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늘의교회,이타미준,2009.photoby임진영
4어번하이브,김인철,2008.photoby김용관
언제부턴가사람들은도시안의건축물이지닌미학적가치를발견하기시작했다.아마도시작은삼성미술관‘리움’이었을것이다.기하학의대칭적완결성,독자적이고자율적인가치를표출하는형태,외형을드러내지않고대지경계면을따라흐르는세작품은거장의이름에걸맞은품격을드러냈다.당시만해도생소했을마리오보타,장누벨,렘쿨하스라는이름은이흥미로운건축물과함께강렬한인상을남겼다.스위스를기반으로한기하학적건축의거장마리오보타와자유로운행보를보이는프랑스의장누벨,현대건축의극단을넘나드는이단아렘쿨하스가한곳에모이다니.어찌보면고개를갸웃거리게할조합이지만,그렇다하더라도리움이서울에서현대건축을경험할수있는가장매혹적인공간임은부정할수없는사실이었다.세계적인스타건축가들의건축물이우리도시에등장하다니!
1970~90년대만해도해외건축가들은한국의고층빌딩과공항,병원과같은특수한건축물의설계를의뢰받았다.건축주들이필요로한건조직설계를근간으로한전문설계집단의전문성과노하우였다.간혹이름있는해외건축가가대형오피스빌딩을통해등장했지만,아쉽게도그들의초기콘셉트가결과물까지이어지지못한경우도많았다.한국의현실과예산에맞게적절히원안이수정되었기때문이다.그러나2005년리움미술관이실체를드러냈을때,이세건축가의이름이주는가치는명확했다.그들은작가적성향을지닌-렘쿨하스는동의하지않겠지만-세계적인거장들이었다.이후강력한미학적가치와완성도,혹은건축적실험을추구하는건축가들이초빙되기시작하면서,한국에는하나둘거장들의마스터피스가들어섰다.
다니엘리베스킨트는삼성동대로변의건물입면을캔버스삼아일필휘지의탄젠트를그려냈고렘쿨하스는캠퍼스와도시의가교를자처한서울대미술관으로돌아왔다.지금은독일의메르세데츠-벤츠뮤지엄으로더알려진유엔스튜디오가갤러리아백화점입면에LED조명을수놓은것은더말할것도없다.도미니크페로는이화여대의상징적중심인이화캠퍼스콤플렉스를완공했고,안양아트밸리에는알바로시자의건축미학을엿볼수있는미술관이들어섰다.이질적이고도매혹적인,스스로존재감을드러내는건축물들이다.작가적성향을갖춘해외건축가의등장은우리도시가원하는바를대신말해주었다.바로건축의미학적인가치다.
건축물의가치가형태나상징성,외관의이미지에만있는것은아니지만,창의적인아이디어가만들어낸과감한형태는사람들의호기심을불러일으켰다.더많은해외건축가들이등장하면서건축물을대하는시선도달라졌다.‘명품(?)건축’이라는민망한수식어는그들을하나의아이콘으로만들고주변건물들과구분했다.차별화된디자인에대한요구가높아지면서,최근몇년간아파트나오피스텔의영역에서도VVIP마케팅전략으로내세운것은디자인이었다.
상업영역에서는스타건축가의이름이지닌파급력으로브랜드가치를높였다.도시도이름있는건축가와아름다운건축물을통해상징성을얻고싶어했다.프랭크게리의빌바오뮤지엄이주는이른바‘빌바오효과’처럼,건축의미학적가치는아이콘에대한도시의열망으로이어졌다.장누벨,벤반베르켈이아파트설계에기용되었고,여러도시가쿱힘멜블라우,알바로시자,자하하디드등의이름을얻었다.건축가의이름이화려해지면서아이콘의성격은더강해졌다.
대형자본을내세운개발사업과도시의문화적전략에서아이콘과스타건축가의밀월관계는전세계적인현상이기도했다.그러나도시를풍요롭게하는미학적가치는유명건축가의이름에서만얻어지는것은아니다.해외건축가에의존한이들뜬잔치가진행되는동안,한편에서는조용한변화가시작되었다.상징적건축물하나에의존하는대신공공예술프로젝트처럼도시곳곳의빈틈을파고드는소박한공간만들기와형태적인화려함에서한걸음물러나건축본연의가치에주목한건축물들이조금씩도시의일상을채웠다.미처발견하지못한건축물들이다.
6안양알바로시자홀,2006.사진안양공공예술재단제공
7한일시멘트게스트하우스,조병수,2009.photoby임진영
8삼성미술관리움,2005.photoby이한구
9중계동데미안빌딩,김승회,2009.photoby김재경
10부산영상센터당선작,쿱힘멜블라우,2005.
청담동에들어선‘Be_Twixt’나최근단양에들어선‘한일시멘트방문센터-게스트하우스’에서건축가조병수는콘크리트가가진물성을실험했다.새로운콘크리트사용법은곧잘건조하고차가움으로대변되는콘크리트에감성을담고자한시도였다.청담동‘Be_Twixt’에서는아예레진재질의작은원형창을냈는데,이곳을통해잔잔하게새어나오는빛은숨을내뿜는구멍처럼느껴진다.커다란전면창에는영상물을쏘아올려,건물의입면은한편의영화가상영되는달콤한콘크리트만화경이된다.
Be_Twixt가빛과영상물로콘크리트에표정을부여했다면,한일시멘트게스트하우스는콘크리트자체를패브릭처럼표현한건물이다.패브릭거푸집으로떠내어마치자유롭게출렁이는천을둘러친듯한질감은콘크리트의유기적인형태라는모순된이미지를만들어냈다.여기에폐콘크리트를재활용해철망에넣어구성한입면은친환경에대한의미뿐만아니라헤르조그&드뫼론이나파밸리의도미누스와인저장고에서망태에담은돌조각으로표현한디테일에대한오마주를보여준다.이로써콘크리트는건물을구축하는무표정한벽이아니라,질감과생동감을담는감성적인재료가된다.
건축은은유를통해시가되기도한다.내년개관을앞두고있는알바로시자의‘미메시스뮤지엄(파주출판도시소재)’이시적은유를보여주는대표적인건축물이라면,제주도‘핀크스미술관’은자연을반영하는은유의건축이다.물과바람,소리와빛을끌어들인‘수,풍,석미술관’은건축자체가전시물이되는명상의공간으로조성됐다.2006년재일교포건축가이타미준이설계한이구조물들은그의대표작인포도호텔근처,비오토피아타운하우스내에들어선전시관이다.깊은사색을이끌어내는공간을조성하기위해건축가는개성을절제하고조형의순수함을얻고자했다.
여기에올해여름‘하늘의교회’까지들어서면서핀크스주변대지에시처럼새겨진은유의건축은하나의완결점을찍었다.마치물고기의비늘이반짝이듯경쾌한지붕의디테일은변화무쌍한제주하늘의풍경을반영하기위한것이라한다.자신을전면에내세우지않지만재료의질감과조형성을통해건축물자체를체험하도록이끈다.그결과추상적인공간은건축물이담을수있는여백을통해자연을담고치유를권한다.
꼭비싼건물만좋은공간을만들수있는것은아니다.중계동의‘데미안빌딩’은효율성과경제적인논리가가장첨예하게맞서는근린생활시설에건축가의생각을담은예다.건축가김승회는소규모상가들이밀집한대로변의천편일률적인덩어리를잘게나누려는듯,건물에수직줄무늬를그어내렸다.임대건물의상업적욕망과도시풍경의새로운형태를만들고자하는건축가의욕망은외관을분절시키는수직바의형태에서접점을찾았다.마치바코드의선처럼불규칙적으로그어내린콘크리트선은어느것이기둥이고스킨인지구분이모호하다.덕분에데미안빌딩은층층이쌓아올린주변건물과달리하나의덩어리로인식된다.1층진입부나건물후면에빈공간을마련한것은경제논리내에서도충분히여유공간을확보할수있음을보여주고자한의지의반영이기도한다.
2008년,‘부티크모나코’와‘어번하이브’는커튼월로반복되던수직타워틈새로새로운유형을보여준다.부티크모나코는형태적인새로움이아니라,기준층이반복되는도미노시스템에대한새로운해석이었다.무한반복되는기존오피스텔의틀을깨고49개의다양한유닛을통해불균질한타워를만들었다.외부에서보면건물전체에서마치15개의덩어리를파낸듯한데,최대높이까지건물을높이고넘치는용적률만큼부피를덜어내건물전체의여백으로삼은것이다.이곳은수직정원으로쓰인다.
건축가가준수해야할법적기준이주어진한계가아니라디자인의출발이된셈이다.커다란타공이반복되는어번하이브는그입면이곧구조라는점에서형태적인새로움을뛰어넘는다.원형패턴의반복을통해건물의스킨이곧구조가되도록해,기준층의수평선이반복되는주변타워와확연히다른모습을보여준다.주상복합빌딩인부티크모나코나오피스타워인어번하이브나외관의독특함만으로시선을사로잡는것은아니다.두건물모두저층부의공용공간을대로변에열어두어사람들이쉽게접하고유입될수있도록한것.외부와단절된오피스타워의로비와달리,두건물모두저층부의거대한구조물사이에열린공간을만들어강남대로를걷는사람들의발길이이어지고있다.
유기적인존재를자처하는건축물의등장은재료와형태,구조에대한건축의실험에서한걸음더나아간다.신사동도산공원근처,빽빽하게들어선콘크리트건물사이로보이는‘앤드뮐미스터숍’은수호초를뒤집어쓴이질적인건물이다.녹색식물을두른유연한외관과달리,숍이들여다보이는실내는커다랗게입을벌린어둑한동굴과도같다.여기에기둥없이매장전체를지지하고있는콘크리트셀구조와내부를감싸고있는부드러운지오텍스타일의외벽,유기적으로뻗어내려온계단과백색공간,축축한이끼로덮인내부벽은마치건축물자체가숨을쉬는커다란화분이아닐까하는착각마저들게한다.
아방가르드하고마니악한앤드뮐미스터의패션은바로이지점에서건축가조민석과만난다.‘장식적이지않고잘쓰이지않을,더구나서로어울리지않을소재를재치있게섞어내는’앤의스타일은‘진지하지만엄중하지않고,세심하지만실험적이며,강하지만감각적인’스타일로조민석의건축과만난다.녹색외피를둘러싼장난꾸러기처럼자연?인공,외부?내부가아무렇지않은듯서로융화하는공간이다.건축가는기존건물의안과밖을뒤집어내고식물을둘러내앤드뮐미스터를하나의혼성적유기물로경험하게하고싶었다고한다.여기에커다란콘크리트셀을만들어냈고,자연과벗하는풍경을담는것을넘어자연을입은건축을만들어낸것이다.
식물을건물의외장재로적극수용하는에코건축의면모를보여주기도하지만,이소박하고사치스러운공간의미덕은다른곳에있다.그것은하나의완결된건축물,물리적구축물에머무르던건축대신,끊임없이가꾸고다듬어야하는유기체의건축을수용한것이다.이건물은살아있는식물과이끼를두르고있다.담쟁이덩굴처럼강한생명력을가진것도아니어서,겨울이면흙이보였다가다시뒤덮기도하고철마다가꾸고가끔은솎아내주어야하는이외피는디자이너앤드뮐미스터의적극적인지지와건축주인한섬의지원없이는불가능한일이었다.철마다창호지를바르고,흙벽을바르고,초가의지붕을이듯,끊임없이살아숨쉬고단장하는건축물을수용한다는것은손익을셈하는가치로는답을낼수없다.이것은건축물에대한형태적인화려함을벗어난안목에관한문제다.
홀로오브제가되어서있는건축물대신대로의뒷골목에숨어수호초를둘러쓴건축물의존재는어쩌면우리사회가도달할수있는건축적인아름다움에대한사회적합의,그한지점을보여주는것일수있다.지난몇년간등장한이건축물들은스스로아이콘이되는오브제가아니라,주변과관계를맺는일상의건축이다.도시혹은자연에반응하며물성,은유,감성그리고친환경과자연이라는건축의또다른가치를풀어내는건축물이늘어날수록우리는더다양한도시의표정을,더다양한이야기를갖게되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