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뛰어난산악인이라할지라도히말라야설산에오르려면죽음의지대를넘나드는위험한순간을몇차례씩겪곤한다.거대한빙탑이무너지거나낙석이퍼붓고,크레바스에빠지는가하면설벽이나암벽같은곳에서추락하기도한다.이렇게위험한상황을맞았을때목숨을걸고도와주는게바로山친구,자일파트너다.
12월중순,북한산인수봉서면벽아래안부는찬바람이매섭게불어댔다.고양시일원의평야를관통한거센북풍이었다.
“아니,창호형.얼음하자는거아니었어요?피켈이보이지않아이상하다했지만.난형한테이렇게늘당한다니까.”“미곤아,내가전화했잖아?바위한단얘긴안했나?”
김창호와김미곤,그리고김창호와파트너를이뤄여러차례히말라야고봉을오른서성호(徐成晧·28·부경대OB)역시투박한빙벽화를신고도선사주차장에서예까지올라왔다.배낭안에서나온장비는달랐다.안전벨트와퀵드로에확보장비까지는같았지만무엇보다암벽화는김창호·서성호두사람만가지고왔다.
“알았다,알았어.”김창호는“두꺼운양말한켤레신으면맞을거야”라며배낭에서꺼낸265mm암벽화를건네주고,김미곤은신발을받으며“이래서또당한다니까”라며한숨을푹내쉰다.
“그래도슬랩은광주바위꾼이잘하는거아냐?”
멋쩍은표정을짓고장비를착용한뒤김미곤이오르는바윗길은전형적인크랙루트인비둘기길이다.차갑게얼어붙은바위가손가락에닿는순간얼어붙는느낌을저버릴수없었는지김미곤은짤막한바위턱을넘고완경사슬랩을오르는데도순간순간멈칫거렸다.그러다겨울비둘기길에익숙해졌는지평상심을되찾고덧장바위크랙을타고세련된동작을보이며첫피치를끊었다.
김창호와김미곤두사람이인연을맺은것은2002년말.2003로체남벽신루트영호남합동대훈련에서였다.창호는미곤을보는순간어깨가쩍벌어진게쉽게대할수없는친구다싶었다고한다.미곤이창호에대해아는것이라곤4년선배이고파키스탄히말라야탐사를많이한산악인이라는정도였다.
첫모임때부터저녁이면원정대장이자훈련대장격인50대중반선배들은“내일특별한것없으니까실컷마셔”하며새벽까지코가삐뚤어지도록술을권했고,그러다동이트면“놀면뭐하냐,뛰는게낫지”하며20km달리기에앞장섰다.그렇게술아니면운동에전념하느라이듬해2003년봄로체남벽원정에나서기전까지서로속을드러내놓고얘기할기회가아예없었다.
둘이가까워진것은원정에나선뒤베이스캠프에서같은텐트를사용하고파트너를이루어등반하면서였다.당시로체남벽에서는한번도맞지않은대원이없을정도로낙석이소낙비처럼퍼부었고,두사람은그렇게험악한자연환경에서파트너를이뤄등반하다보니다른대원들에비해빠른속도로가까워질수있었다.
“제나름대로열심히앞장서올라갔는데창호형이광주에선확보하는것안배웠냐하시는거예요.확보할시간이면더올라가는게낫겠다싶어빨리등반한건데말이에요.”
“아니,미곤이가로프를끌고올라가기는하는데중간확보가거의없는거예요.확보하느라시간끌고확보지점때문에로프를사용하느니그냥밀어붙이는게낫다는판단에서그랬던거죠.하지만밑에서확보를보는저로서는불안할수밖에없었어요.떨어지면받아낼재간이없잖아요.고정로프길이200m를모두쓴다음에떨어지면400m추락인데말이에요.”
1998년알프스3대북벽원정으로해외고산등반을시작한미곤은당시이미초오유와마칼루를무산소등정한고산등반가였으나2002년시샤팡마를등반할때까지함께등반한산악인이워낙쟁쟁하다보니빛을보지못하고속도도늦다는평가를받고있었다.
“미곤이등반속도가늦다고들어왔는데아니었어요.미곤이가참가한원정대대장이경험이많지않은후배들에게위험한상황을겪지않게하려는마음을가지고있었기때문에어쩔수없이도중에내려서야했던거예요.”
지금도마찬가지지만당시로체남벽등반은시도때도없이퍼붓는낙석때문에매우위험했다.때문에대장은등정에성공하지못하더라도대원들을안전하게귀국시켜야한다는책임감이더욱컸고그로인해대원들은마음껏등반할수없었다.
“대장은베이스캠프에머물고있었어요.그래서루트개척조인창호형,강연룡과함께대장몰래등반에나서곤했어요.박상수대장은귀신같았어요.얼마올라가지도않았는데무전연락이오는거예요.위험한행동하지말고캠프로내려오라고말이에요.”
두사람은이태뒤인2005년여름낭가파르밧(8,125m)원정도함께나섰다.1970년독일원정대의세계적인고산등반가라인홀트메스너와동생귄터메스너의초등이후재등된바없는루팔벽중앙립직등루트로정상에오른다음반대편인디아미르벽으로하산하는횡단등반이었다.그등반에서베이스캠프에서같은텐트를쓰면서가까워지기도했지만두사람모두위기를맞았다.첫번째위기는김미곤에게왔다.
6월26일0시부터김미곤은루팔벽의절벽협곡을오르기시작했다.무난하던등반이해가뜨면서달라졌다.오전10시45분해발7,550m지점을지날즈음머리위쪽에서집채만한바위가떨어지다가벽에부딪쳐깨지더니수많은돌멩이가비오듯퍼부었다.
“끝장이다생각하는순간의식을잃었어요.잠시후깨어났을때는오른팔을마음대로움직일수없었어요.낙석을맞아쇠골이부러지고,3중화가깨져나가면서발등뼈도부러진상태였고요.동료대원들이멀쩡한게그나마다행이었죠.베이스캠프의대장은사고소식을연락받았지만2차사고가우려돼대원들에게구조명령을내릴수없는상황이었어요.”
함께루트개척에나섰던이현조·주우평대원은조금도움직일수없는오른팔을흔들리지않도록슬링으로몸에묶어주고,자일을안전벨트에연결해미곤을내려가도록살살풀어주었다.하지만하켄하나에걸린자일에대원4명이매달려미곤을후송하는상황이다보니하켄이뽑히는순간3명모두1,000여m아래빙하로떨어지리라는생각에가슴이타들어갔다.
김미곤을비롯한세대원이김창호와김주형·구형준대원을만난것은제3캠프에서였다.캠프하나차이로운행하던김창호일행은김미곤일행을만나자함께도우며천길낭떠러지길을따라베이스캠프를향해조심스럽게미곤을옮겼다.김미곤은이렇게돌이킨다.
“사고지점에서베이스캠프에이르기까지표고차4,000m에이르는어마어마한절벽을몸을못가누는저를데리고내려서는거였어요.한명실수하는날이면6명전원돌아올수없는길로들어서게되는상황이었죠.충격을받지않고보온도되게하려고매트리스로몸을감싸놔오줌도눌수없는상황이었기에물마시는것도삼가야했어요.주형이형은저를조심스럽게내리기위해100만원하는우모복이다터져나갔어요.창호형도참고마웠어요.제가힘들어할때면앉은상태에서무릎위에저를앉혀놓는거였어요.발아래가1,000여m낭떠러진데말이에요.
그런데말이죠.베이스캠프직전풀밭에도착하니까어떻게했는지아세요?다들가만히있는데유독창호형이야크똥을제콧구멍에턱얹어놓지뭐예요.그러면서한다는말이‘미곤아,이게생명의냄새다’하는거예요.베이스캠프에도착하니까더가관이었어요.대원들끼리‘이제우린살았다’며하이파이브를하지뭐예요.저는풀밭에팽개쳐놓은상태에서말이에요.(웃음)”
“2피치는성호가해라.크랙엔자신있잖아?”
첫피치확보지점에서세사람모두옛기억을떠올리며수다를떨다가바람이매섭게불어대자“빨리끝내고우이동으로내려가한잔하자”며등반을서둘렀다.부산산악계를대표하는고산등반가인서성호는제2피치볼트트래버스구간에서마음대로등반이되지않는지다음볼트를잡기위해팔을몇차례뻗다가어렵사리네번째볼트를잡은다음피치종료지점에올라섰다.
2006년봄세계최고봉에베레스트(8,848m)정상에오른서성호는2007년삶에충실하기위해직장생활에전념하다가山열정이되살아난2008년부산마칼루-로체원정때김창호와동행했다.
“저야뭐창호형따라다닌거죠.”
서성호의겸손함에김창호는“6,000m든8,000m급이든,짐이많든적든속도가똑같은친구”라고추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