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이탈리아알프스의철의시대를대표하는알피니스트인데,그는어렸을때높은암벽에피어있는에델바이스를뜯으러올라갔다가바위타는재미를알았다고한다.
제르바즈티는끝내몽블랑뒤타귈에루트를개척하다1947년에조난사했다.몽블랑은알프스의최고봉으로,옛날여기에사람이처음오르면서오늘의등산이시작됐다는것이널리알려져있을뿐,몽블랑산군에얽힌처절했던등반에관심이있는산악인이몇이나있을는지모르겠다.
산을좋아하는사람은많다.그중에서산악인은특별한존재다.그들이이렇게일반등산애호가들과구별되는까닭은산의자연미를그저탐미하고관상하는것이아니라,산을활동무대로삼고그속에서모험과투쟁의욕구를충족시키고있기때문이다.
제르바즈티는길지않은생애에눈부신기록적등반을했지만,산에가지않을때는방에틀어박혀머메리의<알프스·코카사스등반기>를즐겨읽었다.특히그는먼나라,아무도가보지않은미지의세계를동경했다.그가좋아하던머메리의글은“참다운등산가란방랑자다……”로시작하는등산론이었다.
오늘의산악인에게는제르바즈티가그리워하던먼나라의미지의세계가없다.고산군이며지구의오지라는이름만남아있을뿐,미답봉이나미답루트가없으며,한마디로갈곳이없는셈이다.요새도간간이히말라야와알프스에서젊은산악인들이조난당했다는소식을듣는다.그들은분명일상성에서벗어나새로운세계에뛰어들려고했으리라.
그런데새로운세계란정말있는가?마터호른북벽을초등한독일의슈미트형제는2차대전직후,그궁핍속에자전거로뮌헨에서체르마트까지멀고험한길을달렸다.정보도교통도통신수단도없던시대였다.그러나그들에게는마터호른의미답북벽이라는목표가있었다.
지금우리는부족한것을모른다.지구상아무데나가고싶은곳을,가고싶은때에간다.탐험이나원정이아니라나들이며한마디로생을즐기고있다.그러나우리에게는남는것이없고얻는것도없다.그것은체험이경박하고빈곤한데서온다.
산악인에게소중한것은지식과체험과심상(心象)이라고생각한다.이중에서얻기쉽지않은것이심상이다.외국어의‘mindscape(마인드스케이프)’도같은뜻으로마음에그려지는풍경을말하는데,제한된시간과공간속에서살고있는우리로서는자기마음속에이따금필요에따라펼치는그런심상이중요한생활조건이다.
산악인은산에병든사람들이다.화려하고편리한현대문명속에안주하지않고,틈만있으면대자연,미지의세계로도망하려고한다.세속적인공명과등지고사는것이산악인의참모습이다.그러나산악인의꿈은늘실현되는것이아니며,오히려자기마음속에서그꿈을그려보는길이빠르리라고나는생각한다.심상이필요하다는것이다.
에밀자벨의<한등산가의회상>에이런글이있다.‘그광대하고장려한땅에처음온인간은희희낙락해서그것을자기것으로하고,사는사람이없는대륙은뚫고나아가며언덕을넘고고개를돌아갈때,미지의공간이벌어지는것을보던시대는얼마나아름다웠을까……그러나그런시대는이미끝났다.’
자벨은19세기후년을산알피니스트인데,그시대에나온이런글에서오늘의산악인은무엇을느끼는가.미지의세계에대한인간의동경과감격을자벨이100여년전에글로묘사했다.지난날나는촐라체에서조우한박정헌의무서운시련을생각하고,조심슨의<허공을떨어지다>를이따금펼친다.그리고그럴때마다찾게되는글이있다.‘말없는증언’끝에나오는글이다.
‘우리는저마다자기침낭에들어가나란히눕고거센바람소리에귀를기울였다.촛불이깜박거리고천막·벽을따라빨갛고푸른빛으로바뀐다.불빛속에조의짐이보였는데,그물건들이제멋대로천막한구석에쌓여있었다.나는간밤의바람을생각하고몸이떨렸다.잠자리에서눈을감고있노라니하나의영상이떠올랐다.저위는지금얼마나어려운상태일까하는것을나는알고있었다.눈사태가일고빙벽의틈들이모두덮여서묻어버렸으리라.나는지칠대로지쳐쓰러진채잠에골아떨어졌다.꿈도없는밤이었다.’
내게는조심슨이나박정헌의시련과같은체험의세계가없다.그러나그들이부딪쳤던극한상황을그런대로감정이입하고있다.그것은나의특권이요,긍지며산악인으로서의보람이다.이번에고미영의죽음으로나는다시헤르만불의<8,000미터위와아래>를펼쳤다.불이낭가파르바트정상을저녁늦은시간에올라서고,하산길을고생하며전날떠났던최종캠프로돌아오는장면을다시읽었다.
‘이때한스가나있는데로오고있었다.그는자기의감동을어떻게숨겨야할지몰라사진기뒤에몸을숨겼다.우리는서로껴안았다.그리고아무말도하지않았다.나는너무지쳐서소리도내지못했으며,한스는내가돌아온것이기쁘기만했다.그는발터를불렀다.발터는기뻐서나에게손을내밀었으나눈에는눈물이고였다.사나이가우는것이수치가아닌때가있다.’
그런데한스는불에게정상에올라갔는가묻지않았다.그저살아돌아온것이그렇게기뻤을따름이다.산악인의우정과눈물은이런데있다고나는본다.나는이글을처음읽고옮기며얼마나울었는지모른다.지금도눈물속에이글을쓰고있다.
산을좋아하는사람의감정은이런데만있는것이아니다.일본의한등산가가쓴책으로<산의그림책>이라는산문집이있다.이름그대로그림같은책인데,이책이나올때멀리스위스에서헤르만헤세가자기가그린수채화한폭을보내왔을정도다.헤세가수채화가로도유명한것은그다지알려져있지않다.
그런데<산의그림책>에저자가어느여름일본북알프스의산촌에서지내는장면이나온다.우리나라에는고원이나호수가없어늘불만인데그것은어찌할도리가없다.그래서나는이런고원에서의생활이나묘사를보면무조건끌린다.
‘올여름도반은어느번역일과식물채집을겸해서북알프스고원의산촌에서보냈다.아침부터동풍이불며이고원에짙은구름이내려오고,펜을움직이는유리창너머로가을비같은흰비가종일내리는쓸쓸한날도있었지만,멀리서산들산들불어오는용담초빛을한서풍에,조각구름이여기저기밝은하늘에뜨고,산속의호수처럼맑고맑은날도적지않았다.’
1970년후반우리가에베레스트를처음오르며열린히말라야시대를종합한책으로<역동의히말라야>가나왔지만,그때만해도히말라야는우리에게희망과열정의대상이었다.그런데그엄청난시련과정에서우리가얻은것은구체적으로어떤것들인가.
등산세계는지난날과오늘이비교할수없을정도로크게달라졌다.그것을발전이라고할지변질했다고해야할지망설여진다.다만분명한것은우리는세월가는대로따라만갈것인가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