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은자유인이다.
언젠가독일의등산책을읽다가한등산가가쓴짤막한글과부딪쳤다.“나는가지고싶은것이없다.내게필요한것은자유뿐인데,그자유가내게있다”는글이었다.우리주변에산책은많지만,그리고산에가는사람은많아도이렇게단적으로‘자유’를이야기하는글을보거나말을들은적이없다.등산과자유의문제가나오기는이것이처음이아니다.
오늘날등산계에교과서처럼되어있는미국의<마운티니어링>이‘TheFreedomoftheHills’,즉‘산의자유’를그책의부재로삼은지도오래다.그런데여기서말하는자유란등반대가산의지식과산행의능력을충분히갖추었을때비로소등반대는산에서어려움을이겨내고그뜻을이룬다는이야기다.산악인의자유란등산의위험으로부터의자유를말하고있다.물론옳다.
그러나나는등산과자유의문제를그렇게일변도로다루고싶지않으며,산악인의자유라는개념을더욱넓고깊게생각하고싶다.산악인은일반사회인과다르다.우선그독립된명칭이그것을말해준다.독일어에‘Naturkind(자연아)’라는독특한말이있다.사회에얽매이지않고그발상과행위가사회의구속을벗어나언제나자유로운인간을말하지만,산악인이그런의미에서바로자연아며자유인이라고본다.
기도레이(1861~1935)는알프스와의싸움이노동처럼유익하고예술처럼고상하며신앙처럼우아하다고믿었던자유인이었다.1912년돌로미테의시몬델라파라남벽을등반중인기도레이.출처<AlpinismoArcobatico>
인간은흔히사회적동물이라고하는데,누구도그말을부정할수없을정도로우리는사회라는울타리안에서숙명적으로살고있다.사람이스스로만들어놓고거기에예속되어있는셈이다.그런데이런예속에는긍정적인면도없지않다.그안에서살아가야하는인간의생존조건으로서우리는사회의제반규제를만들고지키고있는데,그러면서인간은사회에서안주하게된다.
이런자유를한때인간이잘못받아들여엄청난화를입은적이있다.그러한역사적사실에대해에리히프롬이<자유로부터의도피>라는주목할만한책을썼다.그의논거는인간이자유를희구하면서한편복종을원하는본능적욕구가어딘가에숨어있다며그예를독일나치에들었다.당시의파시즘은히틀러한사람의권력욕이나지배력으로볼것이아니라독일민족에게숨어있는파시즘의인간학적기초에그런맹점이깔려있다는탁견이었다.
세계는오늘날과학기술과물질문명의무서운힘으로끝을모르게발전하며인간의생활권이한없이넓어지고있다.그속에서인간은점차자기의고독감과무력감을실감하며정신적육체적안위를염려하게됐다.그래서사람들은일보다쉬고싶어하고,겉으로화려하지만안으로남모르게허무감에물들고있다.진정한뜻에서자유가무엇인지는판단하기쉽지않다.
사람들은보통‘~로부터의자유’를생각할뿐‘~에로의자유’를모른다.등산은20세기후반에들어가며지구상에더오를데가없어지면서초창기로부터이어오던고전적의미이서‘일상성으로부터의탈출’이라는현대적의미가사람들의의식과행위를규제하게됐다.그러나산악인의의식과행동밑바닥에는‘탈출’보다는‘고소지향’의의미가더강하다.이것이산악인의자유다.
메스너의책에<가고싶은데로떠나는자유>라는것이있는데,그표제가좀길어보였던지영어와일어판에서는<자유정신>이니<자유의혼을찾아서>라고했다.물론뜻으로크게잘못된것은없으나어딘지제맛이나지않는다.메스너원제에서는길을떠나려는사람의신선한분위기가물씬풍긴다.여기서‘가고싶은데로떠나는자유’란구체적으로어떤것일까?
산악인은언제나그런자유속에서살고있는셈인데,등산역사에나오는경우가우리후진들에게특히강하게다가온다.그중에서도제일먼저생각나는것은게오르그빈클러다.그옛날빈클러는혼자알프스를두루헤맸지만결코공명심에서나어떤구속으로부터의도피가아니었다.그는오로지알프스의무인경(無人境)을혼자감으로써절대자유함을독차지했다고본다.
그렇다고유아독존(唯我獨尊)이아니라무아경(無我境)에대한동경과추구가그의단독행철학이아니었을까싶다.산악인은엑센트릭(eccentric)하다고할수있다.남보기에사서고생하며죽음의지대에스스로돌입하는것을일반인의사고로추적하기는어려운일이며,산악인의자유성으로해석할수밖에없다.나는사람을산에가는사람과가지않는사람으로나누는데여기에는큰의미가있다.
산에가는사람에게는대자연을상대로자기생활권을넓히고보이지않는지평선을동경하는자기만의세계가있다고본다.크리스보닝턴은언제나정상에서면다음에찾아나설지평선을생각한다고했는데,다른사람들이고생끝에정상에서자대개는허탈감에빠진다는것과는너무나대조적이다.고생해서목표에도달했지만정상에는아무것도없고허공뿐이라는이야기다.
그러한자유의질적차이를세계등산무대에비친선구자들에게서우리가보는것은흥미롭고의미가크다.18세기후엽알프스의최고봉인몽블랑정상에오르는길을찾으려고생각했던대학교수드소쉬르를비롯해서,일개판화가에지나지않았던에드워드윔퍼가마터호른에끌려운명적인싸움으로알피니즘의역사를바꾸어놓았다.
이런역사의분수령역할을하지않았어도철저한자유인으로돋보인등산가들이적지않다.기도레이(1861~1935)가그런사람이다.알프스와의싸움이노동처럼유익하고예술처럼고상하며신앙처럼우아하다고믿었다.그보다앞서에밀자벨(1847~1883)은36년이라는짧은생애에자유로운정열과시정(詩情)으로산악문학의정점같은<한등산가의회상>을우리에게남겼다.
그의글에는산악인만이아는독특한세계가그려져있는것도우리들후진이가지는자유의소산인셈이다.그것은이런글이다.‘길도없는어느골짜기가,도끼소리가한번도들린적이없는숲이,누구도들여다보지못한깊은곳에서요동치는폭포가어딘가에있는것을아는사람은행복하다.’이런글은뛰어난소설가나시인이라도창작하기어려운인간의사고와체험의세계에서나왔다.
다시말해서등산의세계가그것이며그곳의주인이다름아닌산악인이다.우리들산악인이살고있는등산세계란어떤곳인가?이에대한답은간단할것같으면서실은그렇지않다.가까우면서멀고,낮으면서높으며,좁으면서넓다.그런곳에서우리는웃다가울고,용기가실의로,환희와비통이,좌절과재기를거듭하는가운데산악인의연륜이늘어가며비로소자기가살아온세계를진정의식하고눈으로본다.
이밖에뭐라고설명할수있겠는가?거기에순수무구한자유가있다.기도레이의말대로‘산을기어오른다는것은아무도몽상조차한적이없었는데,사냥꾼과학자가접근할수없던산마루에오른다는,극히간단하면서도가장위대한행위를완성하려고서로힘을합쳤다.그것은미친짓이었으나그들은등산을발명하고인간에게또하나의정열을안겨주었다.’
산악인은가스통레뷔파가즐겨말하는‘산사나이들의우정’으로뭉쳐서알피니즘과인생에대한깊은사색과,산의사계(四季)가연출하는자연의향연과,산행을통해체험하는정서를중심으로자유인의세계를펼쳐야한다.
-글김영도한국등산연구소장/월간마운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