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산 친구 [1] *-

[우리는산친구]김창호·김미곤·서성호

히말라야설산에서맺어진끈끈한우정(友情)

아무리뛰어난산악인이라할지라도히말라야설산에오르려면죽음의지대를넘나드는위험한순간을몇차례씩겪곤한다.거대한빙탑이무너지거나낙석이퍼붓고,크레바스에빠지는가하면설벽이나암벽같은곳에서추락하기도한다.이렇게위험한상황을맞았을때목숨을걸고도와주는게바로山친구,자일파트너다.

김창호(金昌浩·41·서울시립대OB·몽벨자문역)와김미곤(金未坤·37·서강정보대OB·버그하우스)은그렇게목숨을잃을수있는숨막히는상황을여러차례이겨낸山친구다.2004년낙석이총알처럼빗발치는로체(8,516m)남벽을함께등반하고,2005년낭가파르밧(8,125m)루팔~디아미르횡단등반에서는낙석에맞아절체절명의상황을맞은김미곤을김창호는동료대원들과함께표고차4,000m높이의절벽에서안전지대로끌어내렸다.뿐만아니라2006년가셔브룸2봉(8,035m)과1봉(8,068m)등반,2007년에베레스트(8,848m)·로체연속등반을두사람은함께해냈고,올여름에는세계최장의설릉낭가파르밧마제노능선종주등반을함께할계획이다.

12월중순,북한산인수봉서면벽아래안부는찬바람이매섭게불어댔다.고양시일원의평야를관통한거센북풍이었다.

▲“우리는해낼겁니다.호랑이해엔더욱높이뛰어오를겁니다.”김미곤·김창호·서성호(왼쪽부터)세산우가인수봉비둘기길에서호랑이해를앞두고파이팅을외치고있다.

“아니,창호형.얼음하자는거아니었어요?피켈이보이지않아이상하다했지만.난형한테이렇게늘당한다니까.”“미곤아,내가전화했잖아?바위한단얘긴안했나?”

김창호와김미곤,그리고김창호와파트너를이뤄여러차례히말라야고봉을오른서성호(徐成晧·28·부경대OB)역시투박한빙벽화를신고도선사주차장에서예까지올라왔다.배낭안에서나온장비는달랐다.안전벨트와퀵드로에확보장비까지는같았지만무엇보다암벽화는김창호·서성호두사람만가지고왔다.

“알았다,알았어.”김창호는“두꺼운양말한켤레신으면맞을거야”라며배낭에서꺼낸265mm암벽화를건네주고,김미곤은신발을받으며“이래서또당한다니까”라며한숨을푹내쉰다.

“그래도슬랩은광주바위꾼이잘하는거아냐?”

멋쩍은표정을짓고장비를착용한뒤김미곤이오르는바윗길은전형적인크랙루트인비둘기길이다.차갑게얼어붙은바위가손가락에닿는순간얼어붙는느낌을저버릴수없었는지김미곤은짤막한바위턱을넘고완경사슬랩을오르는데도순간순간멈칫거렸다.그러다겨울비둘기길에익숙해졌는지평상심을되찾고덧장바위크랙을타고세련된동작을보이며첫피치를끊었다.

낭가파르밧4,000m절벽에서생사함께한사이

김창호와김미곤두사람이인연을맺은것은2002년말.2003로체남벽신루트영호남합동대훈련에서였다.창호는미곤을보는순간어깨가쩍벌어진게쉽게대할수없는친구다싶었다고한다.미곤이창호에대해아는것이라곤4년선배이고파키스탄히말라야탐사를많이한산악인이라는정도였다.

▲북풍이몰아치는인수봉을등반하면서도세사람은모일때마다웃음꽃을피웠다.

첫모임때부터저녁이면원정대장이자훈련대장격인50대중반선배들은“내일특별한것없으니까실컷마셔”하며새벽까지코가삐뚤어지도록술을권했고,그러다동이트면“놀면뭐하냐,뛰는게낫지”하며20km달리기에앞장섰다.그렇게술아니면운동에전념하느라이듬해2003년봄로체남벽원정에나서기전까지서로속을드러내놓고얘기할기회가아예없었다.

둘이가까워진것은원정에나선뒤베이스캠프에서같은텐트를사용하고파트너를이루어등반하면서였다.당시로체남벽에서는한번도맞지않은대원이없을정도로낙석이소낙비처럼퍼부었고,두사람은그렇게험악한자연환경에서파트너를이뤄등반하다보니다른대원들에비해빠른속도로가까워질수있었다.

“제나름대로열심히앞장서올라갔는데창호형이광주에선확보하는것안배웠냐하시는거예요.확보할시간이면더올라가는게낫겠다싶어빨리등반한건데말이에요.”

“아니,미곤이가로프를끌고올라가기는하는데중간확보가거의없는거예요.확보하느라시간끌고확보지점때문에로프를사용하느니그냥밀어붙이는게낫다는판단에서그랬던거죠.하지만밑에서확보를보는저로서는불안할수밖에없었어요.떨어지면받아낼재간이없잖아요.고정로프길이200m를모두쓴다음에떨어지면400m추락인데말이에요.”

1998년알프스3대북벽원정으로해외고산등반을시작한미곤은당시이미초오유와마칼루를무산소등정한고산등반가였으나2002년시샤팡마를등반할때까지함께등반한산악인이워낙쟁쟁하다보니빛을보지못하고속도도늦다는평가를받고있었다.

“미곤이등반속도가늦다고들어왔는데아니었어요.미곤이가참가한원정대대장이경험이많지않은후배들에게위험한상황을겪지않게하려는마음을가지고있었기때문에어쩔수없이도중에내려서야했던거예요.”

지금도마찬가지지만당시로체남벽등반은시도때도없이퍼붓는낙석때문에매우위험했다.때문에대장은등정에성공하지못하더라도대원들을안전하게귀국시켜야한다는책임감이더욱컸고그로인해대원들은마음껏등반할수없었다.

▲“확보잘봐.”홀로중등산화를신은김창호씨가슬랩에서자세가잘나오지않자후배들에게“잘봐달라”며엄살을떨고있다.

“대장은베이스캠프에머물고있었어요.그래서루트개척조인창호형,강연룡과함께대장몰래등반에나서곤했어요.박상수대장은귀신같았어요.얼마올라가지도않았는데무전연락이오는거예요.위험한행동하지말고캠프로내려오라고말이에요.”

두사람은이태뒤인2005년여름낭가파르밧(8,125m)원정도함께나섰다.1970년독일원정대의세계적인고산등반가라인홀트메스너와동생귄터메스너의초등이후재등된바없는루팔벽중앙립직등루트로정상에오른다음반대편인디아미르벽으로하산하는횡단등반이었다.그등반에서베이스캠프에서같은텐트를쓰면서가까워지기도했지만두사람모두위기를맞았다.첫번째위기는김미곤에게왔다.

6월26일0시부터김미곤은루팔벽의절벽협곡을오르기시작했다.무난하던등반이해가뜨면서달라졌다.오전10시45분해발7,550m지점을지날즈음머리위쪽에서집채만한바위가떨어지다가벽에부딪쳐깨지더니수많은돌멩이가비오듯퍼부었다.

“끝장이다생각하는순간의식을잃었어요.잠시후깨어났을때는오른팔을마음대로움직일수없었어요.낙석을맞아쇠골이부러지고,3중화가깨져나가면서발등뼈도부러진상태였고요.동료대원들이멀쩡한게그나마다행이었죠.베이스캠프의대장은사고소식을연락받았지만2차사고가우려돼대원들에게구조명령을내릴수없는상황이었어요.”

▲김창호씨가인수봉정상바위를오르려하자김미곤씨는추락시받쳐줄준비를하고있다.

함께루트개척에나섰던이현조·주우평대원은조금도움직일수없는오른팔을흔들리지않도록슬링으로몸에묶어주고,자일을안전벨트에연결해미곤을내려가도록살살풀어주었다.하지만하켄하나에걸린자일에대원4명이매달려미곤을후송하는상황이다보니하켄이뽑히는순간3명모두1,000여m아래빙하로떨어지리라는생각에가슴이타들어갔다.

김미곤을비롯한세대원이김창호와김주형·구형준대원을만난것은제3캠프에서였다.캠프하나차이로운행하던김창호일행은김미곤일행을만나자함께도우며천길낭떠러지길을따라베이스캠프를향해조심스럽게미곤을옮겼다.김미곤은이렇게돌이킨다.

“사고지점에서베이스캠프에이르기까지표고차4,000m에이르는어마어마한절벽을몸을못가누는저를데리고내려서는거였어요.한명실수하는날이면6명전원돌아올수없는길로들어서게되는상황이었죠.충격을받지않고보온도되게하려고매트리스로몸을감싸놔오줌도눌수없는상황이었기에물마시는것도삼가야했어요.주형이형은저를조심스럽게내리기위해100만원하는우모복이다터져나갔어요.창호형도참고마웠어요.제가힘들어할때면앉은상태에서무릎위에저를앉혀놓는거였어요.발아래가1,000여m낭떠러진데말이에요.

그런데말이죠.베이스캠프직전풀밭에도착하니까어떻게했는지아세요?다들가만히있는데유독창호형이야크똥을제콧구멍에턱얹어놓지뭐예요.그러면서한다는말이‘미곤아,이게생명의냄새다’하는거예요.베이스캠프에도착하니까더가관이었어요.대원들끼리‘이제우린살았다’며하이파이브를하지뭐예요.저는풀밭에팽개쳐놓은상태에서말이에요.(웃음)”

죽음의지대에서겪은사고로잃은山열정일깨워줘

“2피치는성호가해라.크랙엔자신있잖아?”

첫피치확보지점에서세사람모두옛기억을떠올리며수다를떨다가바람이매섭게불어대자“빨리끝내고우이동으로내려가한잔하자”며등반을서둘렀다.부산산악계를대표하는고산등반가인서성호는제2피치볼트트래버스구간에서마음대로등반이되지않는지다음볼트를잡기위해팔을몇차례뻗다가어렵사리네번째볼트를잡은다음피치종료지점에올라섰다.

2006년봄세계최고봉에베레스트(8,848m)정상에오른서성호는2007년삶에충실하기위해직장생활에전념하다가山열정이되살아난2008년부산마칼루-로체원정때김창호와동행했다.

“저야뭐창호형따라다닌거죠.”

서성호의겸손함에김창호는“6,000m든8,000m급이든,짐이많든적든속도가똑같은친구”라고추켜세웠다.고산등반은어떤등반보다속도와체력이맞지않으면파트너를이루기가쉽지않다는게경험자들의얘기다.그런면에서두사람은속도가비슷하기에2008년마칼루등반후도보로셰르파니패스와암푸랍차패스를넘어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도착3박4일이라는세계최단시간기록을세우며세계제4위고봉을등정할수있었던것이다.

“사실히말라야에서보다한라산에서죽을고비를맞았어요.정말떼죽음당하는줄알았으니까요.”2009년2월초부산산악연맹마칼루-로체원정대는한라산장구목에서설벽등반훈련을펼쳤다.그런데장구벽설벽에3분의2쯤올라설때머리를쭈뼛서게하는굉음과함께판상눈사태가덮쳐왔다.그는이렇게돌이킨다.

“13명중11명이눈에파묻혔어요.눈사태를맞고튕겨나간류향미선배와저만멀쩡했어요.황당했죠.아무도보이지않았으니까요.손이든발이든튀어나온것이보이면파냈어요.홍보성대장님은거의막판에찾아냈어요.대강짐작한지점에서운좋게발견된거죠.신현한대원은끝장난줄알았어요.마지막에눈속에서끌어냈는데숨을쉬지않는거예요.30초쯤지났을까,푸하면서숨을쉬더군요.1초만더숨을쉬지않았더라면이세상사람이아니었을거예요.”

▲인수봉정상으로오르는사이북한산침봉들이세산악인들에게힘을북돋워주기라도하려는듯불쑥불쑥솟구쳐올랐다.

신현한대원은지난가을김재수대장팀의촬영담당으로안나푸르나원정에나섰다가눈사태후폭풍을맞고넘어지면서다리골절상을입었다.당시ABC에서C1으로향하다사고를목격한김창호가급히달려가신대원을업어내려위기를벗어날수있었다.

김창호는서성호가고산을다시찾을수있도록희망을준선배이기도하다.서성호는2005년봄에베레스트기슭의푸모리(7,165m)에서큰사고를겪었다.4월4일오후1시서성호는푸모리정상에올라섰다.그가오른첫번째흰산이었기에감동은이루말할수없었다.하지만하산길에서선배두명이목숨을잃는비극을겪어야했다.

“정말황당했어요.100여m추락후크레바스에빠져이세상사람이아니다싶었던향미누나가멀쩡히살아내려왔는데,상상조차못했던선배두명이어둠속하산길에서한명한명사라져버린거예요.폭설에갇혀C2에묶여있다하산길에두선배를같은자리에서발견했어요.추락하는순간놀란눈으로쳐다보던김도영선배의표정이지금도생생해요.”

서성호는이후한동안산과인연을끊고지냈다.방에드러누워불을꺼도차가운눈밭위에드러누워있던선배들의모습이떠오르곤했다.하지만시간은그슬픔을차츰잊게해주었고,또다시고산에대한열정을뜨겁게달궈주었다.이후2006년에베레스트등정후사회생활에열중하기위해또다시등반을멈췄으나2008년마칼루-로체원정을통해고산등반의열정을다시금일깨워준사람이김창호였다.김창호는서성호를두고이렇게말한다.

“정말좋은후배예요.함께등반하면말이필요없어요.서로알아서처리하니까요.”

서성호는“매사에침착하고치밀한창호형이든든한버팀목같다”고표현하고김창호는“성호는궂은일을마다하지않고후배로서해야할일을다해준다”며칭찬했다.

“형은내코에소똥넣었지.조심혀.낙상엔똥물이최고래”

제2피치트래버스등반을끝내자세사람은쏜살같이제3피치를끝낸뒤인수봉정상에올라섰다.

“저게백운대맞죠?와~,사람정말많네요.전한번도못올라가봤어요.”

백운대정상을빼곡히채운등산인들의모습에눈이커다래진서성호가“대학시절처음인수봉에찾았을때대슬랩을뛰듯올라가는사람을보고깜짝놀랐다”고말하자김미곤은“내가처음인수봉에왔을때는평범한등산화차림의두사람이로프도없이우리가올라온길로올라와깜짝놀라게했다”며맞장구쳤다.

▲“다음엔어딜갈까?”“낭가파르밧마제노능선을함께간다면인류최초의완등을해낼수있을것같지않아?”

부산산악연맹원정대대원으로서여러차례고산등반을펼쳐온김창호와서성호는올봄캉첸중가(8,586m)등반에나서고,김미곤은한국도로공사원정대원으로마나슬루를등반한다.국내산악인가운데마나슬루를가장최근에등반한이가김창호와서성호이기때문에김미곤은두사람을통해얻어야할정보가많다.김미곤은회사사정이허락한다면김창호가추진하고있는히말라야최장능선낭가파르밧마제노능선종주등반대에참가할생각이다.

“저와성호는등반을한적이없지만눈빛만으로도통하는게있어요.그래서창호형과셋이함께갈수있다면가장좋은팀이될거라믿어요.더이상좋은파트너가없을테니까요.”
김창호가인수봉정상에얹혀있는최정상바위로크랙을잡아당기며오르려하자두후배는김창호가혹시떨어지면받아주기위해바짝다가섰다.엉덩이를받쳐줄듯말듯한자세를취한김미곤의입가에장난기가맴돌았다.

“형,낭가파르밧에서내코에소똥넣었었지?낙상치료에똥물이좋다는거알아?조심혀.”

김창호

몽벨자문위원
서울시립대산악회회원
한국대학산악연맹이사
히말라야-카라코람연구소장

1993년파키스탄그레이트트랑고타워완등
1996년가셔브룸4봉(7,925m)동벽신루트등반
2000년힌두쿠시단독탐사
2001년카라코람멀티4피크원정
2001~2002년카라코람·힌두쿠시산맥·빙하단독탐사
2003년딜리상사르등6,000m급4개봉세계초등정
2007년칠레파이네중앙봉윌란스-보닝턴루트한국초등
2008년바투라(7,762m)세계초등정
8,000m급9개고봉무산소등정

김미곤

한국도로공사산악팀(수원지사근무)
버그하우스후원전문산악인
서강정보대OB

1998년알프스3대북벽등반
1998년마나슬루등반
1999년로체남벽등반
2000년마나슬루등반,초오유등정
2001년초오유등정
2002년시샤팡마등반
2004년로체남벽등반
2005년낭가파르밧루팔벽~디아미르벽횡단등반
2006년가셔브룸2봉등정·1봉등반
2007년로체-에베레스트등정
2008년가셔브룸1봉-2봉등반
2009년다울라기리등정,안나푸르나단독등반

서성호/부경대OB

2004년매킨리(6,194m)등반
2005년푸모리(7,165m)등정
2006년에베레스트(8,848m)등정
2008년마칼루-로체등정
2009년마나슬루-다울라기리등정,안나푸르나등반

-글한필석차장/사진허재성기자/월간山1월호-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