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 스님, 길상사에서 입적, 순천 송광사에서 다비식. *-

‘무소유’저자법정스님,길상사에서입적,순천송광사에서다비식.

법정스님/조선일보DB

무소유’의저자로잘알려진법정스님(78)이3월11일오후1시52분쯤서울성북동길상사에서입적하셨다.지병으로치료를받아온법정(法頂)스님은이날낮입원중이던삼성서울병원에서자신이창건한사찰인성북동길상사로몸을옮겼다.입적을앞두고조용히주변을정리하기위한것으로보인다.법정스님은지난2007년폐암진단을받고투병해왔으며,최근병세가위중해져삼성서울병원에입원,치료를받아왔다.

법정스님은수필집‘버리고떠나기’를비롯해‘무소유’,‘산에는꽃이피네’등20권이넘는대중저서를출간해불교계의대표적인문인으로자리매김했다.지난1997년에는길상사를창건해2003년까지회주를맡았다.법정스님은이곳에서대중법문을해왔다.’무소유’를강조한법정스님의언행은생의마지막까지이어졌다.스님이마지막남긴말도‘소유하지않겠다’는것이었다.법정스님은입적하기전날“내가이번생에저지른허물은생사를넘어참회하겠다.

내것이라고하는것이남아있다면모두맑고향기로운사회를구현하는활동에사용해달라.이제시간과공간을버려야겠다”고했다고길상사신도모임‘맑고향기롭게’측이이날밝혔다.조계종측은법정스님이“그동안풀어놓은말빚을다음생으로가져가지않겠다.내이름으로출판한모든출판물을더이상출간하지말아주기를간곡히부탁한다”는말도남겼다고전했다.스님은머리맡에남아있던책또한“내게신문을배달하던사람에게전해달라”고주변사람들에게당부했다.

법정스님의장례의식은13일오전11시전남순천송광사에서행해졌다.이날신도모임은간소한장례를치뤄달라고한법정스님의뜻을전했다.법정스님이바란자신의다비식모습은이렇다.“번거롭고,부질없으며,많은사람들에게수고만끼치는일체의장례의식을행하지말라.관과수의를마련하지도말라.편리하고이웃에방해되지않는곳에서,지체없이,평소의승복을입은상태로다비하여달라.사리를찾으려고하지말며,탑도세우지말라.”

"아쉬운듯모자라게살아야행복"

“적게보고적게듣고필요한말만하면서단순하고간소하게사는것이야말로행복해지는길입니다.”불교계원로인법정(法頂)스님은서울성북동길상사(吉祥寺)에서가진봄정기법회에서“정보과잉의시대는삶을차분하게돌아볼여유를빼앗아간다”면서“행복해지려면아쉬운듯모자라게살아가는자세가필요하다”고강조했다.
법정스님은신도1천여명이법당과앞마당을가득채운이날법회에서“나무마다꽃과새잎을펼쳐내는봄날우리는이렇게마주앉아생애의한순간을함께하고있다”면서“우리삶에서중요한것은이처럼서로눈길을마주하고인간의정을나눌수있는직접적인만남”이라고말했다.

“인터넷으로주고받는것은정보이지감정이아닙니다.접속과접촉은비슷한말인지몰라도뜻은완전히다릅니다.차디찬기계를이용한간접적만남은자기중심적이고이기적이어서진정한정을주고받기어렵습니다.휴대전화,컴퓨터,텔레비전등편리한정보수단을갖고있다고행복해지는것은아닙니다.그런것들이사람의자리를빼앗기때문에과다한정보는오히려공해가됩니다.”

법정스님은“신속한기계매체에길들어뭐든지즉석에서끝장을보려다보니세상이살벌해지고자살자도늘어난다”면서“기계에대한의존도가높아져참고기다리는미덕을잃게되면자기자신이영혼을지닌인간이라는사실조차잊게되며,그럴때문명의이기는흉기가된다”고말했다.

“아쉬움과그리움이고인다음에만나야친구와의살뜰한우정을지속할수있습니다.뷔페식당에서한가지음식을너무많이먹으면다른음식을먹을욕구가생기지않고음식맛을제대로음미할수도없게됩니다.삶의진짜맛을느끼려면모자란듯자제하며살아가는자세가필요합니다.”법정스님은“생활도구에종속돼본질적삶을잃어버리면내면을가꾸는것보다외양에치중하거나남의삶을모방하게된다”면서“누구와도비교할수없는자기만의얼굴을바꾸려는성형수술이야말로남의삶을모방하는대표적사례”라고지적했다.

이어“얼굴은’얼의꼴’이어서각자인생의이력서와같아아름다움의표준형이있을수없다”면서“덕스럽게살면덕스런얼굴이되고착하게살면착한얼굴이되는법인데사람들은그런본질적인것을잊고산다”고덧붙였다.
“우리가보고듣고말한것들은마치필름처럼마음속에저장됐다가다음행동을일으키는요인으로작용합니다.업(業)은그렇게해서만들어집니다.

모든것이넘치는세상에서휩쓸리지않고자주적인삶을살아가려면적게보고적게들으면서내면의소리에귀기울이는시간을자주가져야합니다.이찬란한봄날꽃처럼활짝열리십시오.”강원도산골에혼자살면서무소유의삶을실천하고있는법정스님은매년봄·가을두차례열리는길상사정기법회에서대중을상대로설법하고있다.
요정대원각이길상사가된사연
대원각소유주였던김영한(1916∼1999)씨는16살때조선권번에서궁중아악과가무를가르친금하하규일의문하에들어가진향이라는이름의기생이됐다.월북시인백석(1912∼1995)과사랑에빠져백석으로부터자야(子夜)라는아명으로불린그는한국전쟁이후인1953년중앙대영문과를졸업해’백석,내가슴속에지워지지않는이름’,’내사랑백석’등의책을내화제를모으기도했다.그가지금의길상사자리를사들여운영하던청암장이라는한식당은제3공화국시절대형요정대원각이됐다.

예전서울의대표적요정이었던성북동대원각.현재는승보종찰송광사서울분원’길상사’/조선일보DB
김영한씨와법정스님의인연은1987년으로거슬러올라간다.법정스님의’무소유’를읽고큰감명을받은김씨는1987년미국에체류할당시설법차로스앤젤레스에들른법정스님을만나대원각7000여평(당시시가1000억원)을시주하겠으니절로만들어달라고요청했다.하지만법정스님은줄곧시주를받을수없다고사양하다가1995년마침내청을받아들여법정스님의출가본사인송광사말사로조계종에‘대법사’를등록한다.이후1997년‘맑고향기롭게근본도량길상사’로이름을바꿔12월14일창건법회를갖는다.

길상사창건법회날김영한씨는법정스님으로부터염주하나와’길상화(吉祥華)’라는법명을받았다.당시그는수천명의대중앞에서“저는죄많은여자입니다.저는불교를잘모릅니다만…저기보이는저팔각정은여인들이옷을갈아입는곳이었습니다.저의소원은저곳에서맑고장엄한범종소리가울려퍼지는것입니다”라고말했다.

김씨는세상을떠나기하루전인1999년11월14일목욕재계후절에와서참배하고길상헌에서마지막밤을보냈다.유골은49재후유언대로길상헌뒤쪽언덕에뿌려졌다.길상사는유골이뿌려진자리에조그만돌로소박한공덕비를세우고매년음력10월7일기재를지낸다.길상사의시민모임’맑고향기롭게’는’맑고향기롭게길상화장학금’을만들어매년고교생들에게학비를지원하고있다. 길상사는현재프랑스파리에분원을두고있고,헝가리원광사,인도천축선원,호주정혜사를자매도량으로삼고있다.법정스님은길상사창건후회주(법회를이끄는어른스님)를맡아정기법회에서법문을들려줬다.2003년12월회주자리에서물러난뒤에도법정스님은길상사에서열리는대중법회에참석해법문을해왔다.이어생의마지막시간도길상사에서보냈다. 법정스님,송광사다비식거행

3월13일오전전남순천송광사에서법정스님의다비식이열렸다.

‘무소유’“스님,불길속에서연꽃으로피어나십시오.”

11일입적(入寂)한법정(法頂)스님이13일오전불꽃속에서금생(今生)의인연을마감했다.법정스님의다비식이13일오전11시40분쯤전남순천송광사경내조계산자락에서엄수됐다.스님의유지대로군더더기없는간소한예식이었지만전국각지에서온추모객1만5000여명은조계산을가득메우며스님의마지막길을배웅했다.

전날오후서울성북동길상사에서스님의출가본사(本寺)인송광사로옮겨진법정스님의법구(法軀)는이날오전10시안치됐던문수전을나섰다.송광사경내에는범종(梵鐘)소리가108번은은히울려퍼졌다.서울에서옮겨온모습그대로대나무평상위에누워가사를덮은채였다.위패와영정(影幀)사진을앞세운법정스님의법구는대웅전앞에서부처님께마지막인사를올리고다비장으로천천히이동했다.

길양쪽으로늘어선추모객들은“석가모니불”“나무아미타불”을염송했다.다비식역시간소했다.만장(輓章)도없었고,추모사,조사(弔辭)도일절없었다.다비장은문수전에서약2㎞정도떨어진산중이었다.편백나무와소나무가빽빽히숲을이룬가운데다비장이놓일장소만정리된상태였다.스님의법구가놓일자리엔장작더미가놓여있었다.

오전11시10분쯤스님의법구가다비장에도착하자미리기다리던추모객과법구를따라온신자들의“나무아미타불”염송소리는더욱커졌다.다비장에도착한스님의법구위엔참나무장작이겹겹이쌓였다.어른키높이정도로장작이쌓였을때가오전11시40분쯤.흰국화몇송이가장작더미위로던져졌고,이어상좌스님등이불을붙였다.다비장주변골짜기를가득메운추모객들은일제히“스님,불들어갑니다.어서나오세요”라고외쳤다.

불꽃은이내장작더미를삼켰다.신도들의“나무아미타불”염송은흐느낌으로바뀌었고,상좌스님들도눈물을훔쳤다.5분쯤지나불길이활활피어오르자반야심경염송을마지막으로공식다비식은끝났다.법정스님의상좌인덕현스님(길상사주지)는추모객들에게“스님은가셨지만불길속에서스님의남기신참뜻은연꽃처럼피어날것으로믿는다”며대중들과함께“화중생연(火中生蓮)”이라고외쳤다.

스님의다비식은12시10분쯤끝났지만많은추모객들은계곡에그대로남아기도를올리는모습이었다.송광사는14일오전10시쯤불이꺼진후스님의유골을수습할예정이다.다비준비위원회대변인진화스님은브리핑을통해“스님의유골은그대로함에담아상좌스님들께전달할예정이며산골(散骨)할장소는비공개로하기로했다”고밝혔다.

-글/이재호기자조선일보-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