)가새로운변천을맞았으며,점차지구상고산군(高山群)에서미답봉(未踏峰)이없어졌다.인류의역사는진화(進化)와개발과전쟁의과정인데,그일련의흐름에서가장돋보이고우려되는것은과학기술문명의출현이다.그리고이것은장차(2045년이라는데)인간과기계의구별이없어진다는미래제언(提言)까지내놓고있다.

컴퓨터가인류의지성을넘어선다는이야기다.이런암울하고기상천외한미래를예상하고전망할때,앞으로등산은어떻게발전될것인가.등산의철학적과제가여기있다.유기물로서의인간과무기물인기계의대결또는공존이주제가될것인데,이런생활환경속에서산악인과자연과의관계는어떻게될것인가.여기등산이그존립의문제를논하게될날이머지않다.등산이육체적인면에서보다정신적인면에서미증유의문제와부딪칠시대가오고있다는이야기다.그것은진화가가속화해생물의한계를넘어서려고하기때문이다.

우리산악인들에게선체험에대한깊은성찰이엿보이지않는다.우리는지금가치전환시대에살고있다.이때중요한것은우리의지적능력이다.요즘쏟아져나오는고산의등반기를보면,대부분이등반대의외형적활동기록이대부분이다.우리로서는미지의대자연과의만남이고,새로운체험일텐데이에대한깊은성찰이엿보이지않는다.발터보나티는“산은누구의소유물이아니고거기에경험이있을따름이다”라고말하며,산에서의체험요소로미학(美學)과역사와윤리를지적하고있다.등산이란오르면그만이아니고그아름다움과산의역사와등반윤리를알아야한다는이야기다.여기보나티의철학이있다.

한때프랭크스마이드가에베레스트도전에서‘편의성(便宜性)’을배제할것을주장했던것이나,메스너가‘산을순수한자기힘으로올라야하며,산을작게해서는안된다’고말한것도모두등산가로서의철학이다.특히기도레이의등산관이돋보인다.그는“알프스와의싸움은노동처럼유익하고,예술처럼고상하며,신앙처럼아름답다”고했다.이들은등산사에획기적전환기를만든선구자들이지만일찍이학문으로서철학을공부한일은없다.그럼에도남달리등산에대한철학적성찰이엿보이니놀랍다.

등산이예상하고전제로하는것은고소지향(高所指向)과한계도전(限界挑戰)일것이다.그리고여기에는조건중의조건이엄존한다.우리는첨예등반가들이자기의고귀하고소중한생을산에바치는경우를종종보며가슴아파한다.그러나이러한그들의인생이끝내헛되지않으려면그들에게남다른철학이있어야한다.오늘날많은사람이산을오간다.그런데그들에게서산행기다운산행기가별로보이지않는다.그것은그들의세계에서의식이행위를따르지못하기때문이다.등반기란단순한산행기록이아니다.산행의식의산물이다.등산가의철학적산물이다.

-김영도한국등산연구소장ㆍ77에베레스트원정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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