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과구룡산의주능선을따라동·서축으로발달한산세는강남구와서초구의경계를이루고있다.표고293m의대모산은일원동과내곡동의경계를이룬다.산모양이늙은할미와같다하여할미산,또는대고산(大姑山)으로불리다가,조선태종의헌릉이자리하면서어명에의해대모산(大母山)으로부르게되었다고한다.또옛부터전해오는말에의하면산모양이여승의앉은모습과같다하여대모산이라하였다는설과,구룡산봉우리와더불어여성의앞가슴모양과같다하여대모산이라하였다는설이있다.
대모산에서서쪽으로솟아있는구룡산은표고283.2m로개포동과염곡동의경계를이루고있다.옛날이산에서용아홉마리가하늘로올라갔기때문에이름붙여졌다고한다.구룡산의주봉은국수봉(國守峰)이라고도한다.이는정상에봉수대가있어국가를지킨다는뜻이다.이곳에는바위굴이있어봉수군이머물렀다고한다.그런데조선시대봉수는청계산동쪽천림산으로이어지는천천현에있었던것으로,봉수대위치의확인은인릉산과구룡산사이에서실지조사가필요하다.
대모산은서울시청에서동남으로반경13km지점에위치하여북쪽은양재대로,남쪽과서쪽은헌릉로,동쪽은밤고개길로둘러싸여있어마치섬처럼고립되어있는듯하다.내곡동고개를통하여인릉산과청계산으로산줄기를잇고있다.이렇게산기슭은도로교통이발달하여있다.이는조선시대이래한양에서삼남지방으로이어지는삼남대로가산기슭의서쪽을지나면서일찍이역,원이발달하였고,봉수대가설치되는등그전통을계승한면모라고할수있다.
대모산의남쪽과동쪽기슭은일찍이왕릉터로주목되어조선초기에는태종의헌릉과세종의영릉,광평대군묘역,조선후기에는순조의인릉이자리잡게되었다.세종의영릉은예종원년(1469)에여주로이장되었다.그자리에묻혔던영릉의신도비등석물은1973∼1974년에걸쳐발굴하여,이를1974년4월세종대왕기념관내로옮겼다.이때호석1쌍은단국대학교박물관으로옮겨졌다.최근에는국가안전기획부가남산에서이전되어대모산의국가적운영이오늘에까지이르고있다고하겠다.
그러나1963년서울에편입된이래직업여성재활교육을위한행복원이들어서고,1970,1980년대의강남지역개발과대규모아파트단지의건립에따라청동기유적은흔적조차찾을수없다.이제대모산은산기슭과중턱에있는약수터를찾는주민들의운동과휴식공간으로,또청소년자연학습공간으로각광을받고있다.또사방산기슭에는농장과농원이발달되어있어서울시민에게아름다운화훼를제공하고있다.그리고정상에는경찰의교통통신시설로송수신탑이세워져있으며헬기장이마련되어있다.
대모산은태종의헌릉신도비에“장백산(백두산)으로부터내려와남쪽으로수천리를넘어상주속리산에이르고,여기서꺾여북서쪽으로또수백리를달려과천청계산에이르며,또꺾여북동으로달려한강을등지고멈추었다”고기록하고있다.즉백두대간에서한남금북정맥을거쳐한남정맥을따라올라와한강으로끝나기직전에솟아오른산봉우리임을말하고있다.아울러대모산은땅의신령스런기운이멈추어솟아올라맑은기운이꿈틀거리니,진정코하늘이만들고땅이간직하여(天作地藏)능의길조를기다린다고하였다.
대모산은구룡산과쌍봉을이루며양재천과한강을따라동서방향으로형성되어있고,내곡동쪽으로뻗은부(副)능선에의해세방향의단조로운지형을이루고있다.이들산계곡에흐르는물줄기는양재천과탄천으로흘러들어한강으로합류된다.대모산과구룡산은구릉성산지로서그지질은주로선캠브리아기의경기변성암복합체에속하는호상편마암으로되어있다.이편마암의지질시대는시생대로대개8억내지29억년정도로추정되었다.대모산과구룡산의정상부일대는암석이50%이상노출된암석노출지로되어있다.
헌릉과인릉의현무(玄武)에해당하는능뒤편에는소나무숲이둘러싸고있다.소나무숲뒤쪽으로는참나무류의일종인갈참나무숲이나타난다.헌·인릉일대에는지금도수목이울창한데,예전에는숲이유별나게우거져낮에도어두워어둔굴이라불리기도했다.대모산과구룡산일대에서는박새를볼수있다.유럽과아시아에걸쳐광범위하게서식하는박새는높은산에서도심의공원에이르기까지폭넓게분포하여사람들과친숙한새이다.박새는나뭇잎에기생하는유충을즐겨먹지만식물의열매도먹어식물의분포에영향을미친다.
대모산과구룡산주변일대에1970년대이후아파트단지가건설되면서산주변의많은시민들이산을찾게되었다.아울러강남·서초구청에서등산로,약수터,운동시설,쉼터등을개발하여,인근주민이아침저녁으로즐겨오르는휴식공간이되었다.대모산과구룡산의등산들머리는지하철3호선의일원역또는수서역에서하차하여,강남공업고등학교우측으로상록수아파트를돌거나궁마을서쪽산길로오르면된다.
등산은대모산과구룡산을종주한후다시북측산기슭을돌아서일주하여일원동으로하산할수있으며,뜻에따라자연공원개발지구어느곳으로나하산할수있다.강남공업고등학교에서자연학습원쪽으로들어서실로암약수터를지나서성지약수터까지올라가는길은통나무계단길이다.성지약수터에서좌측능선으로올라서면능선길이정상까지연결된다.또자연학습원에서불국사를거쳐정상으로오를수있다.
정상에올라서면서쪽으로구룡산이건너다보인다.정상에서구룡산쪽으로능선길을따라내려서면중계탑있는곳에우측은옛약수터길,좌측은구룡산길의갈림길이있다.좌측능선길고개까지가면샘물과쉼터가있다.고개에서좌측철조망길을따라곧바로가면구룡산정상이다.구룡산의정상에오르면한강의큰흐름과강남의신시가지,강북의도심과북한산,서쪽으로관악산과우면산의조망이시원하게펼쳐진다.
정상에서서쪽으로능선을따라내려가다갈림길에서좌측으로내려서면염곡동구룡산제1약수터쪽이고,우측은전망대를지나서계단으로내려서면양재대로로나오게된다.내곡동헌·인릉방면의들머리는헌·인릉의동쪽철조망을따라산행할수있다.그러나인적이드물고통제되기도하여일원동이나개포동,염곡동,포이동등양재대로와헌릉로쪽에서올라야한다.
대모산과구룡산은서초구와강남구의경계를이루며1971년8월6일건설부고시제465호로미시설대모산도시자연공원으로지정되었다.그후1986년5월20일에건설부고시제229호로변경되어최종결정고시되었다.현재강남구관내면적은2,277,252㎡(약69만평),서초구관내면적은2,752,006㎡(약83만4천평)으로합계5,029,258㎡(약152만4천평)이다.대모산공원의시설물을살펴보면강남구에광장1개소가있으며,등산로는강남구지역6개소2.3km,서초구지역4개소2.5km가있다.
조경시설로강남구지역에파고라1동이있으며,편익시설로는야영장이강남구지역에1개소,서초구지역에2개소가있다.그리고강남구지역에정자7개소,야외탁자11개,벤치343개가있다.유희시설로강남구지역에유료시설이하나있고,운동시설로강남구지역에간이운동장5개소,성인운동기구9종130개가설치되어있다.그리고편익시설로강남구지역에주차장1개소가있으며옹달샘은강남구지역에15개소,서초구지역에3개소가있다.
한편1989년서울시가추진한?근교큰산살리기운동?의하나로대모산공원활용계획이수립되어공원시설의기초가되었다.이때대모산자연공원은구룡약수터지구·천의약수터지구·불국사지구·성지약수터지구로구분정비되었는데,이곳은모두강남구지역이었다.이는1988년에강남구에서서초구가분구되었는데,이미계획된지역은강남구지역에해당되었고,서초구는아직도시계획이미수립된상태에있었기때문이다.
대모산남쪽아래내곡동산13번지1호에는헌릉과인릉이자리잡고있다.헌릉은조선제3대태종과왕비원경왕후(元敬王后)민씨의능이다.헌릉의서쪽에있는인릉은23대순조와왕비순원왕후(純元王后)김씨의능이다.흔히헌릉과인릉을합쳐서헌·인릉이라고부르는데,1970년5월26일사적제194호로지정되었다.헌릉의자생풍수적명당론을보면북쪽·동쪽·서쪽으로는대모산·인릉산·구룡산이병풍처럼둘러쳐있고,남쪽으로는조금떨어진목동산(신원동쪽)이안산구실을한다.말하자면전형적인장풍국(藏風局)의형세인것이다.
헌릉은원경왕후가세종2년(1420)에,태종이1422년에승하하여모셔졌는데,능역면적411,014평이다.능의상설은고려공민왕과노국공주의현릉과정릉의제도를답습하여만들어졌다.즉봉분을2기로하되주위의난간을터서연결시킨쌍릉제이다.봉분하부에는병풍석을만들고면석중앙에각방위별로12지신상을조각하였다.인릉은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만들어진동원합봉(同原合封)형식의능이다.
순조가1834년에경희궁에서승하하자이듬해파주탄현의인조장릉(長陵)경내에처음장례를모셨다가,풍수지리상불길하다는이유로철종7년(1856)현위치로이장하였다.순원왕후김씨는철종8년(1857)에승하하여인릉에모셔졌다.내곡동13번지에는건평900평의헌·인릉능참봉가(陵參奉家)가남아있다.원래이집은순조를받들던능참봉가이며,태종을받들던능참봉집은일제침략때화재가일어나소실되었다고한다.
대모산(일명光秀山)북동쪽기슭수서동산10번지1호에는광평대군묘역이있다.이는서울과근교에현존하는왕손의묘역가운데가장원형에가까우며,1981년2월5일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제48호로지정되어있다.광평대군의묘소는처음광주군서촌학당현,지금의삼성동선릉(宣陵)부근에있었다.연산군원년(1495)에성종의능을그곳에정하면서당시광주군대왕면이었던이곳대모산으로이장하였다.광평대군의사당은처음에지금의성북구안암동궁말에있었는데,1911년10월에현재의위치로옮겨졌다.
이묘역에는세종의다섯째왕자인광평대군의사당과그내외묘소,태조의일곱째왕자인무안대군방번(芳蕃)내외묘소,광평대군의아들영순군이하그후손들의묘소700여기가함께자리하고있다.그가운데신도비,혼유석,석등,석인등이규례대로갖추어져있는광평대군의묘소가중심을이루고있다.이묘역에는광평대군신도비,무안대군신도비,영순군신도비,혜정공신도비,이현응묘비,이회묘비등이있으며,특기할것은다른곳에서볼수없는세장기비(世葬紀碑)가있어가족묘의기록을담고있다는점이다.
대모산북동쪽기슭수서동514번지8호에위치한이병무가는전주이씨광평대군파의종중소유로1987년4월8일강남구전통건조물제1호로지정되어있다.이집의건립연대는약500년전으로추정된다.개인의집으로는최대인속칭99칸집이었으나임오군란때일부가불타버려현재는40칸정도남아있다.가옥총건평49.1평에대지는721평인데,안채,사랑채,문간채등으로이루어져있다.가옥의배치는남향으로위치하여ㄱ자형안채에사랑채가ㄴ자형으로연결되어ㅁ자형을이루고있으며,사랑채가동쪽으로덧달아나와있는평범한양반집형태이다.
불국사는대모산북쪽기슭강남구일원동자연학습원위에위치해있다.고려공민왕2년(1343)에진정국사(鎭靜國師)가창건하고불국사라했는데,조선고종17년(1880)에네번째로이곳에옮겨지은것이다.이곳에약사전이있으므로일찍이‘약사절’이라고불리었다.진정국사는고려개국공신염달의후손으로어려서과거에급제하고문장에도능하였다.만덕산에들어가원묘(圓妙)에의하여중이되었고,백련사(白蓮寺)의4대조사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