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이란누구를두고하는말인가.알것같으면서잘모르겠다.산악인이산에가는사람인것은분명한데반드시그렇지도않은것같다.보통산에가는사람들을산악인이라고하지않는것도사실이니거기에는조금다른뜻이,달리보는관점이있다.
산악인과같이쓰이는말로등산가가있는데,등산가와산악인은엄격한의미에서다르다.국어사전에는이낱말들이같은것으로나와있으나우리주변에서등산가라는말은별로듣지못한다.대신등산객으로많이쓰인다.‘객(客)’이란한마디로‘손님’이니등산객은어불성설이고논리의비약이다.도대체등산에왜‘객’이붙는지모를일이다.
외국에서는어떤가.등산이원래알프스의고산지대를무대로서구(西歐)에서시작되었고,그기원에는독특한의식과행위가있었다.그것은‘알피니즘’으로,그주체를또한‘알피니스트’라고불렀다.여기등산의원형이있으며이것이그대로이어져오늘에이르고있다.
사실‘알피니스트’는보통산에가는사람이아니고,우리나라에서도그런뜻에서등산전문가를‘산악인’이라부르고있다고본다.따라서‘알피니스트’가서구사회에서독특한의미를가지는것처럼우리도‘산악인’에그런비중이있어야한다.
등산가를영어로‘mountaineer(마운티니어)’,독일에서는‘bergsteiger(베르그슈타이거)’라고하지만그들은‘알피니스트(alpinist)’라고공통된명칭으로부르기도한다.
우리나라의등산전문지로긴역사를가진<월간山>이창간40주년을맞아새삼‘산악인’문제를다루어주목을끌었다.오늘날우리산악계에서산악인이라고하면어떤사람들인가에초점을둔모양인데,그것은그것대로흥미있는문제이지만사실등산하는사람을이렇게가르기는쉬운일이아니다.
물론여기에는뚜렷한기준이있어엄선한다고해도결코만족하고납득할만한결과를기대하기가힘들것같다.다만모처럼내세우는‘산악인’의개념인만큼한번은분명히해두고싶다.
‘등산(登山)’은원래한자문화권에없던말이다.이를테면서구의‘알피니즘’을우리가적당히옮긴것이다.‘알피니즘’은‘알프스’를바탕으로생겨난말이지만‘등산’에는그런근거나전제가없다.다시말해서‘등산’에는알피니즘과같은역사성이없다는이야기다.그러다보니우리사회가‘등산’을대하는감각이나태도가빈곤하거나부적절할수밖에없다.이번에<월간山>이산악인문제를다루며부딪친고민과어려움도여기에서왔다고본다.
적어도선진등산국에서는이러한혼란과애매함이없다.그것은알피니즘이라는개념이처음부터분명했기때문일것이다.그들에게‘힐워킹’이라는차원이있는것은고사하더라도그들이등산이라고할때에는대체로고산등반의의미가강하다.그래서서구인들과이야기하다가그들이등산가이건아니건이쪽이알피니스트라는것을알면거의예외없이눈빛이달라지고대하는태도가바뀐다.그만큼등산이나등산가가사회에서차지하는비중이크다.
이러한차이는어디서오는가.그것은단순한문화적차이라고볼수가없다.오늘날우리나라등산잡지에는높이수백미터에지나지않는이른바야산을등산의무대로한기사가흔히눈에띄는데,이것은우리의자연조건으로보아도리없는일이다.하지만적어도등산전문지의주된기사로서는빈약한느낌을준다.
지난날에베레스트에서돌아오는길에네팔카트만두에서만난서구인들과의대화가잊혀지지않는다.그들은에베레스트원정대장이한국의산은높이가2,000m를밑돈다고한이야기에모두의아한표정이었다.그들은그것은‘mountain’이아니고‘hill’이라며그런한국이에베레스트에오른것은경탄이아니라의문이었다.
알피니즘이표고3,000m가넘는고소에서탄생했고그런곳을무대로산행하는자들이알피니스트라고인식하는것이등산의세계인것을생각할때,여기우리는등산이란무엇이며등산가또한누구인가새삼문제삼지않을수없다.
이벤트화하고있는알피니즘
<월간山>은산악인을엄선하며해외원정과고산체험은물론현재등반활동을계속하고있는점에중점을두었다.그것은그것대로일단평가의기준이되리라고본다.그러나이러한평가과정에소홀하고미약한점이없지않다.시대적배경과등산사조가고려되지않았다는것이다.산악인은시대의산증인이며등산사조의중심이기때문이다.그것은세계등산의역사에나타나있다.윔퍼와머메리와불등이좋은예다.
세계등산250년을기록한등산가들은거개가당대에뛰어났던인물들로,그생애에놀라운등반기록을세웠으며그런일로등산사조의흐름을획기적으로바꾸기도했다.그러나그들은요새말하는이른바거벽등반가는아니었다.물론거벽이등산무대에중심이슈로나타나기전의이야기다.
등산무대인고봉과험로가날로줄어드는오늘날산악인의조건도변할수밖에없다.미답봉이없으니초등이라는기록을내세우기도어렵게됐으며,대자연의환경이급변하는마당에이른바익스트림클라이밍이라는주관적세계도옛날의의미에서멀어지고있다.그밖에도정보와통신,교통수단등이발달해황무지개척이나탐험과다름없던알피니즘이점차이벤트화하고있는것도부인하지못한다.이러한등산세계속에서진정‘산악인’의위신과자격을유지하기는거의불가능에가깝지않을까싶다.
몇해전에하인리히하러가갔지만그가영원한산악인으로우리뇌리에남아있는것은바로그의아이거북벽초등때문이다.그뒤힐러리도갔으니시대적영웅들의모습과수가줄어들어이제얼마남지않았다.앞으로그런인물들이다시는나타나기어려우니더욱그렇다.
산천은유구하다지만등산의무대인대자연은그렇지않다.에베레스트가여전히세계최고봉의위용과권위를유지하더라도에베레스트에는이벤트가남아있을따름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
발터보나티가최근에황금피켈상을받은것은인상적이다.그는지난세기중반에눈부시게활약하고일찍산악계를떠났지만그의등반상의성취는그야말로타의추종을불허했다.그러한인물이더욱그리워지는것은나만의감회는아니리라.
메스너가근자에기자와의인터뷰에서자기는“산악인으로서패배자”라며작금의심정을토로했다.여기에순수고차원의알피니스트가,그이상형이엿보인다.20세기후반알피니즘의세계에서언제나선두를달리며후퇴할줄몰랐던그도결국불사조가아니었다.유구하다는자연속에한때그세계를주름잡던거인들도유수와같은세월속에서는결코유구할수없는것이등산의세계다.
나는<월간山>이제기한산악인은누구인가를보며,새삼흘러간등산의역사를눈앞에그려본다.그리고그토록거칠면서화려했던긴역사속에그때그때부침한위대한알피니스트들과자기와의관계를,특히그들로부터입은삶의도움을생각했다.내가반세기를등산세계에서살아오며언제나등산가로서의자기검증을소홀히하지않았던것은오로지그들이있었기때문이다.
-글김영도77에베레스트원정대장·한국등산연구소고문/월간산7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