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악인 아내의 애끓는 망부가 *-

‘고민준영과그의아내정미영의애끓는망부가’


산악인,특히자일을생명줄삼아극한의행위를펼치는전문산악인의아내는늘마음을졸이며지낼수밖에없다.‘산=위험또는사고’란등식이머릿속에서지워지지않기때문이다.정미영(鄭美永·35·타기클라이밍센터대표)씨도그랬다.지난여름남편민준영(閔俊英·35)이파키스탄의스팬틱(Spantik·7,027m)정상공격에나선이후며칠째연락이오지않자가슴이타들어가는듯했다.그래도그때는곧등정소식이전해졌고남편은무사히집으로돌아왔다.

지난9월남편이안나푸르나산군의히운출리(6,441m)등반에나섰을때는직지원정대카페를아예들여다보지도않았다.출국전히운출리북벽이위험한대상지라는사실을알았지만남편의철두철미한성격상위험한상황에빠져들지않을것이고,그녀로서는모르고지내는게속편하겠다는생각에서였다.9월25일오전,가을비가추적추적내렸다.남편과함께실내인공암장을5년째운영해온그녀는날씨가나빠운동하러오는사람이없으리라는생각에집에서쉬고있었다.사르르잠이들었다.

핸드폰에서문자메시지신호음이여러차례울렸다.참다못해핸드폰을집어들었다.‘제발전화좀받아요’.시동생규영씨의연락이었다.순간온몸이얼어붙는듯식어버렸다.떨리는손가락으로컴퓨터를켜고히운출리직지원정대카페에들어갔다.‘민준영등반대장과박종성대원,북벽등반직후연락두절’이라는글이모니터화면을꽉채우고있었다.‘사실이니믿어야한다’는강한메시지같았다.

머릿속이하예졌다.그래도그날저녁‘눈사태사고가아닌,단순무전단절’이란현지의연락에살아있으리라는기대를했다.나쁜생각을갖지않으려애를썼다.그녀에게남편은늘강하고철저한사람이었다.사고가날려야날수없는사람이었다.사흘째접어들자‘지금하산중이라면먹을게다떨어져무척힘들텐데’싶었다.그러나실종8일째인추석전날아침이밝아오자마음이정리되었다.이제는이세상사람이아니다싶었다.

필리핀프라낭해벽으로신혼여행나선골수클라이머부부

민준영은2000년청주최초의실내인공암장‘솔봉이’를동호인들과힘을모아만든데이어2004년봄부터대형실내인공암장인타기클라이밍센터2개소를운영하며충북스포츠클라이밍발전을위해큰역할을해온산악인이었다.개개인의능력에맞는‘맞춤형실내인공암장훈련프로그램’을개발해클라이머들의기량향상에큰도움을주었고,인공등반붐을일으키는가하면2008년파키스탄히말라야의6,230m무명봉초등에성공해‘직지봉’이란이름을남겨놓았을뿐아니라지난여름파키스탄히말라야의난봉스팬틱북서필라세계초등에성공하기도했다.

2008년요세미티조디악등반을앞두고다정히껴안고있는정미영·민준영부부.

아내정미영씨역시골수클라이머다.1999년충북등반학교정규반에서처음으로암벽등반을배운그녀는2002년엘캐피탄(이하엘캡)노즈를등반한데에이어2004년에는유럽암장순례를다녀오고,2002년이후다섯차례나나선태국프라낭전지훈련을통해자신의등반능력을5.13a까지끌어올린바있다.2004년봄부터남편과함께타기클라이밍센터를운영해왔다.

차가운바람이불어대는12월초청주방서동의타기클라이밍센터를방문했을때,정미영씨는텅빈실내암장을지키고있었다.제법널찍한암장에설치해놓은수많은홀드는클라이머들의손때가진하게묻어있고,땀냄새도살짝풍겨왔다.지난11월중순남편이사고를당한히운출리가정면으로바라보이는안나푸르나남벽베이스캠프를다녀온정미영씨는사고의슬픔을어느정도이겨낸듯차분한표정이었다.

하지만16년간남편민준영씨와쌓아온인연을엉킨실타래풀듯얘기해나갈때순간순간북받쳐오르는슬픔을참을수없는듯얼굴이일그러지곤했다.청주태생인민준영은구미전자공고2학년때인생관이바뀌었다고한다.잉꼬부부이자자상한아버지의전형을보여주던부친이환갑도넘기지못한채세상을떠나자충격을받은민준영은틀에갇혀지내는모범생이아닌자유로운집시처럼살고싶어했다.

그성향은방송통신대학을다니며만난이들과함께풍물놀이모임‘솔봉이’를만들게했다.‘나이가어리고촌스러운티를벗지못한사람’이란의미의솔봉이란말그대로회원들은대부분순수하고어리숙했다.이들과함께북치고꽹과리두드리는것도좋았지만함께어울려책을읽고산에다니는것또한한없이즐거운일이었다.

2008마운틴하드웨어빅월페스티벌결선에서탈론을걸기위해안간힘을다하던고민준영.

‘집’이라는틀에서벗어나자유롭게살고픈마음에고교졸업후고향인대전을떠나청주에서사회생활을시작한정미영씨가민준영과인연을맺은것은1993년가을LG정보통신(현LG전자)입사직후였다.

“같은해봄입사해선배인민준영씨가손에들고있는책을볼때마다성향이비슷하다싶었어요.그시절에책읽기에흠뻑빠져지냈어요.

한해100권가까이책을읽었으니까요.둘이서책얘기를나누노라면정말시간가는줄몰랐고요.”사회과학도서에심취해지내던두사람은한때는노동운동가의꿈을꾸기도했다.그러나두사람의마음을가장편하게해준것은산이었다.두사람은솔봉이회원들과어울려매달두세번씩함께산을올랐다.산에가면그렇게편할수없었다.

등반욕심에멀쩡한직장그만두고실내인공암장운영

백두대간종주산행에빠져지내던1997년봄민준영은충북등산학교정규반에입교를했다.산을제대로다니려면올바로배워야한다는생각을하고있던그에게는당연한길이었다.등산학교졸업후동문을주축으로하는산악회에입회했다.하지만순수하면서도산에대한열정으로가득차있어야할선배들은자연속에서생활하는사람답지않게권위적이고,저녁이면술심부름이나시키는등정도를벗어난행동을너무도당연스럽게하곤했다.

“민준영씨는산악회라는굴레를벗어났어요.그리곤가까이지내오던친구들에게등산학교를들어가게하고,그들과어울려산을오르곤했어요.1999년충북등산학교를나온저역시그들중한명이었고.친구들사이에서민준영씨는늘리더였어요.잘하는사람과어울리면쉽게오를수는있지만혼자노력하는것만큼빨리배울수없다는생각을가지고있었어요.그래서등반대상지를찾아내고여러차례의시도끝에자신의것으로만든다음친구들을리드하곤했어요.”

새롭게선보이거나필요로하는장비가궁금하면업체웹사이트로들어가공부를하고,직접구입해사용하면서자신의것으로만들곤했던민준영의등반은2001년들어서면서다른방향으로뻗어나갔다.거벽등반이었다.정미영씨와함께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에입교해인공등반기술을배운민준영은이듬해여름정미영씨와친구2명과함께미국요세미티국립공원의대암벽엘캡에도전했다.

기껏해야100~200m높이의암벽을등반하다인공등반에대해겨우눈을뜬민준영에게수직고1,000m높이의엘캡은하늘을향해치솟은대장벽이나다름없었다.그래도민준영은물러서지않았다.폭염속의노즈(TheNose)등반은그를곧탈진상태로만들어버리고벽아래로끌어냈다.그런데도포기하지않았다.다른팀의등반을유심히살펴본뒤식수를포함한식량과장비를4피치데포지점에올려놓은뒤정미영씨와파트너를이루어다시등반에나서3박4일만에엘캡의정상에올라섰다.

12002년태국프라낭해벽허니문등반.22008년파키스탄히말라야의직지봉정상.32002년제1회빅월페스티벌에서우승한고민준영과고박종성.

“저는당시암릉정도따라다니는수준이었어요.그래도든든한준영씨가앞장서고,또줄에매달려있는무거운짐을끌어올려주다보니해볼만하다싶었어요.아무튼마지막날은다르더군요.노즈의최대크럭스라는대천장을오를때는눈물이나올정도로힘이들었으니까요.”민준영은타고난클라이머였다.인공등반을배운지1년밖에안되었고거벽이라곤노즈를딱한번올랐을뿐인데2002년가을처음열린익스트림라이더인공등반대회에서우승을해많은사람을놀라게하기도했다.

노즈등반이그를빠른시간에궤도에올려놓았던것이다.민준영과정미영씨는천생바위꾼이었다.요세미티등반을마친그해겨울화촉을밝힌두사람이신혼여행지로택한곳이겨울암벽등반의메카인태국의해벽프라낭이었다.두사람은사랑도바위에서나누었다.루트를극복하지못해힘겨워할때는격려하고,루트하나를끝내면그다음목표를향할수있도록독려해주었다.민준영은2003년여름아내에게여러명이함께등반한다고얘기하곤엘캡의쇼티스트스트로(ShortestStraw)를홀로등반하기도했다.

정미영씨는2004년여름고고미영씨와함께유럽암장순례를나설만큼두사람은등반에몰입해지냈다.“쇼티스트스트로는총15피치로비교적짧은코스이지만1개의A4+급피치와2개의A4급피치,6개의A3급피치로이루어져난이도가높은루트예요.당시까지한국인이등반한기록이없었고요.그렇게살떨리고무시무시한루트를혼자오른거예요.저를속이고말이에요.겨울폭풍설에시달리고우박을견뎌내면서닷새간등반하고난뒤귀국했을때는그렇지않아도마른얼굴이반쪽이돼있었어요.

손가락에동상기운이있었고요.그런데얼굴은환했어요.성취감같은것을느꼈었나봐요.”2004년5월두사람은큰결심을했다.당시의수준보다나아지려면하루종일얽매여야하는직장생활에서벗어나등반에몰두해야한다는생각이었다.솔봉이로선한계가있다생각해온민준영은분평동에100평규모의실내인공암장‘타기클라이밍센터’를만들었다.아내가결혼전부터모아온돈에빚까지얹어실내인공암장을만들었음에도하나로만족하지못한민준영은청주번화가인사창동에또다른실내암장을개장했다.

하지만분평동암장은비싼월세때문에,사창동암장은입지여건이좋지않아여러해동안운영에애를먹어야했다.“좋은훈련프로그램을개발하고,운영에자신이붙기시작한것은분평동암장을방서동으로옮기고,사창동암장을개신동으로옮겨시동생이운영을맡은2007년봄부터였어요.빚을지며만든실내암장을운영하자니계획했던것만큼자기운동에열중할수없었던준영씨가고산등반에관심갖게된것도그때부터였고요.”

부부이기보다산을오르는동반자이기를원해

충남산악연맹장으로열린남편민준영씨와박종성(42·전충북산악연맹스포츠클라이밍위원장)씨의영결식을마친지닷새뒤인11월16일정미영씨는스팬틱원정대대장이었던김형일(K2익스트림팀장)씨와선배김학분(여·충북산악연맹사무국)씨와함께히운출리베이스캠프를찾아나섰다.너무지쳐영양주사를맞아야하는상태였지만아직남편의영혼이떠돌고있을것만같아서둘렀다.안나푸르나산군이파노라마로펼쳐지는포카라를출발,베이스캠프를향하는사이설봉이나타나면환하게웃는민준영의얼굴이떠올랐다.

엘캡의700m절벽에매달아놓은포타레지에누워있을때쳐다보던사랑스런모습그대로였다.5.13루트를오르다힘겨워할때‘조금만더힘내라’응원하던그얼굴이었다.2002년엘캡등반은그녀에게많은추억을남겨주었다.서니사이드캠프장에서민준영과밤새산얘기로꽃을피웠던기억도되살아났다.2008년남편과함께엘캡조디악을등반했을때는뜻밖에수월했다.하지만정상에오른뒤남편이발목을삐끗하는바람에남편의짐까지무거운짐을짊어지고내려와야했던힘든기억도떠올랐다.

2008엘캐피탄조디악등반중정미영씨가남편민준영을바라보면웃고있다.

하지만이후인공등반에그다지신경쓰지않았다.나이먹으면체력이떨어져열중하기쉽지않은스포츠클라이밍과하드프리등반에전념해한단계라도난이도를끌어올리고싶어서였다.2009년은남편이두차례나요세미티를다녀오고,히말라야고산원정도두차례나나서는바람에마음껏등반을하지못했다.그래서남편이히운출리등반을마치고돌아오면프라낭으로달려가바위에실컷매달릴생각이었다.

안나푸르나남봉옆에삐쭉솟구친히운출리가보이면‘준영씨영혼이산너머에서나를기다리고있지않을까’하는생각에마음이조급해지기도했다.민준영을생각하면마음이아려왔다.인공암벽개장후5년간너무도힘이들었다.1억이상불어난빚을갚기위해서는등반욕심을참고운영에신경을써야했다.“그래서더욱마음이아팠어요.빚도거의다갚았고,그래서민준영씨가산만다니겠다하더라도얼마든지응원해주고존중해줄수있을텐데하는생각이들었으니까요.

제마음을추스르려고애도많이썼어요.앞으로어떻게살아갈까,암장운영은어떻게해야할까등등매일저녁일기장에적고다음날저녁다시그내용을보면서가다듬고또가다듬었어요.”민준영은정미영씨를아내이기이전에산을오르는동반자로생각했기에등반기회를많이주려고애를써왔다.그런기억들이떠오를때면‘이젠발전된내모습을보여줄수있는데’하는생각이들었다.그렇게닷새간산길을걸어북면베이스캠프에들어섰건만얄밉게도구름이히운출리를가리고있었다.

“민준영씨는극한심리학에대해늘궁금해했어요.어찌보면등반이극한상황을경험하기위한방편이었는지도몰라요.민준영씨머릿속은24시간등반생각으로가득차있었어요.산우들과술을마시면서도그랬고,원정등반중베이스캠프에머물때에도‘이등반의의미가무엇인가’에대한고민으로가득했으니까요.히운출리에서도마찬가지였어요.”‘힘들때스스로의한계를경험하고이를극복하는데에서오는희열을내게준다.

하지만커다란동기는성공의순간,극기의순간이아닌내한계점을느끼기까지의인내,서서히힘들어져오는느낌,익숙한고통을겪어내면서도포기하지않는끈질긴의지의확인,이런지속적인고통스런시간과의만남이다.이런고통을겪으면서그리고이겨내면서어느새삶에대해서,나에대해서더여유있게다른생각으로바라볼수있게된다.(중략)내게등반이이렇게자리잡은것같다.사람들을행복하게할수있는것,내가행하는등반이누군가에게가치있는희망을줄수있게되었다는점,이것이이제는너무나도크게날만들어가는것같다.’

“저세상에서라도하고픈등반실컷하라기원했어요”

정미영씨는직지원정대대원들이전해준남편의등반일기를들춰볼때마다마음이울컥했다.히운출리가슬쩍모습을보일때면일기의내용이떠올라더욱마음이아팠다.보고싶은데볼수없다는것,손으로만지고싶은데만질수없다는현실이너무도가슴아팠다.그녀는히운출리가잘바라보이는바위옆에서남편과박종성씨를위한제사를지냈다.남편의새안경과책그리고암장식구들의편지를올려놓고,2002년익스트림인공등반대회때부터함께등반해온고박종성씨의아내와아이들의편지그리고어머니가싸주신과일을올려놓았다.절을한번할때너무도사랑스런남편과만들었던추억을떠올리고,또한번할때는‘혼자서라도잘해내겠다’고남편앞에서다짐했다.

1혼신의힘을다해운영해온타기암장에서.22009년겨울덕유산향적봉대피소.3조디악등반중포타레지에누워있는정미영씨.

‘준영씨.이제발전된내모습을보여줄수있고,당신을사랑해줄수있을것같은데….그동안준영씨한테의지하며지내다보니내가조금은연약하게살았는지도몰라요.이젠열심히살거예요.살수있을것같아요.잘가요.저세상에서는하고픈일더마음껏하고.’제사를지내고나니정미영씨는마음이조금이나마편안해지는느낌이들었다.그래서가벼운마음으로제사상에올려놓은물품을타임캠슐에넣어히운출리가잘바라보이는바위밑에묻어놓고,다시한번늘환한미소를머금고살아온남편민준영의얼굴을그릴수있었다.

“그이가사놓고써보지못한안경과읽지못한<몰입의즐거움>책을타임캡슐에넣었어요.다시한번다짐했어요.잘살테니염려말라고.그리고부탁했어요.저세상에서하고픈등반실컷하라고요.내년1주기때혹시베이스캠프에가게되면꺼내볼거예요.민준영씨혼이다녀갔는지도모르니까요.”


-글/한필석월간산차장-<이기사는월간산483호에게재된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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