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로길게펼쳐진알프스산맥에서이탈리아는가장너른영역을차지하고있다.하지만몽블랑이나마터호른을포함해수많은봉우리가국경에접해있을뿐이다.이탈리아국경내에위치한4,000m봉우리는단하나뿐인데,바로그랑파라디소(GranParadiso·4,061m)다.‘대천국’그랑파라디소는북으로몽블랑산군과남으로도피네(Dauphine)산군사이에위치한그라이안(Graian)알프스의최고봉이다.자신을한껏뽐내는마터호른과달리계곡깊숙이주변산봉우리들뒤에숨어있는요조숙녀같은봉우리다.
오늘날교통의발달로이봉우리는가장오르기쉬운4,000m봉우리들중하나가되어여러부류의산악인들이찾고있다.그러나산행출발지인폰트(Pont·1,960m)주차장에서정상까지무려2,000m나도보로고도를올려야만한다.무엇보다그랑파라디소산행의즐거움은케이블카와같은인위적인도움없이자신만의노력으로4,000m봉우리에오르는기쁨일것이다.정상부에이르고서야웅장하게펼쳐지는사방의전망또한인상적이다.특히북서쪽저멀리바라보이는몽블랑산군의파노라마가일품이다.
지난해여름,필자는10년만에그랑파라디소를찾았다.동행은여름내내샤모니에머문백승기선배와한산대구지부회원으로서십여년전유학시절에그랑파라디소를오른경험이있는차광수선배,그리고지난1년간샤모니에머문이진기씨와함께였다.
아침일찍샤모니를떠난우리는승용차를이용,몽블랑터널을통과했다.40여년전에뚫린11.6km길이의이터널을이용하지않으면두시간더소요되는스위스로넘어가생베르나르고개를넘어야한다.30분만에터널을통과한승용차는쿠르마이어를지나아오스타(Aosta)계곡을내려갔다.차츰계곡이넓어지자언덕에위치한로마시대의성곽이눈에들어왔다.유서깊은소도시아오스타다.
그랑파라디소의산행출발지인폰트에찾아가기위해지도를펼치는데,GPS에정통한백승기선배가그럴필요없다면서자기를,GPS를믿으라한다.평소기계에대한불신이큰필자는십년전기억과지도만으로도충분하다여긴터라선배의말이귀에들어올리없었다.하지만수많은갈림길에서한두번길을잘못들고부터GPS의위력을인정하고말았다.
바게트에치즈를끼워맛있게점심을먹은우리는비브람등산화를고쳐신고배낭을꾸렸다.산행은산행안내소뒤로난길을따라나무다리를지나서부터다.시냇가좌측을따라평지나다름없는너른길을지나남쪽으로들어갔다.아름드리전나무사이로이어지던길은시냇가를벗어나본격적으로오르막길에접어든다.전나무숲에는군데군데민들레가피어있으며좌측언덕으로지그재그로난오솔길이이어져있다.
한시간즈음잘정비된오르막길을오르자전나무숲에서벗어난다.이제부터시야가트인다.이미2,000m이상의고지라나무들은없고알파인풀밭에야생화들이드문드문피어있다.위에서내려오는이들중에는우리처럼비브람을신고배낭을짊어진산악인들도있고산장까지트레킹을다녀오는트레커들도있다.모두얼굴이밝다.산에서도이탈리아인들의심성이드러나우리에게즐겁게인사하며농담도건넨다.
차츰고도를높이며오후3시쯤되자하늘에짙은구름이드리워졌다.두시간이상걸어산장가까이다다를즈음당나귀에짐을가득실은일단의트레커들이지나갔다.
트레킹가이드가앞장선이그룹은그랑파라디소를시계반대방향으로일주하고있었다.어린아이까지참가한이팀또한우리와같은산장에묵게되었다.돌길을걸어올라맑은개울물이흐르는좌측둑위에빅토리오엠마누엘2세산장(VittorioEmanueleIIHut·2,735m)이있었다.돌로지은외벽에거대한양철로지붕을둥글게얹은특이한모습의이산장은이지역국립공원의창시자이자산양보호자였던그의이름을기리기위해1932년에세워졌다.
여름철성수기인데도예약하지않아은근히걱정했지만주말이아니라우리넷을위한침상은있었다.3층다락방이었다.군대식침상처럼중앙통로양쪽으로침대가줄지어있는,허리도굽혀야하는다락방이었지만알프스의한봉우리를오르는우리에게딱맞는산장분위기였다.짐정리를하고산장앞나무벤치에앉아우리는맥주를마시며늦은오후시간을즐긴다.옆테이블에앉은이들대부분도다음날일찍그랑파라디소에오를예정이었다.
저녁을먹을즈음부터굵은빗방울이후두둑떨어지기시작했다.이후양철지붕을때리는빗소리가더욱거세어졌다.두시간이상소낙비가내리더니이제는강풍이불었다.사정없이불어대는바람에산장지붕이떨어져나갈지경이었다.은근히다음날이른아침의등반이걱정되었지만애써외면한채담요속으로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