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씨는23일후원업체인블랙야크측과전화통화에서“24일파키스탄발토로산군(山群)에위치한가셔브룸Ⅰ(8천80m)을향해출발하겠다”라며“오로지가셔브룸Ⅰ만생각하겠다.어느때보다경건한마음으로가고싶다”라고말했다고회사관계자가전했다.
그는이어“정상에오르고싶지만가셔브룸Ⅰ이받아줄수있는만큼만순응하며오르고싶다.무엇보다안전하게잘다녀오고싶다”라고덧붙였다.
지난11일낭가파르밧에서실족사한고인에하루앞서정상에올랐던오씨는애초곧바로가셔브룸Ⅰ으로이동할계획이었지만,사고소식을접한직후베이스캠프(4천300m)에서고인의구조작업을도왔다.
그는고인의시신이한국으로운구된뒤에는파키스탄스카루드에머물며사고충격으로쇠약해진몸과마음을추슬렀고,영결식이끝날때까지는언행을극도로조심해왔다.
이런가운데오씨가칩거에서벗어나가셔브룸Ⅰ등정에나서기로한데에는이것이야말로히말라야8천m14좌완등을누구보다강렬히원했던고인의뜻을받드는길이라고생각했기때문으로보인다.
고인의오빠석균씨도“오은선대장이빨리이번일을털고일어나미영이대신한국여성산악인으로서는처음으로히말라야8천m고봉에오르기바란다”라고말한바있다.
다만오씨는이날통화에서고인에대해언급은하지않았다고블랙야크측은설명했다.
오씨의가셔브룸Ⅰ등정은내달3∼5일쯤에는성패가결정이날전망이다.등정에성공하면오씨는14좌완등에안나푸르나(8천91m)단한개만을남겨두게된다.
현재8천m12개봉을오른여성산악인은오씨를제외하고오스트리아의겔린데칼텐브루너,스페인의에드루네파사반등3명이다.
평소고(故)고미영씨와‘언니,동생’하며자매처럼사이가좋았던오씨가고인의못다이룬꿈을안고가셔브룸Ⅰ정상에설지주목된다.
앞서오대장은지난달11일선의의경쟁자였던고(故)고미영대장과나란히낭가파르바트(8126m)정상에올랐으나뒤늦게베이스캠프로내려오던고대장의죽음으로큰충격에빠졌었다.오대장은당초예정됐던등반계획을2주가량미룬채현지에서사고수습을돕다가셔브룸Ⅰ에도전했다.
블랙야크는“오대장이올가을안나푸르나에도전할지,아니면충분한휴식을취하고내년봄에도전할것인지는오는20일쯤오대장이귀국한뒤확정될것”이라고밝혔다.
1889년부터1929년사이의히말라야카라코람개척사의초기에영국,이탈리아인들이가셔브룸I봉을측정하고탐사활동을펼쳤다.이산의측량기호는K5.
1934년스위스의디렌푸르트의지휘아래국제원정대가가셔브룸I봉에대한대규모의탐사를감행했는데H.에르틀과A.로흐가남서쪽에있는스퍼를올라6,300m지점까지도달했고,1936년에는H.드세고뉴의프랑스원정대가수송문제와포터의파업으로남쪽의스퍼를통해6,900m까지도달했다.2차대전이끝나고1958년미국원정대(대장크린치)가이’숨겨진봉우리’를찾아왔다.그리고7월4일쇼닝과카프만대원이강추위와심설을헤치고마침내정상에도달했다.이로써미국은8,000m급초등정대열에끼게되었다.
히든피크는알파인스타일로등정된최초의8,000m봉이다.1975년8월베이스캠프까지불과12명의포터만동원한2인조원정대라인홀트메스너와피터하벨러가가셔브룸I봉의북벽을경유하여등정했는데이것은히말라야에서최초로이루어진알파인스타일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