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한국산악계의해외등반에주어졌던화두는8000m급14좌등정이었다.엄홍길,박영석,한왕용으로대표되던한국의히말라야니스트들이1986년메스너의8000m급14좌등정이후같은길을좇아아시아최초,한국최초의기록을향해내달렸던것이다.일반시민들에게까지관심을모았던‘14좌’는2000년엄홍길의완등과이어진박영석,한왕용의등정이이루어졌다.
이후다시엄홍길이내세운‘14+2’라는위성봉에대한도전과14좌와남북극점탐험,7대륙최고봉을모두밟는박영석의‘산악그랜드슬램’,한왕용의14좌청소등반등으로이어졌다.그들의활동에대한여러가지평가도많았지만그에앞서,한국산악인의14좌등정이우리나라히말라야등반과해외활동을국내외에알리는계기가된것은사실이다.
이후박영석을제외한,나머지두사람이실질적으로그전과같은고산등반활동에서멀어지며,바야흐로포스트‘엄박한’시대가도래했다.하지만이후에도여전히오은선·고미영을위시한14좌등정을목표로하는사람들이생겨났으며,한편으론6~7천m급고산거벽등반을위주로하는클라이머들도나름의영역을구축하고성과를내고있다.그둘모두와관계없이20대신예들도속속세계의각지에서자신만의산을오르고있는것이지금우리나라의해외등반상황이다.
‘14좌’이후의‘14좌’가의미있는가하는의문을빗대어생각해보면,1953년힐러리와텐징의에베레스트초등이후그곳을재등하는것이옳은일인가논했던서구산악계일각의고민과닮아있다.하지만지금까지도매년수백명이세계최고봉의정상에오르고있는상황처럼,‘14좌’라는하나의트렌드도쉽게사그라지지않을것으로보인다.
수면위로떠오른것은‘여성14좌레이스’다.2005년한국여성처음으로7대륙최고봉을끝냈던오은선(블랙야크)이본격적으로14좌완등목표를세우고연일자이언트급봉우리등정에성공한것을그시작으로볼수있다.7대륙최고봉등정때까지8000m급은가셔브룸2봉(8035m)과에베레스트(8850m)만올랐던그는2006년시샤팡마(8012m),2007년초오유(8201m),K2(8611m)를잇달아올랐다.
본격적인고산등반에불을댕긴다.이후2008년한해동안마칼루(8463m),로체(8516m),브로드피크(8047m),마나슬루(8163m)정상에서며한해에자이언트급4개봉등정이라는기록을세운오은선은올해에도캉첸중가(8586m)와다울라기리1봉(8167m)을올라총11개봉등정에성공했다.현재파키스탄의낭가파르바트(8125m)와가셔브룸1봉(8068m),네팔의안나푸르나1봉(8091m)만을남겨두고있다.
그는오스트리아의겔린데칼텐브루너(12개)와스페인의에두르네파사반(12개)에이어3위를달리고있지만,칼텐브루너와파사반이올가을시즌에네팔에서만각각2개봉을올라야하는부담과달리여름에파키스탄2개봉을오르고가을에안나푸르나1봉을오른다는계획을세우고있어‘최초’의기록에는한층유리한상황이다.
오은선의질주와함께고미영(코오롱스포츠)의14좌등정계획도순조롭게진행되고있어국내산악계와매스컴을비롯해해외언론들까지우리나라여성산악인에대해촉각을세우고있다.2004년파키스탄드리피카(6447m)등정을계기로스포츠클라이머에서고산등반가로변신한고미영은이후소속사의전폭적인지원과김재수(경남산악연맹부회장)라는,고산등반에있어걸출한맹장을만난것을계기로삼았다.
그는연일기염을토하고있다.2005년첫에베레스트시도때만해도고산에서경험부족으로인해변변한등반한번해보지못하고후퇴했던고미영은2006년초오유등정을시작으로2년간에베레스트,브로드피크,시샤팡마등8000m급7개봉정상에오르고,지난봄에는마칼루,캉첸중가,다울라기리1봉을올라한시즌3개봉등정이라는기록을세웠다.
최근8000m급노멀루트를오르는팀들이대부분한시즌에여러봉우리를시도하고있는데,이두사람도그런시류에맞춰한등반이끝나면바로다음대상지까지헬기로이동해카라반시간을줄이고빠르게등반하는스타일을고수하고있다.일각에서는이제부정할수없는경쟁구도에놓이게된‘여성14좌레이스’에대해지나친경쟁이라는우려의목소리도있는것이사실이다.
지난한국등산연구소세미나에서도이같은문제가제기되었으며,토론자들은“개인의등반에대한가치는타인이쉽게평가할수없는것이지만,그로인해벌어지는후원사와매스컴의과열홍보에따른지나친경쟁구도는옳지않다.그러나14좌초등을향해가고있는다른외국여성들이국가의전폭적인지원을받는방면,우리여성산악인들은그에비해외로운사투를벌이고있는것이현실”이라는의견을내놓기도했다.
한편등반의과정이어떻건그결과만을두고침소봉대하는매스컴과후원사에대한비판도있다.고산등반경험이풍부한K씨는“이미국제산악계에서당연하게여기고있는에베레스트,K2,캉첸중가,로체,마칼루등을제외한8400m이하의봉우리에대한무산소등정을굳이‘무산소’라고덧붙이거나대원없이셰르파와함께한등반을‘단독등정’,또는‘알파인스타일’이라는용어의부적절한사용등결과에대한과대포장이만연하고있다”고지적했다.
14좌열풍은이두사람만으로그치지않고있다.대표적인것이각지자체의후원을받아추진하고있는시도산악연맹의14좌등반이다.현재부산,대전,전북,경기,인천등산악연맹에서지역홍보,시민들의개척과도전정신구현,민간외교등의캐치프레이즈를걸고매년8000m급등반대를꾸리고있다.이원정대들은자이언트급대상지,일정한성공률을지닌노멀루트,극지법,지역업체의후원과트레킹단동행등몇가지공통점을가지고있다.
자이언트급등반이과거지역에서일회성행사에그쳤던것과비교하면달라진양상이다.부산시산악연맹원정대는2006년에베레스트를시작으로2007년K2와브로드피크,2008년마칼루와로체를오른데이어지난봄에는마나슬루와다울라기리1봉을등정했다.부산팀은매번등반후보고서를알차게펴내호응을얻고있는데,이는지금까지노멀루트를통한14좌등정과정과는다른신선한시도로평가받고있다.
지난봄다울라기리1봉을시도해고우석·김미곤대원이정상에올랐던전북산악연맹은지금까지지역단일팀으로꾸린원정대가4개를등정해아직10개를남겨두고있는상황이지만,꾸준히나머지를올라14좌를채울계획을세우고있다.2008년에베레스트·로체원정대를꾸리고올해안나푸르나1봉에원정대를파견했던경기산악연맹과내년K2원정대를꾸릴계획인대전시산악연맹,올해에베레스트와로체에오른인천시산악연맹등도순차적으로8000m급원정을통해14좌에다가설것으로보인다.
이런지자체별14좌등반과정과함께새로운히말라야니스트들도계속배출되고있다.부산팀에매번대원으로합류해온김창호(LS네트워크)씨는2005년광주팀과함께했던낭가파르바트루팔벽등정을통해첫8000m급정상에오른후2006년가셔브룸1·2봉,2007년K2,브로드피크,2008년마칼루,로체,2009년다울라기리1봉,마나슬루등7좌를올랐다.1993년카라코룸그레이트트랑고원정을시작으로2003년파키스탄4개봉단독초등등주로소규모고산거벽위주로등반해왔다.
그는8000m급등정과정에서도무산소,연속,최단시간등정등과함께파이네주봉등반,바투라2봉초등등자이언트급에국한되지않는다양한시도를해왔다.그는소속사를통해서도14좌완등이라는뚜렷한목표를공개한것은아니지만,세간의관심이집중되는것은사실이다.장애산악인김홍빈씨도지난2008년빈슨매시프를끝으로7대륙최고봉등정을마친뒤본격적인14좌등정길에뛰어들었다.
91년매킨리등반중사고로손가락을모두절단한그는97년유럽최고봉엘브루즈를등정한것을시작으로11년간7대륙최고봉을올라왔으며,2006년가셔브룸2봉등정과함께2006년시샤팡마,2007년에베레스트,2008년마칼루,2009년다울라기리1봉등8000m급봉우리를차례로오르고있다.양손이불편한그는지역에서오랫동안함께활동해온후배산악인들의도움을받고있는데,6월4일K2와브로드피크등반을위해출국했다.
1998년마나슬루등반을계기로고산등반에입문한김미곤(버그하우스·한국도로공사)씨는2000년초오유등정,2001년마칼루,2006년가셔브룸2봉,2007년에베레스트·로체,2009년다울라기리1봉을올라6개봉정상에섰으며,내년K2등정을계획하고있다.이밖에지난봄울산마칼루원정대에참가해등정한윤치원씨(영원무역)등도자이언트급대상지를계속시도하고있으며,고미영씨와함께등반중인김재수씨는지금까지10개를올라남성중에는14좌에가장근접했다.
비용과시간이많이드는자이언트급원정대와달리소규모로6~7000m급대상지를찾아현대등반사조에부합하는알파인스타일이나거벽등반만을시도하는그룹도색을분명히하고있다.파키스탄스팬틱서벽,일명골든피크에서알파인스타일신루트등반을위해지난6월3일출국한김형일(K2코리아)씨는작년에도카라코람마셔브룸산군의아딜피크를북서벽신루트로시도해알파인스타일로등정하는성과를냈다.
1999년에캐나다부가부스노패치스파이어등반을시작으로거벽등반에발을들여놓은그는로체샤르,로체남벽등자이언트급노멀루트나알파인대상지도등반했었지만,2005년트랑고타워에신루트를개척하는등주로인공등반을위주로하는대상지에서좋은결과를내왔다.김형일씨는촬영대원을포함한5명으로팀을꾸렸으며,고정로프와캠프없이원푸쉬로등반해정상에선후벽을하강해돌아올계획이다.
작년인도메루피크주봉(남봉)신루트개척에성공했던김세준(익스트림라이더)씨는앞으로등반할대상지에대해5개년계획을세워두고있다.당초올해라톡1봉을시도할계획이었으나,준비가부족하다고판단한그는7월주변산군을정찰하고돌아온후내년에원정대를꾸릴것이라고밝혔다.김세준씨는등반경력이오래되지는않았지만,인공등반분야에서탁월한기량과체력으로그전까지시도가없던다양한대상지로진출해왔다.
2003년파키스탄나와즈브락에17일간매달려A5급신루트를개척한것을비롯,2004년에는국내산악인으로는처음으로캐나다배핀섬에진출해신루트3개를올랐다.포탈레지를사용해오랜시간벽에매달려오르는‘캡슐스타일’을고집해온그는2007년알파인등반경험을쌓기위해파키스탄투이좀(6158m)을시도하기도했지만등정하지는못했다.
왕준호,김팔봉,김태만,민준영,전용학씨등익스트림라이더출신인물들도이같은등반스타일로거벽위주의등반을펼치고있다.특히민준영씨는지난2007년과2008년파키스탄차라쿠사산군의무명봉을초등하고직지봉(6235m)이라고명명하는등,대상지의높이는낮지만알파인등반과거벽등반을넘나드는등반을하고있다.지자체후원을받아꾸린‘청주직지원정대’는14좌로가는다른지역원정대들과형식적인면에서는크게다르지않다.
대상지를자이언트급에국한하지않고보다등반성있는곳으로골라알파인스타일등여러가지시도를하고있다.올해는지역출신산악인인고지현옥씨10주기를맞아안나푸르나산군의히운출리를신루트로시도할계획인것으로알려졌다.지난해카라코람히스파르지역의6000m급3개봉을등반하고,그중2개봉을초등정해‘CAC사르’,‘코리안사르’로명명한한국산악회는‘센트럴카라코람개척등반5개년계획’에따라올해는정갑수씨를대장으로한원정대를비아포빙하의미답봉우준브락(6422m)에파견할계획이다.
작년원정대대장을맡았던유학재씨도노멀루트를벗어난6~7000m급알파인등반만을고수하는그룹중하나다.주목되는건20~30대신예그룹의등장이다.이들은아직자기만의명확한등반세계를가지고목표를정해팀을꾸리기보다,여러원정대에참가해경험을쌓는것을일차적인목표로활동하고있지만,매번고산또는거벽에서도좋은결과를내며기대를모으고있다.
올해에베레스트남서벽신루트등반에서활약한신동민,강기석,이형모씨등은30대초중반으로20대중반부터고산등반에입문해8000m급노멀루트,거벽을가리지않고원정대에참가해왔다.대학산악부출신인이들과달리안치영(봔트클럽)박희용(노스페이스)씨등도전국단위의원정대를구성할때빠지지않고대원후보로지명되는이들이다.특히이들은스포츠클라이밍으로기량이다져져보다고난이도벽등반을할수있을것으로기대하고있다.
여성으로는우리나라두번째로7대륙최고봉을오른김영미씨가활발한활동을하고있다.에베레스트남서벽원정대에참가하기도했던그는2008년에베레스트와올해로체를올랐으며여름시즌가셔브룸2봉을등반하기위해출국했다.지난2007년파키스탄가르무시(6244m)를알파인스타일로재등해아시아황금피켈상을수상하기도했던심권식씨도6~7000m급고산거벽그룹의노장중한사람이다.그는올해파키스탄타후라툼원정대를꾸려1300m에달하는서벽을알파인스타일로오를계획으로6월출국했다.
심권식(청죽산악회)씨는출국전인터뷰에서“우리나라산악계는아직등반의곤란성이나순수성보다는단순한높이에치중하는경향이많다”며“이해관계가얽힌장비업체나언론은그렇다고치더라도산악인들의권익을보호해야할산악단체들도다르지않은것같다”고지적했었다.그의말처럼,6~7000m급고산거벽에서소규모원정대를준비하는사람들이가장곤란을겪는부분은바로경제적인부담이다.2008년네팔과파키스탄,인도,중국등히말라야지역으로진출했다.
우리나라해외원정대중17개팀은8000m급노멀루트를시도했고,11개팀은그보다낮은대상지를찾아알파인스타일등새로운방법을시도했다.두그룹간에숫적인차이는크지않지만그에소모되는비용과인원을비교해보면최소10배이상규모가벌어진다.등산은알피니스트의수만큼이나다양하다고하기에,둘사이에어떤등반이더가치있는가를따지는것은불가능한일이다.
그러나문제는그비용과인원이투입된결과가과연우리산악계의성장과발전,나아가그로인해생성된산악문화가시민사회에얼마나환원되고있는가하는것이다.누군가의등반소식이올라오면이마운틴(
세계아무도주목하지않는등반에대한과대포장이라는비난이나조목조목등반과정에대한비판의글까지산꾼들의반응은그야말로하늘과땅차이라고할만큼크게벌어지고있다.어쩌면버추얼공간을통해나타나는,익명성에깃댄산악계바닥민심의본질은무엇을몇개나오르고얼마나어려운루트를돌파해정상에섰는가에대한관심이아닐지도모른다.우리는백전백승의‘영웅’을기다리는것인가,아니면모두가진심으로수긍하는한사람의진솔한알피니스트에목마른것이아닌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