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민한사람은물흐르는소리에서사물의소리,인간의소리,세상의소리를듣는다.자연에관한날렵한성찰로써삶을보는눈을얻는다.자연이부재한다면우리는지구라는이혼란스런둥근공에서삶의단서를찾는일에더욱애로를느낄게분명하다.그런점에서자연이란조물주가부여한최상의선물이거나고통스러운암호다.
자연의객관적규율에착안한이모방론은미학사에있어가장유력하고도오래된관념에속한다.
자연의묘리를경청해인간에속한꿈과욕망을해소하는노하우를터득하려는매우지난하고도지고한사업이다.그래서예술가들은흔히자연이라는아카데미에정신적젖줄을댄채그럴싸한창작을위해심혈을기울인다.
과연자연의친애하는형제이거나열심당원인그들은자연에서무엇을보나?산을어떻게해석하며,숲에서귀를열어어떤묵시를듣나?내가진정누구인가를알기위해서는내모습을거울에비추지말고,사람에게비추라는얘기가있다.사람만이본(本)이며희로애락의미스터리를풀실마리역시사람에게있다는얘기일게다.그러나제천시백운면평동리박달재자락에사는이사람(
병뚜껑처럼납작한사람들이주먹만한집을짓고옹기종기마을이라는걸이루고산의품에안겨살아가는모습을내려다보리라.높고멀리서바라보는눈에세상은얼마나작고애틋하던가.그러나일쑤눈뜬장님이기십상인우리는삶을오해하고세상을오판하길거듭한다.자연속에살면그어두운눈에초롱처럼밝은힘이실리는가?산의동맹자로살아가는이철수는이에대한믿을만한뉴스를전해줄지모를일이다.
그의집은마을의맨뒤편에있다.터를읽는쥔장의안목치수가엿보이는명당이다.풍수니뭐니를떠나저만치서보기에편하고,마당으로들어서자헌칠하니이를명당이라일러도그리지나침이없으리라.이철수는사람들에게둘러싸여있다.아마도그는날마다들이닥치는방문객들로살짝피곤할지모른다.산중살이의별미는홀로조물딱거리며노니는데있지만,널리이름난사람에겐그럴여가가쉽지않다.
나는오늘그를두번째만난다.이태전겨울에이집을찾아그가뭘하며살아가는지알아본추억이있다.당시그가했던말이생각난다.
멧돼지들은죽어마땅할까?자연을능멸하는일정한수준의횡포는필연일까?의견을묻자그가뒤통수를득득긁으며꽤나난감한표정으로이런답을한다.“생태에조예가짧은아마추어의눈으로뭐라단정하기는어려운문제이긴합니다.멧돼지의무한증식이유는우선상위포식자가없어진탓이죠.그리고사람들이농사를확대하면서자연의몫까지넘나들었어요.여기에서갈등이생긴건데요,
반성적으로상황을인식해야할필요가있습니다.
자연을보호하기위해서는그냥그대로두는것이아니라잘개발해야한다는해괴한논리조차횡행한다.이른바친환경개발이니뭐니하는얕은꿍꿍이가활보한다.하지만자연속생명들을향한존중과배려를놓치지않는사람하나를나는알고있다.그는자기밭에뛰어든고라니를내쫓다가별안간고라니가외치는소리를듣는다.고라니가묻는다.이게진짜네땅이냐?그의부엌에침투한생쥐에게서도묻는소리를듣는다.
이게진짜네집이냐?그의귀는다른생명들을배척하는배타적소유에길들여진타성을질책하는소리를듣는셈이다.사람만이이땅의주인이아니라는인식이다.이사람이누구인가하면지금내앞에앉아있는이철수다.민중미술의한시대가저물고서도제대로살아남은진보계열의미술인.그게이철수다.그의목판화는1980년대내내현실의변혁을위해창작되었다.
이후자기성찰과생명의본질에대한궁구로전환,삶의자잘한일상과자연의숨결을그림의재료로삼고있다.간결한칼터치,선풍(禪風)의이미지,촌철살인의화제(畵題),시정넘치는단문들.‘판화로시를쓴다’는평을듣는그는아마도매우광범위한대중들의지지를받는미술가가운데하나다.그가여기평동의산촌에살아온지벌써22년째이다.
그의작업실은소박하고쾌적하다.창밖은세한(歲寒)이지만차향이번지는실내는아늑하다.다탁엔다구와함께재떨이가놓여있다.그는끽연을즐긴다.한때8년간금연을하기도했지만다시담배를입에물었다.아이스크림을많이먹으면뚱뚱해져서식인종에게잡혀먹힐수있다.흡연을많이하면향기로운키스에지장이많거니와폐가불평을늘어놓는다.흡연의폐해를아는나는금연을고려하고있는데,가느다란담배를멋지게피워대는이철수의풍치를바라보는이순간은흡연삼매로즐겁다.전화는수시로울려그를찾는다.
이바쁜화가는지난이삼년간정말정신없이바빴다.마을뒷산에대형스파시설이들어서게되었는데,주민들과단합해반대운동을펼쳤던것이다.법정까지간이싸움에그는거의젖먹던힘까지다쏟았던것같다.그림작업마저잠정적으로유보한채전위에나섰으니,남다른깡으로단단히한판붙었던셈.하지만결과는실패.낙심이컸으렷다.
“큰싸움에서는결국졌습니다.산이입을상처를막아줄수없게되었죠.도시사람들은자연에대한갈증이있습니다.이걸눈치빠르고약삭빠른자본이자연을상품화해서팔아먹는거예요.자본의날카로운이빨하나가우리마을에박힌거죠.”“스파시설을찬성하는주민들도많았던걸로압니다.반대를주도한이선생님에게사후어떤반발이나야유같은건없었나요?”“반발은크게는없었습니다.
찬반서로의논리가부닥친측면에서서로를알게되는과정이라할수있죠.스파시설이이익만을주는게아니라피해도있는데,찬성했던사람들도이점을모르진않습니다.젊으나늙으나사람은자기경험안에서판단하게되지만,중요한건거저얻어지는건없다는거죠.”“이마을의스파시설을둘러싼여러문제와현상은국가적개발정책이안고있는그것들과유사할거라는생각이듭니다.저는이미착수된4대강살리기라는걸보자면마치공포영화의첫장면을보는것처럼으스스합니다.어떤생각을하시나요?”
“공포영화의첫장면이라?제가들은4대강관련우려중에가장강도높은표현같군요.전가끔은자연이란살아있는생명체라는감정을느낍니다.큰산이나큰재를보면아주큰짐승이엎드려있다는느낌이거든요.능선의나무들은야생동물들의빳빳한털처럼보여요.거칠게흐르는강은사자후를토하는것같고말이죠.강은정말큰자연이에요.이거대한자연앞에삽날하나들고덤벼드는일,이해할수없어요.강의시간성과역사성까지를고려하자면정말족탈불급의힘으로덤벼드는겁니다.두려움이생길수밖에요.”
“많은사람들이반대를하지만그역시족탈불급의힘에그친다는점도허탈하더군요.이선생님도글과그림으로목소리를낸것으로알지만말이죠.”“예술인으로서감정적·주관적판단에치우친반대는아닌가생각도해보지만,제상상력으로는그어떤가치로도강의가치를덮을수는없습니다.비록도시락을싸가지고다니면서현장에눕지는못했지만삽질이끝나도아주놓을수는없는문제에요.4대강삽질은극단적으로말하면성추행과다를바없는패악질예요.”
“우리는기계적·비인간적살풍경속에살고있어요.그러나천변만화하는강은그자체로아름답습니다.천강에달빛이비치면보는사람의내면풍경도강이되고달빛이되잖아요?근본적으로장사꾼의영혼이세상을지배한다는게문제의요체일거예요.일부예술인들의영혼마저팔리는것에쏠려있어요.모든걸물(物)로인식하거든요.재화가치를우선으로하다보니자연과공존·공생하는관계는점점설자리가없어지는게아닐까요?사람들은자본이만든물건에경탄하고,상품화된자연에돈을치르러갑니다.
자연에더가까운자연일수록더좋은상품이됩니다.”“자연이주는감동에관한갈증이많지만사람들은이미상품화된자연에매몰되어있다는얘기로들리는군요.”“자연을청량음료로여기는건아닐까요?갈증은청량음료를마시고또마셔도해결되지않는수가많습니다.그럴경우는참는게상책이죠.자연을상품과소비의관계로전락시켜서는안됩니다.이렇게되면아무리좋은자연을만나도갈증을해소하기어려워요.”
“차라리작은텃밭하나라도일구는게좋지않을까요?집안이나골목에생명이담긴것을즐기는게더낫겠다싶어요.유기농법등이상품화된자연보다더좋을것이고요.느린걸음이나마어떤변화를향해움직여야할것같습니다.자본이모든걸쥐락펴락하는이시대에근본적인변화를위해서는삶의태도와관행을바꿔야하지않을까요?”
바깥바람을쏘일겸마당으로나선다.너른뜰이다.빽빽한잔디와몇점바위들,미태를과시하는소나무와바람을연주하는대나무들.공간의여백을배려한,성긴듯치밀한조경이다.언뜻쥔장의고상한취향을공들여관철한구성이돋보이지만능란하면서도조촐한풍경이라서호사취미같은건엿보이지않는다.그의담백한판화를연상시킨다.작품속에서걸어나온소탈한사물들이제각각안정된포즈를취하고있는것같다고나할까.
뜰에서서보니이철수의얼굴이소년처럼뽀얗다.대충보면걸쭉한입담에너스레가쏟아질것같은인상이지만자세히들여다보면소박하여그저풋풋한얼굴의임자다.낯빛이허연건한동안집안에만박혀지낸탓이라고한다.지난가을은행알을따기위해은행나무에올라갔다가떨어져발에깁스를한채칩거할수밖에없었다는것.산골에사는사람들이대부분그렇듯그도원래가몸을많이쓰는사람이다.아내와둘이일구는전답도수천평이다.그러니까그는농사꾼이자그림쟁이다.
자연이화자로등장하는이철수의작품을통해바라보는그의이미지는풀한포기와마주앉은사람이다.
젊은날의그는달랐다.초기에는주로세상이야기에매몰돼있었다.시대의음침함과저열함을향한격렬한분노도많았다.서정은깃들었으되자연은멀었다.애호가들은그시절그의작풍을잘기억할것이다.완강한모습의농부가괭이질을하는판화를.대지의자식으로힘겹게노동하는사람들의이미지,관념적인형태의일월성신을그리는식의작업에여념없던시절은꽤길게이어졌었다.그러다가이곳박달재자락으로이주하며변했다.자연으로급속히이행했다.
자연이라는경전을잘읽으면살아움직이는모든것에서다양한삶의지혜를얻을수있다는생각이죠.”“자연을유능한교사로여기며월든호숫가에살았던소로가생각나는얘기군요.”“소로,그는시장시스템에저항하는등참좋은선생이었다는생각이들지만근본주의적태도는자신이없습니다.극단적인예지만미국의폭탄테러리스트유나보머의경우를볼까요.
그는현대문명에관한치열한반성으로숲속에은둔했지만그말로는기이했습니다.그토록빼어난영혼이숲속에서구원을얻지못하고궁지에몰린이유가무엇일까요?자연에대한막연한선망은위험할겁니다.사회나인간이절박하게느껴야할자연이어떠한형태의것인지를알아내그나침반을제시해야한다고봅니다.”
“우리가본질적으로자연생태계에서약간독특한지위를점한,다만한가지의생물종에불과하다는성찰이필요할거같아요.우린그걸잊고살죠.한국사회의중산층들은사실상과거왕조시대의왕족이상의호사를누립니다.이넘치는풍요를그대로받아들여도되는지의심해야합니다.단순한욕망충족에따른무한소비의행태속에서우리는겸손대신오만을부리죠.생물종의한부분에불과한존재라는걸잊고사는거예요.심플라이프,좀더소박한삶을향한방향전환이적극적·자발적으로행해져야하겠죠.”
“그게그리말처럼쉬운일일까요?물질과소비를축으로돌아가는세상에무엇으로제동을걸수있을까요?”“그렇죠.제동을걸수있는기제가미약해요.기대난망이죠.결국제가자연에관해서는마음을이야기할수밖에없습니다.이성적성찰보다는감각적쾌락을위한무한탕진과무한소비,누구나예외없이그렇게흘러가는게현실이죠.이를바꿀수있는건먼저눈뜬사람들일거예요.
사회적각성이일어나기전에독립적으로자기반성을한사람들말이죠.자연에서발견한것을마음안에서하나로일치시키고자노력하는태도가필요하다는생각입니다.”방문객들이들이닥친다.수녀두분이다.제천에근거를두고사회봉사단체를운영하는분들인데손수만든떡을가져왔다.이철수에게이모저모도움을받은감사함을표하는방문이다.농부전우익선생은“혼자만잘살면무슨재민겨”라물었지만,이철수는산골에살면서도세상과기탄없는교제를하는사람으로보인다.
그는저만치홀로피어있는꽃처럼고독하거나편벽한인물이아니다.득도를기다리며도솔천에기거하는인물도아니다.삶의골목골목으로,사람의강물그한가운데로굽이굽이나아가는성향이다.그는‘이철수의나뭇잎편지’라는이메일편지를날마다수만명의독자들에게발송하기도한다.편지하나를볼까?
짧지만울림이있다.관조가있는문장이다.자연의맥락과문법을읽는눈이보인다.이런이철수이기에살아남았을게다.그는현실에서도어엿하며작품으로도제나름의본때가있다.건조한사실주의나첨예한기교가아닌선풍의심플한작풍으로자연을통해삶을성찰하는그의판화는나름대로의독보(獨步)가아니겠는가.
술보다는차를좋아한다는그는아마도왁자함보다는정갈함을선호할법하다.이런성품의소유자답게그의목소리는약간피로를느끼는사람처럼언제나나직하다.겸손한언동역시인상적이지만,진지한태도야말로그의독특한관습으로보인다.나는몇번이고속으로생각했다.참이상도하지.이렇게진지한사람이있다니.그는자신의살갗처럼정착한진지함을어느가게에서구입했을까.
니코스카잔차키스는<그리스인조르바>에서이렇게썼다.
“어렸을적엔부친의사업파탄으로정말고생이많았습니다.부친에게적의를느낄정도였죠.하지만아버지가사실은아무잘못도죄도지은바없다는걸알고부터는모든걸이해할수있었어요.강만길선생님이쓴책중에‘거대한사회변화가한가족을거부못할수난으로몰아넣을수있다’는대목이나오는데,이게충격이었어요.부친의실패가부친의의도도무능도아니었구나하는인식을하게되었으니까.이후제삶은세상의그어떤것으로부터도상처를받지않을수있었죠.”
“세상에서상처받지않는다는사람을오늘저는처음봅니다.(웃음)이선생님께서화가로서무난한삶을살아온것은혹시날렵한처신을했거나혹독한노력을한결과는아닌가요?”“그림을말하자면언제나마음이있는그림을그리려애를썼습니다.호응도있습니다.세상의음덕이겠죠.저는세상의경위나경로에아무런유감이없습니다.다만거기에길들여지고싶지않을뿐이에요.”
“살면서다스리기어려운것은분노의감정이아닌가싶습니다.”“저역시때로통제하기어려운감정에시달립니다.나는분노가없어!이렇게말할수는없죠.다만분노나조바심에스스로초조해하지는않을수있습니다.”“자연을관하고마음을중심에두는모습을보자면불가적이거나도가적인느낌이드는군요.마음을닦는사람,수행자라는생각,그런거말이죠.”
“글쎄요.다시그림으로말하자면예술에는신성성과유희성,이두가지차원이있을겁니다.저는신성성이더예술이라믿는사람이죠.성향과지향이그러해요.마음속에서길어올린것을일상의삶과일치시킨다,이렇게사는거죠.그리고그러한삶이그런대로적절한것이었다면그건좋은사람들,좋은책들,그리고자연에게서얻은힘의결과입니다.”
“결례되는소리일지모르지만절집의승려를연상시키는이선생님에게그림이란사실상여가나여흥같은것에불과할지모른다는생각이드는데요?”“(웃음)사실저스스로제가그림그리는사람이라고느끼질못합니다.그저한사람으로족하니까요.그림이란반성문쓰듯이하는작업이니까요.예술이라는비좁은틀속에나를우겨넣을수도없죠.모든번잡함에서벗어나정리하고싶기도하지만그림그리는사람으로서의소임이라는것도있을테고,제가무슨중이된것도아닌데,그저함께사는인연속에서갈때까지간다,그런생각이죠.”
그리고자잘한담소와웃음꽃.내가보기에이부부는함께손을잡고어디론가가는사람들이다.정신적인것의어떤산정(山頂)을꿈꾸는이철수의행보는살짝빠르다.이럴때그의아내가천천히가자며숨을고른다.그리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