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 능선에 서면 *-

남난희의<하얀능선에서면>

내삶을바꿔놓은태백산맥2천리

부산금정산고당봉을출발해진부령까지이어지는태백산맥을홀로걸은이가있다.백두대간종주붐이일기시작한1990년보다훨씬이전의일이다.산이좋아산이되고팠다는그는무게를줄이기위해칫솔도반으로잘라서휴대하고,무거운짐의무게를이겨내기위한하중트레이닝도꾸준히실시했다.5만분의1지형도27장을통해지형을꼼꼼히숙지한건물론이었다.

그리고유난히도큰눈이잦았던지난1984년,새해첫날하얀능선을헤쳐나가기시작한그는두달보름여간의동계종주등반을무사히마치고진부령을내려왔다.산행당시의경험과생각의편린들을담은책<하얀능선에서면>.일기형식으로엮은이책이출간된건지난1990년,그해는백두대간이대중에게알려지기시작한해로대간종주자뿐만아니라많은사람들에게깊은감동과모티브를선사했다.

그가종주한코스는지금의백두대간과일치하지않는다.산행시발점을부산의금정산으로잡았으니지금의태백산에이르러서야비로소백두대간과합류한셈이다.하지만이는당시의시대적인식의한계일뿐,누구의잘못도아니다.기껏해야지리산종주가성행하던시절,걸어서국토를그것도능선으로종주하겠다는계획을세웠다는자체를평가해야마땅하다.

또한책이출간된같은해일기시작한백두대간복원운동에기폭제역할을했음은부인할수없는현실이기도하다.당시TV와신문,잡지등언론매체들은그의태백산맥종주를비중있게다뤘다.‘금녀의성역’이라는말이무색할정도로성(性)의경계가무너진요즘과는달리80년대중반만해도개념에서출발해실생활전반에이르기까지‘남자와여자’라는구별이뚜렷한시절.여자혼자서겨울에산길을걸어국토를종주한다는건언론의관심을끌기에충분한이슈였다.

혹자는‘국토의얼을찾기위한등반’이라는‘얼토당토않은’수식어를갖다붙이기도했다.언론의속성을이해하기엔어렸던그는가급적자신의등반에관한말을아꼈다.산행을마친후6년이라는시간이지나서야책을펴낼결심을하게된이유다.“고향에서올라와서울에서직장생활을할때였는데,한친구의갑작스런자살소식을듣게되었어요.제겐무척큰충격이었죠.

너무나평범하고구김없어보이던친구였거든요.한동안나의존재와죽음의본질에대한물음이머릿속을떠나질않았어요.그러다어느날,산행을마치고홀로산을내려오는데‘죽음은죽음그자체일뿐’이라는생각이들었어요.견디기힘겨워멋대로내려버린결론이었지만막힌물꼬가트이듯비로소한참을울수있었죠.”

한창감수성예민한20대초반의나이,갑작스런친구의죽음과자신의존재에대한끝없는물음,그리고바닥을알수없는외로움은그를철저히혼자일수있는공간으로나아가게했다.그렇게결심하게된것이태백산맥동계단독종주였다.

산행후6년이지나서야책이나오게된건호사가들의입에오르내리는게싫었기때문이다.

산행은생각했던것이상으로힘들고괴로운순간들의연속이었다.길도나있지않은겨울산,가슴까지차오르는눈을헤치며하루종일진행한거리는채3km가되지않았다.그럴때면눈속에파묻힌채울음이터져나왔다.잡목덩굴속을헤치며앞으로나아가다문득바라본자신의모습은거지와별반다름없었다.열이펄펄나고헛소리까지하는채로텐트안에누워있어도적막한산중에서자신을돌봐줄사람은어디에도없었다.

하지만무엇보다도그녀를힘겹게한건외로움이었다.그리고그끝은사람에게로향해있었다.산사랑이지극한그였지만일주일에한번만나기로되어있는지원조를기다리는마음은책곳곳에숨김없이나타나있다.그고통들은어디에도비교될수없는고통이다.그냥나름대로,그리고서로다른방식으로고통은끝이없다.정신과육신도비교될수없다.그리고혼자라는것,이제혼자는싫다.더불어살고싶다.여러명이함께또는단둘이서라도살고싶다.-책속에서

“힘겹고외로운순간들이왜없었겠어요?그때만약지원조가없었더라면해내지못했을지도몰라요.처음산과대면했던날부터시작해지금까지의삶을후회해본적은단한번도없어요.오히려산을알게된데대해무척이나감사하며살아가고있죠.그안에있을땐어머니품에안겨있는것같은포근함같은게느껴지니까.한때산을오르지않는나자신을상상조차할수없던시절이있었어요.

하지만어느순간산에오르지않아도행복한나를발견했죠.아마도시생활을계속했더라면여기저기등떠밀려‘나만의산’을갖지못했을거예요.지금은무척행복해요.산이저를받아주었고,저또한산을제몸처럼생각하며살고있거든요.”그는“태백산맥종주는자신의삶을송두리째바꿔놓았다”고말했다.산에대한생각들은더욱구체화되었고,사람들과의만남도산을중심으로이뤄졌다.

그가살아온족적을살펴보면한순간도산에서멀어진적이없었다는걸쉽게알수있다.스스로를‘직접체험해보기전까지는좀처럼믿지않는성격의소유자’라고설명하는그는더욱깊고높은산을만나기위해,어쩌면그보다도더넓고미지의대상들로가득한세상과의만남을위해살아왔고또살아가고있다.
만약종주산행에대한정보를얻을목적으로책을읽는다면적이실망하게될지모른다.

그책속에는산행에필요한실질적인정보보다는한인간이아무도가지않은산길을홀로걸으며느낀개인적감상과생각들이주를이루고있기때문이다.하지만홀로무거운배낭을짊어지고눈덮인산길을걸어가는25세산처녀와만나고싶다면주저없이펼쳐보길권한다.그와함께울고웃으며하얀능선을밤새워걷다보면젊은시절,스스로의존재이유와앞으로의삶에대한고민들로열뜬밤을지새우던자신과마주치게될지도모를일이다.

그는요즘지리산자락에터를잡고살아가고있다.쌍계계곡상류,경사면을개간해밭을일구고차를재배하는전형적인시골마을한편에그의보금자리가자리해있다.구석구석그의손이닿지않은곳이없는시골집에서는예스러운분위기가물씬풍긴다.마당한편을가득메운장독속에는그가직접담근된장들이익어가고있다.집뒤텃밭을일궈딴녹차잎으로차를내는그는평범한시골아낙의모습이었다.

이전까지그와산과의인연을‘등산’즉오르는산이라정의한다면산자락에기대어살아가고있는지금을‘입산’이라고정의하면맞는표현일지?“산에살려면산을내몸처럼여길수있는마음가짐이되어있어야해요.물론조금은모자라고불편하죠.때로는외로울때도있고요.하지만지금의제삶에무척만족하며살아가고있답니다.”그는젊은날자신의온힘과열정을다해올랐던높은산대신집에서한시간거리에위치한작은산사에올라108배로매일아침을열고있다.

해맑은미소를만면에머금은그의얼굴을마주하면보는이의마음까지도편안해진다.

1957년경북울진에서출생한그는경남여상을졸업하고1980년에상경,서울에서직장생활을시작했다.우연히북한산을찾았다가암벽등반에매료된그는이듬해인1981년한국등산학교를수료하고82년에는창립회원으로록파티산악회에가입하며활발한암·빙벽등반을했다.84년태백산맥여성단독종주를비롯해86년에는여성최초로강가푸르나(7455m)를등정했으며‘금녀의벽’으로알려져있던설악산토왕성빙벽을올랐다.지난1991년여성에베레스트원정대정찰대장을맡기도했던그는동시대를대표했던우리나라여성산악인중한명이다.

-글김민수기자/사진황소영기자/월간마운틴0908월호에서-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