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m급거봉등반이매번순탄했을리는없었다.2008년K2등반에서는경남연맹원정대대원들과함께8월1일등정에성공했으나하산길보틀넥(Bottleneck)이라불리는얼음협곡을통과하던황동진(사고당시45세),박경효(29),김효경(33)세대원이위에서무너져내린눈사태에매몰돼목숨을잃고말았다.고미영은이들에비해불과몇시간빨리보틀넥을통과했기에위험을피할수있었다.
낭가파르밧에앞서등반한다울라기리는그녀를거의탈진상태에빠지게했다.네팔히말라야의봄시즌으로는늦은시기였다.그래도서둘지않고캠프를하나씩차근차근올리며정상으로향했다.막판에힘들었다.정상부근에도달했으나짙은안개속에솟아오른여러개의봉우리는그녀에게어떤봉이정상이란확신을주지못했다.때문에첫번째등정길에서정상부근에올라섰으나갈등을겪다마지막캠프로내려서고,이튿날다시등반에나서정상에오를수있었다.
“대장님도먼저내려갈거죠?”
그러자김재수대장은고미영에게확신을주었다.
“염려마라.함께간다.죽어도같이죽는다.”
김재수대장은고정로프를2m쯤잘라자신과고미영을연결한뒤한발한발마지막캠프로내려섰다.
카트만두에도착한고미영과김재수대장은귀국하지않고6월21일파키스탄으로향했다.그리고스카르두에서쉬다가6월28일낭가파르밧베이스캠프에도착,7월5일부터등반을개시했다.캠프를하루에한개씩올리며신속히정상을향해나아가던고미영은그러나하산길안전지대인제2캠프를코앞에둔지점에서실족,추락사하고말았다.
스포츠클라이밍을할때그랬듯이고산등반을할때에도GPS를지니고다니면서등로와정상의좌표를기록했을만큼기록에충실했던고미영은지난봄마칼루원정때울산팀대원들을대상으로기호식을조사하고산소포화도를체크하는등벌써부터고소생리학연구를위한준비를하고있었다.
14개거봉완등을마무리한뒤고산등반학교를만드는것도꿈이었다.특히함께14개거봉을완등한김재수씨와함께고산등반학교를만든다면고산을오르고싶어하는이들에게큰도움이되리라생각했다.1년에네차례씩히말라야현지에서교육을하고설산졸업등반후수여식을정상에서갖는다는스케줄이었다.
“강하다는것은이를악물고참는게아니라어디서라도웃을수있다는것”이라던고미영.등반중에도기타반주에맞춰노래를부르고,시간날때마다자신의능력을계발하는데필요한지식을얻기위해독서에주력했던그녀는주변사람들에게“나는절대산에서죽지않는다”고말해왔다.그녀의판단련과체력,민첩성등을잘아는주변사람들역시그녀가큰사고를당하리라고는예상치못했다.그녀는매니저이자동료인김재수씨와등반하면서정상에도착해“수고했다”면서늘하는말이있었다.
“그얘기는베이스캠프에서듣고싶습니다.”
그러나그녀는열한번째거봉정상에오른뒤누구도예상못한지점에서넘어지면서영원히돌아올수없는길로떠나고말았다.고미영을사랑하는모임첫페이지에그녀는자신의인생관을다음과같이밝혀놓았다.
“여러분의응원과격려가저에게는커다란힘이되어14좌를완등할수있는밑거름이될것입니다.부족하더라도예쁘게봐주시고진심어린충고는달게받겠습니다.고산등반은인생과비슷하다는생각을참많이합니다.지금당장은힘들어도이순간의고통을이겨내면그뒤에오는뿌듯함은말할수없이큽니다.좋은일과힘든일을함께겪으면서우리는성장하고성숙해집니다.제가좋아하는문구중엔이런말이있습니다.
‘편하거나쉬려고하지말라,정말로편하다는것은자신의목적을향해서죽기살기로가는것이다.’
삶에목표가없다면포기하기쉽습니다.포기란?배추셀때만필요한말입니다.”
“나머지3개봉에고인의흔적남겨주고싶습니다”
영결식을하루앞둔20일오전고고미영씨의빈소가차려진서울국립의료원에서만난김재수(金在洙·48·대한산악연맹이사·백산실업대표)씨는수척한표정으로“지금도고미영씨가사고를당했다는게꿈만같다”고말했다.
고미영씨의8,000m거봉등정레이스에서절대적인파트너역할을해왔던김재수씨는경남을대표하는클라이머다.1990년에베레스트를등정하고1991년남벽을통해시샤팡마를한국초등한이후거벽등반에눈이트인그는1992년에는로부제동벽등반도해내고,1993년칸텡그리-포베다등정에이어1994년초오유(8,201m)단독등정에도성공했다.
1995년에베레스트남서벽등반을통해거벽등반에대해더많은경험을쌓은그는1999년경남연맹팀등반대장으로서가셔브룸4봉서벽등정을이끌어냈으나,이후사업여건상3년에한차례정도밖에는고산등반을펼칠수가없었다.
2002년로체등정에이어2005년십튼스파이어에도전한바있는김재수씨가2007년에베레스트등반에또다시나선것은후배들에게세계최고봉에오를기회를주고싶어서였고,그등반에서고미영씨와인연을맺게돼이후고미영씨의14개거봉등반파트너이자매니저로원정에참가해왔다.
“올해8,000m급6개봉등정에도전한것은고미영씨의선택이자목표였습니다.충분히가능했고요.등반도잘했지만탤런트기질도있고,어떤일이든자신감이넘치고기획력도있었습니다.고산등반을마친다음더크고더많은일을할수있는산악인을이렇게너무빨리잃게돼너무가슴아픕니다.”
2007년5월고미영이김대장의에베레스트북면원정대에동참하며만난이후지금까지2년여동안두사람은일상의궤를거의같이했다.고미영은솔로였고,김재수대장또한고미영을알게되기직전에이혼한상태였다.그러므로두사람이연애감정에빠졌을것이란추측은어쩌면자연스러운것이었다.고미영사고후고미영의가족이내놓은고미영의메모형식편지를<스포츠칸>이공개하면서두사람이연애중이라고사실인양보도했고온언론이그기사를받아재확산했다.그러나김대장은단호하게부인했다.
“고미영은저보다여섯살아래인마흔두살로,산악계관례상막말을해도좋을정도의후배였지만저는언제나깍듯이존대했습니다.감정적인선을넘지않으려일부러그렇게거리를둔거죠.고소캠프는어쩔수없었지만,베이스캠프에서만큼은철저히고미영과다른텐트를썼고요.가족이공개한그연애편지메모는고미영이저를만나기전에쓴겁니다.그편지의대상자가한의사라는사실도고미영에게들어서알고있습니다.고미영이저에게이렇게말한적이있어요.‘등반할때그사람생각이전혀나지않더라.그걸로봐서나는이제그사람을사랑하지않는것같다’고말이죠.그렇게이미감정정리까지된사람에게저를대입시켜연애중이라고언론은아닌말로소설을쓴거죠.”
고미영의김재수대장에대한감정은그러나조금달랐던것같다.김대장은이렇게돌이킨다.
“어느봉인가,원정을갈때여객기안에서고미영이머리를내어깨에기대고싶다고하더군요.그래서제가아직은그럴때가아니라고말했지요.아무튼14개거봉을끝낸다음내년에고산등반학교를만들계획이었습니다.그녀도그랬듯이히말라야의하얀산을오르고싶어하는이들을도와주고싶었기때문입니다.”
20일오전국립의료원에서열린영결식헌화순서에서꽃을차마올려놓지못하겠다하여참석자들을더욱안타깝게했던김재수씨는“기회가온다면고미영씨가못오른3개고봉에사진이나유품을통해그녀의흔적을남겨놓고싶다”고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