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산친구 [2] *-

[우리는산친구]곽명옥·최오순·김순주씨
세계최고봉높이만큼山友(산우)의두터운情(정)

“이제아줌마들이다보니빙벽에선폼이나오지않을거예요.그렇다고한겨울에만경대리지를어떻게가요?위험하지않을까요?바위해본게오래됐단말이에요.”

1월14일정오가조금안된시각에우이동에서만난곽명옥(郭明玉·49·을지재단검수팀장)·최오순(崔五順·43·대한산악연맹등산교육원교무)·김순주(金順珠·40)등에베레스트의여인들은뜻밖에도몸을사렸다.춥기는추운날이었다.기상대관측이래서울지역최대라는폭설이북한산곳곳에그대로붙어있는오늘오르기로한만경대암릉은보석처럼반짝이면서도싸늘한냉기가느껴졌다.

“그래도좋긴좋네요.와~,그러고보니저는에베레스트훈련때이후처음이네요.”

1993년5월10일선배인최오순과함께에베레스트정상에올라선바있는김순주는포항에서새벽버스를타고북한산기슭까지오느라피곤할텐데도두선배보다표정이더환했다.세사람은1991년12월여성에베레스트원정대첫모임에서인연을맺었다.당시40명이넘는여성산악인이훈련대에참가했다.

▲1“어때요?이만하면괜찮죠?에베레스트원정때는정말날렸다니까요.”곽명옥,김순주,최오순씨(오른쪽에서부터)가만경대암릉피아노바위직전테라스에서“파이팅!”을외치며활짝웃고있다.2“언니,잡숴봐요.순주가밤새다듬어온거래요.”최오순씨가언니명옥씨입에과메기를넣어주고있다.3“오랜만에바위타니까정말좋아요.즐거워요.”용암봉초입부.4“그땐30kg무게의배낭을메고도주마링해서인수봉꼭대기까지도가볍게올랐는데이젠빈몸으로도버겁네요.”주마링등반중인김순주씨.5“북한산이이렇게아름다운산인줄정말몰랐어요.18년전에오로지훈련차찾은산이었거든요.”용암문에서도선사로내려서는세여성산악인.6“그때불암산에서출발해수락산,사패산,도봉산을거쳐북한산능선을타고저대남문까지갔었죠?”등반을끝낸뒤에베레스트의세여인은대남문일원을바라보며옛추억을되짚었다.

1987년전국암벽대회여성부서우승한바위꾼곽명옥

“정말가슴이뛰었어요.명옥언니는이름난바위꾼에1989년안나푸르나원정에도참가한산악인이었어요.지현옥언니또한매킨리(6,194m)등정에안나푸르나(8,091m)와캉첸중가(8,586m)를등반했고,모교후배들을이끌고무즈타그아타(7,546m)라는봉에도올랐고요.최고참인남난희언니는강가푸르나(7,455m)를등정하고1989년당시까지만해도‘금녀의벽’으로불리던토왕빙폭을등반하는가하면그에앞서혼자백두대간을종주한다음펴낸<하얀능선에서면>이란책으로유명한여성산악인이었고요.그런선배들을만났으니가슴이얼마나벅찼겠어요.”

도선사일주문을지나산길로접어드는사이최오순은20년가까이지난일인데도또렷이기억해내며당시의추억을하나하나떠올렸고,곽명옥과김순주는자신의기억에맞을때는장단을맞춰주다가도아니다싶을때는“말도안된다”며어깃장을놓았다.

“1년에한두번씩갖는모임에서에베레스트때촬영한슬라이드를상영해요.장면마다해석이달라요.기억이가물가물해진탓도있지만각자위치가달랐기때문에입장도달랐던거죠.명옥언니는대장과부대장에이어‘넘버3’라매사에힘이있었지만오순언니는12번,저는막내인14번이었거든요.대장과한텐트를썼으니다른대원에비해스트레스를더받는건당연한일이었죠.그래도참좋았던것같아요.아~그리워라,오~옛날이여어~.”

도선사뒤계곡은눈이전혀녹지않은상태였다.산길을따라10분쯤걷다가바위지대를만나자곽명옥은“저상궁바위는인수봉등반마치고하산할때마다들르던훈련바위였다”며한참동안바라보았다.강추위덕분에열흘전내린눈이전혀녹지않은계곡길을따라용암문에올라서자한낮의햇살을받은노적봉은유난히도반짝이고,멀리대남문으로이어지는북한산능선도기운이넘쳤다.등산로를벗어나산성길을따라능선마루에올라서자오른쪽으로병풍암이형성된용암봉이바라보였다.

“1981년에북한산장에있는데난리가났어요.학생들이다죽게생겼다면서요.저희산악회회원들과함께급히용암봉에올랐어요.학생네댓명이쪼그리고앉아꾸벅꾸벅졸고있지뭐예요.저체온증상이었어요.따귀를후려갈겨도정신을못차렸으니까요.그래서한명한명업어서내렸어요.”

곽명옥씨는영화‘마운틴’을보고전문등반에매력을느끼던터에1980년백운대정상에서인수봉을오르는클라이머들을보곤곧바로암벽등반에입문했다.

“전문등반을잘한다는한넝쿨산악회였어요.그런데겨울이라고바위를안하지뭐예요.그래서선배들을졸랐더니아직춥고눈이많은2월에숨은벽으로데려갔어요.손이엄청시렸어요.내손인지남의손이지모르고올랐으니까요.제가너무독하게바위하니까남자동기들이다떨어져나가더군요.”

곽명옥은1986년북한산코끼리크랙에서열린전국암벽등반대회에서2위를하고,이듬해내연산에서열린전국암벽등반대회에서우승을차지했다.1986년부터여러해동안코오롱등산학교강사로서활동하기도했던그녀가1989년막강한남자대원들이주축인대한산악연맹안나푸르나원정대에참가할수있었던것은무엇보다뛰어난등반기량때문이었다.

“처음참가한제5회대회때는연희(서울시산악연맹교육기술위원장)언니한테우승을뺏겼어요.저는인수파인데선인파한테지니까너무나화가났어요.그래서한해동안이를악물고연습을했죠.솔직히말하자면두대회다여성부는대여섯명밖에참가하지않았어요,호호.”

곽명옥에비해최오순과김순주는에베레스트원정직전까지새내기에지나지않았다.김순주는에베레스트훈련도중대학을졸업한앳된산아가씨였고,최오순역시서열이12번째이다보니늘궂은일과뒤치다꺼리담당이었다.특히카메라는지금도이가갈릴정도로좋아하지않는다.

“캠코더담당이었어요.정상올라갈때도제몫이었고요.촬영하느라워낙애를먹은까닭에원정을다녀온뒤카메라라면거들떠보지도않아요.훈련할때바위잘하는명옥언니보면정말부러웠어요.오늘만경대리지는언니가앞장서는거맞죠?”

“한때날리던바위꾼”이라며곽명옥을극찬하는최오순은산행전“저길어떻게올라가냐”며엄살을부리면서도흰눈덮인북한산을바라보는표정은환했다.최오순은새내기산꾼시절부터힘하면알아주는여성산악인이었다.고창군무장면영선종합고산악부시절선운산도솔암에서바위를타다스님한테혼난기억도가지고있는최오순은고교졸업직후입사한삼성전자수원사업소사내산악회에입회한다음정승권등산학교를통해전문등반을배웠고,경기도산악연맹산악구조대에서활동하면서고산등반에발을들여놓았다.그덕에에베레스트훈련이한창무르익을때인1992년여름천산산맥최고봉포베다(7,439m)를등반하고,칸텡그리(7,010m)를등정할기회도가질수있었다.

에베레스트등반통해의젓한산꾼으로변신한최오순·김순주

직장을그만둔것은에베레스트때문이었다.최오순은1992년1월첫훈련후18명의훈련대원에선발되자곧이어실시한훈련등반에참가하려고평생직장이나다름없는삼성전자를그만두었다.당시회사규정상휴가를3일까지신청할수있었고,제2차훈련등반은그보다하루더긴3박4일이었다.하지만1차훈련에서선발된18명중10명을추려낸다는2차훈련에빠진다는것은있을수없는일이었다.그렇게2차훈련을앞두고회사를그만둔덕분에그해봄전지훈련차나선임자체(6,119m)-로부제(6,183m)등반에참가할수있었고,같은해여름돌비알산악회의천산산맥원정에도동행할수있었다.

“넉달간합숙훈련할때새벽5시에일어나면도봉동합숙소에서도봉산을오르내리면서몸을풀고각자근무처로출근하고,저녁에돌아오면새벽녘까지회의를했어요.7시30분을넘어서들어오면저녁밥을주지않을만큼규율이엄했어요.휴가라곤막판에1박2일이전부였고요.주말이면무거운배낭을메고불암산에서출발해수락산과사패산,도봉산,북한산을거쳐구기동으로내려서기까지당일종주한게몇번인지헤아릴수가없어요.중간에인수봉에서무거운짐을메고주마링연습을한적도부지기수였고요.저와명옥언니가20kg쯤멨다면순주는25kg아니30kg은멨을거예요.힘이좋은데다대원14명중막내였거든요.”

김순주는에베레스트1차훈련당시졸업을앞둔대학생이었다.하지만그녀는대구가톨릭대산악부시절이미항우장사급남자못지않은체력을갖추고있었다.주말산행은물론이고방학때는20일치식량과장비를짊어지고산을탔고,거기에도만족하지못해또다시배낭을싸들고설악의암릉을찾아나서기도했다.대학2학년때바위를제대로해야겠다는생각에등산학교에이어암벽반까지나오는등열혈여성산꾼이었다.

“순주는정말날아다녔어요.선파워였어요.3차공격때사우스콜에가장먼저올라선뒤세차례나내려와그다음에올라온현옥언니,그뒤를이어저,그리고막판에올라온정건의배낭까지모두받아주었으니까요.”

함께정상에오른최오순은“당시에베레스트정상가는길이너무도쉬웠지만그래도김순주의체력은정말대단했다”며혀를찼다.뛰어난체력을지닌김순주는1993년에베레스트원정때세차례의정상공격조에모두참가했고,그바람에해발8,000m높이의사우스콜에세번이나올라섰다.

“도봉산팀에서합숙훈련할때거의매일루트에대해공부를했어요.그래서에베레스트를가기도전에이미베이스캠프에서정상으로이어지는남동릉루트가머릿속에정확하게들어있었죠.그래서인지쉬웠어요.정상공격하는날에는산소마스크를입에무니까컨디션이너무좋아지는거예요.다른원정대보다한시간이나늦게출발했는데모두추월했어요.가장험하다는힐러리스텝도짧은바윗길이다싶었고요.한참올라가다가만히서있는셰르파를보고‘쟤가왜저기서있지?’궁금했는데다가서니까꼭껴안는거예요.성공했다면서요.거기가정상이었어요.그땐정말무서운게없었던것같아요.”

하산길에김순주는곤욕을치렀다.눈보라에짙은안개가끼자앞이보이지않았다.

그래서고글을벗었던게화근이었다.

“사우스콜캠프에정말힘들게내려섰어요.셰르파가캠프를하나더내려서자했지만앞이보이지않는상태에서하산하다보니체력이많이고갈돼있었고,눈이너무아파서셰르파가더내려가는게낫다고몇차례나얘기했지만더이상걸을수가없었어요.이튿날날이밝자현옥언니가비장한표정을지으면서오순언니한테하산길에들어선외국클라미어와동행하라며등정필름을전해주었어요.‘너만은꼭살아내려가우리의등정사실을전해주어야한다’는듯이말이에요.그런데,언니.우리가여기도지나가긴갔어요?”

용암봉암릉은온통눈에덮여있었다.딱한사람발자국이찍혀있었으나클라이밍다운해야하는크랙을앞두고족적이끊겼다.김순주는오른쪽눈일부가시뻘겋게물들어있었다.며칠전아들둘데리고빙벽등반에나섰다가깨진얼음에맞으면서실핏줄이터진흔적이었다.


한해간격으로5대륙최고봉완등에성공

“요즘들어아이들이눈에들어오기시작했어요.공부를잘하도록신경써줘야겠다는생각이들었어요.그러고나니까산이조금시들해진것같아요.그런데오늘이렇게북한산에오니까산밑에서부터가슴이설레네요.꼭에베레스트훈련등반에참가하는기분이에요.이러다다시산에빠져드는거아닌지모르겠어요.”

김순주는에베레스트등반후한동안고산등반을멀리했다.1년반이란긴시간동안에베레스트등반에몰입하느라사회생활을너무등한시했다는생각때문이었다.그러나시간이흐르면서하얀산은그녀를가만놔두지않았다.

“1995년초오유-시샤팡마도원정갈기회가있었는데,대학은사이자산악부지도교수였던고강명구교수님이산도좋지만사회생활에충실해야한다는간곡한당부때문에포기했어요.하지만스물아홉나이가되니까서른되기전에세상을실컷다녀봐야겠다는생각이들어직장을그만두었어요.”

그녀가찾고싶은세상은도시도평원도아닌산이었다.1997년그녀는경북연맹원정대원으로서북미최고봉매킨리(6,194m)정상에올랐다.그리곤그해가을초모랑마(8,848m)원정에도동참했다.하지만세계최고봉초모랑마에서는그녀를끔찍이아껴주던선배가눈사태로목숨을잃는사고를겪어야했다.그일로마음이허전해있을때후배가아프리카로데려다달라부탁했다.그러자고했다.그리곤50일간의긴여행동안아프리카최고봉킬리만자로(5,895m)도오르고,케냐와탄자니아곳곳을둘러본다음인도를거쳐귀국했다.

최오순도가만히지내지않았다.에베레스트에서돌아온뒤복직한최오순은이듬해여름또다시사표를내고돌비알산악회원정대의매킨리원정에참가했다.오순은그원정에서기대했던남벽등반에참가하지도못한채캠프철수를위해C1에올라섰다가낙석에맞아머리가찢어지는부상만당한채돌아서야했다.하지만귀국행비행기를타기위해머문앵커리지에서만난선배의도움으로다시등반에나서매킨리정상에올라서는기쁨을누릴수있었다.

최오순은이듬해1995년인도의차우캄바2봉원정에도나서는등끊임없이고산등반에몰입하는듯했으나1996년12월중순역시산꾼인가의용(43·경기도산악연맹산악구조대)씨와결혼한뒤경제적인안정을갖기위해직장생활을하고1999년태어난첫딸지원을키우느라한동안산을멀리하며지낼수밖에없었다.김순주역시매킨리와초모랑마를함께등반했던선배하찬수(41·계명대OB)씨와결혼한이후로는가정을꾸리고아이들을키우는주부역할에충실하려고애를썼다.

하지만시간이흐르자두사람은원초적본능이움직이고온몸이근질근질해지기시작했다.결심은막내김순주가먼저했다.그리곤최오순에이어늘맏언니같이포근한곽명옥에게도전화했다.

“언니들,산에한번가지않을래요?”

1999년안나푸르나에서실종된지현옥대장5주기추모식때나온얘기였다.최오순과김순주두사람은버스편이끊어지는줄모르고계획을세웠다.남편들도흔쾌히즐겁게등반하고오라했고,김순주는부모님께서아이들봐주시겠다며딸의해외산행에적극협조해주셨다.

“저는에베레스트등반을마친뒤먹고사는일에만충실했어요.인사동에맥주집도차려보았고요.지금근무하는을지병원에서휴가를내어미국에있을적에순주한테전화를받았어요.그땐그냥알았다했는데귀국해서보니까벌써준비를하고있는거예요.그모습을보니안가겠다고할수가없었어요.비행기표석장외에는아무런준비없이출국했어요.아무튼저는중간산장에도착했을때머리가너무아파고생만하다내려왔어요.”

엘브루즈원정에나설때는에베레스트에서돌아온지11년이란긴세월이흐른뒤였지만에베레스트의인연은여전히세사람을끈끈이묶어주고있었다.아무준비없이비행기표만끊어갔고,모스크바에서만나도움을받으려했던한국인이자리를비워잠시당황하기는했지만이후모든일이순조로웠다.

“오순언니는등반을마친뒤아줌마의한계를극복하기위한도전이었다고속마음을털어놓았어요.아무튼명옥언니로선힘든등반이었어요.동네뒷산도다니지않을때였으니까요.그래서고소때문에도애를많이먹었고요.공항에서소주몇병산것외에는아무준비도하지않았어요.가이드가말이안통하는게불편하긴했지만다른걱정이뭐가있었겠어요.각자경비를냈고모자라면언니가내면되는걸말이에요(웃음).정상에오를때까지너무나즐거웠어요.등반이란이런거구나하는걸깨달았으니까요.사실에베레스트원정때는너무많이시달렸거든요.애초에여자대원들끼리모든일을해결하려했는데수시로남자들이껴드는바람에갈등이많았어요.”

엘브루즈에오르자은근히5대륙최고봉등정에대한욕심이생겼다.마침김순주는아콩카구아(6,959m)만남겨놓고있던터라내친김에그해말나서기로했다.하지만오순은출국을열흘쯤남겨놓고추돌사고를당하는바람에무산되고말았다.

“언니가퇴원한후괜찮다고해서대구집에서짐싸들고나와서울의명옥언니집에서하룻밤자고이튿날새벽공항으로가려는데전화가왔어요.어지러워서도저히못가겠다고말이에요.달팽이관이흔들리는바람에평형감각을잃었던거였어요.그래서2년뒤인2006년에아콩카구아를등반하게된거예요.참,그때베이스캠프에서만났잖아요.”

2006년12월말아콩카구아베이스캠프에서만난최오순과김순주는함께원정온선배들에앞서정상에올라선뒤베이스캠프에내려와있었다.

“제1캠프에짐을올려놓았는데바람이어찌나강하게불던지다날아갔을것같아확인차캠프에올라갔어요.그런데멀쩡하지뭐예요.그래서하룻밤자고둘이서밀어붙였고,정상에서사진한장씩찍곤그날로베이스캠프까지내려왔어요.에베레스트에서등정한날가장많이내려오는게좋다는경험을했기때문이었어요.그게몸에좋거든요.”

김순주는그등반으로5대륙최고봉을완등했다.그리고이듬해봄최오순도킬리만자로정상에올라섬으로써5대륙최고봉완등자가되었다.이후세사람은고산원정은나서지못하고있지만각자산악활동을하고있다.곽명옥은대한산악연맹재무이사로대산련행정의중추를이루고있다.

대한산악연맹교육기술위원인최오순은대한산악연맹등산교육원교무로근무하면서코오롱등산학교강사·대한적십자사응급처치강사로도활동하고있다.요즘도가족과함께비박산행을하고겨울이면빙벽에도매달리곤하는막내김순주는포항지역의미술관에서봉사하면서지난해가을숲해설가과정을수료했다.경북수목원에서숲해설가로활동하는게그녀의작은꿈이다.

“언니,알죠?계획세우면일사천리로진행한다는거”

만경대암릉산행은용암봉서쪽,일명‘피아노’구간에서막을내렸다.손으로잡고이동하는바위턱에는눈한점없었지만발로밟아야하는사면은눈이두텁게쌓여오랫동안바위를찾지않은세사람에게는무리다싶었다.

60m자일로두차례하강해위문~용암문산길로내려섰다.모처럼북한산을찾은김순주는용암문을거쳐곧장도선사로하산하자는곽명옥의말에백운산장에서과메기안주에막걸리한사발하려던계획이무산되자무척아쉬워하는표정이었다.

“아니너는포항사람들즐겨마시는소주한병은가져와야지이게뭐니?과메기만어떻게먹으라고.”

김순주는용암문을빠져나가기전“참,과메긴먹고가야지.애아빠랑과메기랑파,마늘,고추를밤새다듬고초고추장까지만들어왔는데”하며배낭안에서비닐봉지를꺼내놓았다.그리고세사람은언니먼저,아우먼저하며고추장을바른과메기와파·마늘을김에돌돌말아서로입에넣어주었다.

“언니?엘브루즈때돈많이안썼죠?이번에저희가계획세우면한번제대로써봐요.3년뒤여성에베레스트등정20주년을기념해등반이든트레킹이든나가야할거아니겠어요?알죠,저희둘이계획세우면일사천리로진행하는거.”

막내의은근한협박이었다.그러자언니입에넣어주려고김에싼과메기를젓가락으로집어들고있는최오순은빙그레웃고,곽명옥은유쾌한표정을지으며“그래까짓것해보지뭐”하며후배들의새로운음모에기꺼이가담할표정을지었다.

곽명옥

한넝쿨산악회
대한산악연맹재무이사

1987년제6회전국암벽등반대회여성부1위
1989년동계안나푸르나등반
1993년에베레스트등반
2004년엘브루즈등반

대한민국체육포장(1994년)

김순주

대구가톨릭대학교산악회
경북ECO가이드
경북숲해설가협회숲해설가

1992년로부제등정
1993년에베레스트등정
1997년매킨리등정
초모랑마등반
킬리만자로등정
2004년엘브루즈등정
2006년아콩카구아등정

기린장(1994년)

최오순

경기도산악연맹산악구조대
대한산악연맹등산교육원교무
대한산악연맹등산교육원전임강사
대한산악연맹교육기술위원
코오롱등산학교강사
대한적십자사응급처치강사

1991년일본북알프스원정
1992년임자체(등정)-로부제원정
1993년에베레스트등정
1994년매킨리등정
1995년차우캄바2봉원정
2004년엘브루즈등정
2006년아콩카구아등정
2007년킬리만자로등정

기린장(1994년)

-글/한필석차장/사진허재성기자/’월간산’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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