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을 수 없는 순간들, 박영석 *-

잊을수없는순간들:박영석

히말라야14좌완등,7대륙최고봉등정,지구3극점정복!인류역사상처음으로달성한산악그랜드슬램이다.세계적인탐험가가많아도아무도이런업적을남기진못했다.이게전부가아니다.세계최단기간(8년2개월)14좌완등,동계랑탕리초등,세계최초6개월간히말라야8000m급5개봉등정,세계최초1년간히말라야8000m급6개봉등정,아시아최초에베레스트무산소등정,세계최단기간무보급남극점도달….이게박영석이다.

▶’서울촌놈’,산악인되다

어릴때이태원에살았다.서울한복판이었지만바로뒤에남산이있어시골아이들못잖게촌스럽게자랐다.가재도잡고,두릅도따고,아버지와솥들고올라가닭백숙도해먹고….주말마다아버지를따라들로산으로다니다네살때북한산백운대(836m)정상을밟았고,이후설악산,오대산,북한산,도봉산,관악산을수시로올랐다.그러다가초등학교4학년때아버지로부터충격적인선물을받았다.여행가김찬삼씨가쓴10권짜리’세계여행전집’이었다.

"고1때이사하면서잃어버릴때까지100번도더읽었습니다.아주너덜너덜할때까지보고또봤어요.북극과히말라야같은대자연사진을보면서탐험가를동경했고,꿈을키우기시작했습니다.77년고상돈선배가에베레스트를올랐을때는정말멋있는등반가,탐험가가되고싶었죠."

오산고2학년때서울시청앞을지나다가우연히카퍼레이드를목격했다.’마나슬루원정대등정축하퍼레이드-동국대산악부’.무릎을쳤다."저거다!나도저기들어가세계최고가되자!"순간적으로인생항로를잡았다.어쩌면어릴때부터해오던생각을이날매듭지었는지도모른다.문제는동국대를어떻게들어가느냐였다.책을멀리한게후회가됐다.결국,재수까지해기어이체육교육학과에입학했다.군기센학과답게연일집합이걸리는통에신입생환영회가끝나고서야간신히산악부문을노크했고,그후로는아예산악부룸에가서살았다.한데산악부군기도학과못잖았다.

"과에서두들겨맞고,산악부에서두들겨맞고,하루도편할날이없었지만,그래도즐거웠습니다.물론지금1학년부터다시하라면안하겠지만요."

큰산에오르고싶어2학년말일본북알프스에도전했다.

"폭설에영하30도의한파까지겹쳐죽을고생했습니다.3층짜리산장이지붕만보일정도였죠.입산이금지돼있었는데어떻게뚫고들어가정상을밟았습니다.눈이어떻게나쏟아지는지담배를못피울정도였어요.3190m봉우리였지만,나중에보니히말라야6000~7000m급보다더힘든코스였더라고요."

▶온세상을발아래

88년유럽알프스3대북벽을오르며맷집을키웠다.

아이거북벽을탈때는자신을키운2년선배허종행이실족사하는바람에감당할수없는슬픔에빠지기도했다.

3학년으로복학한89년봄히말라야랑시사리1,2봉을연거푸올랐다.힘들게정상에올랐는데알고보니제2봉(6154m)이었다.그래서베이스캠프까지내려와다시제1봉(6427m)에올랐다.실수가부른횡재였다.

그해겨울26세의역대최연소원정대장이되어히말라야랑탕리(7025m)동계초등에성공했다.

후배2명과팀을꾸렸는데돈이없어네팔까지가는항공권만끊었고,돌아올때는원주민에게침낭이며,시계며가진것몽땅팔아여비를마련했다.

장비도다마련하지못해현지한국인게스트하우스’빌라에베레스트’의신세를졌다.

다른원정대가쓰고그집창고에버려둔단프라박스를얻어테이프로칭칭감아사용했다.

박스마다’87년로체원정대’,’부산원정대’등이름이달라다들어느원정대인지헷갈려했다.

"오죽했으면우릴보고’자투리원정대’라고했을까요.베이스캠프에도착한지9일만에등정했습니다.돈이없으니오래버틸재간이있습니까.그래서빨리해치웠죠.덕분에돈덜들이고원정대꾸리는노하우를터득했습니다."

93년5월16일에베레스트(8848m)무산소등정을시작으로히말라야14좌를정복해나갔다.

96년까지초오유와안나푸르나를추가한뒤97년들면서다울라기리,가셔브룸1,가셔브룸2,초오유,로체등5개봉을접수,카르솔리오(멕시코)가보유하고있던한해8000m급봉우리4개등정기록을갈아치웠다.

경기도시흥의아파트한채를고스란히털어넣은결과였다.

98년시샤팡마,낭가파르밧,마나슬루,99년칸첸중가,2000년마칼루,브로드피크정상을차례로밟은뒤2001년7월22일K2봉꼭대기에서면서역대아홉번째14좌완등을달성했다.

이죽음의행군에걸린시간이8년2개월.세계최단기록이다.

2002년남미최고봉아콩카과,오세아니아최고봉칼스텐츠,남극최고봉빈슨매시프를오르며7대륙최고봉정복까지마무리했다.


▶그랜드슬램을향하여

더는오를데가없자극점으로향했다.2003년3월,여섯이북극점도전에나섰다.60일일정으로러시아를출발해1200㎞행군을시작했다.

보급은없다.애당초물자를몽땅갖고떠난다.식량,연료,카메라장비등1인당120~130㎏에달하는물자를개썰매에싣고개대신끌고가는것이다.북극점에도달하면귀환은헬기로한다.

위험하기로치면히말라야지만,힘들기로따지면북극점이다.

얼음이녹기전에시간안에도착해야하고,무게때문에갖고갈수있는식량또한한정적이라기계적으로움직여야한다.

기록이나사진으로충분히공부하고나섰지만,현지에서부딪치는사정은너무달랐다.

출발한지사흘만에모든게얼어버렸다.전선이얼어부러지는바람에노트북이며솔라판은무용지물이됐고,카메라필름은감으면서다부서졌다.

입김은나가면서얼어수염에고드름이주렁주렁열렸다.

체온으로생긴습기와땀으로파카와침낭은영하50도의혹한에사정없이얼어붙었고,텐트는텐트대로버너가만든습기가얼어이글루로변해갔다.

파카는벗을때마다찌지직찌지직얼음갈라지는소리를내고,침낭은숫제빙낭이되었다.

얼음깨겠다고충격을가하면옷감이찢어지니그럴수도없고,버너에녹이자니시간도시간이고연료도생각해야했다.

멋모르고다운파카,다운침낭가져간게패착이었다.

"오리털은젖으면한곳으로뭉친다는사실을깜빡한거죠.파카와침낭이젖으면서오리털이한군데로뭉쳤고,그게덩어리째얼어버린겁니다.나중엔파카와침낭이홑겹이되더라고요."

9㎏짜리텐트가열흘지나자20㎏이넘었다.얼음이두께를더해갔지만떼어낼재간이없으니그냥갖고다닐밖에.나중엔무게를감당할수없어얼음덩어리로변한내피를잘라내고말았다.

신발사정도별반다르지않았다.땀이얼어발을압박하니틈틈이숟가락으로긁어내야했다.

화가날정도로추웠다.오죽했으면밤새씩씩거리며"다시오면내가개다"를되풀이했을까.

영하50도에서잠은사치다.빙낭에들어가비몽사몽시간보내는게곧잠이다.다들기상시각인새벽4시만기다렸다.버너를켤수있어서다.그때비로소몸도녹이고,장갑도말리고,잠깐조는걸로부족한잠도보충한다.

실은잠보다온기가더절실하다.그래서잠을줄이며새벽3시에일어난적도많다.

용을썼는데도행군속도가떨어지면서목표로잡았던4월30일도착이불가능해졌다.그동안의고생이아까워밀어붙이려했지만,러시아에서헬기를보내줄수없다고버텼다.더늦어지면얼음이녹아위험하다는게이유였다.

"결국,포기했죠.실패로인한분함보다는이지옥에다시와야한다는생각에기가막혔습니다."

그해겨울방향을남극으로돌려44일만에등정에성공했다.

북극은유빙을타고올라가지만,남극은땅이라훨씬수월했다.


▶마침내북극점에서다

2005년2월다시북극점을향했다.이번엔후배3명(홍성택오희준정찬일)과함께넷이서캐나다워드헌터를출발했다.

직선거리는1000㎞였지만,실제로는2000㎞행군이었다.자고나면얼음판이떠내려가있고,다시진군하면또떠내려가있고….어떤날은10㎞를걸었는데자고일어나니20㎞후퇴해있기도했다.

그렇다고판판한얼음판을걷기만하면되는게아니다.떡벌어진얼음틈새도건너야하고,얼음산도넘어야한다.얼음과얼음사이가많이벌어져있으면붙을때까지무작정기다려야한다.

특히얼음이곳곳에솟구쳐있는난빙지대에잘못들어가면거의죽음이다.120㎏짜리개썰매를끌고높이몇미터씩되는미끄러운얼음산을넘는다는건생각만해도끔찍한일이다.이럴때는온종일1㎞도못간다.그러면그만큼의거리를반드시보충해야한다.그래서거리를맞추려고하루20시간을걸은적도있다.

"가장무서운건끝없이타협하려는저자신이었어요.한번타협하면끝이없거든요.자꾸쉬다보면텐트치고싶고,텐트치면버너켜고싶고….그래서무조건제시각에출발했죠.500m가다가텐트치는한이있어도일단은기계적으로움직였어요."

보름남기고도박을했다.남은식량과연료의절반을버린것이다.무게를줄여행군속도를내자는전략이었다.

출발한지54일째되는날GPS(위성항법장치)수치가90으로다가가고있었다.89.998,89.999로이어지더니90에딱맞춰졌다.마침내북극점에선것이다.

히말라야14좌,7대륙최고봉,지구3극점을모두밟은세계최초의산악그랜드슬램이달성되는순간이었다.

"거의미친놈처럼소리지르며데굴데굴굴렀죠.탐험가생활중에서가장감격스러운순간이었습니다.북극점에태극기를꽂는장면은지금봐도뭉클합니다."

한데기막힌현실이들이닥쳤다.식량은떨어졌고,연료만조금남았는데기상악화로헬기를띄울수없다는전갈이온것이다.아무것도안하고3일간시체처럼누워있었다.움직이면칼로리가소모되니그만큼버티기가어려워지는것이다.

그때청와대에서연락이왔다.’대통령이축하전화를할예정이니전화기를켜두라’고.방송들은이미대통령이전화로격려했다고속보를내보낸상황.

"그거다오보예요.전화안받았습니다.전화기를아예꺼버렸어요.캐나다쪽과교신도해야하고그래서요.’차라리라면이나한박스보내주지’하는생각밖에안들더라고요."

침낭에서몰래사탕먹고-동상우려3초만에’큰일’


①인간이배고파지면

식사는좀특별하다.알파미라고부르는냉동건조쌀에다냉동야채,냉동고기,버터한덩어리,냉동건조한분말식용유,라면스프등을넣어죽처럼끓인다.아침과저녁두끼를이렇게먹는다.버터와식용유는칼로리를높이기위해넣는다.

점심은350칼로리비스킷2개로때우고간식으로초콜릿바2개를먹는다.그리고단백질분말을뜨거운물에풀어보온병에넣어다니며틈틈이마신다.냉동식품으로만드는죽이니맛있을리만무하다.배에기름기있는초반엔반도못먹고버린다.1주일지나면다먹는다.열흘지나면없어못먹는다.

"한번은간식으로육포를먹는데대원중하나가먹다가자꾸떨어뜨리더라고요.이상하다했더니다먹고정리하면서’어?여기웬육포가…’하며잽싸게주워먹는거예요.인간이굶주리니까치사해지더라고요."

누룽지사건도잊을수없다.죽끓일때생기는누룽지는막내대원차지였다.근데갈수록죽은줄고누룽지가두꺼워지는게아닌가.막내가잔머리를굴린것이다.결국,숭늉을끓여똑같이나눠먹는걸로정리했다.

하루는한대원침낭속에서바스락거리는소리가들려지퍼를열어보니몰래사탕을까먹고있는게아닌가.바깥은영하50도.궁리끝에침낭속에서완전범죄를꾀했던것이다.

"1차원정때얼음이벌어져4일간꼼짝도못한채밥까지굶고있는데옆텐트에서사탕껍질2개가나와벌을준적도있습니다.극한상황에서배고파지면생사고락같이하는동료도잊게되는모양이에요.누굴탓하겠어요.죽기아니면까무러치긴데." 

 ②거시기에도동상이…

사흘에한번꼴로볼일을본다.

먹는게부실해별로나올것도없지만,그일이야말로진정큰일이아닐수없다.장비가만만찮아해체도그만큼힘들기때문이다.

장갑만도5개다.손가락장갑2개와벙어리장갑2개를끼고마지막으로스키장갑으로푹싼다.그러니옷은어떨것이며,지닌장비들은또어떨것인지는보지않아도뻔하다.사흘에한번도결코적은횟수는아닌셈이다.

소변이야통이있어텐트안에서간단히해결할수있다.하도춥다보니방금소변받은통을볼에대거나가슴에품기도한다.문제는큰볼일이다.절차가복잡한만큼참고또참았다가다급한사인이오면총알같이장비해체하고3초만에해결한다.내리고→누고→닦고→올리는동작을순식간에끝내야한다.지체하면항문에동상이생기기때문이다.

"아무리번개같이처리해도동상이오더라고요.껍질까지고쓰라리죠.그러면거기에거즈를끼우고걸어야합니다.볼일보다보면소변나오게마련이고,마지막한방울은거시기끝에매달려있지않습니까.그게순식간에얼어거기에도동상이생깁니다.누구라고밝히기는좀그렇습니다만너무오래참아텐트에서뛰어나가다가옷에지린대원도있습니다." 

 ③영하50도에서얼지않는건?

수심3000m의바다위에떠있는얼음판은약한곳이많다.폭이100m나되는얼음땅이고무판처럼출렁거리기도한다.

스키스틱으로찔러물이나오면돌아간다.돌아갈데가없어어쩔수없이건너야할때도있다.그래서대원들이수시로바다에빠진다.바닷물은영하3도밖에안된다.한데바깥은영하50도라빠졌다고허겁지겁건져올리면그자리서얼어죽는다.

그대로물에넣어둔채가라앉지않도록붙들어만주고,나머지대원은텐트를친뒤버너에불을붙인다.텐트내부에온기가돌때비로소건져올려텐트로집어넣는다.비상용옷으로갈아입히고,젖은옷은버너에말린다.

"하루에한둘은꼭빠집니다.2차원정초반에는제가빠진적이있습니다.약이올라젖은채로걷다가하체에동상걸려고생했습니다.그추위에도휘발유하고고추장은안얼더라고요."

아무도가지않은길…

"히말라야14좌에코리안루트만드는게목표"

▶이제는새길내러간다산에서일곱명을잃었다.크레바스에빠져시신조차못찾은대원도있다.그런데그랜드슬램을달성하고다시히말라야로갔다.

더이상오르는건의미가없어아예새길을내기로했다.그동안한국산악인들이남이뚫어놓은길로만다니는게못내아쉬웠던것이다.

에베레스트남서벽을타깃으로잡았다.아무도가지않은길은그만큼위험하고힘들다는얘기.아닌게아니라2007년1차원정때8000m지점에서후배둘을눈폭풍에날려보냈다.작년2차원정에선8200m까지올라갔으나광풍에모든것잃고빈손으로돌아왔다.

그리고지난5월기어이’박’s코리안루트’를개척했다.에베레스트에18번째,남서벽에3번째로난길이다.

1975년영국팀이남서벽첫길을낼때대원30명에셰르파가300명동원됐다.1982년소련팀이두번째루트를뚫을때는대원20명에셰르파70명이붙었다.

한국팀은대원5명에셰르파7명이전부였다."8830m지점에도달하니로프가50m짜리두동밖에안남더라고요.너무나절망적이어서후회를했죠.’내가왜길낸다고이미친짓을하나’하고요.그래도세계최고봉에새길을낸데대해자부심을느낍니다."

이제그에게남은건뭘까.오를데다올랐고,갈데다갔고,새길까지뚫었는데."탐험가,산악인에게는정년이없습니다.

앞으로히말라야14좌에차례로코리안루트를만드는게목표입니다.내년3월중순히말라야로갑니다.

안나푸르나남벽에코리안루트만들러."박영석대장은’인명은재천’이라고했다.

-출처/스포츠조선에서-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