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즐거움20선]<5>걷기의철학
《걷기와생각하기는밀접하게연관된행위다.둘다몸과정신을동시에이용하고,정상(頂上)을목표로삼으며,노력을필요로하고,마지막으로는늘이러한고생을100배이상보상해주기때문이다.》
나는걷는다,고로존재한다
프랑스의고교철학교사인저자가걷기의철학적의미를살폈다.저자는우선과거만큼걷지않는현실을개탄한다.인류는걷기를통해자연과일체감을유지해왔는데탈것의발달로덜걷게됨으로써일체감이무너졌다는것이다.그는“인간의발걸음에맞춰진세계를되찾아야한다.이를위한방법은다시금우리행성을측량하는것,즉땅위를걷는것이다”라고말한다.
느리게걷는행위가되돌려주는기쁨도강조한다.“우리가눈여겨보지않던사물의섬세한부분이느린움직임을통해드러난다.걷기는느린움직임이며,이점에서세상의다양성과아름다움을보게해준다.”
걷기를통해이런기쁨을얻기위해선노력이필요하다.저자는산행(山行)을예로든다.걷다보면좌절감,피로,고통이밀려온다.멈추고자하는욕구가생긴다.하지만노력을기울이면이런유혹을지배하는법을배우게되며,피로는의지앞에서꼬리를내린다고저자는말한다.
산행이목표를정한걷기라면산책은우연에내맡긴걷기다.산책자는단지시간을즐겁게보내기위해이끌리는대로향하고뚜렷한목표없이거닌다.그과정에서산책은사유로연결된다.저자는“시속3∼5km속도로이동하면서세상의크기와현실에대해명료하게의식할수있다”고강조한다.
과거철학자들가운데는걸으며생각한사람이많았다.그리스어페리파테인(peripatein)은‘산책한다’는뜻이다.이말에서파생된페리파토스는‘산책하며철학하는사람들’을가리킨다.걸으면서스승아리스토텔레스의가르침을들은사람들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철학은소요(逍遙)철학이라는이름을갖고있다.
“우리의첫철학스승은우리발이다”라고말한루소는1762년프랑스의진보적정치인말제르브에게쓴편지에서숲을산책하고난뒤의느낌을이렇게털어놓는다.“머리는다소피곤하지만마음은기쁜채,나는잔걸음으로돌아오곤했습니다.돌아오는길에나는사물들이주는느낌에자신을내맡기며,아무것도상상하지않고,평온과내행복한상황을느끼는것말고는아무것도하지않으며즐겁게휴식을취했습니다.”
니체는‘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를쓰게된과정을설명하면서“스위스의실바플라나호수,이탈리아의제노아인근라팔로만주위를산책할때차라투스트라에대한발상이떠올랐다”고밝혔다.몽테뉴는‘세가지사귐에대하여’라는에세이에서“은거할곳에는꼭산책장이있어야한다.앉아있으면사유는잠들어버린다.다리를흔들어놓지않으면정신은움직이지않는다”고말했다.
프랑스의수필가에밀시오랑이1965년10월11일자에기록한메모에는산책을통해얻은기쁨이가득하다.“일요일인어제나는리옹숲기슭을20km도넘게,주로아름다운로브르리골짜기안에서걸었다.오늘내안에는철학에대한도취와열광이충만하다.뇌는근육을움직일때에만작동한다.언젠가보행론을써봐야겠다.”
그러나‘시간이돈’이된지금,사람들은옛날만큼걷지않는다.밀란쿤데라는이를개탄한다.“아,옛시절의한량들은어디에있는가.민요에나오는게으른인물들은,이방앗간저방앗간을어슬렁거리고총총한별빛아래서잠자던떠돌이들은어디로갔는가.”
-저자/크리스토프라무르지음|고아침옮김|Lamoure,Christophe원저자ㅣ출판
개마고원–글/금동근동아일보기자-
나무들은땅에뿌리를박고정주(定住)를하지만사람은발을가졌다.발달린모든것들은땅의이곳저곳을떠돌아다니며산다.걷는다는것은육체로된삶을되돌려받는것이다.더많이자연과접촉하며자연과닿은감각의접점에서일어나는기쁨과쾌락들을제안으로끌어들이는일이다.시골길을혼자서한나절이상을걸어본사람은알것이다.
걷기는고독한행위다.그고독은아무쓸모없고보상이없다.걷는일에익숙하지않은사람이라면틀림없이발바닥은열기로화끈거리고종아리의근육은뭉치고관절들은쉽게피로를느낄것이다.그러나걷고난뒤피로속에서도알수없는몸의아늑한느낌과충만감,관능적인기쁨이있음을알게될것이다.
걷는자는세계를제관능속에서향유하는자다.걷기의진정한기쁨을느끼려면혼자걸어야한다.혼자걸으며세계의침묵을음미해보아야한다.대기의금(琴)을울리는바람과그소리에화답하는풀들과나뭇잎들의서걱임소리.혼자걸을때자연은우리에게말하기보다듣기의자질을더키우게한다.
우리는세계에대한겸손한경청자로다시태어난다.물소리,바람소리,발이지면과닿을때나오는땅의한숨들,덤불속에서낯선인기척에놀라공중으로솟구치는작은새의날개짓소리,언덕받이에서풀을뜯고있는검은염소들의경망한울음소리,어두운저녁낯선마을에닿을때마을안쪽에서들려오는개들이짖는소리,외양간에서소가김나는여물을저작하는소리,간혹울리는목에달린쇠종소리…….이소리들은도시의소음과는본질에서다르다.
도시의소음들은침묵의파괴자이지만이소리들은침묵의동반자들이다.그동안세계는이런소리들로항상우리에게말을건넨것이다.그러나우리는눈도귀도닫은채청맹과니처럼살고있었던탓에이소리들을듣지못했던것이다.세계를감싸고있는커다란침묵은임산부와같이소리들을낳는다.어느덧날이저물고달빛이희미한빛으로안내하는시골길을걸을때침묵은우리를심오한영감의상태로이끈다.“걷는다는것은침묵을횡단하는것”(다비드르브로통)이다.
자동차가발명된이래로사람은제다리보다이문명의이기에도움을받아앞으로나아가는속도를크게향상시켰다.이속도의향상으로잉여의시간과자유를얻는다.그러나얻은것이있으면잃는것도있다.근래들어사람들이부쩍‘걷기’를입에올리고그실천에부지런하고자애쓰는모습이눈에띄게늘어나는것도잃어버린것의가치를되찾고자하는마음이커진탓이리라.
제몸을쓰지않고먼거리를이동하는데길들여진탓에우리는몸쓰는일에점점게을러진다.그결과따로운동하지않아도튼튼했던다리근육의부피가크게줄고,땅에척추를수직으로세우고사는일을버거워하게되었다.그에따라걷기의부수적효과인느림과풍부한사유의삶을누릴수없게되었다.걷기는“그자신의규모와치수에맞는세상속에서사는것”을가능하게해준다.
아울러걷기는“인간의몸과세상의몸사이에확립된일종의공조(共助)를확인”하는일인데,걷기에태만해짐으로써몸의리듬과조화,그모든걸잃었다.둘사이의균형관계안에서사람은걸음으로써“유한한인간과무한한세상사이의불균형이제기하는위협에대한액막이”를할수있었는데,그액막이마저잃은것이다.
걷기는처음보는사람들과의예기치않은만남들,아울러돌연한기후변화,즉돌풍,폭풍우,첫눈과의만남을예비한다.돌연한기후변화들은운명에대한예감들에민감하게만든다.갑작스럽게소나기가지나간뒤마차바퀴로패인길에는작은웅덩이들이급조된다.황소의큼직한발자국들,움푹패인마차바퀴자국들에는탁한흙물이괸다.
손바닥만큼작은그웅덩이의탁한수면에파란하늘과구름이떠있다.나는가던길을멈추고쪼그리고앉아그작은웅덩이에떠있는파란하늘과흰구름덩이를오래쳐다보았다.걷기는우연의경험들을선물로준다.어느핸가,경기도남단의높지않은산길을걷고있을때작은고라니한마리가갑자기내앞에나타났다.나는걸음을멈추고고라니를바라봤다.
뜻밖에나타난누군가에놀란듯고라니도움직이지않고나를쳐다봤다.우리는눈이마주쳤다.그것은찰나였다.고라니는본능적으로내가그리위험한존재가아니라는걸알아차린듯했다.천천히길위쪽으로걸어가숲속으로사라졌다.나는고라니가나를자연의동료로맞아준듯해서기분이유쾌해졌다.
고통이즉자적인감각이라면행복도마찬가지다.외딴산길에서만난구절초의꽃잎들,무당벌레,맑은시냇물에날렵한몸짓으로달아나는물고기들,하늘이갑자기흐려지며후두둑떨어지는빗방울들,누군가방금웃자란풀들을베어낸듯주변에진동하는풀냄새……이런모든것들은즉자적인감각으로환원한다.
걷기에태만해짐으로써우리는구체적인세계와의감각적교섭이크게줄어들었다.자연은우리몸에서멀어지고문명의이기(利器)들과전자파와같은것들이우리몸을더가깝게둘러싸며영향을미친다.걷기를그만둠으로써우리는보다더추상적이고관념적인세계속으로,광고나이미지같은헛것의세계속으로더깊이밀려들어간다.
걷기의효과는즉각적이다.바로잃어버린우리의자리,잃어버린우리의규모에맞는세계를되돌려준다.걷기는우리가잃어버린것을되찾는가장손쉽고빠른방법이다.“이변환을가장효과적으로수행하는방법은다시금우리행성을측량하는것,땅위를걷는것이다.지구표면위에서몸이수행하는이단순한움직임으로,내밀한공모가다시금살아나서걷는사람과자연을즉각적이고감각적인인연으로묶는다.”
걷기와사유하기는잘어울리는한쌍이다.걷는동안우리는주변을사물과풍경을바라보고저절로사유에빠져든다.느리게걸을때‘나’와세상은사용과소유의관계가아니라동등한관계속에서감각적교섭을한다.‘나’의시선이자연속으로뻗어가고,자연은‘나’의안으로들어오는것이다.이상호교섭에서사유의씨앗들이뿌려지고이씨앗들은발아해서싹을내민다.
걷기는우리를감싸던소음과광란과발작들을떼어놓고침묵과느림속에서사유속으로깊이들어가게한다.걸을때숙고는자연스럽게이뤄진다.우리는걸으며“세상에대한숙고와존중을불러일으키는이우아한기술을배울수있다.자연과이런관계를맺을때,아름다움과평온함에대한동경은깊은만족을얻는다.”
신체의이동을자동차에의존하는동안사람은걷는존재라는정체성을잃고,땅과의본질적유대에서도튕겨져나왔다.그결과로우리는불행에더민감해졌다.육체적으로도더부실해져우리는쉽게우울증에감염되고,스트레스에도취약해져위와장은자주탈이나곤한다.그러나자동차를버리고걸으면즉각적으로땅과사람은하나로엮인다.
많이걸을수록우리는육체적으로,그리고정신적으로더욱단단해진다.땅과의본질적유대속에서사람은“땅의식물”이라는제정체성으로몸으로확인받는다.땅과사람이하나가됨으로써“누구나격동의급류에빠진느낌을받는이시대에,우리는걷기를통해다시금땅에뿌리내릴수있다.”철학적사유는걷기에서시작된다.소요학파는걷기에서저희의철학을고양시켰다.
철학자들의시대가지난뒤로는방랑자,유목민,장사꾼,순례자,걸인들이지구위를줄기차게걸었다.걷기는신이사람에게내린선물이다.걷기는근육을강화시키고무(無)와공허속에서헤매는나약한정신을굳세게세운다.걷기는생명의근본됨을깨닫게하고,세계를몸의범주안으로불러들인다.걸을때불행과두려움이작아지고기쁨과뜻은크고굳세진다면왜굳이걷지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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